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신명기 17:19)
전남 목표에 가면, 산 가운데 유달산에 버금가는, 대아산의 ‘대(大)’자와, 나불도 라는 섬의 ‘불(佛)’자를 합친 대학교가 있습니다. 1993년 설립되어, 1996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어, 학사, 석사, 박사원생 5천여 명이 수학하고 있는, 기대가 되고 전망이 있는 대불대학교(大佛大學校)입니다. 대불대학교는 2012년 6월에 학교명을 ‘세한대학교’로 변경하였고, 세한대학교 교훈은 진리탐구, 덕성함양, 기술계발입니다. 오늘 이 세한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입학생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배워야 하겠습니까?“나도 배우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개강예배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1. 더 배우고자 입학하는 용기(勇氣)를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모처럼 공부 좀하려면 ‘내 나이가 몇인데... 학교 졸업한지가 언제인데... 학교가 너무 멀어서... 학비도 만만치 않는데... 집안에 복잡한 일들은 어떻게 하고...’ 주저주저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를 다 물리치고 배우겠다고 등록한 용기를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권했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립보서 4:8~9)
2. 학습(學習) 의욕(意慾)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논어에 ‘가르치는데 권태를 느끼지 말고 배우는데 싫증을 느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수도 강의하는 수준이 있다지만, 학생도 배우는 수준이 있습니다. 강의실에는 꼭 지각생이 있고, 결석생이 있습니다. 조는 학생이 있고, 과제물을 제때에 해오지 않고 구차하게 변명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 딴 생각만 하고 있는 학생이 있고, 학기 중간에 학문을 포기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석하지 않고 지각도 하지 않고, 과제물 잘 해오고, 수강태도 진지하고, 어떤 이유로도 중간에 그만 두는 일이 없는 여러분들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모세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명했습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명기 5:1)
3. 학교 사랑하는 정신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포항 한동대학교는 1994년에 설립됐습니다. 아들이 졸업하는 학위수여식 때 입니다. 학사 600여명 석사 40여명이 2시간 동안 졸업식을 하는데, 자리를 이탈한 학생은 거의 없었고 박수 쳐가며 웃어가면서 기도하는 졸업식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손해 볼 것을 각오하고 진실하자.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총장님의 치사, 신앙을 모르고 입학하여 하나님을 알았고, 끝없는 배움을 알았다면서 감격스러워 원고를 읽다가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자, 보다 못한 사회자인 교무처장이 나와서 원고를 대신 읽어 내려가다가 함께 흐느끼는 졸업생이 인사말 하는 광경은, 어느 졸업식장에서도 볼 수 없는 감동적인 대목이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이 분명했습니다.
입학생 여러분! 소속감을 갖고 세한대학교를 자랑하고 사랑하는 정신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모세는 명했습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신명기 31:12)
4. 인간관계(人間關係) 잘 맺는 것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교수님을 욕하고 비난하는 학생치고 우등생이 없습니다. 목사님을 무시하고 냉대하는 교인치고 은혜 생활하는 교인을 못 봤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죽는 순간까지 배우고 살아가야 한다.”고 교육을 강조하는 목사님 말씀에, 무심코 그냥 다 지나가는데 은혜 받는 교인이 딱 한사람 있었습니다. 환갑이 가까운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었습니다. “목사님 내가 대학원에 입학해서 공부 좀 더하고 싶습니다.” “뭘 공부하고 싶은데요?” “상담학(相談學)을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한참 후에 “당신은 상담학을 전공하는 것보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지 않소?” 이 말은 대학원을 다니란 말입니까? 다니지 말라는 말입니까?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그만두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모님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그 날로 영어서적을 사들여 1년 동안 열심히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사람이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대학원 영문학 입학시험에 맨 꼴등으로 합격 했습니다. 그런데 강의시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젊은 교수님이 영어로 강의를 하면 다 웃는데 웃지 않는 학생이 단 한사람 있었습니다. 그 영어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사모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옆자리 학생한테 방금 왜 웃었느냐고 묻고는, 또 혼자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모님이 학교에 나올 때마다, 아침에 김밥 싸면서 얼른 하나를 더 말아 도시락을 준비해서, 강의 후에 젊은 교수님 점심으로 내 놓습니다. 아침도 못 들고 나오신 교수님이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 그 다음날은 초밥을, 도넛을, 팥 시루떡을... 교수님이 하도 대접을 받고 나니 고마워서, 진도를 따라오지 못한 그 사모님을 따로 불러 나머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열심히 따라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입니다.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여러분들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디모데후서 3:14)
5. 배운 학문을 활용(活用)하고 사는 것을 보니, 나도 배우고 있습니다.
복지(福祉)가 무엇입니까?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학생이 없어야 복지입니다. 돈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없어야 복지입니다. 어린이가 학대(虐待) 받지 않고, 노인이 홀대(忽待)받지 않는 것이 복지입니다. 장애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는 사회가 복지사회입니다.
여러분의 지식과 손길, 섬김을 기다리는 곳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졸업 후에 여러분들이 세한대학교에서 배운 학문을 썩히지 않고 복지사역에 활용하고 사는 것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나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권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1~13)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명기 17:19)
첫댓글 신앙을 모르고 입학하여 하나님을 알았고---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와우~
그냥 지나갔더라면 제 영이 후회할 뻔 했습니다. 정말 귀한 글 감사합니다. 만학도였던 저의 아름다운 추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