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일승보성론 제4권
7. 위하의성품(爲何義說品)
[문] 진여이고 불성인 여래장의 뜻이 장애 없는 구경(究竟)의 보살 지위에 머무는 보살의 제1성인으로서도 역시 그 경계가 아니라면, 이것은 일체 지혜의경계이기 때문이리니, 만약에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어리석고 뒤바뀐 범부들을 위해 이러한 것을 설합니까?
[답] 바로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대략 네 게송을 설한 것이다.
곳곳의 경 가운데에 안팎의 일체 〈공〉함을 설하되 함이 있는 법은 구름과 같고 또 꿈과 눈흘림 같다고 했는데
여기엔 무엇 때문에 일체 모든 중생들의 다 여래성품이 있는 것은 설하고 그 공적(空寂)한 것을 설하지 않는가라고 하지만
겁약(怯弱)한 마음이 있거나 모든 중생을 경만(輕慢)하거나 허망한 법에 집착하여 진여의 불성을 비방하며
자신에 신아(神我)가 있음을 계교함으로 이러한 중생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 허물을 아주 여의게 하기 위해 이 때문에 그 불성이 있음을 설한 것이네.
이 네 구절의 게송을 열 한 구절 게송으로써 대략 해석하겠으니 알아두라. 게송으로 말한다.
여러 수다라(修多羅) 가운데 함이 있는 법을 설한 것은 이를테면 번뇌와 업 등이 구름 따위처럼 허망하다는 것이니
번뇌는 마치 구름과 같고 업을 지음은 꿈과 같고 눈흘림 같은 쌓임도 그러함은 번뇌와 업이 나기 때문이네.
먼저 이미 이렇게 설했지만 이 구경(究竟)의 논 가운데엔 다섯 쌓임을 여의게 하기 위해 진여의 불성이 있음을 설한 것이라.
중생들이 듣지 못함으로써 보리심(菩提心)을 내지 않거나 혹은 겁약한 마음이 있어서 자신의 모든 허물을 속이고
또는 보리심을 내지 못함으로써 속이고 난 체하는 뜻을 일으켜 보리심 낸 사람을 보고는 내가 저 보살보다 낫다고 하나니
이와 같이 교만한 사람은 바른 지혜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 이 때문에 허망함을 잡을 뿐 정작 여실한 법은 알지 못하며
허망하게 중생들의 허물을 잡음으로서 객(客)ㆍ진(塵)의 더럽힌 마음에 실로 저의 모든 허물이 없고 자성의 청정한 공덕인 줄 알지 못하면서
허망한 허물을 잡음으로써 여실한 공덕을 알지 못하나니 이 때문에 자타의 평등한 그 자비심을 낼 수 없네.
저 진여의 불성을 듣고 큰 용맹의 힘을 일으키거나 또는 지혜와 대비이신 세존에게 공경을 다한다면
다섯 가지 법을 늘여 내어 그 평등에 물러나지 않음으로써 일체의 허물은 다 없어지고 오직 모든 공덕만이 있으리니
일체 중생 보기를 더 나의 몸과 다름없게 여기어야 더없는 부처님의 보리를 빨리 성취할 수 있을 것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