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야곱의 본질을 벗겨주시다”
본문 : 창25:27
인간은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선한 영향력으로 사랑과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길 원합니다.
또한 집착하는 어떤 일이 충족되면 만족함이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자기애”라는 본성 때문에 기인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광야의 다루심을 받고 자신 안에 감춰진 “자기애”의 인간성을 벗고 진리와 생명으로 나아가는 야곱의 여정을 통하여 바른 진리에 대해 눈뜨길 원합니다.
1,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습니다.
① 야곱의 본질은 종용한 사람이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종용한 사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종용 ; ‘차분하고 들뜨지 않아 침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니, 에싸브는 사냥을 아는 들사람이었고, 야이콥은 천막에 사는 완전한 사람이었다.”(직역성경)
“두 아이가 자라,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새번역성경)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개역개정)
종용이란 뜻은 히브리어로 “탐”인데 그 뜻은
도덕적 의미에서 “완전한(욥1:1)”,
“귀여운, 친밀감 있는, 사랑스러운”(아6:9),
또 경건한, 순진한, 신실한, 정직한 이라는 의미에서 “완전한(시37:37)”등의 뜻으로 구약성경에서 13회 사용되었습니다.
장막에 머무는 자로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리브가에 말에 순종하는 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창27:22)에 보면 겉모습은 거짓으로 꾸몄지만 음성까지 꾸미지 않았습니다. 간계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야곱을 정직하고 순진하며 신실하고 경건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종용한 사람 야곱은 그의 겉 사람일뿐입니다.
겉 사람은 땅에 속한 신령한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의 유업을 기업으로 얻지 못합니다.
② 야곱은 욕망의 사람이었습니다.
25:28“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므로 사랑하는 이삭은 에서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해오면 축복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족장시대에는 아버지의 축복기도는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이 땅을 너에게 주며, 네 씨에서 약속의 자손이 나올 것과 그 자손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와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자손, 언약의 생명의 계보를 통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처럼 장자권은 약속의 자손에게 있어서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에서로 하여금 작은 육욕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아 붉은 죽을 먹는 상황을 허락하였습니다.(창25:33)
하찮게 여기는 “죄”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사랑은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리브가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 있었기에 인간의 정에 이끌리지 않고 비합리적이고 매정하게 보이는 일을 합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창27:12)
리브가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입히고 염소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좋은 염소 새끼로 만든 별미와 떢을 주어 아비의 장막으로 보내고 형에서 대신 축복을 받게 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비열해 보이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욕망은 종용한사람이라는 껍데기로 싸여 감춰져 있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종용한 사람 야곱을 다루시기 원하셔서 그를 궁지로 모십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 환경 때문에 그 동안 자신이 머물며 살던 “장막”을 떠나게 됩니다.
① 야곱, 영적광야로 이끌립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창28:10-11)
하나님께서 영혼을 내면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소망을 주시고” 뜻하지 않은 어느 시점에 광야로 이끄셔서 “Touch”해 주십니다.
호2:14“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그러나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이끌리지만 진리에 대해서 눈뜨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든든함이 속으로부터 차오름을 느낍니다.
야곱은 어느 한곳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데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창28:12-13)”하는 꿈을 통해 “Touch”를 받게 됩니다.
내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나님께 오르는 길입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밀어내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밀어내기 위해서 떠나는 여정입니다.
광야는 새사람을 싹틔워 옛사람을 밀어내는 곳입니다.
② 자연적 사랑은 깨끗이 씻겨야 합니다.
하란에서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의 딸 중 라헬을 만납니다.
야곱은 눈에 어여쁘고 감각적이며 달콤함을 상징하는 라헬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를 신부로 얻기 위해 7년을 일합니다. 그러나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레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그가 사랑한 라헬이 아닌 그의 언니 레아로부터 메시야가 오셔야 합니다.
자연적 사랑을 향한 집착은 포기를 모릅니다.
그 후에 다시 7년을 일하고 라헬을 신부로 맞이합니다.
라헬은 생명을 갈망하지만 자신에게 지쳐서 언니를 시기하고 내가“죽겠노라” 아우성치며 떼를 쓰고 야곱은 “성을” 냅니다.
자아로부터 나오는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에 패배하고 벼랑 끝에 서있다고 토로하였습니다.
달콤한 사랑을 추구하던 라헬과 야곱은 서로 연단 받지만(창30:1-2) 달콤함에 취하길 원합니다.
창30:14-15“르우벤이 밀 추수 때 들에 가서 두다임(합환채, 임신촉진제)을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 주었다. 라헬이 레아에게 말하였다. 내게 언니 아들의 두다임을 좀 줘요 레아가 그녀에게 말하였다 네가 내 남편을 취한 것이 작은 일이어서 내 아들의 두다임도 네가 취하려느냐? 라헬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언니 아들의 두다임 대신에 오늘밤 그가 언니와 동참할거에요”
남편을 소유하게 되는 것보다도 합환채의 향기를 맡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감각적인 달콤함에 집착하는 나약한 인간의 사랑입니다.
광야는 “사랑”을 제련하는 곳입니다.
3, 얍복강가에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방법, 꾀, 계획을 다 보내고 난후 홀로 얍복강가에 남았습니다.
이 홀로 있는 시간은, 우리의 본질을 벗는 시간입니다.
상한 심령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생명과 사랑이 잉태되는 시간입니다.
회개하고 보혈로 씻김 받는 이 시간은 주의 자비가 강같이 흐르는 치유의 시간입니다.
평생 야곱의 영혼이 순전하게 주를 사랑하도록
환도뼈를 치심으로 절뚝거리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본질인 종용한 사람,
자연의 빛 안에서 얻은 지혜(꾀), 방법, 계획,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연적 사랑과 욕망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벗겨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힘은 단순하게 지팡이를 의지하고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사는 것입니다.
시편23:4“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