풍수형국론으로 터 읽기
몇 년 전 모 대학에서 경관(景觀)에 관한 심포지엄이 있었다. 경관을 주제로 하다 보니 건축, 조경, 풍수, 역사 등 다양한 학제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어느 교수님이 풍수형국론을 거론하셨다. 그 교수님은 당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참여하시고 계시는데, 풍수형국으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설명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하회마을을 행주형· 연화부수형으로, 양동마을을 물자(勿字)형국이라고 하는데 너무 자의적이고 억지 같다’는 말씀이다.
맞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는 풍수에서 말하는 형국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형국론으로 특정 지역을 설명할 때 반드시 ‘서 있는 지점(standpoint)’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형국론은 물형론(物形論) 혹은 갈형론(喝形論)이라고도 한다. 갈형론이라고 하는 것은 ‘갈(喝)’이 꾸짖을 ‘갈’로도 쓰이지만 ‘식별하다’, ‘분류하다’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각각 독특한 기가 있으며, 이러한 독특한 기는 주로 산세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형상을 형물 또는 물형이라 부른다. 형국론은 일종의 거시(巨視)풍수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형국론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 될 수 있다. 따라서 풍수고전들마다 형국론을 언급할 때 ‘집착하거나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그러나 형국론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보면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형국론은 땅에 대한 인간의 미학적 인식을 가능케 해주며, 땅의 특성과 속성을 파악해 적절한 용도 결정을 도와주며,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 방법론을 제시한다. 바로 이 점에서 난개발 속에 온갖 물신(物神)들에 빙의(憑依)된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산을 끊고 물길을 막아 땅을 죽이려 드는 우리 시대에 더욱더 절실한 의미를 갖는다.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과 하회마을
형국론을 바탕으로 어느 터를 말할 때 그 터를 조망할 수 있는 특정 지점(standpoint)이 필요하다. 예컨대 경복궁을 어느 지점(북악산 정상, 인왕산 정상, 남산 봉수대 등)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경복궁의 형국은 달라진다. 따라서 하나의 터에 대해 그 관점에 따라 다양한 형국론이 나올 수 있다.
하회마을을 예로 들어보자. 흔히 하회마을의 형국을 연화부수형이나 행주형(行舟形)으로 말한다. 행주형이란 배가 떠가는 형국이다. 하회마을을 배에 비유하고 그 앞을 감싸 도는 낙동강(화천)에 떠 있는 형국으로 보았기에 쉽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왜 하회마을 연화부수형으로 보는가? 하회마을 강 건너 부용대에 오르면, 그곳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소개 글이 있다.
“부용대는 ‘부용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하며(…) 여기서 내려다보면 하회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보여, 마을의 모양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한다.”
두 가지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첫째, 부용(芙蓉)의 ‘蓉’자에 연꽃이란 뜻이 있으므로 부용대(芙蓉臺)가 연화대(蓮花臺)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부용이 연꽃은 아니다. 둘째 이곳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이곳 하회마을의 대종택인 양진당 마당에서 주변을 바라볼 때 연화부수형으로 다가온다. 강 건너 사방의 산들은 연꽃잎에 해당되고, 양진당 터는 연꽃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씨방 부분이다.
600년 길지 순창 구미마을과 갈록음수형(渴鹿飮水形)이름나고 명당인가, 명당이어서 이름났는가? 똑같이 풍수상 길지이고 여러 조건으로 보아도 뒤질 것이 없는데 한 곳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는데, 다른 한 곳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전자가 하회마을이라면 후자는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龜尾) 마을이다. 풍수적으로 하회마을에 견주어 전혀 뒤질 것이 없다. 고려 말에 입향(入鄕)한 남원 양씨가 단일집성촌을 형성하며 600년 넘게 터전을 지켜 온 곳이다. 현재 후손들은 이곳을 정점으로 하여 남원, 임실, 전주, 광주, 서울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 있다. 또 고려 때의 과거합격증(국가보물로 지정)을 지금도 종손댁이 보관하고 있고, 조선조에서도 수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였다는 사
실에서 조선의 큰 길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인근에 수많은 음택(묘지)명당들을 입향조와 그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음도 하회마을과 풍산 류씨와 관계가 비슷한 구조를 보여준다.
풍수적으로 구미마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마을 뒤 주산은 무량산 (587m)으로 한양의 주산 북악산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위용을 자랑한다. 그 한줄기 능선이 구불거리고 내려오다가 종가 바로 뒤에 큰 바위로 멈춘다. 이 바위를 녹갈암(鹿渴岩)이라 부른다. 종가 좌측으로 수십 미터 부근에 큰 우물이 있는데 대모정(大母井)이라 부른다. 목마른 사슴이 큰 우물을 만나 물을 마시니 얼마나 기쁠까? 이른바 갈록음수형(渴鹿飮水形)의 명당이다. 이 마을의 주산 무량산은 웅장하지만 바위가 많아 화기(火氣)가 강하다. 화기가 강하면 물이 부족함은 당연한데, 큰 샘이 이를 해결 해준다. 사슴은 순한 동물이다. 맹수를 피하려면 숨은 듯해야 한다. 그러한 까닭에 지금도 녹갈암은 대나무 숲으로 가리게 하고 있다(남원 양씨 22대 종손 양대우 선생 증언).
하회마을처럼 이 마을도 또 다른 형국을 갖고 있다. 금거북이 꼬리를 끄는 형국인 이른바 금구예미형(金龜曳尾形)이다. 신령스러운 거북(金龜)이 알을 낳고 꼬리를 끌면서 물로 나아가는 형국이다. 알을 낳는다는 것은 다산(多産)과 풍요이며, 금거북은 아주 오래 산다는 십장생의 하나이다. 이 마을이 장수촌(長壽村)인 것도 그 땅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 마을 앞에서는 섬진강이 흐른다. 섬진강 길 가운데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마을 이름이 ‘거북꼬리’란 뜻의 구미(龜尾)로 지어진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이다. 지금도 마을 입구에 거북 석상이 서 있어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석(神靈石)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하회마을과 같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회마을은 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른바 득수국(得水局)의 명당이라면, 구미 마을은 산의 비중이 더 큰 장풍국(藏風局)의 명당이다. 즉 물가의 마을(득수국)이냐 산간의 마을(장풍국)이냐가 하회마을과 구미마을을 구별 짓는 큰 차이이다. 득수국과 장풍국의 우열을 따지자면 어디가 더 좋을까? 풍수 고전 『장서』는 “풍수의 법은 물을 얻는 것을 으뜸으로 하고, 산으로 에워싸는 것을 그다음으로 한다(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라고 적고 있다. 이 점에서 구미마을이 약간 밀린다. 하회마을에 대해 일찍부터 행주형·연화부수형 등으로 풍수상 길지임을 강조하며 원형보존과 홍보에 힘을 기울였다면, 구미마을에 대해 이곳 사람들이 그
가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재 종가 앞에 큰 공장형 창고가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아도 그러하다. ‘안동의 하회마을이 있다면, 순창에는 구미마을이 있다.’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자체와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뛰어난 경관과 풍부한 마을자원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10년, 20년 후에는 전북의 명소가 될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