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확신
한국교회는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는 신앙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신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구원론은 구원의 주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렸다고 말한다.
구원의 주권과 개인의 확신은 별개의 문제다.
믿음과 확신을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
믿음은 구원의 영역이고, 확신은 심리의 영역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직결되고, 확신은 개인의 마음 상태나 상황논리와 연결된다.
알아듣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하루아침에 회고당하고 경제적 파탄을 맞았다고 하자.
아니면, 병을 얻어 죽을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자.
심지어 자식이 희귀질환으로 죽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구원의 확신이 있겠는가?
특별히 초신자가 이 중에 하나라도 겪는다면 구원의 확신이 있겠는가?
구원의 확신은 상황논리에 해당하는 개개인의 마음 상태라는 뜻이다.
반면에 믿음은 구원의 주권과 결부된다.
믿음이 있지만 확신은 없을 수 있다.
확신은 없어도 믿음이 있으면 구원에 가깝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을 마치 죄인 취급한다면 그건 영적인 폭력이다.
욥은 끔찍한 재앙을 당하자 자신의 출생을 원망하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에게 야외 신앙은 있었지만, 마음은 상황논리에 점령당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
복음에 목숨을 건 바울처럼 믿음과 확신을 다 가지면 좋지만, 당장 한가지만 가지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믿음에서 확신으로 나가는 길은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고장난 시계처럼 멈춰서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의 확신보다 구원의 삶을 물으라.
그것이 삶의 복음화다.
한국교회는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걸맞는 삶이 없어서 지금의 형국에 이르렀다.
구원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확신이 있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위의 글은 스마트폰에서 바로 작성한 초고라는 점을 고려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