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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전/ 제6장 좌 선 법(坐禪法)
1. 선(禪)의 원리
대범, 禪이라 하는 것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다.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다.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 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一如하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
그러나, 만약 망념이 쉬지 못한 즉 불 기운이 항상 위로 올라서 온 몸의 수기를 태우고 정신의 광명을 덮는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하면 사람의 몸 운전하는 것이 마치 저 기계와 같아서 수화의 기운이 아니고는 도저히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육근 기관이 모두 상부 두뇌에 있으므로 볼 때나 들을 때나 생각할 때에 그 육근을 운전해 쓰면 전신(全身)의 화기가 자연히 두뇌로 집중되어 만신(滿身)의 수기를 조리고 태우는 것이 흡사 저 등불을 켜면 기름이 닳는 것과 같다.
그런고로, 우리가 뇌심초사(惱心焦思)를 하여 무엇을 오래 생각한다든지, 또는 안력을 써서 무엇을 세밀히 본다든지, 또는 소리를 높여 무슨 말을 힘써 한다든지 하면 반드시 얼굴이 붉어지고 입 속에 침(연;涎)이 마르지 않는가.
이것이 곧 화기가 위로 오르는 형상(形像)이니, 부득이 당연한 일에 육근의 기관을 운용하는 것도 오히려 가히 존절히 하려거든, 하물며 쓸데없는 망념을 끄리어 두뇌의 등불을 주야로 계속하리요.
그런고로, 좌선이라 하는 것은 이 모든 망념을 제거하고 진여의 본성을 나타내며, 일체의 화기를 내리고 청정한 수기를 불어내는 공부다.
2. 좌선의 방법
좌선의 방법으로 말하면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할 수 있다.
一. 좌복을 펴고 반좌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
一. 전신의 힘을 아랫배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단전의 그 기운이 풀어진다.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一.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미(微)하게 하라.
一. 눈은 항상 뜨는 것이 수마를 제거하는 데 필요하나 신기(神氣)가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수마의 침노를 받을 염려가 없는 때에는 혹 감고도 하여 보라.
一. 입은 항상 다물지며 공부를 오래하여 수승화강이 잘 되면 맑고 윤활한 침이 혀 줄기와 치아 사이로부터 계속하여 나올 것이다. 그 침을 입에 가득히 모아 가끔 삼켜 내려라.
一. 정신은 항상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약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正念)으로 돌이켜서 무위 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
一. 처음으로 좌선을 하는 수행자는 흔히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침노하는데에 괴로워 하나니,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도 좋다.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진다. 절대로 거기에 성가시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
一.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이 개미(의:蟻) 기어다니는 것과 같이 가려워지는 수가 혹 있나니, 이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라 삼가히 긁고 만지지 말라.
一.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며,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심두(心頭)에 걸지 말고 심상히 간과하라.
이상과 같이,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無上한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3. 좌선의 공덕
좌선을 오래하여 그 힘을 얻고 보면 아래와 같은 열 가지 유익(有益)이 있다.
1. 경거 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
2.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
3. 인내력이 생겨나는 것,
4. 병고가 감소되는 것,
5. 착심이 없어지는 것,
6. 육근 동작에 순서를 얻는 것,
7. 얼굴이 윤활하여지는 것,
8. 사심이 정심으로 변하는 것,
9. 극락 수용을 하게 되는 것,
10.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이니라.
4. 단전주의 필요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에 주하여 일체 사념(思念)을 제거함이 자고(自古)의 통례이니, 그러므로 각각 그 주장과 방편을 따라 혹은 비단(鼻端)(코끝)에, 혹은 미간(眉間)(두 눈썹 사이)에, 혹은 정상(頂上)(이마 위)에, 혹은 제간(臍間)(배꼽)에, 혹은 기식(氣息)(氣息에 住하는 법은 조식;調息과 수식(數息)의 두가지가 있으니, 조식은 하(下)에 설(說)한 바와 같고, 수식은 들고 나는 숨을 하나로부터 열까지 또 하나로부터 열까지를 세어, 숨을 세는 데에 마음을 주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佛想(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단엄묘상(端嚴妙相)을 (一心)으로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월륜(月輪)(마음 가운데 두렷한 달을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아자(阿字)(阿字에 제법개공;諸法皆空의 의미를 붙여 직경 8촌의 월륜 중에 8엽의 연화를, 그리고 그 위에 아자(阿字)를 치(置)하고 一心으로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부정(不淨)(자신이나 타인이 원래에 부정함을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화두(話頭)(조주의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과 만법귀일 등 고조(古祖)의 공안(公案)을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묵조(黙照)(적적성성한 진여체(眞如體)를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단전(丹田)(제하(臍下)의 복부(腹部)를 이름임)에,
혹은 제심(制心)(일체 법이 다 마음의 분별을 따라 있다하여 마음이 생한즉 곧 제거하고 생한즉 또 제거하여 마음에 一法도 취하지 아니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水想(마음 가운데 맑고 푸른 물을 一心으로 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 등 이 외에도 그 주(住)하는 법(法)이 실로 무량하나,
마음을 두부(頭部)나 외경에 住한 즉 사념(思念)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安靜)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단전에 주한 즉 사념이 잘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안정(安靜)을 쉽게 얻나니라.
그러므로 백은(白隱)선사(임제종 중 흥조(興祖)로 40여인의 법사(法嗣)와 다량의 저서가 있음)의 『원라천부(遠羅天釜)』에 왈(曰)
「나의 기해단전(氣海丹田)은 조주(趙州) 무자(無字)며, 본래 면목(本來面木) 이며, 유심(唯心)의 정토(淨土)며, 자신(自身)의 미타(彌陀)며, 분분(本分) 의 가향(家鄕)이라(조주 無자 라는 말은 조주의 無자 화두법과 丹田住법 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요,
본래 면목이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심행처가 멸한 즉 이 자리가 곧 우리의 본래 면목 자리라는 말이요,
유심의 정토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邪心 잡념이 없은 즉 이 자리 가 곧 극락정토라는 말이요,
자신 미타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번뇌망상이 다한 즉 이 몸이 곧 아미타불이라는 말이요,
본분의 가향이라는 말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사량 분별이 끊어진 즉 이 자리가 곧 우리의 생래(生來) 고향이라는 말임)하여 丹田住를 찬양하였고,
또 『야선한화(夜船閑話)』에 曰
「정신단좌(正身端坐)하여 타오르는 심화(心火)를 거두어 단전에 주한 즉 답 답하던 가슴이 서늘하여지고 일점의 계교사량이 無하게 되리니, 이것이 진관(眞觀)이요 청정관(淸淨觀)이라」하였으며, 또 좌선용심기(坐禪用心記)(본서는 영산소근사(瑩山紹瑾師)의 저(著)로써 조 동종 성전(聖典)에 편입되어 있음)와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에 曰「만일 정신이 산란한 즉 마음을 단전에 주하라」하였고,
道元禪師(도원선사) 下 『만암법어(卍庵法語)』에 曰
「단정히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이(조식:調息) 좌선의 요술(要術)이다,
조식의 방법은 몸을 좌정(坐定)한 후에 심기(心氣)를 기해(氣海) 단전에 양(養)함이라. 이같이 오래 계속한 즉 원기(元氣)가 자연 충실하여 아랫 배가 표주박이나 공(구:球)같이 둥글어 지나니라」하였으며,
이 외에 『선문구결(禪門口訣)』과『영평광록(永平廣錄)』등에도 丹田住를 많이 역설하였나니, 이로써 볼지라도 이 단전주가 坐禪上 가장 요긴한 법임을 가히 알지니라.
또한, 이 丹田住는 좌선에만 요긴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요긴한 法이니,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혀 바닥밑)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린 즉, 水火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元氣가 충실해지고 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한다.
그러므로 저 『야선한화』에 曰
「心地가 아랫배에 다북차 있은 즉 혈액순환이 잘 되고 모든 기관의 기능이 왕성해지며, 두뇌가 명석하고 정신이 상쾌하여 邪氣가 감히 침입치 못하 는 건강체가 된다」하였고,
또『수습지관좌선법요(修習止觀坐禪法要)』에 曰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잘 수호한 즉 百病이 물러난다」
하였으며,
또『마하지관(摩訶止觀)』에 曰
「단전은 이 기운 바다로써 萬病을 다 녹여 삼킨다」하였고,
또 저 『만암법어』에 曰
「정기(精氣)가 항상 단전에 다북차 있은 즉 무위(無爲) 견고하여 불로 장명 (不老 長命)한다」하였으며, 이 외에
『규봉수증의(圭峰修證義)』와 『인도 古典』중에도 또한 이상과 같은 말을 역설하였나니, 이 丹田住는 선정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 양득하 는 법이니라.
간화선(화두를 들고 좌선함을 이름임)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혹 이 단전주법을 들으면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에 빠진다 하여 비난을 하기 쉬우리라.
그러나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자는 선(禪)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서천(西天)의 28조사(祖師)와 동토(東土)의 6代 조사와 청원・남악의 제(諸)선사들도 다 화두(話頭)를 말씀치 아니하였나니, 만일 정신이 혼혼(昏昏)해지는 거동이 있은 즉 곧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자리를 고쳐 앉을 것이니라. 그러나 근래 선방과 같이 시간마다 좌선만 힘쓰고 지혜(智慧)를 밝히지 아니한 즉 사지(四肢)가 게을러지고 마음이 침묵에 빠져 선(善)짓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을 멀리 떠나 세상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기 쉬웁나니, 이 어찌 참 도(道)라 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좌선하는 시간과 연구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와 같이 한즉 공적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을 체득할 수 있나다
또는 혹 丹田이라 하는 말이 본시 선가(仙家)의 용어이어늘, 어찌하여 佛家에서 단전주를 찬양해 말하는가 하여 의문을 가질 자가 없지 아니하리라. 丹田이라 하는 말이 본시 선가의 용어인 것만은 사실이나
천태선사의 『수습지관좌선법요』에 曰
「제하(臍下) 1촌을 우타나(憂陀那)라 하며 여기 말로는 丹田이라 한다」하였나니,
이는 즉 범어(梵語) 중에도 단전을 의미하는 명사가 있음을 증명하는 바라, 우타나는 본시 기식(氣息)을 의미하는 말인 바 단전은 곧 기식(氣息)의 바다라 하여 이와 같이 역출(譯出)한 것이니라.(우타나를 자설(自說) 또는 무명자설(無明自說)로 역하여 12부경의 하나로 해석을 하기도 하나, 이는 기식(氣息)의 의미가 궁굴어 소리(聲)로 변하고 다시 소리의 의미가 궁굴어 언어로 까지 변하여진 것이니, 원래에 氣息을 여의고 하는 말이 아니니라)
모든 전기(傳記)에 의한 즉 인도에서도 일찍부터「生氣는 우주의 中心이요, 만유의 생명이라」하여 生氣를 신(神)격으로 숭배하는 풍습이 유행하였고, 人智의 발달을 따라 이 생기를 직접으로 단련시키는 조식법(調息法)이 있었으며, 불가에서도 일찍부터 이 조식법이 선정상 不動의 한 법칙이 되었나니, 調息이라 함은 즉 정신단좌(正身端坐)하여 마음과 기운을 하복부에 住하고 하복부로부터 들고 나는 숨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이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이라, 이 조식법은 선가의 연단법(煉丹法)과 조금도 차이가 없나니,
그러므로 저 『만암법어』에 曰「내관양생(內觀養生)의 비결(정야청신;靜夜淸晨에 단정히 앉아 마음과 기운을 下丹田에 住하고 水火를 운전시키는 것을 이름임)과 仙家 연단의 묘술이 다 佛家의 조식법을 근본한 것이라」하였나니, 이로써 볼진대 우리 불가에 일찍부터 단전주법이 있었음을 가히 알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