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독서: 에세 S01E53 - 카이사르의 한마디
몽테뉴는 53장에서 카이사르의 한마디에 영감을 받아 짧은 해설을 달아두었습니다.
“천성적이고 일반적인 악덕으로 인해
우리는 보이지 않게 감춰진 미지의 것들을
더 신뢰하고 또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몽테뉴의 글을 읽어보면,
도리어 루크레티우스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릇 자체라는 것을,
밖에서 넣어 주는 모든 좋은 것을
바로 이 그릇이 상하게 한다는 것을.”
몽테뉴는 인간의 욕망은 불확실하고 우유분단해서
“무엇이든 우리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기보다는
우리가 그것을 붙드는 방식이 병적이고 혼란스럽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몽테뉴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상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란 ‘연약하고 결함이 많은 조각들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창조물과 이론들만 보더라도 완전하며 영구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거쳐온 파괴의 흔적만이 유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수히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런 우리도 모두 사라지겠지요.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가 품은 욕망은 파괴력이 매우 강력합니다.
‘나’를 벗어나 타인을 이용하며 확장하려는 속성으로 인해, 인간들마다 가진 욕망이 충돌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마찰이 빚어지고, 융합하고, 분리되고, 폭발합니다.
예측이 어려우며 통제도 잘 안됩니다.
결국 어떻게든 이기는 자가 한동안 장악을 하겠죠.
아주 잠시동안....
이런 욕망이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전지구적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결국, 가속화는 시작되어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가 허황된 욕망을 포기하고 인본주의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볼 수 있을까요?
결국, 카이사르나 몽테뉴나 우리나 이후 세대 누구든지
삶의 모습과 고민의 원흉은 변함이 없을거 같습니다.
첫댓글 카이사르의 한마디 부분이 저에게는 한 줄 한 줄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에세 1권 주제에서 한 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장들이 있었는데 이 장도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들에 대해 갖는 우리 마음도, 우리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기 보다는 그것을 담는 그릇인 우리가 그것을 붙드는 방식이 병적이고 혼란스럽다는 말, 저도 참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 문장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는 말을 하며 철학자들 사이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논쟁하고 앞으로 계속 될 것이란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우리가 때로 우리 자신을 관찰하는 데 마음을 쓰고, 남들을 살피거나 우리 밖에 있는 사물들을 알려고 들이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데 쓴다면, 우리 존재라는 이 피륙이 얼마나 연약하고 결함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 바로 욕망 자체와 상상으로 인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 우리 능력 밖이라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성에 대한 특별한 증거 아니겠는가? 인간의 최고선을 찾기 위해 철학자들 사이에 줄곧 이어져 온 대단한 논쟁이 그 좋은 증거이다. 이 논쟁은 아무런 결론도 의견 일치도 없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또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