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해뜨는 지리 제1봉으로 다시 어둠을 헤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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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피로와 숙취로 비교적 편안하게 잤다. 새벽 두시에 기상하여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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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대 이튿날의 종주길에 나서며 화이팅을 외치고 다시 장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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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길 촛대봉을 지나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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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 지나 미끄러운 너덜바위지대가 꽤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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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일출에 혹여 늦을까봐 속도를 붙였으나 해는 구름속에서 뒤척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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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을 지나면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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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땀방울에 젖은 산사나이는 꽃보다 아름답다. 이슬보다 청초하다.
여명이 말려주는 얼굴의 땀방울은 귀하고 멋드러진 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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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을 뚫고 나오다가 흐지부지 사그라지는 태양의 심술때문에 매번 실망했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맞이할 수 있다는 천왕일출, 천왕봉에서 해뜨길 기다리는 게 이번이 다섯 번째다.
"오늘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와 제 자신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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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처음와서 일출을 본 병소의 충만한 덕으로 인해 끼워서 일출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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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 넘어 통천문 지나 천왕봉 오르거든 우리 무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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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을 다가오는 소리 듣고 맑은 산바람 들이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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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온 아랫길 되뇌면서 그간의 시름 싸악 잊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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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의義 깊어 가고 묵은 정情 더욱 삭혀가면 그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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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석 인증샷을 찍고도 30분을 기다렸으나 동편 하늘은 그 빛깔 그대로다.
줄듯 말듯 애태우는 처자의 모습처럼 그대는 붉은 서기 내뿜으며 정녕 뒤태만 보여줄 것인가.
잿빛 구름속에서 더디게 게으름 피우는 태양이 날 자꾸 불안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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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기다리고, 일출을 보며 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작은 기대, 소박한 소망일지라도 이들이 바라는대로 현실로 다가섰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같이 산을 사랑하는 동반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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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오늘도 틀린 것 같다. 시간을 아껴 중봉으로 향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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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세. 11.7km의 내리막길을 가려면 서두르세나. 일출구경은 틀린 것 같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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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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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히 서기만 어리다가 회색 구름밭을 뚫고 붉은 광채가 홀연히 솟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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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뜨는 해가 이처럼 반가울 줄이야.
지리산에서의 일출이기에... 올라온 이만 볼 수 있는 천왕에서의 해돋이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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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천왕봉 일출은 비주얼적인 아름다움보다 또 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삶에서의 여러 긍정적 측면을 상징하는 의미,
진인사대천명의 숙어처럼 성실한 노력을 다한 자의 숙연한 기다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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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창의로 소망하는 걸 이루고야 마는 인내의 표상같은...
해가 뜨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는 하산하면서 나름대로 깨닫고 정리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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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오늘 보는 일출은 마치 천지개벽의 순간을 연상케 한다.
지리 8경인 천왕일출은 장대한 파노라마다.
천왕봉에서 새벽추위에 떨며 기다린지 다섯번째만에 그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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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소야!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덕 없는 내가 어찌 저 광대한 장면을 볼 수 있었겠니. 고맙다."
너무나 찬란하여 황홀하기까지 한 장관을 보고있으려니 어제부터의 피로가 일순간에 가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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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누구 못지않은 알피스트로서의 계원이에게 등뒤에서 빛나는 태양처럼 찬연한 축복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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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게 솟는 태양의 힘찬 움직임과 내 친구의 옹골찬 기운이 한폭 그림처럼 잘 어우러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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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덕으로 보게 되는 천왕일출이 아니라 부디...
오늘 우리가 일출을 봄으로써 우리 자손들이 충만한 덕을 쌓아 많은 이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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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무사히 하산하고 또 삶이 다할 때까지 우정 이어가며 오래도록 함께 산행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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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온 곳
나를 찾으려 오르고 또 오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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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 나를 찾았으나
찾은 나를 잊어버려 다시 찾아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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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아온 곳에서 저만치 해가 솟아오르는 걸 보고 다음 여정 중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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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서면서 뒤돌아본 천왕봉의 산객들은 아직도 환희에 휩싸여 있다.
바위 녹아내릴 듯 뜨거운 여름 천왕봉
치렁치렁 매달리고 무등탄 식구들
모두 떠나도
헐거워진 고목들 늘어세워
다시 올 새날 위해
기도 올린다.
계절 지나 갈색 낙엽 뒤엉키고 부스러져도
엷은 햇살 뿌려가며 또 오는 이 마중하고
떠나는 이 배웅한다.
다 주어도 모자라
안타까움 금치 못하는 그대는
맛난 반찬 고른 젓가락 자식 입에 넣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속세로 향하는 하늘길 긴 유람,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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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산행의 최종목적은 안전한 하산이다. 그러려면 끝까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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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산길, 이슬 젖은 산죽이 바지와 신발을 젖게 하지만 싱그럽다.
끈 풀린 등산화 조여매고 몇 바퀴 굽이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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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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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부터 비박을 통제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비박뿐 아니라 야영하는 산객들도 부지기수였다.
저기 보이는 천왕봉에서는 사진 찍기조차 어려울만큼 붐벼 중봉에서 일출을 대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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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까마득히 보이는 노고단과 여인네의 풍성한 엉덩이같은 반야봉을 바라보며 어제부터의 여정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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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면 헤아리고 가다듬어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다.
산에 오면 아쉬워 남겨두었던 것들 쓸어모아 툭툭 던져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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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가득 아름다웠던 날들, 감사했던 이들
여미어 담아두게 되고
없어져도 그만일 부스러기 욕구들
훌훌 털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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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 산그리메 묵연히 바라보며 버려야 할 것들, 간직해야 할 것들
새기고 되새기며 잇고 끊음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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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아마 한라산일 거야."
"설마!"
육안으로는 선명하여 일행들에게 가르킨 곳이 사진 한시 방향 윗부분, 구름 위로 살짝 솟은 봉우리이다.
내 생각엔 백록담이 있는 한라산정상이라 확신하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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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길이지만 건조한 무더위가 따갑다. 그래도 막바지 하산길 걸음은 가볍고 경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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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리봉을 내려와 시야에서 곧 사라질 지리 제1봉을 아쉬워한다. 또 오게 될 때까지 안녕히 계시게.
북한산 백운대에, 도봉산 신선대에 오르거들랑 늘 그대를 떠올리며 예서 얻은 교훈 다시끔 되새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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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목계단을 오르고 내려서길 반복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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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 유일한 대피소, 치밭목산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하산할 즈음 화대종주 산악마라톤 참가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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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밭목부터 보폭을 늘려 속도를 냈다.
막바지에 흘린 땀방울이 아마도 어제오늘을 진한 추억으로 각인시킬 것이므로.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이들의 걸음걸이는 붙은 가속을 소화해내기에 충분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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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계단의 마라토너가 병소 뒤에서 뛰어내려온다.
이들에게 길 비켜주고 식수 대주는 보조임무까지 맡게 된듯하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산에서,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에서 산악마라톤을 개최하여 나무와 새들을 놀라게 하며
뛰게끔한다는 발상이 너무나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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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우리도 속보를 하며 무제치기 다리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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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머리 하산지점 약 4km를 남기고 마지막 스퍼트를 하기 전에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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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냅다 내려오니 유평 날머리에 이르렀다.
"만세, 만만세! 우리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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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 고맙다.
그 어떤 인삿말로도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함께 산행한 병소, 계원, 은수!
함께한 이틀 밤낮의 여정은 두고두고 가슴 뭉클한 감사의 심정으로 남게 될 것이다.
되레 내게 고마움을 표하는 그들이었지만
단 한 번도 산행에 개인의사를 표하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않은 이들이 대견스럽고 역시 고맙기 한량없다.
고행의 흔적 끈끈이 들러붙은 반야봉 바위벽
우리 네 사람 흘린 땀에 축축 젖은 영신봉 야생화
벼르고 찾은 해맞이 산객 흠뻑 반기려 마당 내어준 천왕봉
붉은 광채 뿜어내는 일출을 가득 담고
풀잎처럼 가붓이 중봉 하산할 때
예가 생의 한 가운데인 양 환상에 젖어드니
뼈가 삭아 걸음 내딛지 못할 때라도
하도 넉넉하여 마냥 안기고픈 지리산 품속
거기서 들리는 영혼의 맑은 소리
노상 들을 수 있다면은
그러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