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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처럼 은혜를 입는 삶(2225.2023.12.25.성탄절)
눅1:26-3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축제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이라는 의미합니다. 이 축제는 한 사람이 태어난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탄생이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화의 축제요, 축복의 축제요, 사랑의 축제요, 감사의 축제요, 기쁨의 축제요, 구원의 축제요, 생명의 축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과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육신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화려한 츄리나 장식하고,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이나 주고 간다는 날도 아니요, 백화점의 바겐세일의 날도 아닙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만드는 날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운동의 절정인 성탄은 마땅히 주님께 대한 찬양과 경배, 감사와 영광이 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사가 눈에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안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답은 그때그때 달라요.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일 때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년전 유대 나라 베들레헴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에서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 가며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의 영광스러운 빛이 그들을 두루 비추더니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목자들이 겁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목자들을 위로하고 말하기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온백성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것이 바로 성탄 소식입니다. 믿으십니까? 성탄절은 평화의 왕이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여러분 성탄의 아침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함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예수님께서 성탄절에 오셔서 무엇을 해 주셨습니까?
성탄은 나를 위하여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악을 내어놓고 자복하며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인간이 죄인임을 알리는 날이요, 예수만이 인류의 참 메시야임을 알리는 날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자이심을 천하에 알리는 날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통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성탄절에 오셔서 무엇을 해 주셨습니까? 주님은 모든 것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자유함을 갖고 평안함을 누릴 수가 있고 즐겁고 기쁘고 웃으면서 신앙생활 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교회를 다니시면서 마음속에 구원의 확신이 없고 기쁨이 없다면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고 웃음을 되찾고 기쁨을 되찾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없는 곳은 감옥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돈, 명예, 출세, 외모라는 속박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자,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참된 자유와 해방을 맛보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실 분은 누구이실까요?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우리의 메시아가 되시는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해방자가 되십니다. 나와 너와 인류에게 진정한 해방을 갖다 주실 분은 누구이시냐?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요8:36절‘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아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모세가 이끈 출애굽도 참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해방은 우리가 중요시 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해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해방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해방시켜 주시는 영적 해방입니다. ‘예수님의 해방은 영적 해방이다’아멘. 이 시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의 해방이 무엇인지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진리 안에서 자유와 승리를 누리는, 행복을 누리는, 평안을 누리는, 기쁨을 누리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성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입니다.
⓵예수님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눅2:14절‘지극히 높은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53: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엡2:14절에 ‘전에 멀리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을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으므로 우리들도 평화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⓶예수님은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마1:21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란 호세아 여호수아 예수 곧 구원을 뜻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요 영생이요 죄에서 구원할자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라고 행4:12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⓷예수님은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눅4:18절‘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가 오신 목적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는 세상의 구주로서 ‘포로된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하기 위하여 오신분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섬기려 오신 것입니다.
⓸예수님은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눅2:10절‘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랬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걱정, 그리고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시16:11절에 다윗은‘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주의 앞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바로 기쁨의 종교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그 사람은 뭔가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뭔가 병든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믿고 진리가운데 거하면...우리의 심령에는 항상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샘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15:11절‘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을 살 때 마땅히 기뻐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도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대상29:9). 하나님 앞에나갈 때마다 기뻐해야 되고, 말씀을 듣게 됨을 기뻐해야 합니다(렘15:16). 또한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해야 하고(눅10:20), 진리 가운데 기뻐하며(고전13:6), 심지어 고난을 당할 때에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벧전4:13). 오늘날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됩니다. 이러한 은혜와 축복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⓹예수님은 좋은 지혜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기묘자와 모사 사이에는 콤마가 없습니다. 고로 이 말은 놀라운 상담자라고 읽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그런데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경험을 가졌다하더라도 우리는 아직도 영적 지식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고로 지혜가 부족한 우리에게 메시아는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피조물이오,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의 목적도 찾게 됩니다.
예수님은 기묘하신 상담자입니다. 그러니 지혜가 필요하면 하나님께 구하면 됩니다.(약1: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크리스마스에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우리를 흑암에서 광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주시는 이유는 증인의 사역을 감당케 하시려 함입니다. 성탄절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⓺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마1:23절‘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한 백성들에게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 축복이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막연히 왔다가 그냥 지나가는 절기가 아닙니다. 이 성탄절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⓻예수님의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에서 해방’입니다. 따라서-‘죄에서 해방, 죄에서 해방’이 땅에 살아가는 누구도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십니다. 롬3:10절‘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흠과 티가 하나도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큰 허물은 다 있습니다. 사람은 모르나 하나님은 아시는 그 죄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롬3:10절‘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그랬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삶이 너무나 힘든 것은 죄 때문입니다. 원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알고 지은 죄 때문에, 고의로 지은 죄 때문에, 욕심으로 지은 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을 때는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에 살 때는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생명나무가 가득했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놀고 싶을 때 놀고 마음껏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유를 찾아서 하나님처럼 되보려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순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순간,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하는 순간, 아담과 하와에게 저주가 왔습니다. 이마에 땀흘려야 먹게 되었습니다. 또 여인 하와는 해산의 고통을 당해야 자녀를 나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놓았습니다. 죄는 인간을 병들게 했습니다. 죄는 인간을 가난하게 했습니다. 죄는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 안되고, 범사가 잘 안되고, 병이 들어서 육신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주홍같이 붉은 죄, 먹보다도 검은 죄가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깨끗하게 씻음 받고,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후라도, 은혜 받은 후라도, 우리는 알고도 죄를 지을 수 있고, 모르고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도망가지 말고, 죄를 지은 그대로, 병들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예수님께로 나와서 죄가 용서받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우리 주님이 오실 때까지 예수의 곁을 떠나지 맙시다. 교회를 떠나지 맙시다. 예수께로 나옵시다. 교회로 나옵시다. 용서가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에 다시한번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려고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⓼ 예수님은 우리를 질병에서 해방을 시켜주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해방시켜 주신 것은 질병입니다. ‘질병에서 해방’입니다. 따라서--‘질병에서 해방’죄가 감옥에 가게 하기도 하지만, 질병이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질병에서도 해방됩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모든 병과 모든 약함이 온전케 된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마4:23절‘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만 하면, 주님 뜻대로 주님이 고쳐주실 것입니다. 약5:15절‘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마다 예수님이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 동안 제일 많이 하신 일이 뭐냐? 병든 자를 치료하신 것입니다. 문둥병을 치료하셨습니다. 혈루병을 치료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습니다. 중풍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요5장에 보면 38년 된 병자를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고쳐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그 은혜가 지금 이 자리에, 베데스다 연못에 임한 것처럼, 오늘 하나님의 성전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는 처소마다 그런 은혜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상처 받았기 때문에 미움이 마음에 없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주님 앞에서 상한 마음과 감정을 토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처받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처 받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주님, 내가 상처 받았습니다. 남편 때문에 상처 받았습니다. 아내 때문에 상처 받았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상처 받았습니다. 자식 때문에 상처 받았습니다. 아니면 목사님 때문에 상처 받았습니다. 성도 때문에 상처 받았습니다. 주님, 내 상처를 싸 매줄 분은, 내 상처를 어루만져 줄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천부여, 의지 없어 손들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 성령님!’주님이 다 감싸주시고, 풀어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시62:8절‘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5: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안에서 위로받는 우리가 됩시다. 치료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성탄하셨습니다.
⓽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죽음에서 해방’ 따라하시겠습니다. ‘죽음에서 해방, 죽음에서 해방’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를 믿습니까? 그 증거가 뭡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왜요? 죽음에서 해방되었으니까요. 왜요? 우리는 부활할 것이니까요. 죽음에서의 해방이 없는 죄, 질병, 가난의 해방은 참된 해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해방이 뭡니까? 진정한 해방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죽음에서 해방. 예수를 믿는 것이, 죽음에서 해방 받는 것이, 이것이 진정한 신앙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진정한 우리의 해방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다시 부활합니다. 죽음을 이기게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고 영생의 천국에 가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고전15:57절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어떤 것이 좋은 신앙일까요? 감사하는 신앙. 봉사하는 신앙.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성령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스승에게 감사하고, 모든 분들에게 다 감사하고. 그 뿐이 아닙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며 봉사하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살아있고 봉사가 살아있으면 제일 좋은 신앙으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죄와 질병과 가난과 죽음에서 이미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향해서 우리의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3.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장이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 당시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친정에 머물며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을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직 동정녀인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했다는 소식입니다. 마리아 개인에게는 정말 큰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첫째는 아직 동정녀인 자신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자신에게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마리아에게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기절할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인데, 마리아에게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에게 잉태된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인 자신에게 잉태가 될수가 있는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멘붕’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장은 마리아가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줄알고 있나 봅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장은 두 번씩이나 마리아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장 입장에서는 은혜를 입은 자가 맞겠지만, 마리아 입장에서는 정말 은혜보다는 충격이 더 클 것입니다. 설마 가브리엘 천사장이 마리아가 받을 충격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은혜를 입은 자라고 했을까요?
가브리엘 천사장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했던 것은 적어도 마리아의 믿음이라면 엄청난 충격적인 소식 속에서도 분명 은혜를 깨달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마리아에게 ‘충격을 받은 자여’라고 하지 않고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여’얼마나 축복입니까? ‘은혜를 입은 자여’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생각만 해도 좋은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를 입은 자’이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에서 ‘은혜를 입은 자’는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충격도 안 받고, 은혜도 안 받는 그런 신앙생활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 앞에 은혜를 받든지, 아니면 적어도 충격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은혜도 안 받고, 충격도 안 받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베푸셨는데 은혜도 안 받고, 충격도 안 받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마리아처럼 충격보다는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충격 속에서도 은혜를 발견하고, 고난 속에서도 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기에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라 너무 쉽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입장에서 천사장의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와 요셉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은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마리아나 요셉이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더라면 심각해집니다.
메시아 탄생,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하게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의 잉태를 믿음으로 잘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사히 이 땅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까지 질 수 있었고, 부활하셔서 완전한 구원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마리아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이고, 성경의 이야기니깐 당연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예수님 잉태 소식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마리아의 믿음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분명 메시아를 사모하며 기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께서 사7:14절‘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란 말씀을 마리아는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직 동정녀인 자신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었다는 천사장의 소식이 충격보다는 은혜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되면 신앙생활에 어색한 일도 많고, 불편한 일도 많고, 이해가 안 되는 일도 많고, 충격적인 일도 많습니다.
마리아는 누구나 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 것은 맞지만 천사는 ‘은혜를 받는 자’라는데 자기가 은혜 받을 자인지, 천사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 자기에게 과분해 여겨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천사가 눈에 보이도록 방문해 온다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성경 속 인물들이 다 그랬듯이 천사가 사람에게 나타났을 때, 어떤 이들은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벌벌 떨었고, 어떤 이들은 눈이 그만 멀었습니다. 어떤 이는 ‘주여 나는 망하게 되었나이다’했습니다. 어떤 이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했습니다. 인생은 천사의 방문에 놀라고 무서워할 정도로 어둡고 세상적입니다. 인생은 천사 앞에서도 벌벌 떨고 엎드러질 정도로 죄많고 악합니다.
하나님이 400년 침묵을 깨고 천사를 마리에게 보내셨는데 천사를 통해 전하신 말의 내용을 볼 때 하나님이 마리아를 통해 뭔가 새 일을 행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합니다. 천사를 보내시거나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아마 마리아에게 하셨던 말씀으로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무서워하지 말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두려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행해 ‘은혜 받은 자’이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자’이게 합니다. 천사로든, 말씀으로든, 성령으로든 ‘은혜를 받은 자’,‘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자’이게 합니다.
그러면 그 삶 속에서 언제든지 주님의 은혜를 입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몰라서, 말씀을 믿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믿는 자들이 은혜를 놓치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이 자기 생각대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늘 은혜가 은혜인 줄 알고, 늘 은혜를 놓치지 않고,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 마리아와 같은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해서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마리아처럼 말씀을 알고 믿는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알고 믿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리아처럼 은혜를 입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은혜를 구경만 하다가 끝나는 신앙생활이 되지 말고 그 은혜를 직접 입고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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