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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순룬 사야도 : 열반까지 도달하는 구체적 수행법과 주의점
수행자는 필요한 선정력을 얻기 위하여 그러한 대상들을 바르게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까지 이끌어줄 명상법을 선택하여
수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궁극의 목표는 위빠사나 지혜인 자유(해탈)이다.》
■■정신적 계발의 수련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사마타 즉 선정 수련과 위빠사나 즉 지혜 수련이다.
■■■사마타는 고요와 평온으로 이끌고, 위빠사나는 현상의 본성을 파악하는 직관적인 지혜와 해탈로 이끈다.
사마타는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가 만든 개념화의 세계이고
위빠사나는 본질 그 자체로서의 세계이다.
사마타로 이끄는 명상의 대상은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심상화(心像化)된 색원반은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상념으로 만든 것이다.
부정관도 우리들 자신 내부에서 우리들이 키워온 것이다.
흙의 안정성, 물의 응집성, 불의 성숙성, 공기의 유통성은 우리들이
그러한 것들을 파악하기 쉽게 하기 위해 개념화한 4대 원소의 특성들이다.
실제 걸을 때는 걷는다는 생각, 구부릴 때는 구부린다는 생각, 닿을 때는 닿은다는 생각까지도
있는 그대로의 자세인 실제성에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만든 관념들이다.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만드는 모든 영역은 사마타로 유도한다.
즉 우리들이 만드는 모든 아이디어, 상상, 생각, 개념들은 사마타로 유도한다.
사마타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마타의 수련도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수련이다.
권장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선정은 지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선정의 결실을 원하는 사람은 선정을 수련해도 좋다.
■■■그러나 지혜의 결실을 원하는 사람은 지혜를 수련해야 한다.
선정수련을 하고 난 다음이든 아니면 지혜의 길로 직접 인도하는 고속도로로 안내하는
수행법을 바로 채택하든 어쨌든 언젠가는 지혜 수련을 해야 한다.
지금 현재 선정 수련을 하고 나중에 위빠사나 수련으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바로 위빠사나 수련을 택하든가 하는 문제는 개인적인 선택에 달렸다.
위빠사나 수행자로서의 본인은 수행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정도로 열성적이지는 않다.
순룬 사야도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
이러한 의문들이 일어날 것이다.
즉 만약 4대 원소를 이해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개념을 만든다면,
만약 걷는 것, 구부리는 것, 닿은 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생각을 만든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의 마음이 항상 그렇듯이 상상이나 개념을 만들기 쉽다면,
우리들이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개념이나 관념의 장갑을 끼고 《현상의 흐름》을 다루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있다.
■■■만약 개념이나 생각의 장갑을 끼고 현상 과정들을 처리하는 것이라면
그 현상들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자유로 가는 길은 있을 수 없고 해탈의 지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현상 과정 그 자체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빠사나가 있고 직관적인 해탈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호흡의 출입을 알아차리는 수련을 예로 들어보자.
호흡법은 누구에게나 맞는 수행법이라 한다.
만약 호흡에 마음집중을 수련한다면 평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한다.
악업과 부도덕한 상태를 극복하게 된다.
몸과 마음은 무서워서 떨지 않을 것이다.
그는 4념처와 7각지를 수련하고 지혜와 해탈을 실현한다.
■■■《호흡에 마음집중하는 수련》은 붓다가 수련한 것이다.
더구나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이 수련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른 추가적인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한 것이다.
■■■이 수련은 단순한 집중의 방법(사마타)으로 수련될 수도 있고
지혜를 얻기 위하여(위빠사나) 수행할 수도 있다.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호흡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코끝이나 윗입술 혹은 코 근처 다른 곳에 부딪힐 것이다.
●●마음을 《접촉 부위에 집중》하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세어라.
이것이 한 방법이다.
다시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마음을 호흡이 닿는 부분에 집중하고 《짧으면 짧다고 길면 길다》고 알아차려라.
이것이 두번째 방법이다.
다시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마음을 호흡이 신체와 닿는 부분에 집중하라.
●●그리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처음, 중간, 끝부분을 모두 느껴라.
이렇게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은 호흡을 배 끝까지 따라가거나 그 이상 따라갈 필요는 없다.
●●집중의 초점은 호흡과 신체의 접촉 부분에 고정시켜라.
그것은 톱과 같다.
톱의 이빨은 항상 나무와 접촉되는 한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지만
그러나 나무에 접촉되는 부분만으로 톱의 전체 길이를 인지한다.
왜냐하면 톱의 전체 길이가 그 접촉 부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번째 방법이다.
이 모든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수행자는 호흡의 출입을 다른 곳이 아닌 《접촉 부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네번째 방법에서도 마찬가지다.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호흡 접촉 부위에 마음을 고정시켜라.
부딪히는 감촉을 알아차려라.
숫자를 세지 마라.
길이의 정도를 알려고 하지 마라.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을 따라가지 마라.
■■■호흡 집중에 대한 네 가지 방법 중에서 처음 세 가지는 단순한 집중형태의 수련이다.
■■■반면 네번째는 지혜 수련이다.
첫번째 방법은 숫자를 센다. 숫자도 개념이다.
두번째 방법은 호흡의 형태를 아는 것이다. 모양도 상상이다.
세번째 방법은 호흡의 출입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관념으로 만들어진다.
개념과 상상 그리고 관념은 우리를 위해서 만든 세계에 속하므로 사마타에 관련된다.
■■■《감촉만을 순수하게 관찰》하는 네번째 방법만이 지혜 명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수련도 선정과 결합될 수 있다.
만약 있는 그대로의 실제 감각을 알아차리지 않거나 마음집중으로 이러한 알아차림을 지켜나가지 않고,
개념이나 관념을 만드는 옛 습관으로 집중한다면 그 순간 위빠사나 대신에 사마타를 수련하게 된다.
집중하는 것은 실제 현상의 변화 과정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과정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고 추리하는 마음을 개입함으로써
현상들을 다시 상념화하는 과거로 빠져들기 쉽다.
■■■본질적인 현상 과정을 《즉각 포착》하기 위해 수행자는 오로지 《알아차림만 필요》로 한다.
이것을 실행하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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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필요조건은 알아차림이다.
《닿음》 즉 《감각》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마음집중으로 보호하고 지켜 나아가라.
알아차림을 마음집중으로 보호하면 사념은 갇혀버린다.
생각들은 방해하지 못한다. 개념, 상상 혹은 관념을 형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상 과정들은 일어나는 순간에 즉시 사념으로 왜곡됨이 없이 본질 그 자체대로 포착된다.
이것이 참다운 지혜 수련이다.
●●●사념은 항상 방해하려고 한다.
개념과 상상은 바로 문턱 너머에 서서 마음집중을 최소한으로 약화시키려고 대기하고 있다.
●●●현상과정을 즉각 포착하여 현상에 마음 집중하는 유일한 방법은 《빈틈없이 물러나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있다.
이것이 순룬 사야도가 좌우명으로 말하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에
빈틈없이 용맹스럽게 마음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불퇴전(不退轉)'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는 수행자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느슨하게 앉아서 마음이 풀려 한가하게 명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사려깊고 동정적으로 되기 쉽다.
실제로 수행하기보다는 수행되어지는 것에 더 많이 생각하고 숙고한다는 의미에서 사려가 깊다는 것이다.
●●동정적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동정한 나머지 용맹스럽게 노력하려고도 하지 않고
고통에 맞서 대항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수행자는 그 자신에 대해 대단한 동정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생각을 내적으로 향하여 자신을 관찰하기보다는
생각을 자신으로부터 이탈하여 표류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에게 생각을 향하게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수행자에게 굴욕적인 것이다.
더욱더 강하게 호흡하라는 말을 들을 때
수행자는 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경전상의 말들을 인용한다.
그는 저 유명한 {청정도론}으로 부터 몇 줄을 인용하여 말한다.
수행자는 너무 과다하게 노력해서는 안된다.
만약 너무 지나치게 노력하면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너무 과도하게 노력하는 수행자는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왜 불안정하게 되느냐?
●●●'닿음' 즉 감각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수행자는 그의 《노력에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명상의 대상으로부터 집중의 초점이 빗나간 채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 대상에 정확하게 집중하여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수행자는 우선
집중을 대상에 고정시키도록 해야 한다.
대상이 충분한 '알아차림'으로 고정되었을 때,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마음집중으로 보호했을 때 수행자는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수행했을 때 더해진 노력은 집중력을 이탈시켜 노력 자체로 향하게 하지 않고
그 대상에 더욱 고정시키도록 한다.
증가된 노력으로 보다 더 수준높은 마음의 집중을 계발할 수 있게 된다.
위에 인용된 {청정도론}의 완전한 원문은 아래와 같다.
[[ 수행자는 마음집중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마음을 산만하게 해서는 안된다.
너무 지나치게도,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느슨해지면 정체되거나 무기에 빠진다. 너무 과도하게 노력하면 불안정하게 된다. ]]
이것이 뜻하는 것은 마음집중과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노력이 충분한 정도인가?
이것을 말한 사람은 윌리엄 블레이크라고 생각한다.
"자신 스스로가 충분한 양보다 많다는 것을 알 때까지 얼마나 충분한 양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만큼의 양이 충분한가의 척도는 붓다의 설명으로 대신할 수 있다.
●●●즉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 비구의 질문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비구들이여, 머리수건이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면
그 불을 끄기 위해 간절히 원하고 전심전력으로 목숨바쳐 노력할 것이다.]]
그와 같이 모든 악과 나쁜 상태를 그치기 위해서 간절히 원하고 주의깊게 전심전력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붓다는 얼머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또한 수행자에게는 느슨해지려는 성향이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순룬 사야도는 훈시했다.
●●●"불퇴전으로 전심전력하여 마음집중하라."
전심전력으로 마음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가동하는 것이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념이나 거듭 생각함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불퇴전은 활기나 올바른 노력의 요소를 불러 일으킨다.
■■수행자의 또다른 하나의 나쁜 경향은 불안정이다.
그는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자리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
호흡을 하더라도 그만두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멈춘다. 이러한 것은 《산란함》의 표시이다.
●●●마음집중이 철저하게 확립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산만함을 피하여야 하고 들뜸은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순룬 사야도는
[[ 가려워도 긁지 마라.
쥐가 나도 움직이지 마라.
피로해도 쉬지 마라. ]]라고 말한다.
또 그는 가렵고, 쥐가 나거나 피로한 수행자에게 만약 호흡을 하고 있다면 더욱 열심히 호흡하라고 요구한다.
만약 감각을 관찰하고 있다면 감각에 마음을 더 깊이 침투시키라고 한다.
그리하여 마음집중을 보다 더 강도높게 계발하기 위하여,
더 많은 주의력을 가지고 수행하도록 한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일어나서 자세를 바꿈으로 해서
수행자는 기분을 전환하여 명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 앉은 수행자가 한시간 후에 일어나서 앉아 있는 감각에서 벗어나고,
그후 또 한시간 후에는 경행의 감각을 벗어나 다시 앉는다.
계속해서 자세를 바꾼다.
■■좌선에서는 어떠한 감각이 일어나더라도 《사라질 때까지》 앉은 자세에서 관찰해야 한다.
감각이나 닿은 곳의 알아차림에 주의를 집중시켜 고요히 앉아 있음으로써
마음집중의 요소를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수행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바른 마음집중이다.
수행자의 세번째 행동상 특징이 있다.
단계나 낮은 장애요인들이 제거된 후에, 빛, 색깔, 기하학적인 무늬가 나타날 수 있다.
전에는 이와 같은 것이 결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마음 한편에서 황홀해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빛, 색깔, 무늬에 집착한다.
이런 두 가지 힘에 의하여 수행자는 그의 관심을 빛과 무늬에로 전환한다.
그러한 것들을 주시한다. 거기에 머문다.
●●명상의 대상에서 이처럼 멀어짐으로써 그의 본래의 목적을 포기한다.
일정한 수련의 기간이 경과된 후에 어느 정도 마음을 정화했을 때
■■수행자는 고요함과 경쾌함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마음의 평화를 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수행의 최고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에 대한 이러한 평가 때문에 그리고 고요함이나 경쾌함 그 자체가 매혹적이기 때문에
수행자는 그곳에 주저앉아 고요함을 만끽한다.
■■그는 평화로운 감각에 침잠하기를 좋아하고 바른 길로 되돌아오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순룬 사야도는 이것을 미얀마에서 전해지고 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밍얀 강변은 1마일 넓이의 모래로 깔려 있다.
강에 다달은 여행가는 하오의 폭염 아래 발 밑에 있는 모래가 극도로 뜨겁다는 것을 안다.
도중에 나무 밑으로 간다. 잠시 그늘 아래서 쉬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휴식의 순간이 지났을 때
시원한 그늘에서 벗어나와 그의 머리 위와 발 아래에서 찌는 듯한 맹렬한 폭염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그 자신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늘 밑에서 계속해서 쉰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강을 건너가는 데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늘에서 다시 빠져나와 열기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만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수행상에서 발견하는 조그만 고요함과 경쾌함에 이끌리지 않도록 수행자에게 경고하는 이유이다.
한때 이러한 경쾌함(평온)에 습관적으로 습관적으로 빠져 들어가
그곳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한 수행자가 있었다.
순룬 사야도는 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그가 잡은 조그만 도마뱀의 꼬리를 치켜 잡아들고 도마뱀 뒤를 쓰다듬고 있다."
분별력이 있는 수행자는 조그만 도마뱀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맑아지고 정화됨에 따라 수행자는 가끔씩 초감각적인 것을 많이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진리의 발견》에서 오는 《천안통과 천이통이 아니고,
이러한 것에 다소 가까운 능력》이다. ☸☸
■■■이러한 능력으로 수행자는 다른 사람이 못보는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그의 예언은 적중한다. 그는 일종의 무당이 된다.
●●●위빠사나 수행자에게서 격하되어 무당이 된다.
시간이 점점 경과함에 따라 새로운 일에 대한 심란함이 점점 커져 분열되어지고
명상 수련을 집중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답이 점점 부정확하게 되고
차츰 단골손님들이 떠나가서 다시는 오지 않게 된다.
그 수행자는 수련을 도중하차한 셈이다.
수행자는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수행을 강도 높게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궁극의 해탈은 여유있는 자세로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계속 마음을 가라앉혀 앉아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움직임이나 동작은 아무런 해가 없다고 잘못 생각한다.
아마도 수행의 초기에는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각 수행단계의 정상에서는 마음집중의 경미한 동요도 명상 구조를 끌어내릴 수 있고
그 명상 체계를 다시 착수해야 한다.
몸에 대한 문제도 잘못 생각할 수 있는데
미묘한 정신문제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잘못을 범할 수 있을까?
●●수행자에게 강하게 나타나는 성향은 수행로상에서 《처음 나타나는 진척 표시》를 《좀더 향상된 단계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불쾌한 감각은 갑자기 견딜 수 없게 된다.
잠시 동안 강렬한 고통스러운 감각이 있다.
다음 순간 그것은 사라져 없어진다.
그리고 그곳에는 깊은 고요함과 평온한 감각이 있다.
수행자는 종종 이것이 깨달음의 지혜를 나타내는 정신작용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는 깨달음의 네 단계(四果) 중에서 한 단계를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수행단계의 오류는 명상을 지도하는 스승 자신이
그러한 문제에 철저히 정통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책에 있는 가르침이나 지시사항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다.
그러나 수행자는 깨달음의 단계 중 적어도 한두 단계를 성취한 것으로 등급을 매기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음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고 한다.
아무리 친절하고 간접적으로 그의 잘못을 알게해 주려는 명상 스승이 있어도 이를 싫어한다.
순룬 사야도는 수행자가 참으로 앞에 말한 단계를 성취했는지 안했는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판단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소견은
"만약 그렇다면, 그럴 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진정한 성취는 다른 곳에서 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행자 스스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드러내놓을 필요가 없다.
수행자 스스로 그것을 알 것이다.
■■이런 자기 기만 형태에서 오는 주요한 위험성은 수행자가 범하는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그가 성취했다는 것에 만족하여 수행을 게을리 하고 실질적인 진척없이 수행로상에서 좌초되고 만다.
수행자가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감각이다.
가벼운 경련, 열, 근육긴장은 수행자가 직시해서 얼마동안 그것에 대한 마음집중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뼈와 골수 내의 고통, 뜨거운 감각, 다리를 따라 일어나는 날카로운 고통은 몇분 내로 포기할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그는 변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경전상에서 인용구를 든다.
누가 명상의 주제로 고통스러운 감각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즐거운 감각으로 수행함으로써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단 말인가?
누가 그렇게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된다고 말했는가?
자신을 굴욕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대답은 이렇다.
만약 수행자가 유쾌한 길로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선업을 가졌다면
또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지혜를 성취하는 수행자라면
그는 유쾌한 감각에서 수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우리들로서는
고통스러운 감각의 길로 갈 수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러한 선업을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후회할 필요가 없다.
고통스러운 감각도 궁극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적절한 명상의 대상이 된다.
보다 깊고 보다 강도높은 마음집중을 확립하기 위하여
수행자가 일반적으로 고통스러운 감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사실을 수용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대상을 갖고 수행하라.
그는 고통스러운 감각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맹스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즐거운 감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즐거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에 침잠하고,
즐거운 《감각》에 마음집중하려고 하지 않고 《쾌감》을 만끽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쾌감 속에 내재해 있던 탐욕과 욕망이 그를 덮칠 것이다.
■■■수행자는 감각을 감각으로써 유지하지 못하고, 감각으로 인하여
그는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쇠사슬로 가는 연쇄적인 《욕망》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
즐거운 감각은 숨은 적과 같다.
방심하고 있는 수행자를 속인다.
불쾌한 감각은 눈에 띄는 적과 같다.
수행자는 그것을 알아채고 정확한 행동을 취하여 불쾌함 속에
내재되어 있는 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불쾌한 감각을 당연히 싫어하는 것》과 《마음집중을 확고하게 하려는 강렬한 노력》 사이에서 수행자는 자신을 불쾌한 감각에 몰두시킬 수도 없고 꽁무니를 뺄 수도 없다.
☸●●불쾌한 감각 속에 머물면서 《초연한 일념으로 그 감각을 관찰함》으로써 완전히 자신을 불쾌한 감각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
불쾌한 감각은 방황하려는 마음을 확고하게 묶어둘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고통스러운 감각으로 인하여 수행자는 현상의 참 본성인 고(苦)를 즐거운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는다.
고통스러운 감각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다.
불쾌한 감각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충분한 마음집중력과 강렬함을 불러 일으키는 테크닉들이 있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은 수행자를 아픈 부분과 불쾌한 감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 있다.
●●●그러나 마음집중이 충분히 확립되어 감각 속에 파고들어 아픔을 받는 '나'라는 인격의 관념과 동일시하는 것을 제거할 때에,
불쾌한 감각은 단지 불쾌한 감각만으로 되고 더이상 고통의 원천은 되지 않는다.
명상의 궁극적 목적은 환상적인 관념의 '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수행자는 불쾌한 감각과의 투쟁에서 몇번이고 거듭 반복해서 '나'라는 관념을 부수어 나가야만 한다.
고통이 일어난다고 해보자.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수행자는 그것에 마음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원인을 사실상 죽여야 한다.
●●●완전히 숙달되어 마침내 원인 속에서 원인을 죽이고,
원인 내에서 원인을 종식시킬 때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서 수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끝없는 윤회의 사슬에서 또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결과를 다시는 초래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원인 속에서 원인을 죽이는 것이 깨달음이다.☸
거짓 관념인 '나'를 제거하는 능력의 특성 때문이다.☸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편안함》으로 인하여 당신은 항상 윤회의 흐름에서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다." ☸☸☸
불쾌한 감각은 수행자의 내부에 있는 적이다.
☸💎일단 내부의 적을 극복하면 외적 고통의 근원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격렬한 수련을 한 후에는 수행자가 진정한 자유의 지혜를 누릴 순간이 온다.
이러한 순간들은 매우 드물게 온다.
■■■이러한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몸에 대한 마음집중을 완벽하게 확립해야 한다.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 또한 완전히 확립해야 한다. 이것은 불쾌한 감각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것을 뜻한다.
●●●수행자가 그의 길을 가는 데 있어 《고통의 감각》은 최대의 장애물이다. 이것이 후퇴하는 곳이다.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수행자는 불굴의 노력과, 단호함,
올바른 방법뿐만 아니라 《강인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이들 감각은 수행자가 다음 단계인 마음에 대한 마음집중을 확립하는
미묘한 과정을 다루는 데 필요한 충분한 선정력과 마음집중을 갖추게 한다.
■■■《마음[心]에 대한》 마음집중이 충분하게 이루어졌을 때,
수행자는 《법에 대한》 마음집중을 확립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진리의 장엄한 순간이 온다.
■■■만약 수행자가 마음집중의 원칙을 완전하게 확립하지 않는다면,
●●●해탈의 지혜가 올 때 그는 수줍어서 도망갈 것이다.
그것을 붙잡는 데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차림의 네 측면(4념처)을 완성시키고
깨달음의 일곱 요소를 충분히 계발한다면
4념처의 완성과 7각지 계발의 순간 진정한 해탈의 지혜가 생긴다.
■■■불행하게도 불완전한 행동이 수행자의 특성이다.
용맹스럽게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금방 안절부절해지고,
빛이나 색깔 같은 것에 집착하고 고요한 곳에 안주하려 하고,
조그만 성공을 과장하려 하고, 부수적으로 얻는 노력을 오용하려 하고,
쉽게 의심하고, 불쾌한 감각을 두려워하고,
진정한 진리의 순간이 올 때는 수줍어하고 무서워한다.
이러한 수행자를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들이 그 표본이다.
좋은 씨앗은 뿌리려고 하지 않고 명상의 이익만을 취하고 싶은 사람이 우리들이다.
투자는 하지 않고 대가만을 원하는 사람이 우리이다.
우리는 많은 노력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목표를 우리들 자신에게 말로만 원한다.
우리는 완전히 진실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싶어한다.
그러면 그 목표는 우리들이 영원히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순룬 사야도가 지나간 길을 우리도 역시 갈 수 있다.
그의 지시를 성실하게 따르기만 하면 된다.
순룬 사야도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 우리들은 용맹스럽게, 강도높게, 불퇴전의 노력으로 마음집중해야 한다.
피곤해도 쉬지 마라. 가려워도 긁지 마라. 쥐가 나도 움직이지 마라.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최대한으로 고요하게 해야 하고 끝까지 분투 노력해야 한다.
고통은 참으로 당연한 것이다.
편안함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미망의 흐름 속에서 표류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고통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감각 속에 파고든 사람만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회의를 버리고 더한층 용맹스러운 노력을 발휘해야 하고
마음집중을 중단하지 않고 빈틈없이 해야 한다.
우리들 자신을 정화하고 고와 슬픔을 극복하며 바른 길에 들어서
열반을 증득하기 위하여 신심과 노력 그리고 알아차림을 잘 호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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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룬의 마음집중 계발
현대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욕망과 반감의 대상들이 강하고
다양화된 방법으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많은 감각적인 충동과 유혹의 기회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삶의 속도가 점점 더 가속화되고 긴장의 연속 속에서
노이로제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도시의 소음 공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소음은 집중하는 데 있어 목 안의 가시와 같다.
●●또한 사람들은 마음집중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주의력은 점점 더 분산되어지고 자그마한 행동을 개선하는 데에도
점점 시간적 여유가 없어짐에 따라 정신력은 산만해진다.
●●결국 불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직관이 빠르다기보다는 둔한 편이다.
증가되는 충동, 자극적인 상품, 심해져가는 소음 공해, 산만함, 부족한 시간,
자신의 둔한 직관 등을 고려할 때, 마음집중의 방법은 절실히 요청된다.
순룬 사야도의 마음집중은 나태와 감각의 욕망을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그것은 명상자의 주의를 전환시켜 소음과 산만함을 차단한다.
●●●직관이 둔한 사람에게는 4념처를 완벽하게 확립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확실하고
신속한 방법을 제공한다.
그것은 책에서 이론적으로 얻는 방법이 아니라,
자기 애착과 무지에 대항하고 투쟁하여 체득하는 방법이다.
■■■순룬 사야도는 거의 문맹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나약한 의식의 흐름에 병들지 않는》혜택을 누렸다.
강렬함과 용기 그리고 인내로서 그는 1920년에 해탈을 얻었다.
그 테크닉은 순룬 사야도와 같은 불퇴전의 용기와 인내가 없는
일반 시민에게도 현재 이용될 수 있다.
아래에서 그 방법에 대한 간단한 개요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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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룬의 마음집중 계발
[자세]
움직임 없이 몇시간이라도 지탱할 수 있는 명상 자세를 취하라.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기대지 말라.
자세는 자신의 모든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자세는 느슨해지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도록 취해져야 한다.
적절한 자세는 다리를 교차해서 앉는 것이다.
등은 똑바로 세워야 한다.
팔은 몸 옆에 가까이 붙인다.
오른쪽 손은 왼손 안에 둔다.
이것은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고통에 수행자가 힘을 내야 할 때 손을 꼭 잡기 쉽기 때문이다.
손가락끼리 깍지를 끼지 마라.
그리고 엄지 손가락끼리 가볍게 맞붙이려고도 하지 말라.
머리는 앞쪽으로 약간 숙이게 한다.
느슨하게 앉지 마라.
몸이 확고한 기반을 유지하여 움직이지 않고,
수행자가 정신을 성성하게 할 수 있는 탄탄한 자세를 유지하라.
명상중에 아무런 방해없이 마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라.
바람이 없고 조용한 장소를 택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명상은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고 단체로 할 수도 있다.
장소를 정성들여 만들 필요는 없다. ●●의식을 거행해도 안된다.
명상을 위해 특별히 정해진 시간은 없다.
시간은 명상자의 편의에 맞추어 정해진다.
●●명상 시간이 다른 목적을 위하여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구의 어떤 책에서
초보자는 하루에 2분 내지 3분의 시간으로 시작해서 차츰 늘어가야 한다고 제시한다.
순룬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 집중적인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많은 좋은 결실을 낳는다.
보통 한두 시간 이하이다.
이러한 수련을 집중적으로 좌선하면서 하루종일 보낸다.
●●자세를 고정한 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바꾸거나 변화를 시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차례 끝날 때까지 계속 유지해야 한다.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쥐가 나도 움직이지 마라. 가려워도 긁지 마라. 피곤해도 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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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호흡이 코끝이나 윗입술을 스치는 곳을 관찰해야 한다.
호흡이 《스치는 곳》에 예리하게 마음집중하라.
마음집중을 방심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호흡을 강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빠르게 하라.
●●●강하고 격렬하고 신속한 호흡은 바깥 소음을 차단하고 마음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장애를 빨리 제거하고 집중력을 신속히 키우고
나중에 발생하는 불쾌한 감정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강하고, 힘차고, 신속하게 하는 호흡으로 인하여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코끝이나 윗입술 혹은 그 주위의 다른 부분에 닿는 마찰을 증가시킨다.
호흡이 닿는 부분에 마음을 집중하라.
호흡이 코끝이나 윗입술을 스칠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알아차림에 마음집중하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어떠한 감각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서는 안된다.
매번 닿은 감각을 알아차려라.
마음집중은 빈틈없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느슨해져는 안된다. 더한층 나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수행자는 강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숨의 통로를 주시하지 마라.
몸의 안과 밖으로 숨을 따르지 마라.
숨의 출입을 세지 마라.
숨이 닿는 곳이 코끝인가 혹은 윗입술인가를 알아차리려고 하지 마라.
오직 숨이 닿은 곳의 감각을 알아차리도록 하라.
마치 물이 주사기로 들어오는 것처럼 숨을 주의깊게 충분히 들이쉬라.
예리하게 내쉬라.
충분하고 강하게 숨을 들이쉬는 것은 집중력을 빨리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각이 일어나도록 도와주고 불쾌한 감각과 투쟁하게 될 때 에너지를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쉬는 숨이 강하므로
들이쉼과 내쉼에 균형이 되도록 《들이쉬는 숨》에 좀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들숨과 날숨이 균형되었을 때 감각은 계속 일어난다.
■■■두 개가 균형을 이룰 때 수행자는 순일하고 노력없이 자체 힘에 의해 저절로 나아가는 호흡리듬에 도달한다.
머리와 몸을 흔들지 말고 호흡하라.
이것은 집중력을 빨리 얻게 한다.
강하고, 힘차고 신속한 호흡의 초기단계에선 피로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호흡의 강도와 속도를 중지하지도 말고 줄이지도 말아야 한다.
"피로할 때도 쉬지 마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피로는 불충분하게 숨을 들이쉬거나 혹은 과도하게 숨을 내쉼으로써 일어난다.
●●●바로잡는 방법은 《들숨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들숨과 날숨의 강도가 높은 수준에서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피로는 사라진다.
그때에 수행자는 호흡하기가 힘든 단계에서 벗어나 노력없이도 저절로 되는 순일한 호흡리듬의 단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나서 호흡이 스치는 곳에 마음이 집중되도록 모든 주의력을 기울인다.
호흡에는 삼단계가 있다.
즉 강한 단계(매우 강하고, 매우 힘차고 신속한 호흡),
중간 단계(강하고, 힘차고, 신속한 호흡),
낮은 단계(미세하고, 부드럽고 완만한 보통의 호흡)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때로는 느슨해지고 싫증이 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강한 단계에 이르는 것이 필요하다.
나중에 속도가 떨어질 때 균형된 중간단계에 이르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호흡을 위한 시간을 미리 정하지 마라.
■■■강하고 신속한 호흡을 하면 곧 불쾌한 감각이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불쾌한 감각은 고통, 경련, 아픔, 저림, 열이나 차가운 것,
기타 다른 감각들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충분한 감각이 일어나 강한 호흡이 정지되어도 될 때까지 호흡을 계속하라.
여기 일어나는 감각은 호흡하는 시간을 정하게 하는 시계다.
대체적인 방법으로 호흡하는 시간을 45분이나 1시간으로 미리 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몇시에 2번째 명상시간을 계속할 것인지를 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첫번째 방법만큼 좋은 것이 아니다.
강한 호흡을 그만 두기 전에 50에서 100번 마지막으로 강한 호흡을 한다.
이때는 수행자가 전심전력해서 해야 한다.
한편 호흡이 닿는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들이쉰 호흡에서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몸전체 내부로 향해서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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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룬의 마음집중 계발
[감각](1)
호흡은 들이쉰 호흡에서 완전히 그리고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
몸은 고요해지고 가라앉아야 한다.
빈틈없이 계속 전심전력으로 관찰되어야 한다.
아픈 감각, 경련, 쑤시는 것, 저림, 열기나 찬 기운이 몸에서 일어난다.
가장 현저하게 느끼는 감각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무심코 지나치지 말아라.
배꼽이나 태양신경총 혹은 다른 어떤 지점으로 주의를 옮기지 말아라.
●●●가장 뚜렷한 감각에 주의가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감각이 가장 현저한 곳》이 아닌 곳으로 주의를 돌리면 현재를 즉각 파악하는데 지체된다.
순룬 사야도는 "만약 감각이 약해지면 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려라.
만약 강해지면 강해지는 것을 알아차려라"고 말했다.
●●더함도 덜함도 아닌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려라.
●●무엇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본래 그대로 알아차려라.
단지 이것에만 마음집중하라.
■■■'나'라는 생각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이것은 자신의 발, 자신의 손, 자신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은 몸과 마음이다"라고 결론내리지 말아라.
"이것은 무상이고, 고이고, 무아이다"라고 분석하지 말라.
모든 생각, 기억, 분석하는 것은 개념이다.💥
그러한 것들은 지혜 명상이 아니다.💥
순룬의 방법은 실재와 단도직입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접촉한다.
사실에 접근하기 위하여 개념적인 교량을 먼저 세우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코끼리를 찾아나설 때 발자국을 뒤쪽으로 따라가지 않고 곧장 코끼리 쪽을 향하여 추적해 가야 한다.
아픔이 일어날 때는 아프다는 사실을 즉각 감지한다.
'아픔', '아픔'이라는 개념을 공식화한 후 아픔의 사실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명상자에게 말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을 피하라. 실재를 개념화하지 말라." 💥💥
감각을 잡으려고도 하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아라.
지금 감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당처에 마음을 집중하여라.
■■■불쾌한 감각과 싸울 때 극단적 힘과 악한 마음으로 분노하여,
자신의 감각을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이것은 확고한 주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요 이상의 과도한 노력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과도한 노력이 있을 때는 명상자의 노력은 불쾌한 감각을 벗어난다.
●●●그 결과로 주시는 감각 자체로부터 이탈되고 격렬한 노력만이 남는다.
이 격렬함은 다름아닌 화냄이다.
■■■화냄은 윤회의 수레바퀴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조건이다.
다른 한편으로 명상자는 감각의 당처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이것은 확고한 주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력의 양에 못미치는 것을 말한다.
●●노력이 불충분할 때 명상자는 혼침과 무기에 빠지거나 혹은 감각이 강렬할 때는 불쾌한 감각에 의하여 압도된다.
마음집중이 되지 않는 감각들은 두려움과 걱정과 화냄을 불러 일으키고
이러한 모든 것이 윤회의 수레바퀴로 들어가는 하나의 조건을 만든다.
무기와 나태함은 무명에 바탕을 둔다.
이것은 미망과 다시 태어남을 만드는 또 하나의 조건을 형성시켜 준다.
그러므로 명상자는 감각을 넘어서지도 말아야 하고 못미쳐서도 안된다.
지혜와 집중에 필요한 박력있고 용의주도한 노력을 발휘해야 한다.
●●●감각에 주시하는 시점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단순하고 즉각적인 현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감각에 수동적으로 주시하거나 미래로 분리시키지 않고
감각이 발생하는 바로 그곳을 능동적으로 관통할 때 이것이 실현된다.
●●●많은 감각이 머리·팔·몸·다리 등에 동시에 일어날 때
지도받지 않은 명상자는 마음이 허둥지둥 감각들을 좇아갈 것이다.💥
바로 지금 당처에 마음집중이 안될 것이다.💥
그 결과로 개인적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이러한 것을 피하기 위하여 가장 현저하게 느껴지는 감각에만 마음집중을 해야 한다.☸☸💎
성성(惺惺)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알아차림은 용의주도하게 빈틈없이 마음집중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수행자는 이 감각을 파고 들어서 그 본성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판자에 못을 박는 비유가 있다.
나무는 감각이고 못은 마음이고 못을 똑바로 잡은 손가락은 마음집중이며 망치는 노력이다.
■■■마음이 감각을 관통했을 때, 수행자는 더이상 발이나 팔, 혹은 몸의 형태를 느끼지 않는다.
더이상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들 《개념》들은 단순하게 《명백한 알아차림》으로 대치될 것이다.
■■■고통받아오던 《'나'라는 개념》이 제거됐기 때문에, 불쾌한 감각이 더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
조금 전에 아프고 뜨겁게 느껴졌던 감각이 지금은 《고통없이 강한 감각》으로만 느껴진다. ☸🌸🌸💎
세 가지 감각 즉 불쾌한 것(苦), 즐거운 것(樂), 중립의 것(非苦非樂) 중에서 중립적인 것이 가장 미묘하다.
마음집중을 일반인에게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최초의 대상으로 중립적인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계속해서 지혜 계발을 해 감에 따라 《감각이 일어날 때》수행자는 일어남과 동시에 그리고 일어난 바로 그 감각의 당처에 마음집중해야 한다. ☸🌸💎
그렇게 될 때까지는 수행자가 미묘한 중립적인 감각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 왔어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쾌한 감각은 위빠사나의 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이다.
■■■명상자가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때라야만 고통을 넘어선 보답을 성취할 수 있다.
■■■그것은 불쾌한 감각을 완전히 극복하고 불쾌한 감각으로부터 배울 때 가능하다.☸🌸💎
■■■불쾌한 감각도 무상의 법칙을 따르므로 그것도 곧 소멸하게 된다.
이러한 소멸은 여러 형태로 일어난다.
감각의 강렬함은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소멸》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불쾌한 감각은 남아 있을 것이다.
☸■■■불쾌한 감각에 대한 진정한 극복은 수행자가 감각 속에서
감각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감각을 관찰할 수 있을 때》, 감각은 소멸되어 끝이 난다.☸💎
■■■마치 밧줄이 끊어지듯이, 뱀이 허물을 벗듯이, 기름이 다 소진되듯이, 그렇게 종식된다.
■■■《감각이 차츰 가라앉아서 다 소진되었을 때》 가 《감각이 다한 것》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더 이상 느낄 것이 없을 때 끝이 난다.
마치 길을 가다가 다다른 곳에 올 때나, 긴 밧줄을 따라 잡다가 더 이상 잡을 곳이 없을 때처럼 될 때와 같이 감각이 완전히 소멸된다.
■■■그것이 떨어질 때는 굵은 밧줄이 갑자기 잘라지듯이,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기름이 다한 불이 꺼지듯이 소멸되어 버린다.
고통은 불편하다. 아픔도 불쾌하다. 뜨거움도 불쾌하다. 차가움도 불쾌하다.
이러한 모든 불쾌함 속에 불편한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들의 모든 경험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잠재되어 있는 불편의 요소이다.
다리에 피곤함을 느끼는 수행자는 자세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그의 마음이 감각의 작은 부분에 한정되어 있을 때는《불편한 자세와 제한된 마음에서 벗어나려는》
《관능의 대상》을 찾아나설 것이다.
■■■《편안하고 즐거운 감각들을 갈망함》으로써 어떻게 깨달음을 성취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편안함》으로 인하여 당신은 언제까지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헤매이게 될 것이다"
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씀했다.
그는 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의 효율성에 관해서 언급했던 것이다.
어떻게 불쾌한 감각을 소멸하고, 종식시키고, 벗어나고, 끊어버리고,
소진시키기 위하여 《불쾌한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을 해야 하는가?
■■■유일한 대답은 수행자가 불쾌한 감각이 일어나는 대로 《즉각 불쾌한 감각에 빈틈없이 마음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쾌한 감각에서 벗어난 확고부동한 마음을 유지하는가?
어떻게 불쾌한 감각이 얼어나는 순간 일어나는 대로 즉각 포착하는가?
우선, 불쾌한 감각에 마음집중하는 데 있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둘 다 완벽하게 정지(靜止) 시켜라.
숨을 가라 앉히고 불쾌한 감각을 관찰하라.
자연스럽게 호흡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호흡을 유지하여라.
이것은 호흡을 억제하는 훈련이 아니다.
■■■무엇인가 지대한 주의력을 가지고 행할 때 호흡은 자연스럽게 가라앉게 된다.
예를 들면, 바늘구명에 실을 꿸 때 사람들은 보통 숨을 멈추게 된다.
■■■이와같이 수행자는 숨을 죽이고 불쾌한 감각을 관찰해야 한다.
이런 수련을 통하여 보다 더 깊은 알아차림과
보다 더 엄격한 마음집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불쾌한 감각이 너무 강렬하여 숨을 죽이고 적절한 마음집중을 할 수 없을 때는
수행자는 그것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신을 재무장해야 한다.
■■■마음집중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 감각에 대항해서 전신을 강화시킨다.
●양 손을 양 옆구리에 단단히 갖다 댄다.
●주먹을 꽉 쥐고 목을 바로 세우고 입을 꽉 다문다.
완강한 적과 대항해서 싸울 때처럼 에너지를 강화시킨다.
항상 감각에 엄격하게 마음을 집중시킨다.
만약 불쾌한 감각이 계속 괴롭히고 호흡의 조절과 강화된 몸의 자세로도 극복되지 않는다면
수행자는 그에 대항해서 《마음을 고정》시켜야 한다.
강하고 단호하게 호흡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불쾌한 감각에 집중시킬 때도
강하고 단호하게 해야 한다.
감각에 대적하기 위해서 호흡과 몸과 마음의 모든 힘을 동원해야 한다.
숨을 죽이고 몸을 긴장시키고 마음을 강화하여 감각을 투과하여
그 속에 머물면서 감각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을 때까지,
마침내 감각이 완전히 소진되어 종식될 때까지 감각의 압박에 대항해서 노력을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이 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행자는 불요불굴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는 강렬하고 열성적이고 진지하고 정력적이어야 한다.
■■■붓다가 그의 제자에게 요구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미혹으로부터 탈출은 사려깊고 생각만 하고 느슨한 노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명상자의 명령에 따라 《가장 용맹스럽고 불퇴전하는 전심전력의 정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순룬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다.
명상에서 마음대상과 관련해서는 전념이 요구되지만 감정적인 느낌을 관찰하는 데는
반드시 육체적 힘을 분발시키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끊임없는 마음집중을 위해서는 열망적이고 간절한 마음을 북돋아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들을 계발하기 위해서 《불쾌한 감각의 수련》은 도움이 된다.
이 수련을 하는 명상자에게 감정적인 느낌을 수련하는 마음집중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더구나 감정은 항상 불쾌한 감각을 동반하기 때문에 명상자는 그의 집중을 육체적인 감각에 전환해야 한다.
그리하여 불쾌한 감각을 정복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집착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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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룬의 마음집중 계발
[감각](2)
■■■감각을 넘어서서 수행자가 《완벽하게 감각 속에서 머물고》,
감각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없이 관찰할 때에,
그리고 감각에서 벗어나고 감각이 완전히 소진될 때,
수행자의 마음은 정화되고 청정해지고 확고부동하게 되며 자비로워진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자비를 베풀 수 있으며,
●●그들과 진정한 자비 속에서 충만해질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의 반복이 아니며 욕심과 아집의 소멸이며,
●●●미워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무심한 사람들 간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
■■■정화되고, 청정해지고, 부동하게 되고,
자비로워진 마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한다.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욕과 성냄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마음을 집중하면, 더이상 새로운 탐욕과 성냄을 못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어
또다른 윤회의 수레바퀴에 들지 않는다.
■■■이것이 결과에서 원인적인 요소를 말살하는 것이다.
■■■탐욕이나 성냄을 일으키는 《대상》과 접할 때,
수행자는 단호하게 여기에 마음집중하여 탐욕과 성냄을 일어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원인에서 원인을 말살하는 것이다.☸💎
후자의 마음집중법으로 경전 상에 있는 것을 완벽하게 수련할 수 있다.
"●●보이는 것에서는 보이는 것만,
●●들리는 것에서는 오직 들리는 것만,
●●감각되어지는 것에서는 감각되어지는 것만,
●●생각되어지는 것에서는 생각되어지는 것만이 있어야 한다."
수행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쾌한 감각에 대하여 집요한 마음집중을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정화해 왔고 흔들림 없고 자비스러운 마음을 길러 왔기 때문이다.
■■■둔한 직관을 가진 보통의 수행자가 처음으로 마음집중법을 수련할 때
《보이는 것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마음은 미묘한 관찰 대상이므로 정화되지 않고
연약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으로는 신속하게 포착되거나 잡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자의 마음이 불쾌한 감각에 마음집중함으로써 강화되었을 때는
보이는 것에서는 보이는 것만을, 들리는 것에서는 들리는 것만을,
생각에서는 생각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만약 마음집중 수련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을 관찰해야 된다고 배운다.
이론적으로는 매번 망상을 마음집중하여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행에선 어떠한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망상에 마음집중하기가 극히 어렵다.
만약 집중력이 강하다면 본래의 명상대상에서 전혀 이탈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망상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 실제로는 망상에 이끌려 가고》 있는데
그 자신은 《망상에 마음집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위험에 종종 빠진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본래의 명상 대상인 《감각이나 접촉 부분》에 더 잘 마음집중하기 위하여 더욱 용맹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망상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는 망상에 이끌려 가고 있는데
그 자신은 망상에 마음집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위험에 종종 빠진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본래의 명상 대상인 감각이나 접촉 부분에 더 잘 마음집중하기 위하여 더욱 용맹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법(mental elements)의 관찰에 있어서는 마음의 관찰보다 훨씬 더 미묘하다.
법에 대한 관찰은 감각에 대한 강렬한 마음집중에서 연마된 수련이 있어야 한다.
감각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 5가지 장애의 마음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감각이 소멸되고 종식되었을 때는 7각지분(七覺支分)이 나타날 수도 있다. ☸💎
명상자는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마음집중해야 한다.
1●●●만약 '성냄'이 일어날 때는 명상자는 그것을 '성냄'이라고 관념으로 주시하지 않고,💥💥
단지 《성냈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만약 7각지 중 평등각지의 요소가 일어났을 때는
명상자는 빈틈없이 평등각지의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곳에서도 명상자는 그의 의무를 잘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 수련을 통하여
강한 삼매와 맑고 확고부동한 마음을 계발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몸[身], 감각[受], 마음[心], 법[法]의 사념처는 각각 독립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함께 공동으로 발생한다.
●명상자가 감각의 알아차림에 마음집중하고 있을 때 감각 속에 신.수.심.법이 들어 있다.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명상자는 다른 모든 것에 집중한다.
그것은 마치 과즙의 유리잔 속에 물.레몬.설탕.소금의
네 가지 요소가 공동으로 함께 들어 있는 것과 같다.
●●하나의 요소가 현저히 많을 때
그 과즙은 물이 많다든가, 시다든가, 달다 혹은 짜다라고 부른다.
감각이 현저할 때는 감정에 대한 마음집중이라고 부르고 마음이 현저할 때는
마음에 대한 마음집중이라고 한다.
●●●4념처가 완성되었을 때 7각지분이 완전히 계발된다.
●●●7각지가 완성되었을 때 명상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결과이다.
순룬의 마음집중법에 대한 간단한 개요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제공되지 않는다.
■■■만약 망고 씨가 뿌려지면 망고 나무는 싹이 틀 것이다.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망고 씨를 뿌리는 데에 우리는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결과는 저절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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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순룬의 마음집중법은 열렬한 비구와 신도들에 의해서 수련되고 있다.
열렬함의 강도가 다소 떨어진 명상자에게는
수도원에서 하루에 5번 내지 7번의 정진시간을 제공하나,
한 번의 정진시간은 1시간에서 3시간 계속된다.
사업이나 일로 너무 바쁜 사람은 하루에 두 번 수련할 수 있다.
반면 정진과 정진시간 사이에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명상자는 계속해서 마음집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닿는 감각에 마음집중함으로써 이것을 성취할 수 있다.
●●●하루 중 한순간도 몸에 감촉없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
만약 앉아 있다면 몸은 의자에 닿아 있을 것이다.
누워 있다면 머리가 베개에 닿아 있을 것이다.
걸을 때는 발이 매 걸음마다 땅에 닿을 것이다.
만약 도구나 물건을 다룬다면 손가락이 닿을 것이다.
명상자는 의자에 닿은 몸의 감촉, 베개에 닿는 머리의 감촉,
땅에 닿는 발의 감촉, 물건이나 도구에 닿는 손가락의 감촉 등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가능하면 눈에서는 시각, 귀에서는 청각, 입에서는 미각, 코에서는 후각의
《감촉》에 마음집중하여야 한다.
"감각의 알아차림에 단호하게 마음집중하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순룬의 방법은 단순하다.
선을 긋거나 원을 그리는 것만큼 간단하다.
어린애들까지도 연필로 종이에 처음부터 원이나 선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직선이나 동그라미 원은 극히 어렵다.
그러나 간절한 열망과 열성으로 수련한다면, 결과는 빨리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다른 방법들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수련하기는 쉬울지라도 결과는 천천히 온다.
●●●순룬의 방법은 설명하기가 쉽다.
●●●순룬의 방법에 이론적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얀마어로 된 팸플릿에서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순룬의 생애에 대한 것으로는 소책자가 하나 있다.
그 방법은 설명하기가 용이하므로 이론적인 것은 거의 없다.
따라서 책은 많이 씌여지지 않았다.‼
●●●순룬의 방법은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수행의 순서가 복잡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순서도 간단하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단지 그 방법이 느슨하고 편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강한 호흡의 어려움과 불쾌한 감각에 맞부딪칠 용기와
그것들을 극복할 용맹심과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요불굴의 마음집중》을 요구한다.
■■■이것을 잘 할 수 있을 때, 수행은 잘 된다. 결과는 《급속히》 이루어진다. ☸☸☸💎💎
왜냐하면 순룬은 《실재와 즉각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접촉》하게 하고
수행자의 열망을 북돋아서 《강렬한 속도로 진보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무엇을 위해서라도 시간을 거의 내지 않는 게으른 사람과
✳✳개념화, 논리성, 합리성으로 인하여💥💥💥‼‼
더욱더 《근원적인 실재로부터 멀어진 사람》에게
순룬은 많은 것을 제공한다.
■■■그것은 실재를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그의 《사고 체계를 버리게》 한다.☸☸💎💎
●●그것은 단호하게 하고, 유연하게 하며, 그의 거대한 《육체적.정신적 잠재력》을 사용케 한다.
●●변화무쌍한 삶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과 힘을 준다.
■■■《모든 불행과 불만의 원인인 '나'》에 대한 어리석은 애착인 미혹의 심장부를 강타한다.🔥‼
■■☸순룬은 강렬하고, 불퇴전의 용맹스러운 방법으로 4념처를 확립하여,
본성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불행을 극복하게 하고, 고통과 비탄을 소멸시키고,
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을 이루도록 한다.
"감각의 알아차림에 빈틈없이 쉬지 말고 마음집중하라."
첫댓글 위빠사나 수행자로서의 본인은 수행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정도로 열성적이지는 않다.
순룬 사야도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