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이 다쳐 통증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았어도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생각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신 레몬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이듯
생각을 통해서 육신이 통제되고 있다.
중국의 도교에서 마음이 심장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마음이라 불릴만한 실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뇌에서 인식한 정보로 인해 심장이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겁나고 두려운 일을 만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기도 하며 슬픔을 겪으면 심장의 근육이 오그라들면서
혈액의 순환 장애로 인한 고통이 나타나고
횡경막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숨이 가빠지게 된다.
심장에 무리를 주는 일을 겪게 되면 그 충격으로 인해
원활한 혈액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통증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통증을 느끼는 고통이란
혈액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며 불행을 회피하고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
마치 거꾸로 오래 있으면 피가 머리로 몰려 두통을 느끼고
팔을 들고 있으면 피가 밑으로 내려가 팔이 아파지는 것처럼
인간이 통증을 느끼는 것은 피의 순환작용 때문이다.
물리적인 고통도 역시 다친 부위로 피가 몰려들기 때문이며
기쁨으로 충만하면 피의 순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호흡도 원활하게 숨 쉬며 말초신경까지 혈액이 순환하면서
충만함을 느끼는 현상으로 인해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마음의 실체가 심장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심장의 역할을 따라 육신의 좋고 나쁜 상태를 경험하면서
통증이 심장에서 비롯되기에 마음이 머문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만일 심장의 활동을 좋고 나쁨에 영향 받지 않도록 한다면
우리는 정신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들숨과 날숨을 맥박에 맞추어 호흡하게 되면
비교적 경계에 흔들림 없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쁨과 슬픔을 주관하는 마음이란
신체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상태일 뿐
마음이 본래 없음을 아는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한 번 그 이치를 몸소 터득하게 되면
육신이란 단지 한 웅큼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할 뿐
생명이 떠난 육신의 어디에서도 스스로 살아있는 것은 없다.
그럼으로써 불행을 두려워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나약함을 멀리하고
과시욕과 자존심에 의해 상처를 받아 마음이 억눌렸다는
전도된 망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