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위도의 추억
섬의 형상이 고슴도치를 닮아서 고슴도치섬이라는 위도, 즉 고슴도치위(猬,蝟) 자를 차용하여 명명되었다는 蝟島...
그 옛날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이상적 혁명가 교산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이상향 율도국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전설이 깃든 서해의 파라다이스, 환상의 섬, 동양의 영원한 유토피아... 위도...,
(*위도 : 인구 약 1,153명/2021. 7월 말 기준, 약 580여 세대, 면적 11.14㎢, 해안선 길이 36㎞, 변산반도 서방 14.6㎞, 격포항에서 뱃길 약 50여 분 소요, 우리나라 아름다운 섬 10선 중 하나)
전주에서 사업을 크게 하던 진송욱 고향 친구가 사업체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 땅을 매입, 그곳에 아담한 별장을 짓고 닭과 염소를 키우며 각종 채소를 관상하듯 재배하는 등 인생 2모작을 유유자적 살고 있다면서 광주에 사는 진병권, 진병서 친구가 그곳에 다녀오자는 오래전 제안을 이제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드디어 디데이...
11. 21. 09:10 순천 시외버스터미널 출발, 같은 날 10:30 광주 유스퀘어 도착, 이어서 병서 친구와 함께 달려온 병권 친구 승용차에 몸을 싣고 1시간 30여 분를 달린 끝에 드디어 부안 격포항에 도착하였다. (12:00경 도착)
예전 전주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달려갔었던 격포 채석강도 보이고, 닭이봉 정상에 있던 카페도 여전한데, 불현듯 과거로 회귀하여 당시 그곳 카페 DJ에게 신청하여 듣곤 했던 강변가요제 대상곡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가 들려오는 듯 회상의 물결 속에 빠져들고, 그러나 위도행 대현 카훼리호 출발시간을 생각해 내고는 화들짝 놀라 촉박한 일정상 인근 식당으로 달려가 백합탕으로 재빨리 점심을 해결하고, 마침내 같은 날 12:50경 카훼리호에 올랐다.(유미리 - '젊음의 노트' [콘서트7080, 2004] | Yoo Mi-ri - 'Note of Youthfulness' - YouTube)
잠을 청하던 병서와는 달리 병권 친구와 소주 1병을 나눠 마시며 약 50여 분를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위도 여객선터미널에 당도하고 있었다.
이미 위도항에는 애마 트럭과 함께 진송욱 친구가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를 무척 반겨 맞아 주었다. 우리는 즉시 송욱의 애마에 몸을 싣고 15분 정도를 달리고 달려서 위도면 대리마을 뒷산 아래, 대리교회 뒤편에 자리한 송욱의 별장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대리마을 큰길에서 송욱 친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초입에 '대룡샘'이라는 푯말이 보였고, 바로 골목길에 접어들자 지난 2011년도에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가 위도 해수욕장에서 열렸다는 것을 기념하는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대리마을 유래 : 옛날에는 마을 형태가 큰 돼지의 목 같아서 ‘대저항’이라고 불리다가 그 후 대저항이 ‘대장’이라고 축약해서 불렀고, 그다음에 큰대(大)자에 마을 리(里)를 붙여 ‘대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송욱 친구는 전설이 깃든 마을 뒷산 대룡샘물을 호스로 연결하여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본인도 인근에 있는 대룡샘(大龍泉)을 보고 현재 살고 있는 용지를 구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거나 대룡샘물은 영험한 효능이 있다는 전설이 다음과 같이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1일 차는 인근 해변에서 낚시와 통발로 멋진 파티를 하고자 하였으나 풍랑으로 인하여 불발, 그러나 송욱 친구가 미리 준비한 장작불과 돌판에 가지고 간 삼겹살로 한 잔술에 우정을 나누고, 두 잔술에 추억을 노래하며 한없는 정담 속에 시간은 유성같이 흘러갔다.
2일 차는 과음으로 늦잠을 자는 나를 뒤로하고 송욱 등 3명의 친구들이 인근 망금봉(242m)과 망월봉(255m) 등산을 다녀왔고, 오후에는 인근에 있는 미완의 치유센터를 방문하여 '치유의 숲' 데크길도 거닐어 보는 망중한을 즐겼다. 그리고 저녁에는 이곳 대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어느 횟집에서 맛있고 싱싱한 회와 소주잔으로 정담을 나누고 지리탕으로 맛있게 저녁을 대신했다.
3일 차는 위도에서 나오려고 했으나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어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이 이어졌다. 하릴없이 병권과 대리마을 뒷산을 산보하듯 올랐다. 한국 춘란이 등산로변에 산재한 것을 보니, 이곳 위도에는 춘란 명품이 많은 것처럼 보였고, 역시나 송욱과 알고 지내는 동민 중 한 명을 난 전문가로 소개를 받아 그분과 난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난실도 구경하는 등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리마을 입구에 있는 대통령상 수상작인 띠뱃놀이 안내문을 보며 그 조형물을 감상하고, 이어서 마을 뒤 정중앙에 있는 띠뱃놀이 전수관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심한 바람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실내에서 송욱 친구가 직접 밭에서 준비한 싱싱한 상추와 삼겹살에 소주잔으로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4일 차는 대리마을은 날씨가 좋은데 역시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아서 마음을 추스르고 송욱 친구가 키우고 있는 백봉계의 닭장을 예쁘게 만들며, 세면대 옆 순간온수기 받침대를 병권과 앙증맞게 만들어 비치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녁, 송욱 친구가 무를 냄비 바닥에 깔고 싱싱한 조기를 올려놓는 방식으로 솜씨를 발휘하여 맛있는 조기탕을 완성했고, 우리는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멋진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5일 차는 마침내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었다는 전화 통화에 부지런히 준비, 위도 여객선터미널로 달려갔고, 07:40경 첫배에 오를 수 있었다. 4박 5일 동안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우리를 환대해준 송욱 친구의 깊은 정을 언제까지고 잊지 못할 것이다.
- 송욱 친구의 행복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며....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