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현충사를 다녀오며 드는 생각 중에 여러 박물관에서 보아왔던 검(劍)이나 도(刀)의 형상이 시대별로 다르고, 같은 시대임에도 다른 형상의 검들이 존재하기에 기존에 정리해 두었던 상고사 자료를 바탕으로 검법(劍法)이나 도법(刀法)의 연원(淵源)을 찾아가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마침 검(劍)과 도(刀)를 다루는 여러 동호회나 단체에서 조선세법이라는 병서(兵書)가 화두가 되고 있었는데, 이 병서의 원류가 어디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어서 글을 쓰는데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래서 일단 이 조선세법의 연원을 찾아가다보면 어떤 단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보게 된 영상이 KBS 특집 몽골리안 루트 - 용병의 여정(1~4) - 이었다.
이 영상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맘루크인데 중앙아시아 일대에 산재해 살던 투르크족 계열 용병을 일컫는 말이고, 이들이 세운 나라를 맘루크 왕조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여러 지역에서 광범하게 용병으로 활약해 온, 이들 투르크족이 동아시아의 흥안령 산맥 인근에서 이주해 왔다는 사실이었다.(tip1) 이 점이 놀라운 이유는 환인(桓人)의 장자손 역시 흥안령산맥과 아무르강이 만나는 지역이 발원지였기 때문이었다.(tip2) 우리의 조상인 환인의 장자손들은 대부분 흥안령산맥과 아무르강이 만나는 지역에서 발원하여 남(南)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웠던 지역이 있는데, 그 지역이 지금 중국의 요녕성 일대이다. 이 요녕성 일대를 거쳐 간 철기시대 이후 환인 계열의 종족으로는 선비족과 가락족 등이 있고, 이들 종족이 세운 나라가 선비국이고 가락국이다. 또한 이 요녕성 일대는 아래 지도(tip3)에서 보는 것처럼, 철기시대 이전에도 환인의 갈래인 배달_환웅국과 단군국(고조선)이 점유한 지역이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요녕성 일대는 우리의 근원이 되는 민족인 환인과 환인 계열의 자손들이 대대로 나라를 세웠던 곳임을 기억해 두기로 하자.
이쯤해서 서두에 언급한 김해병서(金海兵書)의 연원을 찾아가 보도록 하자. 우리가 김해병서의 연원을 찾아갈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단서라고 한다면 병서 앞에 지명인 김해(金海)이다. 과연 김해는 어디인가. 필자는 물론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경상남도 김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해는 어디인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면 김해(金海)라는 한자이다. 김해(金海)의 해(海)자로 보건대 김해는 바다를 연안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김(金)은 다른 한자음으로 금(金)이며, 금(金)은 곧, 철이다. 필자가 중국에서 철이 많이 생산되었던 지역을 살펴보니, 아래 그림의 요녕성(tip4) 지역이 옛부터 철이 많이 생산되었고 지금도 상당한 량의 철 매장량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해는 경상남도의 김해가 아닌, 요녕성의 황해 연안이나 연안의 강줄기 따라 올라간 어느 지역이 옛날에는 환인 후손의 영토인 김해(金海)라는 곳이 있었을 거라는 추정을 해본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대 병서(兵書)와 관련된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신라 황창랑의 본국검법과 고구려 밀우 장군의 장백검법' 에 대한 내용 정도이다. 그런데 현재 전해지는 본국검법과 장백검법의 동영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검리(劍理)가 명-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신유도법(辛酉刀法)과 많이 닮아있다. 본국검법의 검리와 장백검법의 검리가 합쳐지면 신유도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명-청시대의 신유도법에서 본국검법과 장백검법이 분리되어 나왔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본국검법과 장백검법이 적어도 삼국시대에 존재하였기에 시대적으로 중국 명-청시대의 신유도법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중국의 신유도법 이전에 본국검법과 장백검법이 합본된 어떤 병서가 전해져 왔다는 의미가 된다. 어쩌면 본국검법과 장백검법이 합본된 병서는 신라에 전해져온 무오병서(戊午兵書)의 일부가 아닐까 필자는 추측해 본다.
참고로 본국검법과 장백검법 합본 형태의 신유도법은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집체형 군사 훈련의 용도는 아니다.(tip5) 군사용이라기보다 무예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장군이나 귀족계급이 훈련하는 검법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예도(銳刀), 조선세법은 장군이나 귀족계급을 포함한 군사들의 집체 훈련용으로 적합한 절도 있고 간결한 동작들로 구성된 도법(刀法)도 전해져 오고 있다.(tip6)
김해병서와 관련성이 있는 위의 내용 외에는 더 이상의 참고할 문헌이나 전해져오는 사료(史料)가 없는 관계로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 김해병서의 연원을 찾아보면, 김해병서는 위에 알아 본 것처럼 삼국시대 이전에 철(鐵)이 많이 생산되던 지역이었던 요녕성(遼寧省)일대를 점령한 나라의 인물이 만든 병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이전에 요녕성 일대를 점령한 나라는 어느 나라가 있을까? 아래 그림(tip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국시대 이전에 요녕성 일대를 점령했던 나라는 단군국(=고조선), 환웅국(=배달국), 환인국(=환국), 그리고 나라의 경계가 주변 강대국의 국력에 따라 변화한 가락국이 되겠다. 이들 나라 중에 전투에 능했던 나라는 기본적으로 신라나 흉노와 같은 유목민족들이다. 유목민족이 생겨난 배경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살기 좋은 평야지대는 환인의 장자손(長子孫) 계열의 종족이 차지 하였고, 차자손과 삼자손으로 내려 올수록 평야를 떠나 평원의 유목생활을 겸하거나 삼자손에서는 대부분 유목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척박한 생활 환경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단련된 DNA를 후세에 물려주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그러한 연유로 환인의 삼자손인 투르크족이 서천(西遷)하여 오랫동안 중앙아시아와 유럽, 이집트 등지에서 뛰어난 적응력과 전투력으로 용병활동을 하였거나 나라를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위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전투에 강했던 유목민족을 찾아보면, 환인의 장자손의 나라였던 가락국과 장자손의 서자손 계열의 단군국을 제외하면 배달_환웅국과 환인국이 남는다. 환인국은 신석기 문화이고 나라간의 전쟁이 많지 않았던 시기이므로 제외하고 나면, 전신(戰神)이라 불리웠던 치우천황이 있었던 배달_환웅국이 남게 되므로 배달_환웅국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김해병서는 배달_환웅국 시대에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지녔던 치우천황 전후 시대에 만들어진 병서(兵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또한 김해병서를 이은 신라시대 무오병서의 규모로 보아, 김해병서도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여러 병장기를 활용하는 무예 전반을 수록한 병서였을 가능이 있고, 무예도보통지의 24기(技)중 예도 28세처럼 전시(戰時)에 활용 가능한 실전적 도법(刀法) _ 조선세법 24세(勢)와 일정 수준 이상의 무예를 요하는 검법(劍法) 4세(勢)_본국검법과 장백검법으로 나뉘어져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조선시대에 정립된 무예도보통지는 선대(先代)의 무오병서나 김해병서를 복원한 책일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tip1>
<tip2>
이 사진은 흥안령산맥을 근거로 하던 선비족이 이동하여, 전연 혹은 북위를 세울 때 이동했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tip3>
<tip4>
위 지도의 빨간색 부위가 라마동이 속한 요녕성이다.
<tip5>
http://zairai.egloos.com/5877456
<tip6>
https://www.youtube.com/watch?v=Ivt2HjCJp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