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기부와 자원봉사는 시민정신의 근간
선진민주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척도의 기준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문화수준이라기 보다는 ‘시민정신의 높낮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민정신의 근간이 되는 것은 곧 기부와 자원봉사라고 말한다.
기부정신과 자원봉사정신은 사실 기독문화의 이웃 사랑과 감사 습관에서 비롯된 정신문화다. 미주와 유럽을 돌아다녀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부관습과 감사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은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도 댐을 건설한 조상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뉴욕시민이 누리는 공짜 물
세계 최대의 도시라고 하는 미국 뉴욕의 시민들은 물을 공짜로 맘껏 마신다. 뉴욕시민(유동인구포함 1천600만 명)은 우리 식의 상수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 하수도요금만 납부한다. 이는 대표적인 거부 록펠러의 기부 덕분이다. 그가 상수도시설 건설비의 거의 전액을 부담했으며 지금까지 수돗물공급 관련비용 일체를 록펠러재단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록펠러는 어렸을 때부터 기부 습관을 길렀다. 그이 아버지 존 록펠러는 아들에게 주 1달러씩의 용돈(정원 손질 등의 대가)을 주면서 반드시 10%는 저축을 하고 또 10%는 이웃을 위해 쓰라고 교육했다 한다. 어려서의 이웃사랑 습관이 그로 하여금 시카고대학 등 12개 종합대학을 세우고 무려 4,900여개의 교회를 지어 사회에 바치는데 이르렀다. 그는 뉴욕의 관광 명소 리버사이드교회와 링컨센터, 현대미술관 건립에 거금을 쾌척했으며 UN본부 건물 자리도 그가 기증한 것이다.
록펠러를 본받은 빌 게이츠는 각계각층에 기부한 누적금액이 42조원을 넘어섰으며 워렌 버핏도 자기 재산의 85%인 375억 달러를 사회에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버는 것은 천사처럼 못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며 1조원이 넘는 재산을 장학재단에 내놓은 이종환 관정교육재단 이사장 같은 분이 숱하다.
잘 버는 것은 기술이고 잘 쓰는 것은 예술이다
이런 통 근 기부만 있는 게 아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수많은 단체에 매달 1만원, 2만원씩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구의 반대편 남아프리카의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서도 매달 조금씩의 후원금을 지출한다. 구두수선공으로, 청소부로, 분식점 주인으로, 파출부로 일하면서도 평생 모은 돈을 사회에 내놓는 뭉클한 사연들도 부지기수다.
필자가 오래 전 어린이재단을 취재할 때 눈물겨운 기부자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연탄난로에 하루 3개씩 쓰던 구공탄을 2개로 줄여서 그 차액을 기부하면서 겨우내 추위를 감내하는 어느 외국인 여선교사의 얘기였다.
최근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연경선수가 국내에 복귀하면서 동료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덜어주기 위해 구단이 제시한 연봉의 절반만을 받겠다고 밝힌 것도 가슴 따뜻한 기부라 할 수 있다. 프로골퍼 유소연은 최근 한국여자오픈 우승상금 2억5천만 원 전액을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기부해 찬사를 받았다.
기부는 삭막해지는 세상에 단비 같은 행복 바이러스다. 그러기에 기부를 하는 것은 존중되어야 하고 또 기부 받은 돈을 쓰는 행위도 무엇보다 소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정의연(정의기억연대)과 윤미향 사태를 보면서 나눔과 봉사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 착복 등 사익 챙기기와 일신영달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라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에게 매월 지급한 보조금을 관리해준다는 명목으로 몰래 빼내 용처도 모르게 사용했다면 단순 과실이 아니라 중대한 범죄행위일 수 있다. 아마 횡령과 사기에 해당할 것이다. 사실관계가 좀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며 검찰과 언론이 침소봉대했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는 것은 낯 두꺼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기부 받은 식품과 생활용품을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어느 비영리단체는 후원받은 물품을 되팔아 수익을 챙기고 직원들이 가져가거나 사용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제사보다는 젯밥에만 정신이 팔린, 한마디로 천박한 사람들의 일탈행위가 더 이상 묵과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모금과 사용, 온당치 못한 일탈행위 경계해야
기부와 함께 민주자본사회를 건강하게 해주는 요소가 자원봉사다. 학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민주시민의 역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자원봉사 지수=선진사회 지수’라는 공식을 내놓기도 한다.
자원봉사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자기의 시간과 기능을 주변의 환경과 어려운 이웃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수준의 단순한 활동이 아니다. 거기에는 의식과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그것은 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어가야 할 덕목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월등한 자원봉사 정신을 경험한 바 있다. 88서울 올림픽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를 말끔하게 복원한 것, IMF 사태 같은 국난을 거뜬히 이겨낸 것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사태에도 의연하게 대처해나간 것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건강사회의 필수요소임을 다시 한 번 깨우쳤다. 그래서 지금은 자원봉사활동이 ‘보유 및 잠재 에너지의 최대 활용’이라는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나눔 문화가 몸에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감나무의 까치밥을 들 수 있다. 나무에 열린 열매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날짐승과도 나누어야 할 소중한 자연의 선물임을 깨닫는 나눔의 실천인 것이다. 콩을 심을 때도 한 구멍에 한두 알만 넣지 않고 세알을 넣어 땅속 생명이 배를 채울 수 있게 배려했다. 우리의 몸속에 DNA로 각인된 선조들의 지혜와 정신을 십분 발휘해야하지 않겠는가.
IT 발달과 디지털화로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사회 계층 간 갈등을 치유하는 효과로 말하면, 특히 코로나19사태 이후 닥치게 될 사회질서 변화에 대처할 가치와 수단으로 말하면 나눔과 봉사보다 더 좋은 방책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