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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향 그윽한 기대정(幾代井)종가
 
 
 
카페 게시글
기대정(幾代井)소식 알림방 스크랩 포은 정몽주 선생을 떠올리며 사색하게 되는 임고서원,
鄭萬和 추천 0 조회 73 12.12.16 14: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천을 지나는 길에 들려본 임고서원,

말끔하게 정리가 잘되어 있는 서원의 모습이

멀리 정자 위에서 바라보니 웅장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오랜 시간 7년을 걸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성역화 사업을 마무리하였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충효 정신을 일깨워주고

올바른 국가관을 함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영천시민의 뜻이 담겨있어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둘러보면서 역사공부를 새로 한 느낌이었습니다.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다.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긴장상태에 있던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도 탁월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이 살해하였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 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인조 21년(1643)에는 여헌 장현광을, 영조 3년(1727)에는 지봉 황보인을 추가로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다.

 

-문화재청 발췌-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5.95m에 이른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져 있으며, 나무가 자라나는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본래 이 나무는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그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없어진 임고서원을 1600년경 이곳에 다시 지으면서 은행나무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가을날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면 정말 아름답겠다 싶더군요..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기억

외웠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더군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마음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저도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1392년 3월,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져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몽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기회에 이성계 일파를 제거해야만 고려의 사직을 보존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정몽주는

우선 언관들을 시켜 정도전?조준?남은 등 이성계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

그렇게 해서 당시 유배 중이던 정도전은 감금시키고, 조준?남은?윤소종 등은 귀양을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이성계가 머무는 해주로 급히 달려가 아버지의 귀경을 재촉했다.

이성계는 부상당한 몸을 가마에 싣고 그날로 돌아왔다.

정몽주는 상황을 살피기 위해 병문안을 핑계로 직접 이성계를 방문했다.

이성계는 평소와 다름 없이 정몽주를 맞았지만, 이방원의 생각은 달랐다.

그날 정몽주와 이방원의 만남에 대해서는 [하여가]?[단심가]라는 시와 함께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이방원은 술상을 차려놓고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정몽주는 단호한 자신의 마음을 답가로 들려주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출처 네이버-

 

 

 

 

 

 

개방을 하지 않고 문이 닫혀있는 곳도 있어서

그냥 겉만 담아왔습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영광루..

 

 

 

 

 

 

서원 강당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서원 강당 오르는 돌계단이 멋스럽고...

마당에 들어서면

서원의 여러건물이 사방으로 세워져 있더군요.

 

 

 

 

 

 

 

서원강당 마루에

나보다 먼저 다녀간 어느 여행자의 손길이 느껴지는

강아지풀이 놓여 있어서 담아보고...

 

 

 

 

 

 

강당에는 홍문당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강당 안에는 여러 편액이 걸려있더군요..

 

 

 

 

 

 

 

강당 뒤로 묘우인 문충사가 있는데

올라가 보았더니 문이 잠겨있더군요..

내려오면서 담은 강당 뒷모습...

 

 

 

 

 

 

포은선생 신도비.

 

 

 

 

 

 

 

저는 역사 공부도 좋고

새로 배우는것도 좋지만

 

 이런 고택의 건물을 지날때

느끼는 그 기분이 좋아서

오래전 사람들이 살았던 그때시절의 상상도 해보는...

고택을 거닐어 보는 걸음이 좋답니다.

 

 

 

 

 

 

 

 

 

 

 

 

서원 옛건물이랍니다.

지금은 새로 복원을 하여

깨끗한 모습이었습니다.

 

 

 

 

 

 

 

 

서원 쪽에서 바라보면 조옹대 정자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조옹대 정자 아래는 용연이 있습니다.

저는 올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여기 임고서원도 은행나무가 많더군요.

가을날 다녀가면

노란 은행잎과 어우러진 서원 풍경이 아름답겠다 싶었습니다.

 

 

 

 

 

 

 

 

담을 잘라내어

길이 되어버린 곳도 보였습니다

시골 마을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조옹대,

포은 선생이 낚시를 하며 망중한을 즐겼다는 뜻을 가진 정자입니다.

 

 

 

 

 

 

 

 

 

 

정자 내부의 모습...

 

 

 

 

 

 

정자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영천시의 아늑한 풍경과

임고서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정자 위에서 내려다본 임고서원 전경..

 

 

 

 

 

 

 

 

조옹대 정자에서 바라다본

영천의 주변 풍경...

 

 

 

 

 

 

정자를 내려오는 길....

 

 

 

 

 

 

 

 

 

 

 

 

 

유물 전시관이 마련되어

들어가보면 포은 선생의 일대기를 다 볼 수 있답니다.

 

 

이방원의 손에 죽었으나, 이방원에 의해 전설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역사속 깊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죽은뒤 13년이 지나 이방원은 정몽주를 영의정에 추증했지요.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길에는 정몽주 같은 충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임고서원을 돌아보면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은 선죽교에 뿌린 피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전설로 남았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으로 전해지는 뭉클함이 있었습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지요

가끔은 이런 역사가 깃든 서원을 거닐어 보는것도

역사의 가을을 실감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멋진 어느날....

다시 찾아가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반겨줄것 같은 임고서원,

우뚝 서있는 노거수 은행나무가 이 아침에 떠오르네요.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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