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궤를 멘 소처럼
거금도에서 초등학교 1,2학년시절을 보냈다.
마을 뒷동산에는 조그만한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는 마을의 식수원이면서 동네 앞 논밭에 물을 공급해
주는 수원지가 되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은 산 위에 소를 풀어놓고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했다.
소들은 좋은 꼴을 배불리 먹고 나서 목이 마르면 우리가 놀고 있는 물가로 내려와서 물을 쑥쑥 흡입하여 갈한
목을 축이곤 했었다.
소는 참 힘이 쎄다. 그러면서도 그 강한 힘으로 사람을 헤치지 않는다. 소는 참 착하고 충성된 짐승이다.
어린 내가 끄는 대로 소는 조용히 따라온다. 나를 끝까지 믿어 준다. 그래서 내가 끄는 데로 잘 따라 준다.
어릴 때 소는 내 친구였다. 소가 그 혀로 사람의 머리를 한번 쓱 핥으면 머리카락은 그만 곱슬머리가 된다.
(그래서 내 머리가 곱슬머리가 되었나보다. 믿거나 말거나...)
삼상 6:7~15에 보면 법궤를 멘 소가 나온다..
여기에 나온 법궤는 교회를 의미하고 두 마리 암소는 성도를 상징한다.
수레는 성도의 기도이고 , 기도하는 무릎은 천국 수레의 바퀴이다.
뿐만 아이라 기도의 눈물은 수레를 구르게 하는 기름이다.
우리 교우들이 법궤를 멘 소처럼 주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기면 정말 훌륭한 성도가 될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0A47345077F4B830)
홀로 새벽제단을 위해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
스산한 가을바람이 살갗을 스치면서 지나간다.
깜박이는 신호등이 보름달 만큼이나 크게 내 얼굴을 비추고
이른 새벽, 자신를 바라보는 운전자들에게 애써 윙크하며 미소한다.
동구밖 신장로 길에서 다시 오실 어머니를
먼지를 뒤집어 쓴채 목 빠지게 기다리던 그 고갯길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오늘 처럼 찬바람이 불고
아침 안개가 나즈막하게 깔린 황톳 길을
힘차게 달려오던 시골버스를 나는 잊지 못한다. 잊을 수 가 없다.
멀리가신 어머니, 쉽게 오시지 못함을 뻔히 알면서도
무작정 기다려 놓고서는
멀어져가는 버스를 원망하며
아쉬운 듯 손 흔들던 그 때 그 시절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1F4836507A8ECB13)
"처음에는 그것이 슬픔인줄도 모른 채 슬펐고
다음에는 그것이 슬픔인줄 알고 슬펐고
지금은 그것이 슬픔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슬프다."
하지만 이 슬픔이 지금의 나를 길러 냈다.
내가 슬펐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슬픔도 눈에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슬픔이 눈에 보였기에 나의 슬픔은 언제나 후순위로 미루어둘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혼자 있을 때만 슬프다.
외로움과 슬픔은 세트처럼 따라 다니면서 서로 동무한다.
언제나 길 떠나는 나그네처럼 내게 지닌 것 별로 없지만
타인의 눈치 살피지 않고 차분히 슬퍼할 수 있는 이런 호젓한 외로움이 있어
나는 늘 내 인생이 고맙고 감사하다. 그래서 내 삶의 자리가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025A4B5078E9FA30)
개척교회 성도들은 그 마음들이 여리다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 이다지도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억지로 교회출석해 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일이 무슨 목회자를 위하는 것처럼 폼을 제고 있으니...눈물이 난다.
"헌금 강요를 하지말았으면 한다"
"건축을 한다면 교회를 옮길 것이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설교는 하지 말아라"
"술 담배이야기, 한번만 더하면 다른 교회로 가겠다"
"교회일을 함께 하자는 부탁은 목사님이 오버하는 것이다"
"헌금봉투에 기록된 감사내용과 이름을 호명하지 말기를 바란다"
"1년만 교회 나오고 그만 둘테니 그 다음에는 알아서 해라"
많은 것을 요구하고 참으로 여러가지를 애써 가르치려한다.
그래서 더욱 기도하게 되고
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너무 인간적이다보니 한없이 절망하는 한숨도 때때로 있지만
그럴 수록 오늘도 순진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면서
찌그러진 입술을 세우고 고개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Shepher
첫댓글 오늘 대표기도하는 아내가 기도 중에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온 교회가 눈물로 가득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제 자신도 제대로 설교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설교본문을 교회카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