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性의 그 자리
無라고 하기 이전 소식, 이 생각하기 이전소식,
이 생각하기 이전소식의 이전소식, 이것이 무엇 인고?
이것은 바로 우주의 이전소식 이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라 하는 것이다. 우주의 근본 소식이다.
나무의 모양은 이러하나 나무의 뿌리는 볼 수 없다.
소위가지(末)은 볼 수 있으나 근본(뿌리)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우주의 모든 형상의 모양은 거짓 가지인 것이고
뿌리인 진 근본은 볼 수가 없다.
이러한 우주 이전 이 소식이 바로 이 무엇인가? 이다.
이 무엇일까? !
우주 형상에 변화한 모든 모양은 다만 거짓 이름뿐이다.
거짓 이름 붙여진 형상만을 인식 할 뿐 형상 이전 이것은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 형상의 모든 것, 사람, 축생, 식물, 무기물, 이 모든 것이
우주 이전의 우주 모태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 이 우주의 모태가 무엇인가?
이것은 모양으로 보일 수도 말로서 무어라 이를 수 없다.
어떠한 무엇으로도 표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굳이 중생들에게 할 수 없이 보이려 한다면 圓(○), 點(●), 三寶輪(∴)
등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끝도 없고 처음도 없고 시작과 끝남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고
넓고 좁음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으며 또한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다.
이것은 또한 말로써 이른다면 法性이니 法空이니 佛性이니 心性이니
覺性이니 性品이니 眞性이니 眞如性이니 眞如이니 實相이니 一圓相이니
등등으로 표현 내지 말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선가에서는 바로 근본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가지를 보여
근본을 스스로 찾도록 화두가 있는 것이다.
가지를 보아 더듬어보면 근본 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바로 근본을 보여 주어도 믿지를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중생들은 그것을 가지로 알지만 그것 또한 눈뜬 이 에게는 근본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는 항상 근본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허상인 형상을 뒤집혀 진상인 근본을 캔다면 바로 이것이 실상인 것이다. 실상은 어떠한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우주의 모태이며 하나의 원만한 성품인 것이다.
그러기에 십 만억 국토를 지난 서방극락정토도 다름 아닌 이 우주의 모태인 이속에 있는 것이다. 십 만억 국토를 지난 저 시방정토가 이 속에 있다는 것은 지금 나의 육신을 담당하는 이 내마음속을 말함이 아니고 이 육신을 움직이는 마음 이전 이것, 그러니까 우주 만물이 이전 인 것을 말함이다.
이 우주의 세계는 이름이 세계이지 실상에 있어서는 세계라 할 수 없다. 가상인 허상이기에 세계라 이름이니 세계 아닌 이것이 바로 진실한 세계이다.
진실한 이 세계는 선도 악도, 나도 너도, 좋고 나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더럽고 깨끗하고, 두렵고 두렵지 않고 등인 이러한 상대성이 아예 없는 것이다.
이 세계 속에 가득히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은 거짓 가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 동요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연이라 하는 것도 이 가상들이 자기 부분적인 것들이 서로 붙이치며 이러나는 형상인 것이다.
인연이란 이렇게 가상 적에서 표현 할 뿐이지 실상에 있어서는 인연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가상들이 서로서로 모이며 모여서, 이일 저일, 이것저것 하며 울고불고, 웃고 웃으며 그럭저럭 허상 속에서 허상인줄 모르고 허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비가 온다. 이것도 허상이 인연하여 비라고 이름 지어진 것이지 실상이 모양은 아니다. 그러나 실상 그 자리에 있어서는 이 모든 허상들이 실상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실상이 그대로 변화무쌍하게 형상으로 보인 것이다.
그러기에 허상 이 허상이 아니고 실상 이 실상이 아니다. 실상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실상이요 허상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허상이다. 곧 눈 밝은 이들은 처처에 실상세계요 중생이 세계에서는 허상인줄 모르기 때문에 허상일 뿐이다.
중생도 허상인줄 알아서 실상으로 돌아가면 어제의 허상이 오늘에는 실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 이 중생이 아니며 부처 가 부처가 아니라 한 것이다. 한번 미하면 중생이요 한번 돌이키면 부처인 것이다.
이것은 다만 허상을 허상인줄 알고 또한 허상이 허상 아닌 실상인줄 알고 실상이 또한 실상 아닌 줄 알며 실상 아닌 것이 또한 실상 인줄을 알면 바로 이것이 부처의 자리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화두 속에 지말 속에서 지말 인줄 모르고, 환속에서 환 인줄 모르고, 화두 속에서 화두 인줄 모르고, 화두가 곧 지말 이며, 지말 이 곧 근본인줄 모르고, 미한 것이 곧 깨달음인줄 모르고 계속 그러한 생활에 고정이 되어 살고 있다.
이 함정을 벗어나야 한다. 생사라는 함정 속에서 생사라 하는 함정도 모르고 항상 생사의 함정 속에서 생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가엽다!
이속에 무슨 생과 사가 있다고 여기에 집을 짓고 벗어나려 애 쓰는가? 생 사 이것이 거짓상인줄 알면 가히 마쳤다 이를만 하다.
1985년 7월 7일 불국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