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뼈를 꺾지 말아야
하는 이유
<민9:10-1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요19:32-36>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예수님(어린양)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말씀” 이 되시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했으며, 따라서 신약의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셨다. 그런데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도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고 했듯이,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으셨을 때도 군병들이 다리를 꺾지 아니했다고 했다.
그 당시 다른 범죄자들은 다리를 꺾는 것이 관례였으나 예수님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한 것이라고도 했다.
왜 예수님(어린양)의 뼈는 꺾지 말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말씀)이시고 보이는 예수님은 그 말씀을 가지고
오신 분이므로 보이는 예수님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피와 살과 뼤 등은
모두 말씀이 된다. 즉 보이는 몸체가 사실적으로는 말씀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이 아니고 형이하학이지만, 비유로서 그렇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의식을 베푸실 때 포도주(피)와
떡덩이(살)로서 이것이 내 피요 내 살이라고 하실 때도 곧 그와 같은
이치에서였다.
포도주와 떡덩이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했으나, 그같이 상징된
예수님의 피와 살이 또한 궁극적 본질적으로 “말씀” 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의 진리를 상징한 비유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피도 말씀이요, 예수님의 살도 말씀이요, 예수님의 뼈도
동일하게 말씀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피와
물을 쏟아내었다고 했으며 살이 찢겨 죽으셨던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지신 그 십자가를
본받아 우리 각인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던 것이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주신 “비유의 말씀” 에서 죽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실제 그 육체가 죽임을 당했으나 우리에게 부탁하신
십자가의 뜻은 우리의 육체가 죽어야 함을 뜻함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비유의 말씀을 깨끗이 비워내라는 깊은 내용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액면 그대로 그 말씀대로 살면 영생인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예수님이 주신 비유의 말씀에서
반드시 죽어야 부활을 받는 영생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육체로 죽고 육체로 다시 살아나셨으나
그것은 비유법일 뿐이고, 비유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겐 영적으로 죽고
영적으로 살리라는 것이다. 다시 힘주어 말하거니와 예수님은 육체로 죽고
육체부활을 하셨으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영적으로 죽고 영적으로 살게 됨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인간은 초림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죽고, 다시 오늘날 재림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영생하라는 뜻이었다. 죽어야(영적 죽음) 부활이 있는
것이고(영적 부활) 죽지 아니하면 영생의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초림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죽고, 재림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부활하는
것이 영적 죽음이요, 영적 부활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죽어야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부활을
하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예수님이 주신 말씀 하나에서 죽음도 되고 동시에 영생도 되다니
이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상술했듯이 예수님의 몸체를 이루는 피와 살과 뼈가 모두 동일하게
“말씀” 을 뜻한다. 피와 살과 뼈는 비유이고 말씀은 본질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는 쏟아지고 살은 찢겨져서 죽으셨으나,
“뼈” 는 꺾지 않아 아무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하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뼈는 무엇인가? 모든 사물은 상대적으로 표현된다.
예컨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고 했을 때, 물도 말씀을 뜻하고
성령도 말씀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문맥을
통해 보면, 물의 말씀은 하위개념이고
거듭나는 성령의 말씀은
상위개념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몸체를 구성한 살과 피와 뼈 등에서 유독히 뼈를
꺾지 않고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는 기록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뼈야 말로
가장 상위개념의 말씀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비유로 가지고 오신 동일한 말씀을 뜻하는 피와 살은
하위 개념의 말씀이라면 뼈라고 하는 말씀은 상위개념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다. 때문에 그 비유의 말씀에서 반드시
죽으라는 뜻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물과 피를 쏟으시고 살이 찢겨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비유속에는 반드시 깊이 감춰진 본질의 말씀이 있으매
그 진리의 말씀을 일컬어 “꺾이지 않아야 할 뼈” 라고 한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서 죽는 것은 비유의 말씀에서
죽는 것이고, 그로부터 다시 부활하는 것은
비유속에 감춰진 오늘의 재림 때 진리의 새말씀으로 부활하는 것이 된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란 반드시 죽어야 할 비유의 말씀이 됨과 동시에
그 비유안에는 반드시 오늘의 재림 때 다시 살게 되는 진리의 말씀이
감춰져 있다는 뜻에서 “꺾으면 안되는 뼈” 가 있다고 한것이다.
뼈란 몸체를 떠받쳐 주는 핵심 골격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비유를 위해 본질(뼈)이 있음이 아니고 본질을 위해 비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을 위해 영생이 있음이 아니고 영생을 위해 죽음이 먼저 있었다.
비유는 죽이는 것이고 본질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는 사망이요, 나중은 영생이다. 오늘날 죽고자 하는자 반드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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