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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로마서8장31~39절
제목 : 사랑이 이긴다
5~8장의 결론입니다.
바울은 미래에 있을 최후의 심판 장면을 내다봅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승리에 근거하여, 그 어떤 것도 성도들을 대적하거나 정죄 할 수 없음을 격정에 찬 어조로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어낼 수 있는 권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 속에서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1. 대적할 수 없는 사랑(31~34절)
1)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대적할 자가 없음(31~32절).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하고 묻습니다(31).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이 일'은 직접적으로는 28-30절까지 언급된 것을 지칭하지만 보다 포괄적으로는 3:21부터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 전체를 지칭합니다.
다만 28-30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전체 구속 사역을 요약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마귀와 변론할 때 다른 말보다도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 1:9)고 말했던 것을 유다가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선악간(善惡間)의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시면 그 무엇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2) 자기 아들까지도 주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32절)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본 구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던 내용
즉,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창 22:12),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창 22:16)을 연상시킵니다.
바울은 본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실례로 들어 이신칭의를 설명하였으나,
거기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기사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음에 있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친 기사는 아브라함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주므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에게 내어 주신 사실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기사와의 유비 관계에서 적절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처럼 성부 하나님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해 대속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칠 때 많은 고통과 고초가 따랐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김없이 준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로 하여금 온갖 수난과 고초가 따르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집행과정을 겪도록 그대로 허용하셨습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이상의 지극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대속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 '만일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우리 모든 사람'은 26절에 기록된 '성령의 간구하심을 힘입은 자들'이요, 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며 29, 30절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에 의해 '선택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여기서 '모든 것'은 구원 자체도 될 수 있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 및 모든 피조물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천사도 성도를 위하여 '부리는 영'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히1:14).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요3:16) 성도를 위해 다른 무엇을 아끼겠는가 !
그러므로 이것은 성도의 위치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2) 죽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인해 더 이상의 정죄가 없음(33~34절).
(1)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의 의롭다 하셨으므로 아무도 그들을 정죄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33절).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 31절의 '고발하리요'와 '송사(訟事)하리요'는 비슷한 의미를 지닙니다.
다만 '송사하리요'란 단어는 법정적(法定的)인 술어로서 곧이어 언급되는'칭의'와 직접적으로 연관지어집니다.
사단이 여호와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송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듭 책망하시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사하시고 아름다운 옷과 깨끗한 관을 씌우셨습니다(슥 3:1-5).
여호수아 자신이 깨끗했기에 송사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재판장되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그를 깨끗케 하셨기에 여호수아는 사단의 송사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본절에서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논지(論旨)입니다.
(2) 그리스도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로 묘사합니다(34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 성도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기에 율법의 정죄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1절).
비록 죄의 법에서 사로잡혀 마음이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성도는 어느 누구에게도 정죄를 당하지 않는 신분을 지니고 있음을 바울은 본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바울은 26절에서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성령은 성도의 연약한 삶을 위해 간구하시지만,
성자 그리스도는 정죄 받을 성도를 위해 변호하시고 탄원하십니다.
비록 본절에 언급된 '간구하다'(엔튕카네이)가 기도의 형식을 나타내지만,
본절에서 이 단어가 지닌 진정한 의미는 성도를 위한 그리스도의 변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자신이 성취한 구속 사역을 근거로 자기 백성 된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변호해 주십니다.
2. 넉넉히 승리하는 사랑(35~39절)
1)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을 것이 없음(35절).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본절은 바울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것을 나열하고 있습니다(Black).
고후 11:23-27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보다 세부적으로 진술했으나 본절에서는 그 경험을 요약하여 대표적인 용어를 선택하여 진술하고 있습니다.
*고후11:23~27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이 질문은 앞에서 언급했던 질문들(31, 33, 34절)을 포괄합니다.
-31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어느 누구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으며, 송사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본 구절의 질문은 39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된 대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9절하반절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①환난(들마시스) - 이는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여섯 가지를 대표하며
'고난'(17, 18절)과 같은 표현입니다.
②곤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노코리아'는 '행동이 제한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바울 자신이 옥에 갇힌 경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③박해
④기근(리모스) - 이는 민족이나 지역적인 차원의 기근일 수 있으나,
본절이 바울 자신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굶주리며 마시지 못한(고후 11:27) 경험을 나타냅니다.
*27절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⑤적신(귐노테스) - 이는 고후 11:27의 '헐벗었음'과 원어상 동일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자기의 겉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할 만큼(딤후 4:13) 항상 입을 것조차 변변치 않았습니다.
⑥위험
⑦칼
2) 그리스도로 인해 고난을 이겨냄(36~37절)
(1) 도살 당 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36절)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본절은 시 44:22의 인용문입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본절은 바울이 35절에서 언급한 여러 환난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37절)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를 혹자는 '우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얻고 있느니라'(We are winning an overwhelming victory)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Black).
그리고 렌스키(Lenski)도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가장 혁혁(赫赫)한 승리를 지속적으로 성취하고 있다'(We keep achiving the most brilliant victory)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역 성경 중에는 이 단어의 '정복'이라는 의미에 강조점을 두어 '우리는 정복자들 그 이상이다'(We are more than conquerors)로 번역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KJV, RSV, NIV).
아무튼 본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이'(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승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38~39절).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떤 피조물도 성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어떤 피조물도 그리고 어떠한 상황과 여건도 성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방해할 수 없음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권세자들(아르카이) - 이는 본래 바울 신학에서 천사의 한 부류에 속하지만(엡 1:21) 주로 사단의 세력 하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들을 지칭합니다(엡 2:2;6:12).
그리고 특히 바울은 '사망'과 '생명', '현재 일'과 '장래 일'과 같이 서로 대조되는 어법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본절의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부리시는 영인 천사와 대조되는 영, 곧 사단에 의해 조종되는 악한 영들을 의미합니다.
능력(뒤나메이스) - 이 단어에 대해 혹자는 '폭풍, 천둥과 번개, 그리고 지진과 같은 자연의 힘'으로 해석합니다(Lenski).
혹자는 '능력'이 '천사들'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Calvin).
아무튼 본절에서 '능력'이 '천사'를 지칭하든지 '악의 세력'을 지칭하든지
'신적(神的)인 세력'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언급된 아홉 가지 모두 '피조물'이라는 표현 속에 포함됩니다.
피조물 중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 구별할 것 없이 하나님의 손
으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을 언급하기 위해 바울은 아홉 가지의 단어를 나열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본 구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a절)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적인 대답입니다.
그리고 이 대답은 37절의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진술에 따라 나오게 되는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의 견인(堅忍)뿐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근원입니다.
성도는 7:24과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시켰다는 사실과(2절) 함께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우리 편이 되십니다(31,32절).
그러므로 우리를 대적할 상대가 없습니다.
가장 소중한 아들을 아낌없이 내주신 분이 우리를 대적의 손에 넘겨주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편들어주는 사람은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선물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지금 누리고 있고 장차 얻기를 기대하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2) 우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주셨습니다(33,34절).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상속자로 지정하셨으니 누구도 우리를 고발할 권리가 없습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기에 정죄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판단하신 근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증인이자 변호인이 되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유일하게 정죄할 권한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정죄하는 대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면하시고 죄인이었던 우리를 의의 백성으로 택해주셨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35~39절).
그리스도의 사랑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39절).
그 사랑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들의 사랑이자, 아들을 희생 제물로 주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은 자, 사랑을 주신 이를 믿는 자는 어떤 환난과 박해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가장 비천한 자리까지 곤두박질쳐도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기억 때문에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심지어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떠올리며 넉넉히 견디고 이깁니다.
지금도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죽음보다 못한 삶, 암담한 현재와 소망 없는 미래, 무자비한 이웃과 권력자들, 일상의 사소하고 일생의 중대한 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도전하지만, 사랑은 반드시 이깁니다.
기도
공동체-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확신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열방-중국의 도시화 현상으로 여러 농촌 지역에서 기독교인이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교회가 도시화로 인한 부작용을 인식하고 잘 대처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