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세가지 질문』
세상의 모든 이야기 초점은 예수님의 어머니에 맞추어져 있고, 예수님의 아버지 이야기는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는 점에서 부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당시 유대사회에서 일부다처제도를 유지하여 부자들이 여성 부모에게 지참금을 낼 수 있는 점을 활용하여 여러 아내를 둔 가정은 아니라고 봐야겠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신약성경의 두 단락에서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 1:18-25, 눅 1:26-38)
그 중에서 누가복음 1:34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천사가 그녀에게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을 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요”라고 하여 자신이 처녀인 사실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의 평범한 아들로 태어났다면 그도 아담의 죄인의 후손일 뿐이며, 그 자신이 죄인이므로 자신 뿐 아니라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논리의 오류를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게 네 명의 형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있다고 알려 줍니다 (마태복음 13:55). 성경은 또한 예수님에게 자매들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몇 명인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성경에 나온 형제자매는 예수의 사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동방정교는 요셉의 전처가 낳은 자녀들로 규정하고 있고 루터교는 형제자매로 접근합니다.
예수의 제자요 제1대 교황인 베드로가 야고보는 교회 기둥이라고 말 할 정도이고 야고보의 글은 신약성경에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버지 요셉의 전처 아들이거나 마리아의 언니의 아들이라면 족보를 중시하는 유대인 사회에서 이게 가능했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평균 연령은 40세 가량이고 통상적으로 남성은 18세 그리고 여성은 13세에 혼인했다고 합니다.
이런 평균 나이로 추정하면, 예수님이 33세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아버지 요셉의 이야기는 제가 딱히 못들어보았다는 점에서 돌아가셨다고 가정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30년 가량 지냈고 처음 설교를 할 때,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고, 이 후 고향을 떠나 갈릴리 지방으로 이동한 걸로 나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죽음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은 없지만,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에 죽었다는 전승에 따르면, 다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약 18세에 약 13세의 마리아를 만나는데,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와 출산을 은혜 속에 받아들였고 이후 목수로서 이 가정을 먹여살렸고 약 47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결혼 적령기인 18세를 십여 년 훌쩍 넘어설 때까지 그 책임을 다했고,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실제 목격이나 체험은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다.
자, 그렇다면 저의 첫번째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인물’입니까?
아니면 ‘꼭 있어야 되는 인물’입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3세 가량 마리아가 잉태하여 출산하고 옆에 아무도 없었다면, 당시 가부장적 유대사회에서 그 마리아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위험도 생각해봐야 되기 때문입니다.
즉, 순간적으로 생각하면 굳이 따지면 없어도 되는 인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의 두번째 질문입니다.
다가오는 한국 대선에 있어 후보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아버지 요셉과 같은 존재는 각 후보에게 누구입니까?
마지막으로 저의 세번째 질문입니다.
2025년 1월23일 경부터 이러다 가는 제가 완전히 죽겠다는 절박함으로 지난 4개월간 도움을 한국 정부 등에 요청을 하고 있는데,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인물’이니까 ‘알아서 뒤지세요. 귀찮아요’라는 입장이 속마음입니까?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