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떠난 후 그 묘지를 찾아가 술잔께나 바치고
소리 한자락 바치던 선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임백호도 한축 끼었고, 아마 그가 바친 황진이 추모시가 가장
절창일게다. 그걸 우리 말로 순순하게 바꾼게 흥타령으로 즐겨
부르게 됐던 것일테고, 아마 어떤 풍류랑은 내가 임백호 보다
못할게 뭐 있나. 하면서 새로운 황진이 추모시를 짓겠노라
나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자와 죽은 자의 경개를 이처럼
서럽게 묘사할 다른 말이 몇구절이나 더 나올 수 있을까?
무덤 앞에 잔을 골백번 올린들 그 잔을 잡아 줄 손길이 없음에야......
이 대목 흥타령으로 배워 보자. 진득하니 따라 불러보면
꼭 황진이 나와라 불러댈게 뭐 있을까. 살아 있는 미운 정 고운 정
님들에게 넌즈시 들려주어. 어느 훗날 홀로 있을 때를 미리
대비함이 어떠할까? 누군가는 이 소리 듣고 한소식 얻을 것이다.
아무개 처럼 마이너스 통장 신세지고 시원한 옷이라도 오갈지 모른다.
흥타령
푸른 풀이 우거진 골짝. 내 사랑이 묻혀있네. 진이여 내 사랑아. 앉았느냐
누웠느냐.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어여쁜 그 모습을 어디다가 두고
땅속에 뼈만 묻혀 아무런 줄 모르네그려. 잔을 들어 술 부어도 잔을 잡지
아니 허네. 아이고 데고 어허 나흐으으으 성화가 났네 헤.
보라사부는 한양대와 중앙대 음악대학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5호 정권진, 김소희, 오정숙명창에게 사사. 서울시문화재 이옥천 명창과
임방울 명창의 손녀이고 전)국립창극단 지도위원을 역임한 임향님 명창에게 사사받음.
오갑순명창에게 가야금 병창 사사. 한양대 음대에서 음악정교사 자격취득.
동아일보사의 동아문화센터 판소리 남도민요 부문 지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