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그냥 ‘가난한 나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배은망덕한 민족입니다. 6.25전쟁 당시 유엔 16개국의 도움으로 우리는 적화통일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16개국이 도와준 배경에는 에티오피아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그 배경에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희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공격하자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 갔다가 제네바의 국제연맹에 가서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집단안보’를 주장하며 에티오피아를 도와달라고 애타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에티오피아를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시대에 자기나라의 이익과 관계없다면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나라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인접국가인 수단으로 와서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을 불러내어 군사훈련을 시켜서 오직 자기들의 힘으로 1941년 이탈리아를 몰아내었습니다.
그 후 유엔이 설립되는 과정에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말자!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억울하게 침략당하면 우리 모두가 도와주자!’ 라고 하는 ‘집단안보’를 주창했습니다. 한 마디로 연약한 여인이 조폭에게 억울하게 구타당하면 모든 시민들이 일어나서 그 여인을 구해주자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약한 나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마련한 이 집단안보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세계평화를 향한 크나큰 진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유엔이 설립될 때 집단안보를 유엔헌장 42조에 성문화시켰습니다.
그 후 첫 번째로 일어난 전쟁이 바로 6.25였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먼저 하일레 세라시에 황제는 집단 안보를 주장하며 10만 달러를 원조하였고,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은 유엔헌장 42조에 의하여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였습니다. 16개국이 전투병력을 파견했는데 만일 일주일만 늦었더라도 우리는 지금 시청 앞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대를 이어 충성하자! 김정은 동지 만세!”라고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하일레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자기의 근위병들을 부추겼습니다. 다른 15개국에서는 한국 전쟁터에 가기 싫어하는 군인들을 강제로 보내기도 했으나 오직 한 나라, 에디오피아에서는 100% 모두가 지원자였습니다. 그 이유는 약자의 서러움을 철저히 맛보았기 때문이며 그들이 존경하는 황제의 선동이 그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격파’라는 뜻의 ‘강뉴 부대’를 파병할 때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우리 에디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 그것을 실천하기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강뉴부대의 구호는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Fight until you win, or die)”였습니다.
약한 나라의 서러움을 철저히 맛보았던 강뉴부대는 16개국의 참전용사 중에서도 가장 용감히 싸웠습니다. 5차에 걸쳐 6037명이 참전하였고 122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으나 포로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의 침략을 생각하면서 이기든지 죽든지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253번 전투에서 253번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00전 100승이 아니라, 253전 253승이었습니다.
6.25당시에 에티오피아부대에 있었던 유일한 한국 민간인이었던 윤종완씨(83세)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에티오피아 부대는 미7사단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하던 때에 미군부대에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미군들의 총알받이가 되었습니다. 전세가 불리하고 위험한 곳에는 강뉴부대가 파견되었고, 에티오피아군이 파견되는 곳에서는 반드시 승리했습니다. 자기 나라가 서러움을 당해봤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전쟁을 자기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강뉴부대는 미군부대의 해결사였습니다.”
너무나 용감히 싸웠기에 그리스 종군기자인 ‘Kimon’이란 사람은 16개국 유엔군 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강뉴부대 용사들에게 감동하여 이것을 후세에 증언할 사명감을 느끼고 ‘Kagnew’라는 책을 남겼습니다. 이 책은 에티오피아말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Koica 송인엽 박사가 번역하여 ‘강뉴’라는 제목으로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전쟁영웅 중에서 지금은 딱 한 분 '일마 벨라츄'라는 분이 치매에 걸려서 살아계십니다. 그 당시에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최강국이었고 국제사회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강대국이었습니다. 우리의 국민소득이 70$이 안될 때에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0$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참전용사들은 월급을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가장 용감히 싸운 후 6.25가 끝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자 7년 동안 극한 가뭄으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습니다. 목축업을 하던 나라에 풀이 없어지자 거의 모든 가축들이 굶어죽었고, 국민소득 3000불이 넘고 아프리카 최강국이었던 에티오피아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해에는 100만 명이 굶어죽기도 했습니다. 가난해지자, 1974년 ‘맹게스투’라는 군인이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에티오피아는 공산국가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가 되자 북한의 김일성은 멩게스투와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이것은 적화통일을 방해한 철천지원수인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강뉴 부대원들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으며 또한 복수와 응징의 신호탄이었습니다. 6.25 전쟁에 패전한 이유가 바로 유엔군의 참전이었고, 유엔군이 참전한 이유는 유엔헌장 42조였고, 유엔헌장 42조를 주창한 사람은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였기 때문입니다. ‘집단안보’라는 명목으로 유엔군 참전을 이끌어내고,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가장 용감하게 싸웠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원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반도 공산화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죽여 화장실에 매장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체를 똥통에 넣고 덮어버렸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에디오피아 불세출의 영웅,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싸우겠다고 스스로 지원했던 참전용사들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하기도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6.25참전용사들은 핍박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에티오피아, 그 에티오피아에서도 더욱 비참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핍박을 견디다 못해 어떤 분들은 참전한 사실을 숨기고, 이름도 성도 바꾸고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습니다. 공산정권에서 민주정부로 바뀐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분들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공산치하 17년 동안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설움을 견디며 살아왔지만 그 분들이 진정 참을 수 없는 것은 배고픔과 자식들의 원망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셨던 그 분들은 자기들을 파송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고, 도움을 받은 우리도 그 분들을 잊었습니다. 6.25당시 우리나라의 존망이 풍전등화였을 때 우리나라에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외국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자식들을 외국에 도피시켰을 때, 그 분들은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를 위해 달려왔고 가장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도 하고 부상당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코 항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침략자에게 항복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의 영웅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66년간 누더기 같은 침상에 누워 계셨다가 201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를 도우려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총상을 입고 공산주의에게 짓밟히고 자식들에게 원망을 들으며 가난에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다리에 총상을 입고 팔다리가 마비되어서 66년간 누더기 같은 침상에 누워계시던 ‘테르데 마르샤’씨입니다.
이 분의 희생과 눈물 속에 우리의 과거가 있었고, 이 분의 과거 속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있었습니다. 온 몸으로 총알받이가 되어 우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분들의 피와 희생과 고통 위에 서 있습니다. 이분들이 공산정권에 짓밟히고 자식들로부터 원망을 들으며 피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쾌락을 찾아 헤매고 명품을 찾아 헤매었지요. 이분들이 굶고 있을 때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과 맛집을 찾아다녔고, 이분들이 대한민국을 도와준 것을 후회할 때 우리는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미개한 후진국이라고 생각했지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미개한 후진국이 아니라, 우리의 은인의 나라입니다. 배은망덕한 우리는 저주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당하셨지만, 이분들은 우리를 공산주의에서 구원하기위해 희생당하셨습니다. 우리는 6.25를 잊었지만, 이 분들은 아직도 6.25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계십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한국전 참전 기념탑 앞에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한국전 참전 기념탑 앞에서
2023년 3월 하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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