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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문화재단 발행
2015년 6월
걷기 건강의 첫걸음
이 책은
걷기 건강을 홍보하기 위한 비매품으로 초판 2만 부가 발행되어 백천문화재단에서 전국 병원을 비롯한 개인 신청자에게도 무료로 보내드렸습니다.
내가 '만보'가 된 이유
석 진 호(昔進鎬)
1995년,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방광암 선고를 받았고, 2년 뒤 대형 교통사고까지 당해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쳤다.
2년간의 재활치료 중에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걷기를 선택해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의과대학 시청각실에서 근무하면서 / 1시간 10분 남짓 되는 길을 걸어 출퇴근을 하며 점점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았다.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걷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만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고, 삶에 활기를 되찾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만보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집도 출간했다.
에세이 작가 100인
총서에 뽑힌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만보의 살가이
▲ 조선일보 기사
그 책이 계기가 되어
SBS 스페셜 <걷기의 기적>과 KBS <국민건강 프로젝트 걷기의 기적>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또한 MBC를 비롯한 다른 방송매체들이 섭외 요청을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병행하기란 쉽지 않아 차분하게 자제하며 더 이상 방송출연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암이라니!
내 몸 깊숙한 곳에 암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니….
마흔도 되지 않은 젊디 젊은 나에게!' 그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당시에 암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것이지요.
1995년 4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퇴근 후 직장 동료와 술 한 잔 하던 중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갔는데, '어라! 이게 뭐야, 뭐야, 뭐야? 시뻘건 오줌이…. '한동안 제 눈을 의심했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요.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혈뇨가 분명했습니다. 불김함이 엄습했습니다.
다음날 득달같이 비뇨기과를 찾아 초음파 검사를 받은 결과 방광에 종양이 생겼다는 겁니다. 급한 대로 수술을 하고 조직검사를 해봐야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에이, 설마 단순한 종양이겠지? 소변볼 때 불편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자각증상도 없었는데…. 내게 그런 끔찍한 일은 없을 거야!! 암 그렇고 말고. 그저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 살아 피곤했기 때문일 거라고, 절대 암은 아닐 거라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좋은 쪽으로 아무리 생각하려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그렇게 바라고 바랐지만 행운의 여신은 저를 비켜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방광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 중에서도 생소한 방광암….
설마 설마 했는데 암이라는 딱지를 받고 나니 그 초조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더군요. 삶의 종착역인 것 같아 가슴이 미어터지는 듯했습니다.
수술 후유증이 없다고 해도 방광암은 재발률이 60~70퍼센트나 된다니 그것 또한 저를 더 애타게 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을 주신 걸까, 한동안 분노가 치밀고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 앞에서 제 자신이 걸어온 인생 전반을 되돌아보는 회한의 시간이 찾아오더군요. 허구한 날 술타령을 하며 그냥 그렇게 무언가에 쫓기듯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각박하게 살아온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나마 조기에 발견해 정해진 수순에 따라 수술을 하고, 석 달 동안 아홉 번의 면역치료(요도를 통해 BCG를 방광 내에 투여)를 받았습니다. 그때의 치료과정이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고통이 되살아나는 듯 몸서리쳐집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 가운데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게 있다면 '건강'일 것입니다. 돈을 들여 헬스클럽을 다니고, 주말이면 웰빙을 외치며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등등 자신의 취미를 찾아 즐기고, 자연을 벗 삼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매우 원론적이며 지당한 이야기가 젊을 때나 건강할 때에는 뼈저리게 와닿지 않습니다. 생각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건강 관리를 하기도 결코 쉽지 않지요. 저 역시 술 마실 시간은 있어도 운동할 시간은 없었던 사람입니다.
늘 "바빠서…." 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주말이면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며, 뒹굴뒹굴 낮잠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학교 대표 유도선수였으며, 누구보다 운동을 즐겼던 제가 영락없는 게으른 굼벵이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부쩍 커버린 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차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영을 시작했고,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서야 바른생활을 해보자 하고 노력할 즈음에 찾아온 암이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서야,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고개를 들어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진지하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특히 가족에 대한 애틋한 연민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별로 친하지 않았던 예배당을 찾게 되고, 현실을 직시한 '진인사대천명'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습니다.
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걷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꿈도 못 꿀 새벽에 일어나 뒷동산을 찾아 무작정 걸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다 보면 체력이 좋아지고 면역력도 키워져 재발 방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자그마한 산이었지만 매일 오르다 보니 아침 햇살의 싱그러움과 푸른 잎사귀에 이는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늘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 순수한 생명력의 비밀들….
아!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을 왜 내가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자연을 통한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새벽 걷기의 시간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성찰의 시간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 꿈틀거리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방송대(방송정보학과)에 진학해 새로운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불혹이 지난 내가 내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환희와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때, 주치의로부터 이제 그 몹쓸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다고, 3개월마다 시행하던 정기검사도 6개월로 늘려도 되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속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여 들려주었지요. 그 어떤 격려와 찬사보다 저를 행복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은 저는 '이제 완치'라고 제멋대로 결론 내리고 정기검진 날짜가 다가와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근무하던 의과대학과 병원은 한울타리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직장 동료나 다름없는 여자 간호사 앞에서 홀딱 벗고 떡~하니 다리 벌리고 앉아 방광내시경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소독을 한답시고
저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그 '뇨자'의 손길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또다시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쳐 2년 가까운 재활치료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삶을 그만 마감해 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문득문득 들곤 했었지요.
당시 재활치료를 하며
일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하는 수 없이 목 디스크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혹 발생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수술의 부작용 위험을 안은 채 말입니다.
일차적으로 수술은
대 성공이었지만, 수술로 인한 자리 잡기(신체조직)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또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악몽이 따로 없는 기나긴 시간이었지요.
목 디스크 수술을 받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가까스로 추스를 수는 있었지만, 극심한 요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허리 보조기에 의지한 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판사판 어떻게
해도 아프다면 차라리 걷자 싶어서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걷는 자체가
어찌나 힘이 들던지 정말 포기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차피 아픈 건 매한가지여서 출퇴근길이라도 걸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집에서 직장까지 6,5Km
거리로, 한 시간 10분가량 소요되었습니다. 마침 출퇴근길은 안양천변을 끼고 있어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요. 하루에 만보를 걷겠다는 각오로 '만보'라는 애칭까지 스스로에게 지어주었습니다.
흐리거나 맑거나 덥거나
춥거나 상관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어지간한 비는 우산을 받쳐 들고 걸었고,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이 내리는 날은 개가 눈밭에서 신나게 뛰어놀듯 '더욱 신나고 아름다운 만보의 발자국을 내며 걷자' 하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출퇴근 걷기의 친구가 되어준 안양천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 속에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순응하면서 긴 암흑과 같은 방황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지긋지긋한 허리통증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살 것 같았지요.
걷기는 척추를 받쳐줄 주위 근육들을 튼튼하게 해 주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의사들이 허리가 안 좋은 사람들에게 가벼운 산행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몸의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니 날아갈 듯 기쁨이 찾아오고 걸으며 얻는 사색은 정신적 풍요를 불러와 삶이 그렇게 아름답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안양천변에 피고 지는 꽃들은 물론 그곳에 더불어 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얘기도 주거니 받거니 나누게 되었습니다. 건강과 사색과 그 사색을 글로 표현하면서 느끼게 된 삶의 기쁨,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저를 보며 좋아하게 된 가족들까지 제게는 이 모든 것이 새롭게 주어진 인생의 큰 선물이었습니다.
걷기로 인해 받은 또 하나의 깨알 같은 선물은 아내와 관계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날 꾀가 나서 걸으러 나가지를 않자 아내 왈, "걸어, 걸어야지~ 그래야 밤에 좋지ㅎㅎ~" 하더군요. 다리와 허리 근육뿐 아니라 회음부 근육도 강해져 정력에도 도움이 되니 걷기야말로 저에겐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걷기와 함께 병행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거꾸리'~입니다.
철봉 등에
거꾸로 매달리는 것인데요, 처음 할 때는 오금이 저리고 아파서 오래 버티기가 어렵지만 꾸준히 한 결과 지금은 보통 10분 정도, 20분까지도 매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매달려 있다가 내려오면 하늘을 나는 것 같이 상쾌하답니다. 가정용 거꾸리 기구도 있어서 허리 통증이 있는 분들은 물론, 건강한 분들도 미리미리 해놓으면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특히 걷기 삼매경에 빠지면서 저는 건강뿐 아니라 자신감도 회복하게 되고, 그 행복한 감정을 '만보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글로 표현하게 되어 에세이집까지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이 또 인연이 되어
(2007년, SBS스페셜 걷기의 기적과 2013년, KBS1 국민건강 프로젝트 걷기의 기적) 생방송에 출연하게 되었고요.
'만보 걷기'는
저를 일으켜 세운 제 영혼의 샘이자 제 인생의 스승 같은 역할을 해준 무척이나 소중한 도구입니다.
오래 전 어느 날 제게 동료가 실험용 피를 부탁하기에 응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를 들고 온 동료가 전하는 말, "기름 끼가 많아서 못 써."
그러나 만보 걷기를 생활화한 뒤에는 건강검진 결과에서 고지혈증에 대한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교통사고의 후유증인 요통에서도 벗어났을 뿐 아니라 재발이 잘 된다는 방광암도 만보(萬步)의 효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국내외의 높고 낮은 산들은 물론 산꾼들의 로망인 히말라야 산맥 안나푸르나 트래킹과 에베레스트 트레킹 & 킬리만자로 트레킹도 했습니다.
▲EVEREST BASE CAMP▲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 피크(5,895m)
인도 배낭여행 + 트레킹
15일간의 ▲ 이동 경로
18,380 FEET ▲ 6,12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 고갯길
인도 카르둥라
대형 캠핑카를 이용한
21일간의
캐나다 로키 트레킹
▼ 뚜르 드 몽블랑 ▼
(TMB) 트레킹
만보의 해외 산행 중에서
중국을 통한 백두산 산행과 고구려 천리장성의 관문인 비사성 산행은 정말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만보와 함께 최근 ▼
몽골 2023년 7월
▼ 중국 북경 ▼
백석산
고북수진, 사마대장성
2023년 12월
알고 보니 걷기가 저만
행복하게 해 준 것이 아니더군요. '행복의 십계명' 중 첫 번째가 '운동'이라고 합니다. 2005년 5월, 영국에서 여섯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행복위원회가 행복을 검증하기 위한 세계 최초의 실험을 통해 '행복의 조건'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영국 '슬라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행해진 이 실험에 따르면 행복은 멀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악기 연주나 자전거 타기처럼 배울 수 있는 기술이어서 실제로 측정 가 능했다고 하는데요,
행복위원회가 행복을 검증하기 위해 했던 실험의 전 과정이 BBC TV의 4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고 하지요.
이는 영국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다큐에서는 연습할수록 느는 삶의 습관이 곧 행복으로 귀결됨을 증명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행복의 조건 열 가지 가운데 첫 번째가 운동이었고요.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이겠지요?
이 실험을 통해 정리된
행복의 십계명은
이러했다고 합니다.
1. 운동을 하라.
일주일에 3회, 하루 30분씩이면 충분하다.
2. 좋았던 일을 떠올려보라.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당신이 감사해야 할 일
다섯 가지를 생각하라.
3. 대화를 나누라.
매주 한 시간은
배우자나 가족,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눠라.
4. 식물을 가꾸라.
아주 작은 화분도 좋다.
5. TV 시청 시간을 반으로
줄여라.
6. 미소를 지으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해라.
7. 친구에게 전화하라.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나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하라
8. 하루에 한 번 유쾌하게
웃어라.
9. 매일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하라.
그리고 그 선물을 즐기는
시간을 가져라.
10. 매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행복을 위한 조건,
정말 거창한 것들이 아니지요? 아파본 사람들은 압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어쨌든 저의 몸과 마음을 다시 살린 '걷기'는 누구나에게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마라톤을 해서 100살까지
사는 사람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걷는 사람 중에는 100살이 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걷기는 시간과 장소,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고, 심장병이나 고혈압 같은 각종 질환 예방이나 치료 효과도 높다고 합니다.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스트레스나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도 도움을 줍니다.
체력이 좋아짐으로써 자신감이 높아지고,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 사색의 기쁨까지 맛볼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운동입니다. 걸으면 대뇌 흥분 물질이 분비되어서, 앉아 있을 때보다 생각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그것을 마음속에 품고 걷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라도 일상적 걷기는 긍정과 창조의 에너지를 가져다주어서 삶을 훨씬 활기 있게 만들어줍니다.
걷기의 이런 효과들은
저 '만보'가 이미 온몸으로 경험했고, 지금도 그 혜택을 보며 살아가고 있지요. 오늘도 자리에 누워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픈 분들이 있다면, 물론 힘이 들겠지만 그 고통을 딛고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향해 한 걸음 발을 떼놓은 순간, 우리가 걸은 거리만큼 원하는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9988 일십백천만"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99세까지
88하게 살기 위해~
♡ 일(一)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착한 일을 하고
♡ 십(十)
하루에 열 번 이상 웃고
♡ 백(百)
하루에 백 자 이상
글을 쓰고
♡ 천(千)
하루에 천 자 이상
글을 읽고
♡ 만(萬)
하루에 만 보 이상
걸으세요!!!
걷기는 건강입니다.
걷기는 소통입니다.
걷기는 힐링입니다.
감사합니다.
걸어서 하늘까지 ~
만보 석진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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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먼저 올린 글을 수정 보완하고 아뿔싸!!!
그만 삭제를 눌러 ~ 다시 올리게 된
그래서 주렁주렁 달렸던 그 댓글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네요~ ㅠㅠ
정말 멋지고 대단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멋진 삶을 살고 계십니다.
저도 본 받고 싶네요.
당시 불현듯 찾아온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면 /
암튼 제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 된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