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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누가복음 2:1-2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2mUYtv1ZCQI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만 되면 안 됩니다. 거룩한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이 성탄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없는 성탄절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해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보스턴시 근교 소머빌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시당국에서는 성탄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청 앞 광장에 첫 번 성탄절의 모습을 재현시켜 놓았습니다. 작고 초라한 마구간,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 그의 남편 요셉,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당국에서는 성탄절 당일 성대하고도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가지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누군가가 아기 예수님 상을 훔쳐가 버렸습니다. 마리아, 요셉, 양치 던 목동들, 동방박사들의 모형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성탄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님 상만 없어졌습니다. 시당국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리고 아기 예수님 상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아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아기 예수님 상을 훔친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졌는지 아기 예수님 상은 성탄절 이전에 다시 자기 자리에 놓여졌습니다.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성탄절 행사가 다양하고, 동방박사들의 황금 유향 몰약 등의 멋진 선물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안 계신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병력과 과세를 위하여 인구 조사를 명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 땅의 주민들은 선조들이 살던 곳에 가서 호적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았지만 호적 때문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갔을 때, 마리아는 해산할 날이 차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적당한 숙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았게 되었습니다. 그 아기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들이 목자들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목자들은 무서웠습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리고는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그들은 빨리 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그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오늘 제가 초점을 모으려고 하는 내용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한 내용 중에서 10절입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입니다. 천사들이 전한 소식이 무슨 소식이었습니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의 탄생은 죄 사함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 1:21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가브리엘천사가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게 한 말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는데,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였습니다. 예수의 뜻은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천사는 아기의 이름을 가르쳐준 후에 아기의 사명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천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방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데, 비용은 1박에 무려 10만 달러, 한화로 약 1억 2천 8백만 원입니다. 하지만 이 방은 2박 이상 투숙해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드는 비용은 2억 5천만 원이 넘습니다. 주님은 그런 곳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그런 호텔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호텔이 있어도 그런 곳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왕궁이나 7성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가장 높으시고 존귀하신 분입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낮아지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사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이 찔리신 이유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이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 1:23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웨슬리 형제의 기념비에는 몇 가지 문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문구입니다. 그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그가 가진 구령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하고 계신다.”는 문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특정한 사람에게만 매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꼭 그 사람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라는 문구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우리를 담대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만한 축복도 없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임종할 때 기력이 쇠하여 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잔잔히 입을 열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웨슬레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임종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온갖 좋은 것들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고, 영혼이 살아났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많은 성도들이 이 사실을 잊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려고 하는데,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경건하게 만듭니다.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모델은 요셉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흑심을 품었습니다. 어느 날은 집 안에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 단 두 사람만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동침을 청했습니다. 요셉은 말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의 비결입니다.
독일 퀼른 지방에 2차 대전 때 독일군 감옥으로 사용하던 비밀 지하 동굴이 발굴되었습니다. 그 동굴에서 유대인들이 수용되어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그 동굴이 나중에 발굴되었을 때 동굴 벽에는 낙서가 있었습니다. 낙서 중에는 이런 문구들이 있었습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더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지라도 나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 이 고백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3. 예수님의 탄생은 평화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평화가 있을까요? 어느 목사님은 사람이 웃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하시던데 그분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대니얼 고울만이라는 사람이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분은 우리가 사진 찍으며 “치즈”하는 것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치즈”하면서 웃는 얼굴과 입을 만들면 평화가 온다는 겁니다. 우리는 치즈대신 김치라고 하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김치”하고 웃는 얼굴을 만들면 가슴에 평화가 온다는 것이에요. 이 분이 수천 명을 대상으로 실험해서 책을 썼어요. “치즈”하지 않고 “휴~”하면 얼굴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 대신 “치즈” 또는 “김치”하면서 웃는 얼굴을 만들면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년에는 “치즈”하든지 “김치”하든지 웃는 얼굴을 많이 사용하십시오.
그 목사님은 감사하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어느 80대중반의 할머니 한 분이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는 찬송을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밤이 되면 침상에 눕자마자 감사의 제목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나님께 드릴 감사가 무엇인가? 아침에 내가 깨어나고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오늘 하루도 움직일 수 있었으니 감사하구나!”하며 감사의 제목을 하나씩 머리로 생각하면서 묵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든답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세요.
예수님은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은 찬송하면서 예수님이 오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출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역사학자 윌 드란의 ‘역사연구’라는 책에 보면,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3,400년 동안 268년 동안만 평화가 있었답니다. 지구 어디에선가 전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작은 콩알만 한 지구에서 너무나 많은 갈등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가슴에 평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존재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지구를 다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랍니다. 한번은 미국 국회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독한 오펜하이머 박사를 초빙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은 원자 폭탄을 만드셨는데, 원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무기는 없습니까?” 하이머 박사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예, 원자 폭탄을 막을 무기도 있지요. 그것은 바로 ‘평화’라는 무기입니다”
평화는 어떻게 생길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생깁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드리면 그 사람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으로 하나 된 가정은 평화롭습니다. 교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편만해진 나라는 평화로웠습니다.
몇 년 전에 심리학자, 상담전공자, 상담관련 간호사, 의사 약 2천명이 독일에서 모여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한 가지만 적어보라”는 설문에 답을 했는데, 놀랍게도 답은 ‘사랑, 기쁨, 평화’였습니다. 제가 왜 놀랍다고 했는지 아십니까? 이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앞에 나오는 세 가지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평화의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평화로워집니다. 행복해집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평화, 자신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가정과 국가의 평화도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중에 마음에 평화를 잃어버리고 염려와 근심, 걱정과 초조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주님께 맡기시고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한 할머니는 독일 비행기가 계속 폭격을 하는데도 잘 주무셨습니다. 사람들이 “폭격 속에서 어떻게 주무십니까?”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매일 밤마다 기도하면 항상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들어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내가 둘 다 밤새 깨어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4. 예수님의 탄생은 생명의 떡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 어디죠?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떨어져있습니다.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떨어진 곳입니다. 유대 땅은 비교적 박토이지만 베들레헴은 비옥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은 구약의 약속의 성취이며 또 하나님의 의도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시며 자신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영적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고 그곳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구주이신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천사의 말처럼 구유에 누워계셨습니다. 구유가 뭡니까? 가축의 여물통입니다. 가축은 그 여물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의 생명의 밥통이 되신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요 6:35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이시며 생명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오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생명의 떡을 먹고 생명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는 것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믿는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5. 예수님의 탄생은 약한 자에게 소망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6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주님이 부르시고 구원하신 주의 백성들 중에는 육체를 따라 지혜롭고, 능력 있고, 문벌 좋은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려는 계획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약한 자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적으로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곳은 나사렛이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토굴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목수는 그 당시에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주님이 출생하시자 주님을 찾아와서 경배했던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 역시 그 당시 사회적으로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셔서 예수님을 경배하게 하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이방인으로써 멀리 페르시아에서부터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의 출생을 알리는 특별한 별을 보고 유대 땅에 왔지만 중간에 별을 놓쳤습니다. 그들은 왕으로 오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예루살렘 궁궐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 궁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박사들의 기대와는 달리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것도 호텔도 아닌 마구간에서 나셨으며, 요람도 아닌 짐승의 여물통에 누워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택하실 때도 돈 많고, 지식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을 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린내 나는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사회의 밑바닥 출신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일꾼으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실 때에도 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면 주님은 사람들에게 주리고 목마른 나그네로 혹은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변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 파파파노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루 일과를 보내고는 곤히 잠들었습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의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파파파노야, 내일 크리스마스 날, 내가 네 구둣방을 방문하고 싶구나.” 크리스마스 아침, 예수님의 방문을 약속 받은 할아버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만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꺼내어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난로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구둣방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준비를 마친 파파파노 할아버지가 밖을 내다보았지만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길 건너편의 청소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 좀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
점심때가 되도록 창밖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더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홑이불로 어린 아기를 감싸 안고 걸어갑니다. 파파파노 할아버지는 그 여인을 측은히 여겨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기의 발을 보니 빨갛다 못해 파랗게 얼어 있었습니다. “아기가 신발이 필요할 텐데...” 할아버지는 어젯밤 만들어 놓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준비를 위해 올려둔 스프와 빵이 데워지고 있을 때, 한 떼의 거지들이 나타났습니다. 파파파노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자신이 먹을 스프와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들은 모처럼 행복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었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파파파노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녁이 되어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털썩 주어 앉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혹시 내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쳐버렸나?”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꿈속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파파파노야, 너 오늘 나를 보았지?”,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저는 오늘 하루 종일 구둣방에서 기다렸지만 예수님을 뵙지 못했는데요.”, “나는 오늘 네 가게에 세 번이나 방문했단다.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누추한 여인으로, 한 번은 거지로 말이야. 그때마다 네가 나에게 베풀어 준 따스한 사랑에 정말 감사하고 싶구나.” 순간 할아버지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주님은 파파파노 할아버지에게 초라한 자들의 모습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새 해에 우리 교회는 우리보다 더 연약한 한 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네팔에 있는 홀리 그레이스 교회입니다. 아버지 목사님이 약 25년간 목회하던 교회를 아들 우펀드라 전도사가 이어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펀드라 전도사님은 내년 2월이나 3월 초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부족한 제가 목회 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매달 20만원을 지원하면 그 돈으로 전도사님 가정이 생활을 하며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20만원은 제 아들 모세가 요즘 비즈니스가 좀 더 잘 되어서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연약한 네팔의 교회를 우리 교회가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제까지 224주째 실버예배를 드리며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쌀 1kg와 간식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저에게 “실버예배는 비전교회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동안 실버예배를 잘 감당해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20kg 쌀을 약 1,100포대 정도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네팔 교회를 섬기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약한 자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주님은 이제 우리가 주님을 대신해서 약한 자들을 섬기기 원하십니다. 새해에는 저와 여러분에게 섬김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심길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이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섬김은 축복입니다.
오늘 설교는 “왜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를 나누었습니다.
1. 예수님의 탄생은 죄 사함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탄생은 평화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의 탄생은 생명의 떡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의 탄생은 약한 자에게 소망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마경훈 목사님! 22년 1년간 귀한 말씀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된 성탄을 행복한 마음으로 잘 보내시길 축원드립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복 된 성탄절입니다. 성탄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