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고전7/29-31 남겨진 시간. 남겨진 사람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고전7/29-31
메시아적인 것은 시간의 끝이 아니라 끝의 시간이다. 바울의 관심사는 최후의 날이 아니라,시간이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수축하며 끝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시간과 종말사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예언자는 메시야의 도래가 ‘올 때’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메시아적 사건이 ‘지금 이때’이다.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그리이스인은 그리이스인이 아닌 것처럼”.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부정의 보편성,메시아적 시간개념을 세속화 시킴)
메시아의 도래는 모든 사건들이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그것들를 보는 주체가 ‘-이 아닌 것처럼’속에서 포획되고 부르심을 받는 동시에 기각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미 바라보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달하여 ‘마치-처럼’행위로 옮길 것을 결의하는 주체도 존재하질 않는다. 메시아적 소명은 무엇보다 주체를 전위시키고 무화시킨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마치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을 폐지함으로써만이 자신을 해방시킬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다.
에크래시아(교회)-메시아적 크레세이스(소명)공동체는 ‘-이 아닌 것처럼’과 같은 사용(소유가 아닌)의 형태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라 할수 잇다.
‘-이 아닌 것처럼’에서의 부르심에 머무르는 것은 어떤 것의 소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다만 사용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과 소유의 대치이며,소유권의 박탈이다. (남겨진 시간-조르조 아감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