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지난 97년부터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및 과거사청산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정서 안정과 복지를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3. 여기 80평생을 일본군‘위안부’의 멍에를 짊어지고 한 많은 삶을 살다 머나먼 길을 떠나신 할머니 한분이 계십니다. 만 16세가 되는 해 취업사기로 끌려가 만주에서 치욕스러운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하였고, 작년 12월에 대장암수술을 받으시고 회복 중에 있으시던 김순악 할머니(만 82세)께서 2010년 1월 2일 새벽에 심장마비로 운명하셨습니다.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그 실체가 드러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그 해결을 위해 19년이라는 지난 시간동안 시민단체들과 함께 피해자들이 앞장서 싸워왔습니다. 고 김순악 할머니 역시 2000년 당시 보건복지부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 되면서부터 자신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고통에 대해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그 끝을 보지 못하신 채 기어기 먼 길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고 김수순악 할머니의 평생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배상을 위해 더욱 열심히 활동 할 것입니다.
고 김순악 할머니의 장례는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치러집니다.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많은 이들의 참여와 애도를 바랍니다.
▶빈소: 곽병원 장례식장(252-1023)
▶연락처: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257-1431/254-1431)
이인순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국장/010-8181-2259)
# 별첨자료: 고 김순악 할머니 생애
일본군‘위안부’ 고 김순악 할머니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장 안내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故순악 할머니의 생애 -
∙1928년 : 음력 4월 23일 경북 경산군 남천면 삼형제중 첫째 딸로 태어남.
∙1944년 : 집안이 가난하여 16살 때 친구와 함께 공장으로 돈 벌러 갔다가 속아서 만주로
끌려가서 중국 장가구 시골마을 위안소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함.
∙1945년 : 해방을 맞아 귀국하였으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차삯이 부족하여 어떤 아저씨의 꾐에 빠져 이태원, 군산, 여수, 파주, 서울 등지를 떠돌며 힘들게 살다가 고향인 경산으로 돌아오심. 여수에 계실 당시 여순사건 발생.
∙1953 : 3살짜리 아들을 경산에 두고 돈을 벌기 위해 상경.
∙1997년 : 다시 고향 경산 남천으로 귀향. 식당과 15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남의 집살이로 생활하심
∙2000년 : 11월 일본군‘위안부’피해자로 등록.
∙2003년 : 나고야 히로시마 증언강연회
∙2005년 : 심리치료프로그램으로 원예치료 시작
12월 제1회 원예작품전시회
∙2006년 : 제2회 원예작품전시회 및 작품집 발간 (할매, 사랑에 빠지다)
한일공동증언회 - 창원대학교 증언활동
∙2007년 :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팔순잔치.
제 1회 고양세계압화공예대전 특별상 수상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LA세계대회 기간 중 UCLA대학에서 압화작품전시
∙2008년 : 김순악할머니 일대기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 카이』출판기념회
제3회 원예작품전시회 및 두 번째 작품집 발간 (할매, 사랑에 빠지다 Ⅱ)
제 2회 고양세계압화공예대전 특별상 수상
∙2009년 12월 7일 : 12월 대장암수술
∙2010년 1월 2일 : 건강을 회복하시던 중 밤사이 주무시다 별세.
: 친아들 둘 중 한사람이 있으나 경산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일찌기 담배를 벗 삼아 살아오셨으며, 자신이 당한 일생 때문에 아들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셨고, 할머니의 평생 한은 족두리 쓰고 시집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셨다.
신고 후 그나마 편안하게 지내는 것 같아 항상 고맙게 생각하시며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셨고 경술국치 100년,해방 65년인 2010년 새해 벽두,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