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나는 동물이고 강간범이다. 사람들은 내가 링 위에서 ‘단지’ 짐승이 되기를 원했다...”
‘링의 야수’ 타이슨. 그는 우리 속에서 으르렁거렸다.
그의 ‘핵 주먹’은 ‘피스톤 주먹’ (소니 리스튼)과 ‘해머 펀치’(조지 포먼)의 계보를 이었다.
1990년대가 되기 전까지 그는 37전 37승 33 KO 승의 대기록을 ‘포식’했다.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천부적인 복서, 타이슨. 그러나 그는 끝내 자멸하고 말았으니.
타이슨이 몰락하는 순간 무하마드 알 리가 지피고 슈거레이레너드가 꽃피웠던 프로복싱의 그 화려했던 영광의 순간은 날개를 접었다. 조 루이스에서 알리로 이어지는 프로복싱의 ‘흑인 신화’도 무너졌다.
마이크 타이슨. 그는 10대에 이미 무장강도가 되기를 원했다.
두 살 때에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버려지다시피 했던 타이슨.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13세의 나이에 벌써 38차례의 철창신세를 졌다.
전설적인 복싱 트레이너 커스다마토를 만나 역대 최연소인 20세의 나이에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야수’였다.
1991년 7월 미스 블랙 아메리카 후보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다.
그가 재기전을 가졌을 때 여성인권단체들은 그를 후벼팠다. “강간은 스포츠가 아니다!”
“타이슨은 지구의 쓰레기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증명하듯 1997년 6월 홀리필드와의 ‘세기의 재대결’에서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고, 세계는 그의 ‘핵 이빨’에 경악했다.
나이 40을 바라보는 그는 지금 빈털터리다. 지난해 개인 파산신청을 냈다. 빚에 쪼들리다 못해 그는 이종격투기 대회인 ‘K-2'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내가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게 복싱이다!”
그러나 그에게 세상은 버거웠다. 모두가 적이었으니.
그는 포효한다. “나는 사람을 때려눕히는 소름끼치는 검둥이에 불과하다. 사회는 나를 혐오한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사람들은 결코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
그 어떤 패배도 그렇게 참담하지 않았고, 그 어떤 승리도 그 쓰라림을 메울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