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맞아 우리 집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냉장고 새 것으로 사거라”
80이 넘도록 평생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곧장 장남인 우리 집에 오셔서 사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서울 도시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일까 의논했습니다.
그 때 우리 아들이 중학생인데 “아무래도 할아버지 전용 냉장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냉장고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아내도 주부로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냉장고 쓸 일이 많지 않으실 텐데. . .!?”
아들과 딸이 합창으로 단호하게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노인이시니까 혼자 좋아하시는 것을 따로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와는 식성이 다르잖아요? 그동안 농촌에서 농사만 지으시던 분인데. . . 이제는 도시에서 신기한 것도 많으실 거고 . . .좋아하시는 것들도 많이 생길 것이고. . .또 공동 냉장고를 여시다가 문을 제대로 닿지 않으신다면 음식이 상할 염려도 있고요. . .등등 아무튼 할아버지 전용 냉장고를 사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아버지 전용 자그마한 냉장고를 하나 장만하여 아버지 방에 두었습니다. 전용 냉장고를 보신 아버지는 무척 만족해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아버지는 당신이 좋아하시는 먹을거리를 사다 냉장고에 보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빵, 과자, 만두, 과일 등등 항상 냉장고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가 아침 일찍 외출하고 나면 항상 아내가 아버지의 냉장고를 검사했습니다. 문이 제대로 닫혀있는지. . .상한 음식이 없는지. . 등등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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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넷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큰절로 아침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 때 마다 아버지는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중학생인 딸과 아들은 툭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아버지에게 큰절을 하자고 했습니다. 용돈 받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내와 딸, 아들 그리고 나 넷이서 아침 일찍 아버지에게 큰절로 아침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시지 않고 흰 봉투 하나를 내놓으셨습니다.
“이 돈으로 너희들 냉장고를 새것으로 사거라. 내가 보니까 냉장고에서 소리도 많이 나고 찌그러진 데도 좀 있고 너무 오래 된 것 같다. 이 돈으로 새 것으로 사거라. 내 냉장고는 새것인데, 나만 새 것으로 쓰면 되겠는가. 온 식구 음식을 넣는 냉장고가 더 좋아야지”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지만 감동적이었습니다. 집안 살림에 대하여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봉투 안에는 자그마치 1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송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