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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뽑은 백장어록 1 ㅡ146
1 견처가 스승을 능가해야만 전수를 감당할 만하다 그래, 그렇지. 견처(見處)가 스승과 같으면 도는 반쯤밖에 안되고, 견처가 스승을 능가해야만 전수를 감당할 만하다. 그대는 스승을 훨씬 넘어설 만한 견처가 있군.
2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어 그 자체 본래 완전하다 백장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신령한 광채 호젓이 밝아
육근(六根)·육진(六塵)을 아득히 벗어났고
영원한 진상 그대로 드러나
문자에 매이지 않도다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어
그 자체 본래 완전하나니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한다면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라네.
靈光獨耀 脫逈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3 동정(動靜)을 굳게 지키면 삼세 부처의 원수가 되며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을 의지하여 의미를 이해하면 삼세 모든 부처님의 원수가 되며,
💎경전을 떠난 한 글자는 마군의 말과 같다 하니 이럴 땐 어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동정(動靜)을 굳게 지키면 삼세 부처의 원수가 되며, 그렇다고 이 밖에서 따로 구하면 마군의 말이 된다.
4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스님께서는 언제나 수고로운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대중들 보다 솔선하였다. 대중들이 모두가 민망하여 도구를 일찍 감추고 그만두시라고 청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덕이 없어서 그러니 다른 사람을 수고롭게 해서야 되겠느냐."
☸스님께서는 이리저리 연장을 찾다가 찾질 못하면 밥을 굶으셨다. 이런 연유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씀이 세상에 퍼지게 된 것이다.
5 교설로는 맑음을 논하고 방편교설로는 탁함을 논한다 말로는 불법과 세속을 가려야 하고, 총론과 각론을 나누어야 하며, 궁극적인 교설(了義敎語)인지 방편교설(不了義敎語)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궁극적인 교설로는 맑음을 논하고 방편교설로는 탁함을 논하며, 염법(染法) 쪽의 허물을 설명하여 범부를 가려내고, 정법(淨法) 쪽의 허물을 설명하여 서인을 가려내야 하니, 이것은 9부교(九部敎:교학의 총칭)에 입각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6 눈 먼 중생에게는 선지식의 지도를 받게 해 주어야 한다 목전의 눈 먼 중생에게는 선지식의 지도를 받게 해 주어야 하며,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 말할 경우에는 직접 그를 출가시켜 계율을 지키고 선정(禪定)을 닦으며 지혜를 배우게 해 주면 된다.
한편 테두리를 벗어난 범부에게는 그런 식으로 지도해 서는 안되니 유마힐(維摩詰)이나 부대사(傅大士) 같은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7 대상과 시기에 맞게 설법해야 한다 백사갈마(白四 磨)를 받은 사문 앞에서 말할 경우, 그들은 계·정·혜(戒定慧)의 힘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으니, 다시 그런 식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을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라 할 것이며, 맞지 않는 설명이므로 꾸며서 하는 말(綺語)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문에게라면 청정한 법 쪽의 허물을 설명해야 한다. 즉 있다 없다(有無)하는 등의 법을 여의고, 닦고 증득하는(修證) 모두를 떠나며, 그것을 떠났다는 것조차 떠날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8사문이라도 탐욕과 성냄이 있다면 그도 속인이다 물든 습기(習氣)를 깎아 없애려는 사문도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없애버리지 못했다면 역시 귀머거리도 속이라 할 것이니, 그에게도 선정을 닦을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한다.
9작은 경계에 머물러 있다면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다 이승(二乘)의 경우는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다 쉬어 버렸으나 탐내는 마음이 없어진 경계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기나 이는 무색계(無色界)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광명을 가리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므로 그에게도 선정을 닦고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하며, 깨끗하고 더러움을 구별해 주어야 한다.
10 더러운 법과 깨끗한 법
더러운 법이란 탐욕·성냄.·애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며, 깨끗한 법이란 보리·열반·해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운다. 여기에서 비추어 깨달으면(鑑覺) 💎깨끗하고 더러운 양쪽 갈래와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법과 💎색·소리·냄새·맛·촉감·생각과
💎세간·출세간법에 털끝만큼의 애착(愛取)도 전혀 없게 된다.
11 조복된 마음에 안주하는 것은 이승이다 이미 애착하지 않게 되고 나서는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기는데 그것을 처음선(初善)이라 한다. 이것은 조복된 마음(調伏心)에 안주하는 것이며 뗏목이 아까와 버리지 못하는 성문으로서 이승(二乘)의 도이며, 선나과(禪那果)이다.
12 애착하지도 않고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지도 않는 것 애착하지도 않고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지도 않으면 이를 중간선(中善)이라 한다. 이는 반자교(半字敎)로서 아직은 무색계(無色界)이나 이승과 마군의 도에 떨어짐은 면하였으나, 선병(禪病)과 보살의 속박이 있다.
13 애착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내지 않는 것이 마지막 선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 앉지도 않고 눌러앉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지막선(後善)이라 한다. 이는 만자교(滿字敎)로서 무색계(無色界)에 떨어짐을 면하고, 선을 닦는 병통에 떨어짐을 면하며, 보살승에 떨어짐을 면하고, 마왕의 지위에 떨어짐을 면한다. 그러나 지혜(智)에 막히고 지위(地)에 막히고 행(行)에 막혀 자기 불성(佛性)을 보는 데에는 마치 밤에 무엇인가를 보는 것과 같다.
14 불지(佛地)에서 끊는 두 가지 어리석음(二愚) 불지(佛地)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二愚)을 끊는다 하는 경우는
💎첫째 미세소지우(微細所知愚),
💎 둘째 극미세소지우(極微細所知愚)이다. 그러므로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미진(微塵)을 타파하여 🦋경전(經卷)을 벗어났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15 그물을 벗어난 사슴, 번뇌를 벗어난 부처님
가령 이 3구(三句:세 가지 善)를 꿰뚫어 세 단계에 매이지 않는다면 교학(敎家)에서는 그것을 세 번 뛰어 🦋그물을 벗어난 사슴에 비유하며
🦋번뇌를 벗어난 부처라고 하는데
🦋그를 구속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연등불(然燈佛)의 뒷 부처님에 속하며, 최상승(最上乘), 상상지(上上智)로서 불도 위에 선 것이다. 이 사람은 불성을 가졌으며 스승(導師)으로서 막힘 없는 바람과 막힘 없는 지혜를 구사한다. 뒤에 가서는 인과와 복덕·지혜를 자재하게 굴리니, 수레를 만들어 인과를 실어 나르며 삶에 처하여도 삶에 매이지 않고 죽음에 처하여도 죽음에 매이지 않으며, 5음(五陰)에 처하여도 문이 여닫히듯 5음에 매이지 않아, 가고 머묾에 자유롭고 드나듦에 어려움이 없다.
16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위와 우열을 논할 것이 없으며 개미 몸을 받아서까지도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불가사의한 정토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는 속박을 풀어주는 말일뿐이니 저들 스스로에게 부스럼이 없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부처다 보살이다 하는 것도 부스럼이니, 있다 없다는 식으로 법을 설명했다 하면 모조리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것이다.💥💥⚘⚘
17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는 두려워할 만한 곳
지난날 10대제자(十大弟子) 사리불(舍利弗)·부루나(富樓那)와 바른 믿음을 가진 아난(阿難)·삿된 믿음을 가진 선성(善星) 등은 저마다 본보기나 법칙이 있었는데, 모두들 부처님에게 설파당했던 것이다.
그들은 팔만겁을 선정에 머무는 사선팔정(四禪八定)의 아라한은 아니었으나 행할 바를 의지하고 집착하여 정법(淨法)이라는 술에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성문인(聲聞人)의 불법을 들으면 위없는 도를 행할 마음을 내지 못하고 그래서 선근(善根)을 끊은 불성 없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며, 경전(敎)에서는 이를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는 두려워할 만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18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쏜살같다 한 생각 마음이 물러나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쏜살같다.
🌱🌱지옥이라는 한생각이 일어날때 반조 필요🌱🌱
19부처님은 늘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
비추어 깨달아(鑑覺) 유·무 모든 법에 매이지 않고 3구(三句)와 맞고 안 맞는 모든 경계를 꿰뚫으면 백천만억의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였다는 소문을 듣는다 해도 듣지 못한 듯하고, 그 듣지 않는다는 것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 이런 사람을 두고 물러났다 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매어 둘 수 없는데 이를 "부처님은 늘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한다.
20 말을 하면 살받이가 되어 화살을 부르는 꼴이다 조법사(肇法師)가 말씀하시기를, "보리의 도는 재볼 수 없음이 위없이 높고 끝없이 드넓으며 끝없이 깊숙하여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말을 하면 살받이가 되어 화살을 부르는 꼴이다" 라고 하였다.
21 스스로 알고 절로 깨닫는 이것이 자기 부처님이다 스스로 알고 절로 깨닫는 이것이 자기 부처인 줄 전혀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부처를 찾는다. 선지식의 설법을 의지하여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나오게 하는 약을 지어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병을 치료한다. 이윽고 밖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게 되면 병이 나았으니 약은 버려야 한다.
22💥💥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데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선병이다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데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선병(禪病)이며, 영락없는 성문이다.💥💥❌❌
마치 물이 얼음이 되면 얼음 자체가 물이긴 하나 목마름을 풀어주기 어려운 것과도 같으며,⚘⚘
또는 💥꼼짝없이 죽을병이라 하기도 하니 세상 의원들도 속수무책일 뿐이어서 💥원래 이들은 부처가 아니다.
23 🌿🔐부처님이란 중생 편에서 쓴 약이다
☸부처라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부처란 중생 편에서 쓴 약이니 병이 없으면 약먹을 필요가 없다.⚘ 💎약과 병이 함께 없어지면 맑은 물과 같다.
💎부처란 감초를 넣은 물이나 꿀물과도 같아 매우 달콤한 것이나 맑은 물 쪽에서 보면 원래 없다거나 있다거나를 집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24 양쪽에서 그대를 잡아당겨도 끌리지 않으며 상대적인 개념 (兩頭可)을 끊기만 하면 된다. 있다느니 있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고, 없다느니 없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으면 양쪽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아 양쪽에서 그대를 잡아당겨도 끌리지 않으며, 어떠한 테두리(量數)도 그대를 얽어매지 못한다. 그리하여 🍎부족하거나 완전하지도 않고 ⚘⚘
🍎범부(凡夫)도 성인(聖人)도 아니며 ⚘⚘
🍎밝음도 어두움도 아니다.⚘⚘
25 중생은 반야(般若)에는 반연하지 못한다
"법은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고 비유할 수도 없으므로, 법신은 함이 없어 어떠한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法身無爲不墮諸數)"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의 몸은 이름이 없어 설명할 수 없으며, 실다운 이치인 공문(空門)에는 닿기 어렵다. 마치 어디든지 앉을 수 있는 파리도 불꽃 위에는 앉지 못하듯 중생도 그러하여 어디든 반연(攀緣)할 수 있으나 반야(般若)에는 반연하지 못한다.
26 말과 견해를 내면 선지식의 마군이다
💎💎선지식을 찾아뵙고 하나 하나 알기를(知解) 구한다면 그것은 선지식 마군💥이니,
🌰🌰말과 견해를 내기 때문이다.⚘⚘
27 서원을 버리지 않으면 보살마군이다 💎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내어 일체중생을 다 제도한 뒤에야 성불하겠다고 발원하면 이는 보살법지(菩薩法智)의 마군이니, 서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28 선근의 마군으로서 탐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재계(齋戒)를 지키고 선(禪)을 닦으며 지혜(慧)를 배우는 것은 유루선근(有漏善根)이다. 💥💥
💎그들은 비록 도량에 앉아 성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항하사수 모래알만큼의 사람을 제도한다 해도 모두 💥벽지불과(壁支佛果)를 얻을 뿐이니, 이는 🌿선근(善根)의 마군으로서 🌰탐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29 선정에만 빠져 있으면 💥삼매(三昧)의 마군이다 어디에도 탐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며 신령한 이치만이 오롯이 남아 매우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앉아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삼매(三昧)의 마군이니, 오래동안 맛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30 💥마군의 그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지옥의 찌꺼기💥 💎💎나아가 열반에 올라 탐욕을 떠나 고요해지면 그것은 마군의 업(業)이다.🌿🌿
💎💎 지혜로 해탈하였다 해도 얼마간 💥마군의 그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비록 백권 위타경 (圍陀經)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
🌿🌿💥💥모조리 지옥의 찌꺼기로서
부처님과 같아지고자 하나 될 수 없는 일이다.💥⭕‼
31🔐🦋모든 법을 구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것 ⚘⚘
💎💎선·악과 유·무 등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공(空)에 떨어지는데 근본(根本)을 버리고 지말(支末)을 쫓는 줄을 모르므로 도리어 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와 보리, 유· 무 등의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것이다.💥🔐🔐
32 털끝만큼도 매인 생각이 없다면 점차 가벼워 질 수 있다
💎💎지금 거친 밥으로 생명을 잇고 헤진 옷을 기워 추위를 막으며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일 외에는 모두 유·무 등의 법일 뿐이어서
💎💎털끝만큼도 매인 생각이 없다면 이 사람은 점차 가볍고 밝아질 소지가 있다.⚘⚘
33 설법을 해도 스승이라 자칭하지 않기에 사람들이 쏠린다
💎💎선지식은 있음(有)에 집착하지 않고 없음(無)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십구(十句) 마군의 말을 벗어나 말을 꺼내도 사람을 얽어매지 않는다.⚘⚘
💎💎 설법을 해도 스승이라 자칭하지 않고 ⚘⚘
골짜기의 메아리같이 말이 천하에 가득 차 입으로 짓는 허물이 없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쏠린다.⚘⚘
34🔐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아라
만일 "나는 설법할 수 있다"라든가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이다"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
또 "눈빛이 부딪치는 곳에 도가 있다"라든가, "부처는 부처가 아니고, 보리(菩提)·열반(涅槃)·해탈(解脫)..." 하면서 근거없는 말을 한다.
또한 하나하나 알음알이(知解)를 근거없이 설명하며 한 손을 들고 한 손가락을 세우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선(禪)이고 도 (道)다"라고 한다.
☸이런 말은 사람을 얽어매는 것으로 그칠 기약이 없이 비구에게 결박만 더해주는데, ⚘⚘
☸말하지 않는다 해도 구업(口業)을 짓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35 방편교설은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나 설명하는 것 방편교설(不了義敎)에는 인간·천상의 스승이 있고, 부처님(導師)이 있으나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에서는 인간·천상에게 스승이 되지 않으며 법을 스승 삼지도 않는다. 마음(玄鑑)을 붙잡지 못했거든 우선 궁극적인 교설(敎說)에 의지해야 할 것이니 조금은 가까운 데가 있기 때문이다. ☸방편교설은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나 설명하는 것이 합당할 뿐이다.
36 🦋중도를 깨달은 사람이야말로 큰 선지식이다⚘⚘
🦋 한편 유·무 모든 법에 머물지 않고
🦋머뭄 없는 데에도 머물지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그를 큰 선지식 또는 오직 한 분이신 부처님이라 한다. 이
큰 선지식에는 두 사람이 없으니 나머지는 모조리 외도이거나 마군의 말이다.⚘⚘
37 사람에게 줄 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외도나 마군의 말이다
여기서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모든 유무 대경법(對境法)을 깰 뿐이다. ⚘⚘
💎탐착하고 물들지 말 것이며,
💎결박을 푸는 일을 하지 않기만 하면 되니, 💥💥⚘
사람을 가르치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가르칠 말이 따로 있고, 사람에게 줄 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를 외도나 마군의 말이라 한다.
38 생사를 말하는 것인지 약병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궁극적인 교설인지 방편교설인지를 알아야 하며, 💎생사를 말하는 것인지 약병(藥病)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반대로 비유를 든 것인지(逆喩) 유사한 비유를 든 것인지(順喩)를 알아야 하며,
💎총론인지 각론이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39 죽은 말이고 범부 앞에서 하는 말
✳만일 "닦아서 부처가 된다",
✳"닦을 것도 있고 깨칠 것도 있다",
✳"마음이 곧 부처다",
✳"마음 그대로가 부처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다."라고 한 것은 방편교설이고 부정논법이 아니며 총론이고 한 됫박쯤 되는 말이다. ✳또한 염법(染法) 쪽만을 가려 하는 말이고 유사한 비유를 드는 말이며,
✳죽은 말이고 범부 앞에서 하는 말이다.
40 살아 있는 말이며 수행 지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 하는 말
☸한편 "닦아서 부처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부처도 부처님 말씀이다"라고 한 것은 궁극적인 교설이고 부정논법이며, 각론이고 백 섬들이 말이다.
또한 3승교(三乘敎) 밖의 말이고 반대 비유를 드는 말이며, 정법(淨法) 쪽에서 하는 말이다. 살아 있는 말이며 수행 지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다.
41부처님의 경지에는 지키고 범할 것이 없다 수다원으로부터 곧장 10지(十地)에 오르기까지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모조리 더러운 법진(法塵)에 속하고, 💥💥
☸번뇌 쪽에 포함되며, 💥💥방편교설에 속한다. 🌿궁극적인 교설에서는 지키라(持)하고, 🌿방편교설에서는 범하라(犯)하는데
💎💎부처님의 경지에는 지키고 범할 것이 없어 🦋🦋궁극적인 교설과 방편교설을 다 인정하지 않는다.⚘⚘
42 부처님은 부처님을 위해 설법하지 않는다
묻지 않는 물음도 있고 설명 없는 설명도 있다.
💎💎부처는 부처를 위해 설법하지 않으니
🦋🦋평등한 진여법계(眞如法界)에는 부처가 없고, 🦋🦋중생을 제도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부처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참다운 복전(福田)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43 ☸경계에 혹하면 자기 마음이 마왕이다 ⚘⚘
주관인지 객관인지 그 말을 가려내야 한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법(境界法)에 탐착하고 물들어 그 경계에 혹하면 자기 마음이 마왕이며,💥💥 💎관조[照]하는 작용[用]이 마군의 백성에 속한다.💥💥
🔐🔐⚡⚡⚡
44 파도로 물을 설명하듯 만상을 관조하고도 한 일이 없다 비추어 깨달아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과 세간·출세간법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생각을 내지 않는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으면, 자기 마음이 부처이고 관조하는 작용은 바깥 경계[客塵]에 속하는데 파도로 물을 설명하듯 💎만상을 관조하고도 한 일이 없다.⚘⚘
45 💥💥중생의 분별하는 성품은 한번도 부처님의 단계를 밟지 못했다
🔐중생의 분별하는 성품(性識)은 한번도 부처님의 단계를 밟은 적이 없기 때문에 💥🌰끈끈하게 집착하는 성품으로 때때마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집착한다. 🔐그들은 잠깐 묘한 이치를 맛보아도 약이 되지 못하며, 잠깐 틀을 벗어난 도리를 들어도 믿음이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49일을 말 없이 사유(思惟)하셨다.⚘⚘
46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해도 삼보를 비방하는 것 지혜가 깜깜하여 무어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비유할 수 도 없기 때문에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고 말해도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이며,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해도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이다.
☸불성이 있다고 하면 집착한다는 비방을 듣고 ☸불성이 없다고 하면 허망하다는 비방을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불성이 있다 하면 보태는 오류(增益謗)를 범하고,
💥불성이 없다 하면 덜어내는 오류(損減謗)를 범하며, 💥불성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하면 앞뒤가 안 맞는 오려(相違謗)를 범하고,
💥불성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면 희론의 오류(戱論謗)를 범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47삼승법은 방편설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이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중생이 해탈할 기약이 없겠고, 처음부터 말을 하면 중생이 또 말에 따라 이해를 하여 적은 데는 덧붙이고 많은 것은 덜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설법을 하지 않고 빨리 열반에 들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 뒤 과거 부처님 모두가 3승법(三乘法)을 말씀하셨음을 돌이켜 생각하고는 방편설로 거짓 이름을 세웠다. 본래 부처가 아닌데 그에게 부처라 하고, 본래 보리가 아닌데 보리·열반·해탈 등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백 섬을 지고는 일어나지 못함을 알고 우선 한 되·한 홉을 지워주었으며. 궁극적인 교설은 그가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방편교설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하여 선법(善
法)이 퍼져 악법(惡法)을 누르기도 하였으나 선과(善果)의 기한이 다 되면 악과(惡果)가 바로 도래하였다. 부처가 되면 중생도 나타나고, 열반에 들면 생사가 나타나며, 밝아지면 어둠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엎치락 뒤치락하는 유루인과(有漏因果)로서 그것을 받기를 생각하지 않을 자가 없다.
48☸🔐🔑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거든 상대적인 개념을 끊으라 ⚘⚘⚘⭕⭕⭕‼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거든🌪🌪🌪
🌰🌰상대적인 개념을 끊기만 하면 되니,
🍎🍎어떠한 테두리도 그를 매어두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
🦋🦋높낮이도 없고 평등도 없으며 가고 옴도 없다.🌿🌿🌿
49 문자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양 극단에서 벗어난다 문자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그대를 막는 양쪽 극단이 그대를 붙들지 못하여 번갈아 나타나는 고락과 엇갈리는 명암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진실된 실제 이치가 진실이 아니기도 하며 허망도 허망이 아니기도 하니, 다듬을 수 없는 허공처럼 테두리를 갖는 물건이 아니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알음알이를 낼 틈을 준다면 테두리에 메이게 된다. 또한 괘(卦)의 조짐이 금·목·수·화·토에 관할되듯 아교풀이 다섯 군데를 함께 붙여 버리듯 마왕이 자유롭게 자기 집으로 붙잡아 갈 것이다.
50처음선·중간선·마지막선의 세 구절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처음선[初善]·중간선[中善]·마지막선[後善] 세 구절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에게 좋은 마음을 내도록 하는 것이며, 💎중간엔 좋다는 마음마저 타파해야 하며
💎그런 뒤에야 비로소 마지막 선이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살은 보살이 아니니, 그래서 보살이라 한다", "법은 법이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다"라 하니, 같은 말이다.
☸여기서 한 구절만을 설명하면 중생들은 지옥에 빠지며, 💥
☸☸세 구절을 한꺼번에 설명하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니, 💥💥💥
그것은 부처님과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지금의 '비추어 깨달음'이 자기 부처라는 것까지 설명하면 처음 선(初善)이며,
💎💎지금은 '비추어 깨달음'에 붙들고 머물지 않는다면 중간 선(中善)이며,
💎💎붙들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이는 마지막 선(後善)이다.
☸이상과 같다면 연등부처의 뒷 부처에 속하니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부처는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라고 잘못 말하지 말라.💥💥
51 잘 하는 것도 없고 성스러움도 없어야 성스러운 부처님
이 땅의 초조(初組)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하는 것도 없고 성스러움도 없어야 성스러운 부처님이다."하고 하셨다. 여기서 성스러운 부처란 9품(九品)의 망상꾸러기(精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용·축생 등의 부류와 제석범천 이하 모든 것들은 다 신통변화를 부릴 수 있고, 상품(上品)의 정령도 백겁 고금의 일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찌 그들을 부처라 하겠는가.
52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옛날 하던 것과 다를 뿐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를 탐진(貪瞋)이라 하고, 깨닫고 나면 부처님의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옛날과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옛날 하던 것(行履處)과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53초목을 베고 땅을 개간하면 죄보를 받습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초목을 베고 땅을 개간하면 죄보를 받습니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가 있다고 단정하지도 못하고 죄가 없다고 단정하지도 못한다. 죄가 있고 없고는 사실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있다 없다고 하는 모든 법에 탐착하고 물들어서 버리고 취하는 마음이 남아 3구(三句)를 꿰뚫어 마음이 허공과 같지만 허공 같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단정한다."⚘⚘
54 마음이 허공 같은데 죄가 어디에 자리하겠는가
"죄를 짓고 나서 죄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하면 말이 안되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될 말이다. 💥💥
율(律)에서 말하기를, '본래 미혹하여 살인을 하거나 나아가 서로 살인을 한다 해도 살생죄라 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선종(禪宗) 문하에서이겠는가. ☸마음이 허공 같아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허공 같다는 생각도 없는데 죄가 어디에 자리하겠는가."
55 선은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않으면 된다 "선도(禪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않으면 된다."
"안팎의 마음을 녹여 다하기만 하면 된다."
"경계를 관조하는 쪽으로 말하지만 지금 유·무 등 모든 법을 관조하는데 아무 탐욕과 집착이 없고 또한 집착해서는 안 된다."
56 공부는 때묻은 옷을 빠는 것과도 같은것⚘⚘
"이렇게 공부하면 될 것이다.
☸공부는 때묻은 옷을 빠는 것과도 같은데
💎옷은 본래 있는 것이나 ✳때는 밖에서 온 것이다. ✳유·무 등 모든 소리와 색은 기름때와도 같은 것이니 아예 마음에 두지 말라. 보리수 아래 32이상과 80종호는 색에 속하고, 12분교(十二分敎)는 소리에 속한다. 그러니 이제 유·무와 모든 성색으로 흐르는 허물을 끊고 마음을 허공 같게 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하기를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할 것이다.
57죽는 순간에는 두렵고 미친 마음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죽는 마당에서는 옛날부터 익숙했던 길을 찾아간다 해도 오히려 끝까지 가지 못하는데, 그때 가서 새로 조복하여 공부한다면 기약이 없다.
💎죽는 순간에는 좋은 경계가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나는데 💥마음으로 더 좋아하는 곳을 먼저 받게 된다. 지금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도 나쁜 경계가 없고 설사 나쁜 경계가 있다 해도 좋은 경계로 변한다. 💎죽는 순간에는 두렵고 미친 마음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58지금 자유를 얻는다면 미래 세상까지 자유롭다 낱낱의 경계법에 아무런 애욕과 물들임이 없다 해도 그렇다는 생각에 머물지 말아야 자유인이다.
🌰🍎지금은 인(因)이고 죽음은 과(果)인데 과업(果業)이 나타나면 어째서 두려워하는가.
🌰🌰옛과 지금이 달라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에도 지금이 있다면 지금에도 옛이 있을 것이며, 옛날에 부처가 있었다면 지금도 부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유를 얻는다면
🍎🍎 미래 세상까지 자유로울 것이다.⚘⚘⚘
59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을 필요도 없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유·무 등 모든 법에 매이지 않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부처가 사람이고 사람이 부처일 뿐이다. 이것이 삼매정(三昧定)이기도 하니, 정(定)을 가지고 정에 들어갈 필요가 없고, 선(禪)을 가지고 선을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을 필요도 없다.
60 법은 법을 구하지 않고, 법은 법을 얻지 않는다
'법은 법을 구하지 않고, 법은 법을 얻지 않으며, 법은 법을 행하지 않고, 법은 법을 보지 않아서 자연히 법을 얻는 것이지, 얻음으로써 다시 얻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렇게 바르게 법을 사유하여 독존해야 하며, 독존한다고 인식하는 법지(法智)도 없어야 한다. 본성은 그대로가 여여(如如)하여 인(因)에 의해 자리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체결(體結)또는 체집(體集)이라 이름하기를 한다.
61일체진(一切塵)이 일체불(一切佛)이다. 일색(一色)이 일진(一塵)이고 일불(一佛)이 일색(一色)이며 일체불(一切佛)이 일체색(一切色)이고, 일체진(一切塵)이 일체불(一切佛)이다. 또한 모든 색·성·향·미·촉·법도 이처럼 낱낱이 모든 세계에 두루 가득하다.
62그대들 스스로는 평등하고 말도 평등하듯 나도 그러하다 그대들 스스로는 평등하고 말도 평등하듯 나도 그러하며 불국토 하나 하나마다 소리·냄새·맛·촉감 등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이로부터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오르기까지 가로 세로가 모두 이와 같다.
63💥지견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밧줄 없이 결박하는 것
💎처음 안 것을 붙들고 깨달았다(解)고 한다면 그것은 '정결(頂結)'또는 '정결에 떨어졌다(墮頂結)'고 한다. ☸그것은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스스로 지견(知見)을 내어 밧줄도 없이 자기를 결박하기 때문이다💥💥💥. ☸알 대상에 일부러 얽매여 25유(二十五有)의 세간이 있게 되면, 다시 일체 번뇌문을 흩어 다른 사람을 결박한다.💥💥💥⚘⚘⚘
☸ 여기서 처음 안다 한 이승의 견해를 '이염식(爾 識)'또는 '미세한 번뇌'라 한다. 💥💥
💎💎바로 이것을 끊어 없애고 나면 '정신을 돌려 💥공(空)의 소굴에 안주한다'하며,💥💥⚘⚘
💎💎 '삼매의 술에 취한다'고 한다.💥💥⚘⚘
💎💎 또한 💥'해탈 마군에게 결박되어 세계의 생성과 파괴가 좌우되는 정력(定力)이 다른 국토로 새어나가도 전혀 느끼거나 알지 못한다'하며, 💥💥⚘⚘
💎💎'두려워할 💥해탈의 깊은 구덩이'라 하여 보살은 모두가 이를 멀리 여읜다.💥💥⚘⚘
🌱🌱우린 단 한순간도 해탈이 아닌 적이 없었다
고통을 심하게 느낄 때라도 🌱🌱
64 경전과 교학은 자기에게로 환원되어야 한다
경전을 읽고 교학을 공부하며 말씀을 배우는 것은 필연코 자기에게로 환원되어야 한다. 모든 말씀은, 지금의 비추어 깨닫는(鑑覺) 성품이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경계에 휩쓸리지 않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65 12부경을 외워 증상만을 이루고 부처님을 속이는 것 그대들 여러 스님네가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경계에 붙들려 있음을 반조(返照)해 본다면 그것은 금강의 지혜(金剛智)로써 자유롭게 홀로 설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줄 알지 못한다면
💥12부경을 다 외워낸다 해도 증상만(增上慢:깨치지 못하고서 깨쳤다고 착각하는 자만심)을 이룰 뿐이어서 💥부처님을 기만하는 것이지 수행이랄 수 없다.
💎 모든 색과 소리를 떠나고, 떠났다는 그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안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수행이랄 수 있다.
66 독경과 교학은 이치를 밝힌다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
💎경전 읽고 교학을 공부하는 것은 세속의 입장에서라면 훌륭한 일이겠지만
💎이치를 밝힌다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니,
💎10지 수행인도 벗어나지 못하고서 생사 강물에 들게 되는 것이다. 💥💥💥
💎3승교(三乘敎)는 다만 탐내고 성내는 등의 병통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지 💥💥💥
💎그 의미를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이해가 탐욕이 되고,💥💥⚘⚘
🔐🌰🌰 탐욕은 다시 병통이 되기 때문이다.💥💥⚘
67 모든 법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하다.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떠나고, 떠났다는 그것에서도 떠나 3구 바깥으로 철저히 벗어나면 저절로 부처와 다를 것이 없다. ⚘⚘
💎💎자기가 부처인데, 부처가 되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
💎💎그저 부처 아닌 것이 근심일 뿐이다.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하다.💥
68이치를 확실히 알고 난 다음 복과 지혜를 구하라 이치를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복과 지혜부터 갖추면 복과 지혜에 실려 다니는 것이 마치 천민이 높은 분을 부리는 꼴이 되니, ⚘⚘
💎💎우선 이치를 확실히 안 뒤에 복과 지혜를 갖추는 것이 좋겠다.⭕⭕
69복과 지혜로 무량 중생을 이롭게 한 공덕의 크기 지금 어떤 사람이 복과 지혜와 네 가지 물건(四事:의·식·주·약)으로 4백만억 아승지 세계의 6취4생(六趣四生)에게 공양하여 꼬박 80년을 그들의 바램을 들어주고는 뒤에 생각하기를, '그러나 이 중생들은 모두가 노쇠하였으니 불법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게 하고 아라한도(阿羅漢道)까지도 얻게 하리라'한다 하자.
☸중생에게 즐겁게 하는 것만을 베푼다 해도 그 공덕이 한량이 없는데,
☸하물며 수다원과와 아라한도를 얻게 한 이 시주(施主)의 무량무변한 공덕에랴.
☸그러나 50번째 사람이 경전을 듣고 따라서 기뻐한(隨喜) 공덕만은 못한 것이다.❓❓
70 500백의 벽지불과와 한 사람의 무상보리자의 공덕 "마야부인은 5백의 태자를 낳아 그들 모두 벽지불과를 얻었는데 멸도(滅度)하고는 각각 탑을 세워 공양하고 낱낱에게 예배하며 찬탄하였다. 그러나 위없는 보리를 얻을 자식 하나 낳아서 내 마음(心力) 더느니만은 못하다."
71 높은 사람이 천한 사람을 부리는 것과도 같으며 지금 백천만 대중 가운데서 체득한 사람이 하나 있다면 그 가치는 삼천 대천 세계와 맞먹을 만하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이치를 깊이 깨달으라고(玄解) 늘 대중에게 권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이치가 현묘하여 복과 지혜를 부릴 수 있다면 마치 높은 사람이 천한 사람을 부리는 것과도 같으며, 머물지 않는 수레와도 같다.
✳✳그런데 이것을 붙들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면 '상투 속의 구술'이라 하며, 또는 '값을 매길 수 있는 보배 구슬'이라 하며, 또는 '💥똥을 퍼 들여온다'고도 한다. ☸☸이것을 붙들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왕의 상투 속에 있는 밝은 구슬을 그에게 주는 것과도 같으니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보배'라 하며, 또는 '🦋똥을 퍼냈다'고도 한다.
72부처님은 속박을 벗어났지만 얽매임 속으로 오셨다 부처님은 속박을 벗어난 사람인데도 도리어 얽매임 속으로 와서 이렇게 부처가 되셨다. 또한 생사 저쪽 사람이며, 현묘하게 끊긴 저쪽 사람인데도 이쪽 언덕으로 돌아와 이렇게 부처가 되셨다. 그러나 사람과 원숭이는 함께 가지 못하는 법이니, 여기서 사람은 10지(十地)보살을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를 비유한 것이다.
73없애버리면 감로같고 없애지 못하면 독약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소승의 3장학(三藏學)을 탐착하는 자와는 가까이 하지도 말라"하였는데, 하물며 스스로 그러는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그는 파계한 비구이며 이름뿐인 아라한(名字羅漢)으로서, 『열반경』에서는 16악율의(十六惡律義)에 넣고 있다. 그것은 물고기를 사냥하며 이익을 위해 고의로 살생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대승방등(大乘方等)은 감로수 같기도 하고 독약 같기도 하니, 없애버릴 수 있다면 감로 같고, 없애버리지 못하면 독약과 같다.
74한편으로는 경전도 읽고 선지식도 참례해야 한다. ☸경전을 읽으면서 저 생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그 의미를 꿰뚫지 못할 것이니, ✳아예 읽지 않는 것이 휠씬 낫다. 💥💥
☸한편으로는 경전도 읽고 선지식도 참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안목을 갖춰 그 생사라는 말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명백하게 분별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꿰뚫지 못할 것이어서 비구라는 속박만 가중될 뿐이다
75 의미는 설명해도 문자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학에서 현묘한 종지를 배운 사람은 문자를 읽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치 '자체(體)는 설명하여도 모습(相)은 설명하지 않으며, 의미는 설명해도 문자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도 같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진실한 말'이라 하며, 문자를 설명하면서 모조리 비방이라 한다면 그것을 '삿된 말'이라 한다.
☸보살의 설명은 법다워야 하니, 그래야 '진실한 말'이라 할 것이다.
76 실천은 하게 하되 이론을 붙들지 않게 해야 한다 ☸ 중생들에게 마음(心)은 지키게 하되 현상(事)에는 매달리지 않게 해야하며,
☸실천(行)은 하게 하되 이론(法)을 붙들지는 않게 해야 한다.
☸사람을 설명해야지 문자를 설명해서는 안되며
☸의미를 설명해야지 문자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
77 요동하지도 않고 선에 들지도 않음이 여래선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이 국토엔 선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동하지도 않고 선에 들지도 않음이 여래선(如來禪)인데, 🦋🦋선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조차 떠났다."
78망정의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무정(無情)이라 이름하는 것
어떤 이가 물었다.
" '☸유정(有情)은 불성이 없고 무정(無情)은 불성이 있다'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부터 부처에 이르는 것은 성인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며,
💎사람에서 지옥에 이르는 것은 범부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다.
🦋🦋범부와 성인 두 경계에 물들고 애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를 '유정은 불성이 없다'라고 하며,
🦋🦋 범부와 성인 두 경계와 유·무 모든 법에 갖고 버리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갖고 버림이 없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면 '무정은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망정의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무정(無情)이라 이름하는 것이지 목석이나 허공·노란 국화꽃·푸른 대나무 등 감정이 없는 것을 가지고 불성이 있다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 중에 수기를 받고 성불했다는 자를 경전에서 볼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인가? 지금 비추어 깨달음(鑑覺)은 유정의 변화를 받지 않는 점이 푸른 대나무와도 같으며, 모든 근기에 다 응하고 모든 상황을 다 아는 것이 노란 국화꽃과도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단계를 밟아 보았다면 무정에 불성이 있다 하겠지만 부처님의 단계를 밟아 보지 못했다면 유정에게 불성이 없다 하겠다."
79🦋🦋🔐착함에 막히고 집착되므로 선근인에게 불성이 없다 💥💥💥💥⭕⭕⭕‼🌱🌱착함에 빠져 침몰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아는 일마다 유위에 떨어진다 🌱🌱
💎💎인도에서는 부처(佛)라 하고,
💎💎 이 땅에서는 그것을 깨달음(覺)이라 하는데, 🔐🔐자기의 비추어 깨달음(鑑覺)이 착함에 막히고 집착되므로 선근인(善根人)에게서 불성이 없다.💥💥💥❌❌❌‼
☸☸ 그러므로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아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착함에 집착해 떨어져 막히면 무아법이 아니고 유아법이고 나의 법이며, 며평등법이 아니고, 무위행이 아니고 유위행이며, 조작법이며 , 취사선택법이며, 분별법이며, 좁은 법이며, 한계있는 법이며, 크지못한 법이며, 번뇌많은 법이다. 자유도 해탈도 자재도 없고 자신도 남도 다같이 힘들다 🌱🌱
80 부처가 부처에 머물지 않아야 진실한 복전이다
☸악에 부딪치는대로 대로 악에 머무는 것을 '중생의 깨달음'이라 하고, 💥💥💥
☸선에 부딪치는대로 선에 머무는 것을 '성문의 깨달음'이라 하며, 💥💥💥
☸☸선·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음을 옮다고 여기는 자를 '이승의 깨달음' 또는 '벽지불의 깨달음'이라 한다.
☸☸선·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음을 보살의 깨달음'이라 한다.
🦋🦋또한 머물지 않고 ⚘⚘
💎어디에도 머물 것이 없다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만 비로서 '부처의 깨달음'이라 하니,⚘⚘⚘
💎마치 '부처가 부처에 머물지 않아야 진실한 복전(福田)이라 이름한다'고 한 것과 같은 이야기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홀연히 이를 체득한 자가 있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 하니, 어디서나 스승이 되어 부처가 없는 곳에서는 부처라하고, 법이 없는 곳에서는 법이라 하며, 스님 없는 곳에서는 스님이라 하며 '큰 법 바퀴를 굴린다'고 하는 것이다.
81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모조리 법의 티끌에 속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부터 조사들께서는 모두 비밀스러운 말씀으로 계속 전수 해왔다 하니 무슨 의미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밀한 말은 없으며, 여래께서는 비밀스럽게 간직한 것이 없으시다. 비추어 깨닫는다 함은 말은 분명하나 형상을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니 이것이 '비밀스러운 말'이다. 수단원(須陀洹)에서 10지(十地)에 오르도록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모조리 법의 티끌에 속하고,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번뇌라는 테두리에 들어가고 방편교설에 속하니 말이 있었다는 하면 무엇이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긍극적인 교설마저도 부정하는데 다시 무슨 '비밀한 말'을 찾겠는가."
82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 의 뜻 또 물었다.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 하였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숲은 마음에, 나무는 몸에 비유된 것인데, 숲으로 설명해야 두려운 마음이 생기므로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고 한 것이다."
83화살을 쏘아 도중에 딱 부딪치듯 해야만 한다 "화살을 쏘아 도중에 딱 부딪치듯 해야만 한다. 만일 어긋난다면 반드시 다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골짜기에서 메아리를 찾는다면 여러 겁 동안 찾아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메아리는 입가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 잘못은 찾아와서 묻는 데에 있다. 귀결점을 묻는다면 도리어 화살을 맞을 것이니, 역시 '허깨비인 줄 알면 허깨비가 아니다' 한 말씀과 같다.
84현묘한 종지를 모르면 망념을 가라앉히는 것도 헛수고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玄妙)한 종지를 모르고 망념(妄念)을 가라앉히느라 헛수고하는구나' 하셨다.
☸또 '보이는 것(物) 보는 것(見)이라 오인한다면 마치 기와 부스러기를 가진 것과 같으니 무엇에 쓰겠으며,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목석과 무엇이 다르랴'하고 하셨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다 아니다 하면 둘 다 잘못이니, 이 한가지 예로 모든 것을 견주어 보라."
85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 사문
또 물었다.
"지금 사문들은 다들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경(經)·논(論)·율(律)·선(禪)과 지식(知解)을 낱낱이 배우므로 신도들에게 네 가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받을 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조하는 작용(照用)으로 볼 때 소리[聲]·색(色)·냄새[香]·맛과[味]·유(有)·무(� �) 모든 법 등 낱낱의 경계에 티끌만큼의 집착이나 물들음도 없고, 집착하거나 물들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다면 이런 사람은 매일 만 냥의 황금도 받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유·무 등 모든 법을 대할(照) 때 6근의 반연을 다 깎아내 털끝만큼도 탐욕과 애착을 다스려 버리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시주에게 쌀 한 톨 실낱 하나라도 구걸한다면 축생이 되어 무거운 짐을 지고 끌려 다니면서 하나하나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 부처님은 집착이 없는 사람이며 구함이 없는 사람이며 의지함이 없는 사람이니,
💎💎지금 분주하게 부처가 되고자 탐착한다면💥💥 모두가 등지는 짓이다💥💥💥‼
86 눈병 난 눈으로 사물을 본다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내는 것은
💥유·무 등으로 보는 것이니 이것을 두고
💥'눈병 난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하며,
✳'봄에 매임(見纏)',
✳'봄에 덮임(見蓋)' 또는 ✳봄의 재앙(見蘖)이라고도 한다.💥💥💥‼
87 모든 티끌 때를 다 없앤다면 일체가 모두 부처님 이제 생각생각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와 모든 티끌 때를 다 없앤다면 한 티끌 한 색이 온통 한 부처이며 한 생각 일으켰다 하면 그대로 한 부처인데, 3세5음(三世五陰)의 생각 생각이라면 그 숫자를 뉘라서 헤아리겠는가.
이것을 '허공을 가득 메운 부처'라 하며, '분신불(分身佛)', '보배탑'이라 하니, 그러므로 항상 찬탄하는 것이다
88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부처를 구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면 부처를 구하거나 보리·열반 구할 필요가 없다. 만일 부처를 집착하고 구한다면 탐심에 속하며, 탐심이 변하여 병이 된다.
그러므로
🦋🦋 '부처 병 고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불법을 헐뜯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여기서의 밥이란 신령하게 알아보는 자기 본성으로서 번뇌 없는 밥(無漏飯)·해탈밥(解脫飯)을 말한다.
🦋🦋이 말은 10지(十地)보살을 치료하는 것으로서💥💥⭕⭕‼⚡⚡⚡ 초발심부터 십지에 이르기까지이다.
🦋🦋 지금 💥조금이라도 구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모두다 '💥파계승', '💥💥명자나한(名字羅漢)' 또는 '💥여우'라 이름하는데,✳ 그들은 분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다.💥💥⭕⭕⭕‼⚡⚡⚡
89 일체에 머물지 않는다면 어떠한 얽매임도 없다
지금 메아리같이 고르게 소리를 듣고, 바람같이 평등하게 냄새를 맡으면서 일체 유·무 등의 법을 떠나고, 떠났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허물도 얽어매지 못한다.💥💥💥⭕⭕⭕‼
90 ☸위없는 보리·열반을 구하기 때문에 '출가'라고 한다 위없는 보리·열반을 구하기 때문에 '출가'라고 이름하나 ✳그래도 그것은 삿된 발원이다.
💎💎하물며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안다' 하면서 세간에서 승부를 다투며 논쟁하는 경우이겠는가.
💎💎💥한 문중을 탐하고 💥한 제자를 아끼며,💥 한 안주처에 연연해하고 💥한 신도와 관계를 맺는다.
💎💎옷 한 벌, 밥 한 그릇, 명예 하나, 이익 하나에 다시 '나는 그 모두에 걸림이 없다'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속일뿐이다.💥💥💥⚡⚡⚡🔐🔐🔐‼
91 ☸옳다고 여겨 거기에 머문다면 그것은 '법 티끌' 이다
🦋🦋자기 5음(五陰)에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몸 마디마디가 토막난다 해도 원망하거나 아깝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번뇌도 없다면, 🦋🦋나아가서는 자기 제자가 다른 사람에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채찍을 맞고 이상과 같은 낱낱의 일을 당한다 해도 한 생각도 너다 나다 하는 마음이 없다며, 그래도 한 생각도 없다는 그것을 옳다고 여겨 거기에 머문다면 그것을 '법 티끌'이라 하니, 10지(十地)에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사람들에게 권하기를 '삼악도(三惡道)를 두려워하듯 이 법 티끌을 두려워해야만 홀로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92 부처로서 연꽃을 밟을 것도 없이 백억의 몸을 나툰다 ✳가령 열반을 능가하는 어떤 법이 있다 해도 조금도 값지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걸음마다 부처로서 연꽃을 밟을 것도 없이 백억의 몸을 나툰다.
✳유·무 등 모든 법에 털끝만큼이라도 애욕에 물든 마음이 있다면 💥연꽃을 밟고 다닌다 해도 마군의 짓과 똑같은 것이다.💥💥‼🌱🌱분별법ㅡ 있는 그대로 못본것ㅡ 미혹된 것 ㅡ 차별법 ㅡ 평등법 아님 ㅡ위없는 법 아님 ㅡ 위아래가 있는 법 ㅡ 그러므로 불평등법 ㅡ유위법 ㅡ 고통법ㅡ 해탈법아님 ㅡ얽매이는 법 ㅡ윤회법 🌱🌱
93 본래 청정하다에 집착하면 자연외도들이다
'✳본래 청정하다'거나 '본래 해탈하였다'는 데에 집착하여 이대로가 부처이며 선도(禪道)를 이해했다고 자처하는 자는 💥자연외도(自然外道)에 속하며, ✳한편 인연에 집착하여 닦아 증득을 이루는 자는 💥인연외도(因緣外道)에,
✳무(無)에 집착하면 💥단견외도(斷見外道)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亦有亦無)는 데 집착하면 💥변견외도(邊見外道) 또는 💥우치외도(愚痴外道)에 속한다.
94 🦋💥부처다 열반이다 하는 등의 견해를 내지 않기만 하면 된다 ⭕⭕‼
🦋🦋부처다 열반이다 하는 등의 견해를 내지 않기만 하면 된다.
☸☸유·무 등 모든 견해가 전혀 없으며
☸☸견해가 없다는 것도 없음을 바르게 봄(正見)이라 한다.
☸☸또한 아무 것도 들음이 없고, 들음이 없다는 것도 없음을 바르게 들음(正聞)이라 하며, 이것을 두고 외도를 꺾었다 하는 것이다.⚘⚘
95 💥부처라는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견줄 바 없는 주문
또한 💥범부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아주 신통한 주문(大神呪)이며, 💥보살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높은 주문(無上呪)이며, 나아가 💥부처라는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견줄 바 없는 주문(無等等呪)이다.
🔥중생 아수라를 변화시키고
🔥2승 아수라를 변화시키며,
🔥보살 아수라를 변화시키니,
🦋이렇게 하여 3변정토(三變淨土)가 되는 것이다.
96병이 있는데도 약을 먹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병이 있는데도 약을 먹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병이 없는데 약을 먹으면 성문(聲聞)이다. 💥💥🔐
✳✳한 가지 법을 단정적으로 집착하면 💥💥정성성문(定性聲聞)이며,🔐🔐🌰🌪🌪
✳✳그저 많이 듣기만 하면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이다. 🌪🌪🌱많이듣고 지식 소유 ㅡ 욕심에 속한 것, 지식 소유한 내가 있는 것 🌱
✳✳또한 남을 알면 💥💥유학성문(有學聲聞)이며,🌱자기자신, 능분은 아직 모름 못봄 소분이 잘보임🌱
✳✳공정(空寂)에 빠지고 자기를 알면 💥💥무학성문(無學聲聞)이다.🌱🌱
97 탐·진·치 등은 독이며 12분교(十二分敎)는 약이다 탐·진·치 등은 독이며 12분교(十二分敎)는 약이니, 독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약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병 없이 약을 먹으면 💥약이 도리어 병이 되어, 병이 없어져도 약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음은 무상(無常)의 의미이다.
98 약한 욕심부터 먼저 끊어야 한다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 가지 약한 욕심이 있다.
✳첫째는 사부대중이 에워 싸주었으면 하는 욕심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이 내 문도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욕심이며,
✳셋째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성인이나 아라한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또한「가섭경(迦葉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는 미래의 부처님을 뵈었으면 하는 것이며, ✳둘째는 전륜왕(轉輪王)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며, ✳셋째는 찰리(刹利)의 큰 성씨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며, ✳넷째는 바라문의 큰 성씨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것이다.'
✳이상의 약한 욕심부터 먼저 끊어야 한다. ☸☸집착하고 물들어 요동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것을 '악한 욕심'이라 하는데, 모두가 6욕천(六欲天)에 들어가💥💥 파순(波旬)에게 부림을 당할 것이다."
99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잠재우지 않는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지견을 쉬고 모든 탐욕을 쉬어 낱낱이 3구(三句) 밖으로 뚫고 지나면
💎💎이를 '똥을 치웠다'고 한다.
✳✳ 부처와 보리를 구하며,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구하면
✳✳그것은 똥을 퍼 들여오는 것이지💥💥💥 똥을 펴낸다고 하지는 않는다. ⭕⭕⭕‼
🦋🦋부처라는 견해를 지어내 볼 것이나 구할 것, 집착할 것이 있다 하면 '희론의 똥'이라 하며, '거친 말', '죽은 말'이라 한다. 💥💥‼
🦋🦋마치 '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잠재우지 않는다' 한 말과도 같다.
100 청(淸)·탁(濁)을 분별하면 것을 '희론'이라 한다 ☸부질없이 지껄이는 말을 '희론'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청(淸)·탁(濁)을 분별하면 그것을 '희론'이라 한다.💥💥⚡⚡⚡🔐🔐🔐
🌱🌱분별지로 말하면 모두 희론 빤냐띠는 진실아님 🌱🌱
101 모든 법에 탐착하지않고 물들지 않으면 무생(無生)이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탐착하여 물들지 않으면 🦋🦋이를 남이 없음(無生)이라 하며, 바른 믿음(正信)이라고도 한다.
✳✳일체법을 믿고 집착하면
🌪'믿음을 갖추지 못했다'하며,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
🌪 '치우쳐서 고르게 믿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를 일천제(一闡提:성불할 종자가 없는 중생)라고 이름한다.⭕⭕⭕‼🔥🔥🔥
102 보살은 계율을 지니지도 않고 파계하지도 않는다 🦋🦋 이제 단박에 깨치려 하는가. ⭕⭕⭕‼
사람(人)과 법(法)을 동시에 딱 끊어 비우고(空), 3구(三句) 밖으로 꿰뚫어야 하니, 그것을 '온갖 테두리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이란 믿음이며, '법'이란 계율·보시·지혜(聞慧)등이다.
☸☸보살은 차마 성불하지 않고
☸☸차마 중생이 되지도 않으며,
☸☸차마 계율을 지니지도 않고
☸☸차마 파계를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지키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던 것이다.⚘⚘⚘
103 🦋🦋부처는 관조하는 지혜(照慧)를 갖추신 분⚘🌱🌱어떤 상황에서도 관조하신다🌱🌱
💎지(智)는 흐리고 관조(照)는 밝으며,
💎혜(慧)는 맑고, 식(識)은 탁하다.
💎부처로 말하자면 관조하는 지혜(照慧)라고 하며, ☸보살이면 지(智)라 하고, ☸이승과 중생 쪽으로 치면 식(識) 또는 번뇌라고 한다.
🍎부처라는 결과 속에는 🌰중생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고 🌰중생 원인 속에도 🍎부처라는 결과가 들어 있다.
☸☸부처에게 있어서는 법륜을 굴린다(轉法輪)하고, ✳✳중생에게 있어서는 법륜이 구른다(法論轉)하고,🌪🌪
💎💎 보살에 있어서는 영락장엄구(纓珞莊嚴具)라 하고, 🌸🌸
🌪🌪중생에게 있어서는 오음총림(五陰叢林)이라 한다.💥💥
104부처다 중생이다 하는 것은 죽은 말이다
온다 간다, 단멸(斷滅)이다 영원하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는 것은 죽은 말이다.
두루하다 두루하지 않다, 같다 다르다, 단멸이다 항상하다 하는 등은 외도의 설이다.
105지각에 머물면 자연외도, 부처를 구하면 인연외도 ☸반야바라밀은 자기 불성인데 마하연(摩詞衍큰수레)이라고도 한다. 마하(摩詞)는 크다는 뜻이고, 연(衍)은 수레(乘)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자기의 지각(知覺)을 지켜 머물면 또한 자연외도(自然外道)가 된다.
☸지금의 비추어 깨달음(鑑覺)은 지킬 필요가 없으며, 따로 부처를 구할 것도 없다.⭕⭕⭕‼🌱부처미혹🌱
✳ 부처를 따로 구한다면 인연외도(因緣外道)에 떨어진다.
106 🦋🦋어떤 것을 귀중하게 여기면 그것에 혹하게 된다⚘⚘⭕⭕‼
이 땅의 초조(初祖)께서는
✳✳'마음에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르다 할 것도 있게 된다'고 하셨다. ⚘⚘
☸☸어떤 것을 귀중하게 여기면 그것에 혹하게 되니, 💎믿으면 믿는데 혹하고
💎믿지 않으면 비방을 이룬다.
💎그러므로 귀하다 귀하지 않다 하지말고,
💎믿는다 믿지 않는다 하지도 말라.
107 부처님은 온갖 번뇌를 벗어난 분
💎💎부처님은 무위(無爲)도 아니다.
💎💎무위가 아니라 해서 허공과 같은 적막함도 아니다. 또한 부처님은 허공같이 큰마음을 가진 중생(大心衆生)으로서 비추어 깨달음이 많다. 비록 많다고는 하나 그 비추어 깨달음은 청정하여 💥탐내고 성내는 귀신이 그를 붙들지 못한다.
💎💎부처님은 온갖 번뇌를 벗어난 분으로 털끌 만큼의 애욕과 집착이 없으며,
💎💎애욕과 집착이 없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니,
☸이를 6도만행(六度萬行)을 빠짐없이 갖추었다고 한다. ☸장엄구(莊嚴具)가 필요하다면 갖가지가 다 있으며, ☸필요치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잃지 않는다. 🔐🔐⚘⚘⚘
☸☸이렇게 인과와 복지(福智)를 자유롭게 부린다.
108 💎밝음과 어둠은 허깨비의 변화에 속하는 것
삼신이 한 몸(三身一體)이며, 한 몸이 삼신(一體三身)이다. 첫째는 법신실상불(法身實相佛)로서 🦋법신불은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니 밝음과 어둠은 허깨비의 변화에 속하는 것이다. ⭕⭕‼
실제의 모습(實相)은 헛것(虛)을 상대로 지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본래 이름이란 없는 것이다. '부처님 몸은 함이 없어(無爲) 어떤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 것과도 같다.
109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은 육근에 번뇌가 없는 것 ⏺무엇을 '비구가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신다'하는가?
🦋6근(六根)에 번뇌(漏)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장엄하다고도 하는데,
🦋모든 번뇌가 빈(空無)것을 수풀과 나무로 장엄했다 하며, 🦋모든 물듦이 빈 것을 꽃과 열매로 장엄했다 하는 것이다.⚘⚘
110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 부처의 생각(佛見) 「보적경(寶積經)」에서는 '법신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으로는 구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색(色)이 없기 때문에 육안(肉眼)으로 볼 것이 아니며,
🌰망정이 없으므로 천안(天眼)으로 볼 것도 아니다.
🌰모습을 떠났으므로 혜안(慧眼)으로도 볼 수 없고,
🌰모든 행(行)을 떠났으므로 법안(法眼)으로 볼 것도 아니며,
🌰모든 식이 떠났으므로 불안(佛眼)으로 볼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을 부처의 생각(佛見)이라고 한다.
☸색(色)은 색이나 형색(形色)이 아님을 진색(眞色)이라 하며,
☸공(空)은 공이나 창공(太虛)이 아님을 진공(眞空)이라 하나,
☸색과 공도 또한 약과 병이 서로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111 몸과 손으로 조작하지 않아 허물이 없는 것 ☸유작계(有作戒)란 세간법을 끊는 것이며,
☸다만 몸과 손으로 조작하지 않아 허물이 없으면 이를 무작계(無作戒)라 하며, 또는 무표계(無表界), 무루계(無漏戒)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움찔했다(擧心動念)하면 모조리 파계(破戒)라 하는 것이다. 💥💥💥⭕⭕⭕‼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고 혹하지 않는 데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그것을 '빠짐없이 배우고 부지런히 생각(護念)하며 널리 유포한다'고 한다.💥💥⭕⭕‼
112부처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한량을 뛰어넘은 사람 ✳깨닫지 못했을 때를 어미(母)라 하고,
☸깨닫고 나서를 자식(子)이라 하는데,
🦋🦋깨달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음을
🦋어미 자식이 동시에 없어짐이라 한다.
☸🦋이렇게 선에도 매이지 않고
🦋악에도 매이지 않으며,
🦋부처에 얽매이지도 않고
🦋중생에게 매이지도 않는다.
🦋테두리(量數)에도 마찬가지며, 나아가서는
🦋아무런 테두리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한량을 뛰어넘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113 먹이기만 하고 소화를 생각하지 않는 것
☸앎(知解)이나 설명(義句)에 🌪탐착하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소락( 酪)을 많이 먹이기만 할 뿐 ✳✳소화가 되고 안 되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114 종지를 깨달은 사람은 모든 법상에 구애되지 않는다
먼저 종지(宗)부터 깨달은 사람은 빨아놓은 옷처럼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상(法相)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습 떠난 것을 '부처'라 하는 것이다. ☸허와 실을 둘 다 간직하지 않고
💎중도(中道)만이 오롯하고 묘하다.⚘⚘⚘
115🦋🦋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탐하여 💥소유하거나 💥조작하면 모두가 위배되는 것으로 도리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탐하고 물들면 그것을 모조리 '수수(授手)'라고 이름한다.
116 자기 무명과 탐애라는 부모를 죽이는 것 ⚘⚘
✳무명(無明)은 아버지이고 ✳탐애(貪愛)는 어머니이며, ✳자기는 병이고 ☸다시 자기를 치료함은 약이다.
💎💎자기라는 칼로 다시
💎💎자기 무명과 탐애라는 부모를 죽이므로
💎💎 '부모를 살해한다'고 했던 것이다.
117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법은 망령된 말이다
한 마디 말로 일체법을 견주어 타파하니, 때아닌 때에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법은 때아닌 밥이며, ☸나쁜 음식이며 보배 그릇에 담긴 더러운 음식이다. 또한 파계이며, 망령된 말이며, 잡스러운 음식이다.
118 구할 바가 있으면 여우이고 구할 바가 없으면 사자 ☸오장육부에 12분교와 유·무등 모든 법을 털끝만큼이라도 남겨 두었다면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고 얻을 것이 있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여우라고 한다. 이제 오장육부에 아무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면 대시주(大施主)이며 사자후이다. 이 사람은 또한 얻을 것이 없는 거기에 머물지도 않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니 육절사자(六絶獅子)라고 부른다.
119 경계에 혹하지 않고 성내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것 이렇게 낱낱의 경계에 혹하지 않고 성내지도 기뻐하지도 않으며 자기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깎아내고 정화하면 일 삼을 것 없는 사람(無事人)으로서 모든 알음알이(知解)를 극복하고 두타행(頭陀行) 정진한다 하겠다. 이를 천안(天眼), 또는 분명히 관조함으로써 눈을 삼는다(了照爲眼)고 한다. 또한 법계성(法界性)이라 하니, 수레를 만들어 인과를 싣는 것이다.
120 앞 생각의 활동이 없어지는 것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면
💎🔐🔐앞 생각(前念)이 나지 않고 💎뒷 생각(後念)이 이어지지 않는다. ⭕⭕⭕‼⚡⚡⚡🔐🔐
☸앞 생각의 활동(業)이 없어지는 것을 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 앞 생각에 성을 내면 기쁨이라는 약으로 치료하니, ✳✳그것을 부처님이 계셔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모든 불설은 치료약!! 중생이 치우쳐 병이 있기에 약을 주실 뿐 건강을 주시는게 아니라 치우친 것을바로잡게 조화균형있게 도우실 뿐이다 불설법도 근본진제가 아니다 불설도 집착하면 약과용이다🌱🌱
121차도가 없으면 그 모두가 허망한 말이다
🌰🌰모든 말씀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니 병이 같지 않으므로 약도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부처님이 있다 하고 어떤 때는 부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실다운 말로 병을 다스려 차도가 있으면 낱낱이 실다운 말이지만 💥💥차도가 없으면 그 모두가 허망한 말이다. 💎💎그러나 실다운 말이 견해를 내면 망령된 말이 되고, 💥💥
💎💎망령된 말이 중생의 전도를 끊으면 실다운 말이 되니⚘⚘
💎💎 병 또한 허망하여 🔐🔐허망과 약이 서로 다스리기 때문이다.⭕⭕⭕‼🌱병과 약이 서로 다스림🌱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신 9부교(九部敎)의 말씀은 방편교설(不了義敎)이다.
122🔐🔐🦋🦋모든 법에 물들지 않음이 남을 제도함이다 ⭕⭕⭕‼
성냄과 기쁨, 병과 약이 그대로 자기라서
💎💎다시는 두 사람이 없는데, 어느 곳에 세간에 출현하는 부처가 있으며 어느 곳에 제도할 중생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經)에서도
☸☸ '멸도(滅度)를 얻은 중생은 사실 없다'고 하였다. 또는☸☸ '부처와 보리를 좋아하지 않고 유·무 모든 법에 집착하고 물들지 않음을 남을 제도한다(度他)하고, ☸☸자기를 고집하여 머물지 않음을 자기를 제도한다(自度)'고 하였다.🔐🔐❓❓🌱자기제도가 제일 어렵다 욕망이 고집하기 때문에 몸 마음이 힘듬을 거부하기 때문에 고집함이 있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123 병이 다르기 때문에 약도 다르다
🌿🌿병이 같지 않기 때문에 약도 다르고 처방도 다르니 한 쪽으로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부처와 보리 등의 법에 의지하면 모조리 일정한 방향에 의지함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에 있어서는 한결같지 않다'고 하였던 것이다.⚘⚘
124 내견과 외견 모두가 착각이다
✳자기 그대로가 부처이며 선도(禪道)를 깨달았다고 고집하는 자를 내견(內見)이라 하며,
✳인연과 닦아 얻음을 통해 이룬다고 집착하는 자를 외견(外見)이라 한다.
☸지공(誌公)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견과 외견 모두가 착각이다'라고 하셨다.
🦋🦋 눈·귀·코·혀가 각각 유·무 모든 법에 집착하여 물들지 않으면 🦋🦋이를 4구게(四句偈)를 수지(受持)한다고 하며, 사과(四果)라고도 한다.⭕⭕⭕‼
125 육입에 자취가 없는 것이 육신통이다.
6입(六入)에 자취가 없는 것을 육신통(六通)이라 한다. 유·무 모든 법에 막히지 않고, 막히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면 이를 신통(神通)이라 한다. 나아가 이 신통을 지키지 않으면 신통이 없다고 한다.
☸☸'신통이 없는 보살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니, 가장 불가사의한 향상 부처님(佛向上人)이시다.
126 보리를 구함은 훌륭하지만 티끌을 더하는 것일 뿐 ✳✳부처를 구하고 보리를 구하는 것을 현신의(現身意)라 하니, 조금이라도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모조리 현신의라 한다. 💥💥💥🌪🌪🌪
✳✳그러므로 '보리를 구함이 훌륭한 구함이긴 하나 티끌(塵累)을 더할 뿐이다'하였다. 💥💥💥‼
✳✳부처를 구하면 부처 대중이며,
✳✳유·무 등 모든 법을 구하면 중생 대중인데
이제 비추어 깨달음으로 유·무 등 모든 법에 머물지 않으면 대중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127☸모든 경계를 탐착하지 않아 탁한 마음이 없는 것이 성불 소리·냄새·맛·촉감·법 등을 낱낱이 좋아하지 않고, 그 모든 경계를 탐착하지 않아서 십구(十句)의 탁한 마음이 없기만 하면 🌰요인성불(了因成佛; 이치를 바로 비추어 부처가 되는 것을 요인 성불이라 하는 것에 비해 🌰여러 가지 수행하는 연을 빌어 부처가 되는 것을 因緣成佛이라 한다) 이며, 🌰글(文句)을 배워 깨닫고자 하는 자는 인연성불(因緣成佛)이라 한다.
128 안다 본다 하면 되려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알면 부처님을 설명할 수 있지만 안다 본다 하면 되려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부처가 알고 부처가 보고 부처가 설명한다 해야 맞을 것이다. 이것은 불(火)을 본다 하면 옳겠지만 불이 본다 할 수는 없고, 칼로 물건을 벤다 하면 옳겠지만 물건이 칼을 벤다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부처를 안다는 사람, 부처를 보았다는 사람, 부처를 설명하는 사람은 항하수 모래알 같으나, 부처의 앎, 부처의 봄, 부처의 들음, 부처의 말씀은 만에 하나도 없다. 이들은 자신에게 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눈을 삼을 뿐이다. 경전에서는 이를 추론(比量智)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부처의 지해(知解)를 탐하는 것도 역시 비량지이다.
129방편교설과 궁극적인 교설의 차이 세간법으로 드는 비유를 유사비유(順喩)라 하는데 방편교설이 그것이다. ☸궁극적인 교설(了義敎료의교)은 반대비유(逆喩)인데 머리·눈·골수·뇌를 버린다 한 것이 그것이다. 지금 부처·보리 등의 법을 사랑하지 않는다 함은 반대비유로서 버리기 어려움을 머리·눈·골수·뇌에 비유하였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법을 관조함을 머리라 하고, 있다 없다 하는 경계법의 모양에 꺾이게 됨을 손이라 하며, 목전에 경계를 전혀 관조하지 않을 때를 골수·뇌라 한다.
130부처님은 중생구제를 위해 오신 뗏목이다
☸☸성지(聖地)에서 🌰범인(凡因)을 익혀 🌰부처님은 중생 속에 들어가 🌿🦋동류로 이끌어 주시니, 🌰🌰그들 아귀와 함께 사지 마디마디를 불에 태우며 반야바라밀을 설명하여 발심(發心)하게 한다.
☸만일 오로지 성인의 경지에 있기만 한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그들에게 가서 말해주겠는가.💥💥💥⭕‼
💎💎부처님은 모든 부류에 들어가 중생들에게 배와 뗏목이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무한한 수고로움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부처님은 괴로운 곳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괴로움을 받지만, 🦋가고 머뭄이 자유로와 중생과 같지는 않다.⚘⚘🌹
131 두 눈을 갖추고 양쪽 일을 관조해내야(照破)한다 무엇보다도 두 눈을 갖추고 양쪽 일을 관조해내야(照破)하며, 한 쪽 눈만 가지고 한 쪽으로만 가서는 안되니, 그러면 저쪽 어디에 가게 될 것이다.
🌿공덕천(功德天)과 흑암녀(黑暗女)는 늘 같이 다니는데 🦋지혜있는 주인은 둘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132 심오한 경전은 듣지도 못하고 수지하지도 못한다 조공(肇公)은 '🌿지혜와 총명을 막아 버리고 홀로 깨달아 그윽하고 그윽한 자이라'하셨으며, 문수는 🌿'마음은 허공 같아서 예배·공경으로 볼 바가 아니며, 심오한 수다라(修多羅)는 듣지도 못하고 수지(受持)하지도 못한다'하셨다.
133 ☸보지도 듣지도 말고 육근을 막아라 ⭕‼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말고 육근(六根)을 막아라.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경전을 지녀야 비로소 수행할 자격이 있다 하겠다.
☸이 말은 귀에 거슬리고 입에 쓸 것이다. 이 가운데서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 다음 다음 생에 나서는 🦋🔐부처 없는 큰 도량에 앉아서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 이루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134 밝은 곳에서는 밝음의 결박을 풀고...
☸☸악을 선으로 바꾸고 선을 악으로 바꿔
💎악법으로 10지보살을 교화하고 🔐🔐⚘⚘
💎선법으로 지옥·아귀를 교화한다.🔐🔐⚘⚘
🌿 밝은 곳에서는 밝음의 결박을 풀고 🔐🔐⚘⚘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움의 결박을 풀 것이다. ☸황금을 흙으로 만들고 흙을 황금으로 만들면서 모든 것으로 자유롭게 변화해 낼 수 있다.🌿🌿🌱평등법🌱
135 10구만 없다면 울고 웃는 모든 행위가 부처님의 지혜
이제 다만 10구(十句)가 없으면 된다.
탁한 마음·사랑하는 마음·물든 마음·성내는 마음·고집하는 마음·머무는 마음·기대는 마음·집착하는 마음·가지려는 마음·그리워하는 마음은 하나에 각각 3구(三句)가 있다. 낱낱이 3구 밖으로 꿰뚫으면 일체 비추는 작용(照用)을 자유로이 내 맡기며 말하고 입 다물고 울고 웃는 모든 행위가 부처님의 지혜일 것이다. 오래 서 있었다. 편히 쉬어라."
136 마음을 목석같이 하여 마음 갈 곳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대승도에 들어가 활짝 깨치는 요법입니까(大乘入道頓悟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모든 인연을 쉬고 만사를 그만두라.
💎💎선(善)·불선(不善)·세간·출세간, 일체 모든 법을 다 놓아 버리고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말라.
💎💎몸과 마음을 놓아 버려 완전히 자유로와야 한다. 💎💎마음을 목석같이 하여 입 놀릴 곳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어야 한다.
💎💎마음의 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137 일체법에 매이지 않는 부처님의 지혜
모든 선악(善惡), 공유(空有), 더럽고 깨끗함, 유위와 무위, 세간과 출세간, 그리고 복이니 지혜니 하는 것에 매이지 않는 것을 부처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다 그른 이치다 하는 온갖 알음알이(知解)와 망정이 다하면 얽어맬 수 없어서, 어딜 가나 자유로우니, 이를 초발심보살이 그대로 부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다.
138 스스로가 허망한 마을을 내어 얽매이고 집착한다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경계를 대할 때 어찌해야 마음이 목석 같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말하지 않으니,
공(空)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색(色)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시비와 염정도 사람을 얽어맬 마음이 없다.
💎🌰단지 사람 스스로가 허망한 마을을 내어 얽매이고 집착하여 몇 가지로 이해와 지견을 지어내고 몇 가지로 애욕과 두려움을 낼 뿐이다. 모든 법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자기 한 생각 망상이 전도되어 모습을 가짐으로써 있게 되었음을 깨달아 마음과 경계가 본래 서로 닿을 수 없음을 알면 그 자리 그대로가 해탈이고 낱낱이 모든 법이 어디나 그대로 적멸 도량이다.
139 본래 성품은 속박에도 해탈에도 머물지 않는다
또 본래 성품은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어서
본래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아니며,
공도 유도 선도 악도 아니다.
☸ 단 이것이 모든 염법(染法)에 어울려주면⚘⭕‼
그것을 인간·천상·이승(二乘)의 경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더럽거나 깨끗한 마음이 다하여
💎속박에도 머물지 않고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유위 무위·속박 해탈등 모든 헤아림이 없어 🦋🦋🌰생사를 일으켜도 그 마음이 자재하면⭕‼ 🍎마침내 허망한 허깨비인 5온(蘊) 18계(界) 등 티끌이나 나고 죽는 온갖 문(12人)과 합하지 않고 아득히 벗어나 기대지 않는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고 머뭄에 걸림없어
🦋문 열리듯 생사에 왕래하게 되는 것이다.
140 수행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괴로움과 즐거움,
💎💎마음에 맞고 안맞는 갖가지 일이 닥쳐오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명리나 의식을 염두에 둔다거나 공덕과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된다.
💎💎세간 어느 법에도 걸림 없으며 가까이 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똑같이 여기며,
💎💎거친 옷으로 추위를 막고 맛없는 음식으로 연명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나 귀머거리·벙어리같이 되어야 약간이라도 비슷해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마음 속으로 널리 지해(知解)를 배우고 복과 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모두 생사이다.💥💥
☸☸ 이치로는 이익이 된다 해도 도리어 지해 경계의 바람에 휘말려 생사 바닷 속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이치는 구할 것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 그렇다고 구함 없는 데에 집착하면 다시 구하는 것과 같아지며, 무위에 집착하면 다시 유위와 같아진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법 아니데 집착하지도 않으며, 법 아님이 아닌 데도 집착하지 않는다'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얻으신 이 법은 실재(實在)도 아니며 헛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141 속박과 해탈에 걸림없는 것이 참다운 해탈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심해탈이며 일체처해탈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승(佛法僧)을 구하지 않고,
💎복과 지혜, 지해(知解)도 구하지 않으며,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망정이 다하고,
💎구함 없는 이것을 옳게 여겨 붙들지도 않으며,
💎다한 그곳에 머물지도 않으며,
💎천당을 좋아하고 지옥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서
💎속박과 해탈에 걸림 없으면 그것으로 몸과 마음, 그 어디에 대해서나 '해탈'했다 하는 것이다
142 나쁜 경계는 모조리 좋아할 만한 경계로 변한다 마음 지혜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경계를 반연(攀緣)할 뿐, 반조(返照)할 줄은 몰라서 다시는 부처님의 도를 보지 못하고 일생 지었던 모든 선악의 업연(業緣)이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난다.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6도(六道)의 5음(五陰)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난다. 찬란한 빛을 내며 장엄함 모습으로 펼쳐지는 집, 선박, 수레 등은 모두 자기 마음에서 탐내고 좋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나쁜 경계는 모조리 좋아할 만한 경계로 변하는데, 거기서 더 좋아하고 탐낸 쪽을 따른다. 이렇게 업식(業識)에 끌려가서 붙는데로 생(生)을 받게 되는데 자기 의지라고는 전혀 없이 용(龍), 축생, 양민, 천민 등 정처없이 가게 된다
143 12부경을 다 외워도 모두가 증상만일 뿐이다
☸부처님(導師)께서도 온갖 유무의 경계를 꿰뚫어 무찌르셨으니, 이것이 「금강경」에 있는 자유와 독립의 경지이다. ⚘⚘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설사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이루게 될 것이며,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어 수행도 아니고 경이나 어록을 보는 것도 아니다.
144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룬다⚘ ☸☸ 10지(地)에서도 세상의 흐름을 해탈치 못하고 생사(生死)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니💥💥, 지식으로 어구(語句)를 찾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된다. 💥💥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루니, 💎지금이라도 유무(有無) 모든 법을 여의어 3구(三句) 밖으로 뛰어나면 자연히 부처님과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145 진리의 바탕위에 복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미 스스로가 부처인데 어찌 부처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근심하랴. 오직 부처가 유무 등 모든 법에 얽매여 더욱더욱 부자유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진리의 바탕 위에 서지 못한 채 복과 지혜가 있는 것은 마치 천한 이를 귀하다 하는 것 같으니, 진리의 바탕에 먼저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어서 때에 맞추어 행동하니만 못하다.
146 유무를 모두 떠나야 부처님의 참 모습을 본다 있음〔有〕과 없음〔無〕에 떨어지지 아니하니 누가 감히 화답하리오.
일체의 있음〔有〕과 없음〔無〕등의 견해가 전혀 없고
또한 없다는 견해도 없는 것이 불법을 바로 보는 견해라고 한다.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아니하면
곧 바로 부처님의 참 모습을 보느니라.⚘⚘
不落有無誰敢和
都無一切有無等見 亦無無見 名正見
不見有無 卽時見佛眞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