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너진 땅에서 드리는 노아의 제사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끝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노아는 다시 방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비둘기를 통하여 이 땅에 물이 말랐으며 다시 새싹이 나오고 있음을 알았던 노아지만, 쉽게 방주에서 나가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어 지면에서 물이 말랐음을 알았지만(창 8:13), 그 즉시 지면으로 나갔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기다린 것이다! 무엇을 기다렸을까? 하나님의 말씀이다. 방주에 들어갈 때에도 “방주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던 노아였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 마음대로 들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였던 노아였다. 그렇기에 물이 말랐던 것을 확인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단 한 발자국도 방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당대에 ‘의인’이었고, ‘완전한 자’라고 불려지지 않았을까?
드디어 하나님은 “나가라”라는 명령을 하심으로 다시금 이 땅에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의 세계가 회복되고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기회를 부여하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무덤 한복판에서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황폐해진 세상으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성경에 보면, 이 장면에서 ‘제단’이라는 단어와 ‘번제’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성경에서 제단을 처음으로 쌓은 인물이 노아며, 두 번째가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다섯 번 제단을 쌓았고, 이삭은 한 번, 야곱은 네 번 쌓은 것으로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그렇기에 노아의 번제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노아가 제사를 드린 상황은 어떠했는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된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노아의 제사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의미로 하나님께 드린 것일까? 학자들의 논쟁이 있지만, 웬함이라는 학자의 말을 빌자면, “번제란 속죄의 기능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예배자가 전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속죄와 감사의 두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아마도 복음주의 학자들이 거의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비록 황폐해진 세상이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존한 사람으로서 지면에 발을 딛고 얼마나 큰 감사가 있었을까? 그러나 홍수의 심판이라는 엄청난 현실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또한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그렇기에 그는 그 심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동시에 인류의 죄, 자신과 가족의 죄를 위한 속죄의 번제를 드렸을 것이다. 비록 생존하였지만, 그들의 생존 역시 죄와 결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 죄값으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황페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노아의 심정이었다.
하나님은 노아의 번제를 흠향하셨고, 그 결과 홍수 이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 다시 말하자면, 홍수 이전과 이후, 사람들의 변화는 없었다. 창세기 8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홍수 후에도 사람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노아의 가족들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를 일으키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창세기 8장 20-21절을 보면, 노아의 제사 때문이다. 노아의 번제가 ‘감사’와 ‘속죄’의 마음으로 드렸다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한 번으로 사람의 본성이 바뀌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홍수의 심판을 이 땅에 내리셨을까? 아마도 죄에 대한 심판이 분명히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또한 노아라는 의로운 자와 그 가족들만 이 땅에 남았어도 이 땅은 다시 죄로 가득차게 됨을 보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매 순간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내가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고백적인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노아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그러한 모습을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보여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노아의 번제를 흠향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심판으로 인간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죄인임을 고백하는 인간의 자세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며 인간을 변화시켜 나가는 동력이 됨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시대 상황과 자신이 처함 어려움으로 광야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교회가 너무 힘들어진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면 황폐한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모든 것이 무너진 땅 위에서 노아가 첫 번째 한 일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소중한 짐승과 새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예배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삶 자체가 예배라는 논리를 펴면서도, 시간을 내어 기도하거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삶, 나의 죄를 매번 고백하지 못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