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시작’ 이란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알파벳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보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지도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번 내용은 제 대학원 은사이신 정종남 교수님(러시아어 공부 이것부터! 서울: 을지서적 출판부, 1998.)의 견해를 중심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50년 이상 또 제가 최근에 만나 뵈었을 때까지도 새벽까지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계셨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러시아어를 학생 입장에서 가르쳐 오신 분이라 누구보다 배울 점이 많으리라고 확신합니다.
1.‘모음을 먼저 제시한다.’
а э о у ы
я е ё ю и
й
주1)
러시아어 알파벳은 33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성학적으로 모음 10개, 자음 20개, 반모음(혹은 반자음) 1개, 기호 2개 입니다.
교수님은 위에 보시는 것처럼 모음을 11개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반모음(혹은 반자음) 'й'를 'ы-и-й'로 한데 묶은 것이죠.
그리고 기호 ь, ъ를 자음과 함께 넣어 22개로 재배치하였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언어학 지식이나 견해에 손을 가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분도 계실 수 있다고 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겠습니다. 언어를 음식 하는데 쓰는 '식(食)재료'라고 가정해 보죠.
농부들이 날마다 새롭고 다양한 식재료를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말과 글로써 만들어낸 언어도 그때그때 다르며 우리 생활 주변에 가득합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들에 있는 원래 그대로의 상태'- 언어 -가 아닌,'보기 좋게 다듬어진 상품'을 사게 됩니다.
바로 이 '조리 전의 식재료'가 '언어학 지식과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이해하기 좋게 가공한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사온 식재료를 먹기 좋게 '요리'하게 됩니다.
바로 이 '요리'가 우리 몫이며, 따라서 우리는 언어의 '요리사'가 되는 셈입니다.
먹고 싶게, 맛있게 그리고 웰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역할인 거죠.
장금이처럼요.
먼저 위의 모음은 단순히 보기 좋게 배치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말 모음 'ㅏ,ㅑ,ㅓ,ㅕ,ㅗ,ㅛ,ㅜ,ㅠ,ㅢ,ㅣ' 순에 따라 학생들이 받아들이고 익히기 쉽게 다듬었습니다.
처음 러시아어를 접하는 이에게 있을 불안감과 부담감을 덜어주며,
이제 막 시작하는 이에게 '먹고 소화하기 좋은 이유식'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알파벳 교육 4 - 지도 방법 ③'편에서
이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1) 참고로 위의 모음 배치는 '소문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실제 언어는 문장 첫 머리, 고유명사 등을 제외하고 주로 소문자 형태로 쓰이며,
'ы'는 대문자로 쓰이지 않으므로 소문자를 기본으로 정하였습니다.
2.'발음(к·끄)→단어(ки-но→кино)→이름(к·까) 순으로'
글자 발음을 먼저 배워 단어를 익힌 뒤,
이름과 그 순서는 노래- 러시아 민요 ‘Катюша'나 ‘텔레비전’-로 익히게 한다.
글자 발음과 이름을 따로 배우면 초기에 학생들이 겪게 되는 부담을 덜어주며, 서로 간의 혼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글자의 두 가지 큰 용도인 '글말'의 사용과 '입말'의 강화라는 '쓰임'이
글자의 이름과 순서의 암기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이 방법은 작게는 수업의 진행 속도와 리듬에도 탄력을 줄 수 있습니다.
3.먼저 인쇄체를 배워 읽을 수 있게 한 후 필기체를 익힌다.
이는 우리 글자에는 없는 인쇄체와 필기체를 구분하여 학습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 주어 편안하게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그리고 글자 모양은 먼저 소리를 익힌 뒤
인쇄체는 모음, 자음을 통틀어 Аа, Ее, Ёё의 경우만 다르며,
인쇄체와 필기체 간에 모양 차이가 적어 영어와 달리 쉽게 배울 수 있음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나으리라고 봅니다.
4.처음부터 단어를 익히도록 한다.
ок·но → окно / мо·ре → море
“말소리와 글자는 개별적·단독적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단어 속에서, 즉 다른 말소리, 다른 글자들과 결합 속에서 있을 때만이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라고 교수님은 언급하고 계십니다.
여담으로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재'도 교수님은 집필하셨는데
우리 한글을 단순히 모음에서 출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오이', '우유'와 같은 단어를 배울 수 있게 구성하셨다고 합니다.
모음만으로 이뤄진 어휘가 많은 모음이 발달된 우리말의 장점을 활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단어가 그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글자수 4개 이하의 빈도수가 높은 초급단어- 러시아 사람의 애칭, 도시명, 강, 산 이름 포함 -로 한정합니다.
왜냐하면 “4개가 넘는 단어는 개개 글자, 기호들을 눈으로 붙여 읽으려 하지 않고,
그림 혹은 그 단어의 첫 글자만을 보고서도 이미 머리 속에 새겨둔 기억력으로 그 단어를 읽어버리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 생각을 조금 보태면
초기에는 될수록 글자수가 적은 것에서 점차 긴 쪽으로 진행시키는 까닭은
처음부터 '긴 단어'를 제시하면 학습자가 쉽게 질려버릴 수도 있다는 점과
차곡차곡 그리고 정확하게 '소리'를 익히는 차원에서도 이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 점
모두가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처럼 흥미와 집중력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경향은 요즘 들어 더 강해진 듯 합니다.
대학시기 “러시아어 단어는 왜 이렇게 길지?!”라고 여기저기에서 불평하던 동기들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이러한 사항 또한 만일 실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교사는 이를 유연하게 보완, 전환시킬 수 있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단어 선정의 또 다른 원칙으로 'аканье'와 'иканье' 그리고 '구개음화'는 넣되,
“어음변화현상”인 '역행동화'와 '어말무성음화'는 나중으로 미룬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해당 글자의 발음이 단어 속에서도 변함없이 보존되는 단어”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어의 대표적 5가지 음운현상은 초급단계에 반드시 학생들이 익혀야 할 사항- 제7차 교육과정 -이며,
이 중 좀 더 많은 빈도수를 가지며, 자연스럽게 익히기 쉬운 내용을 부담 없이 체득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글자를 똑똑히 보고 바로 붙여 읽을 수 있도록
처음에는 'ок·но'에서 'окно'로 익힐 수 있도록 배치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글자에서 바로 단어로 넘어가는 경우, 소홀히 할 수 있는 '음절' 단위의 발음에 대한 연습도 보완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음절' 연습 또한 간략하지만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신 다른 교재와 차이가 있다면, 실제 쓰이는 단어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 단어 연습을 통해 별도로 행하는 기계적인 음절 연습을 대폭 줄였다는 데 있습니다.
5.처음부터 러시아어로 듣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대화 문장을 싣는다.
이 분은 누구세요? 이 분은 아빠입니다.
이 분이 아빠인가요? 예, 아빠입니다.
아니오, 삼촌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주스입니다.
이것은 커피입니까? 예, 이것은 커피입니다.
아니오, 이것은 맥주입니다.
엄마는 어디 있습니까? 엄마는 집에 있습니다.
아빠도 집에 있습니까? 예, 아빠도 집에 있습니다.
우산이 어디 있습니까? 우산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산은 저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 형식의 대화 문장이 러시아어로 실려 있습니다.
이에 붙여 교수님은 “흔히 외국어를 '눈'과 '손'으로만 배우려 한다.
그러나 '글자'보다 '귀'와 '입'으로 하는 '입말'을 앞세우고 여기에 힘을 실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외국어 공부에서 학생들에게 적극성과 흥미가 살아나고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입말' 공부는 일정한 단어, 문장의 습득 후, 문법 지식이 어느 정도 축적된 다음부터 시작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단어나 문장을 배우는 즉시 대화로 익히고 다져야 외국어 학습에서 적극성이 생기고 재미가 붙는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야 할 것이다.”라며 역설하고 계십니다.
이는 외국어교육학 일반이론과 상이한 면이 있으나 실제 경험에서 입증된 사실이므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들의 많은 논의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소리 교육'편에서 함께 생각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재의 핵심은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려면 우선 잘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알파벳 교육 시기부터 단어, 문장을 중심으로 익혀 바로 사용하게 하고,
나아가서 실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이끌자는데 있습니다.
- 우리 카페 회원분들 가운데 이 교재 제작에 직접 참여하셨던 분도 여러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 잘못된 부분이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어떠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조언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