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상세정보]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정리는 영덕군 축산면의 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경정1리·경정2리·경정3리로 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뱃불·수구너미[車踰洞]·오매(烏梅), 등이 있다.
[명칭 유래]
경정리(景汀里)는 마을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경정이란 지명은 『경상도지리지』에 경정포(景汀浦)라는 지명이 보이며,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차유진 경정육리'와 '경정진리'라 하였다.
경정1리는 1449년(세종 31)에 반남박씨(潘南朴氏)가 마을을 창건하였고, 영해박씨(寧海朴氏)와 김해김씨(金海金氏) 등이 입주하여 큰 마을로 개척하였는데, 마을 앞에 약 500m 정도의 흰 모래밭이 있어 청명한 날에는 금빛을 이루니 마을 이름을 '백불[白沙洞]'이라 불렀다.
이후 마을 경관이 아름다워 경정(景汀)으로 바뀌었다.
경정2리 수구너미 마을은 영해부사(寧海府使)가 마을을 순시하던 중 말을 타고 재를 넘으면서 이 마을의 형국을 보고 우마차(牛馬車) 길처럼 생겼다고 하여 우마차의 차(車)와 넘을 유(踰)자를 따서 차유(車踰)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경정3리 오매 마을은 16세기경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들어왔고, 훗날 김해김씨가 입주하여 살던 중 남쪽에 오두산(烏頭山)이 있고, 마을 앞에는 매화산(梅花山)이 있어서 오(烏)자와 매(梅) 자를 따서 '오매'라 칭하였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까마귀가 열매를 물고 들어오는 형국이라 하여 오매라 하였다고도 한다. 또 까마귀가 춤을 추고 들어오는 형국이라 하여 '오무(烏舞)'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경정리는 조선시대에는 영해부(寧海府)에 속하였고, 갑오개혁(甲午改革) 뒤인 1895년(고종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지방 관제 개편 시 영해부가 영해군(寧海郡)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매동(烏梅洞)과 차유동(車蹂洞) 일부, 경정동을 병합하여 경정동이라 하고 축산면에 편입하였다.
1945년 마을을 구(區)로 나누어 '뱃불'은 경정1구, '차유'를 경정2구, '지경'과 '오매'를 경정3구로 하였는데 1950년 이후 '구'를 '동'으로,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여 경정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경정리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은 문등산[134.8m]과 높이 약 150~200m 산지들이, 북쪽은 무등산[97.4m]과 높이 약 100m 산지들이, 북동쪽에는 말미산[117m]이 독립 구릉지 형태로 솟아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검은솔골· 호명골· 문등골· 앞가무골· 마당바위골· 소치골· 곰등골· 버듬골 등 크고 작은 골짜기를 형성하며 동해로 유입되고 있다. 해안선은 암석해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황]
경정리의 2020년 말 면적은 3.14㎢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280가구에 506명[남 232명, 여 274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에 임하고, 서쪽으로는 고곡리, 남쪽으로는 영덕읍 석리, 북쪽으로는 축산리와 접하고 있다.
주요 교통로는 남쪽 경정3리에서 해안선을 따라 경정1리와 경정2리를 지나 축산리로 빠져나가는 국가지원지방도 제20호선이 개설되어 있다.
경정1리에는 1972년 2월 '지방 어항'으로 지정된 경정항이 있고, 남쪽에는 경정해수욕장이 있다. 과실류인 사과·배·복숭아 등과 특용작물인 참깨·들깨 등을 재배하고, 경제작물인 시금치·토마토·파·양파·고추 등을 점차 확대하는 추세이다.
출처: 디지털 영덕문화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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