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장 실용주의적 복음주의
“우리 시대의 특징은 수단만을 중시하고 목적을 경시하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쉬타인
기술적인 혁명은 사무실이나 가제 도구에만 이르지 않는다. 해 아래 모든 것에는 방법이 있고 기술이 있다. “어떻게 당신의 주방을 개조할 것인가?”, “어떻게 재능이나 돈이나 열정 없이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당신의 아이를 완벽하게 키울 수 있는가?”, “어떻게 적극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는가?” 등등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도구들을 그 실용성에 의해 평가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심지어 우리의 생활까지도 실용성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모조리 평가하고 있다.
알란 블룸에 따르면 교육은 실용주의의 압력에 굴복하였다. “지성적인 생활은 흔히 호소력이 없는 것으로 여긴다. 유용성이 없는 지식, 다시 말해서 이력서의 경력 사항에 명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은 학생의 미래를 위한 교과 편성에(커리큘럼) 들어설 자리가 없다”라고 그는 말한다. 교육 기관들이 통합된 세계관을 제공하는 일을 탈피해 다양하고 서로 관련이 없는 견해들과 경향들을 소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는 거인일른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나 지성적으로는 난장이에 불과합니다.” “오늘날의 교육에서 ‘전통이냐 테크닉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렸으며 그 중에서 테크닉이 훨씬 더 우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이 개인의 경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될 때 교육은 개인의 삶의 의미도 시민 문화도 제공할 수 없게 된다.”(에바 브렌)
교육이란 말 대신에 “교회”라는 말을 삽입해 보도록 하자. “신앙과 지성의 삶은 흔히 호소력이 없으며 유용성이 없는 지식, 즉 ‘그리스도인의 인생 노정’에 명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은 신자의 기독교적인 삶의 비전에 아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에바 브랜의 주장은 이렇게 번역될 수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에서 ‘전통이냐 테크닉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 테크닉이 훨씬 더 우세를 보이고 있다. 성경이 개인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결해 주는 법칙들과 단계들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될 때 기독교는 개인의 삶의 의미나 기독교 공동체의 의미를 제공해 주지 못할 것이다.”
실용주의의 복음주의적 뿌리
미국 교회가 미국이라는 사회에 의해 형성되었다시피 미국 역시 교회에 의해 형성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복음주의는 현대 세속 문화에 존재하고 있는 실용주의적 요소들을 창조하는 데 기여하였다. 리차드 홉스타터의 지적이다. “초기 미국 기독교에서 합리성과 학식의 역할을 심각하게 축소시킨 모든 것은 후일 세속 문화 속에서의 합리성과 학식의 역할을 또한 축소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사상들이란 무엇보다도 구체적 기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 교리와 사상의 세련에 대한 능멸, 사상가들이 다른 사람의 정서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사람이나 감정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연예 오락 메스 미디어 종사자들)의 그늘에 가려지게 된 모든 현상은 20세기에 새로 나온 것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미국 프로테스탄트의 유산들이다.”
좀더 폭넓은 일반 사회 문화가 실용주의적 신앙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기 이미 훨씬 이전에 미국의 복음주의가 그러한 실용주의적 신조를 포용하고 있었다는 이러한 생각을 홉스타터는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끌었던 제 1차 대각성 운동(18세기 중반)을 제 2차 대각성 운동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초기의 대각성 운동시 신학적, 철학적 학문적 천재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바로 전도자였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초청하였는데 다름아닌 교리에 대한 명료한 선포를 통해서 그 일을 수행했다. 그는 심지어 원죄 교리나 칭의 교리나 하나님의 주권 교리와 같은 인기 없는 교리들도 과감히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전하였던 것이다. 휫필드는 하나님의 선택 교리와 다른 교리들을 그의 전도 설교에서 활용하는 길을 찾았다. 그렇게 교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들은 식민지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예상을 뛰어넘은 부흥을 낳았다.
그러나 제 2차 대각성 운동시에는 메시지가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전환되었다. 첫 번째 대각성 운동에서는 강조점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에 있었다면 두 번째 대각성 운동에서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초점이 있었다. 이리하여 구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듣는 사람들이 해야만 할 일을 할 수 있게 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테크닉과 방법의 큰 체계가 등장하게 되었다.(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대중 조작이라고 부른다). 에드워즈나 휫필드에게는 부흥이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였다. 그에 반하여 나다나엘 테일러와 찰스 피니에게서 부흥은 “수단을 올바로 사용한 것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스티븐 버크에 의하면 뉴잉글랜드의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의 신학을 좀더 세속적인 환경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티모시 드와이트와 같은 신세데 목회자들은 “그 도전에 응하여 제 1차 대각성 운동이 가지고 있던 초자연주의를 버리고 개량된 실용적 칼빈주의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제 2차 대각성 운동은 “앞의 각성 운동과는 달리 신앙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용솟음이 아니라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계산되고 계획되고 실천된 노력에 따라 발생된 것이다. 이 <프로테스탄트 대항 종교개혁(Protestant Counter-Reformation)>의 알려진 지도자로서 드와이트는 이 운동의 색깔과 보폭을 정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현대 복음주의의 성격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운동을 단 하나 들라면 다름아닌 바로 이 제 2차 대각성 운동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버크 교수는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와 미국의 문화적 가치들이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상 바로 이때부터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제 1차 대각성 운동으로부터 제 2차 대각성 운동으로의 이행은, 그리고 초기 청교도들의 종교개혁 신앙으로부터 미국이란 국가를 세운 국부들의 이신론으로의 이행은 많은 면에서 칼빈주의로부터 알미니안주의로의 이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버크는 “철저한 칼빈주의가 18세기 청교도들이 소유했던 대단히 초자연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면 알미니안주의는 아주 인간 중심주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죄인이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선포하였으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좀더 자립적이며 도덕주의적인 신학을 설파하였다.”
조지 마스든은 “에드워즈 시대 이후 미국의 부흥 신학은 신앙적 경험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점차 이동하였다— 자유 의지는 사실상 미국의 도그마였다”고 관찰하고 있다. 특별히 <잭슨식 민주주의>로 채색된 기독교의 구원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회심은 올바른 방법을 찾아 사용하는 데 달려 있게 되었다. 복음주의적 테크닉은 전파되고 있었던 복음의 내용을 흐리게 하기 시작하였다.
재 2차 대각성 운동이 만들 낸 그 세대의 신학자들, 특히 예일의 신학자들은 자기들이 칼빈주의자들이며 자기들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칭의와 선택과 기타 나머지의 교리에 대하여 굳게 확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벨리미와 같은 사람은 “교리를 실천에 종속시켰다”고 버크는 쓰고 있다. “벨라미는 절박한 자신들의 ‘이익’을 검토해 보라고 죄인들에게 권면하였다. 신앙적인 헌신들은 일종의 ‘편이’의 문제이며 측정할 수 없을만큼 큰 개인적인 혜택이었다. 이러한 논지는 다름아닌 바로 자기애의 속성에 호소한 것이며 이와 같은 자기애는 벨라미를 비롯하여 모든 철저한 칼빈주의자들이라면 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라고 정죄하던 것이었다”고 버크는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벨라미는 그의 전도의 열정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원칙을 위반하고 효용성(실용성)의 제단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동이다. 제 1차 대각성 운동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전도자가 목에 두른 띠였을 뿐만 아니라 진정 순수한 부흥의 필수불가결한 내용이자 동기였다. 제 2차 대각성 운동에서 예일 대학 신학부 교수 한 사람이 그의 신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그가 복음 전도의 무대 위에서 전하고 있는 것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침내 인간 중심적인 잭슨식 민주주의의 세계 속에서 인간 중심적인 메시지의 효용은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이론적인 고수(固守)를 압도해 버렸다.
에드워즈의 손자인 티모시 드와이트는 칭의가 의로움에 대한 객관적이며 법정적인 선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대신에 칭의가 마음과 삶을 주관적이며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종교개혁자들에 따르면 이 칭의 교리야말로 교회가 서기도 하며 무너지기도 하는 바로 그 진리이다). 물론 티모시 드와이트는 신자의 의로움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에만 있으며, 신자가 그 칭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신학을 전도의 대열에 이끌고 간 사람들은 그와 같은 신학 교수들이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복음적 확신을 신대륙의 여러 개척지에 전한 사람들은 말을 탄 용감한 순회 전도자들이었다. 악조건을 무릅쓰고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간 순회 전도자들은 그들이 접촉하게 되었던 개인주의자들의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홉스타터에 따르면, “그들은 단 한 가지 골수 신조를 가진 일종의 조야(粗野)한 경건주의적 실용주의를 발전시켰다. 그 신조란 다름아닌 그들의 영혼들을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가능한 한 널리 구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교육받은 목사의 정교한 신학적 무장이란 단지 불필요한 장식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심각한 결점일 수도 있었다. 순회 전도자가 자기의 짧은 지식과 사상에 대한 유일한 자기 방어의 답변은 자기는 결과를 내며 회심을 숫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 방어를 위해서는 아주 간단한 대답이면 충분했다.”
에드워즈와 휫필드의 진리 중심의 전도와, 기업화된 기독교의 테크닉 중심의 다양한 쇼 사이의 간격은 찰스 피니(1792-1875)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쓴 <조직신학>은 유용성 면에서 격찬을 받았다. 그 책의 현대판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다. “우리 주의 많은 종들은 ‘역사하는’ 복음을 부지런히 추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 책에서 반갑게 그 복음을 찾을 수 있다고 쓰는 바이다.”
피니는 죄인들은 중생을 “효과 있게 하는 작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죄인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을 하기에 요구되는 모든 기능과 자연적 성품들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그러므로 피니에게는 회심과 성화의 과정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테크닉에 의존하고 있었다. 피니는 “부흥은 기적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도 기적에 의지하지 않는다. 부흥은 순전히 수단을 올바르게 사용한 철학적 결과이다”라고 말했다.
19세기 말 즈음에는 부흥 운동이 드와이트 무디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무디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면 당신이 ‘어떻게’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디는 자신의 설교들을 그 설교들이 죄인들을 회심시키기에 적합한지 아닌지에 의해 판단했다“고 마스든은 지적한다.
무디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였다가 전도자가 된 빌리 선데이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전도 집회에서 극적인 설교로 청중들을 뒤흔들어 놓았다. 신문사에서 그에게 어떻게 부흥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물어보자, 선데이는 대답했다. “내가 하는 일로 받는 보수는 한 영혼당 겨우 2불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회심시킨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 나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어느 다른 전도자보다 훨씬 적게 벌고 있다”.
또 선데이는 “내 생각으론 부흥이 그 자체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며, 다른 사물들과 똑같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판단될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보다 더 위험한 교리는 없다”고 말했다. 마틴 마티가 언급한 대로 “부흥 설교는 한 개인이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 거의 의지의 행위에 의해 성취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 역사에서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는 언제나 초월적 신앙이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시작하여 점차 인간적인 유혹에 굴복하여 자기 의지와 자기 노력을 신뢰하는 데 빠지지 말도록 심각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여 함이라”(갈1:6,7).
이처럼 테일러, 피니, 무디, 그리고 선데이의 전통이 지닌 전도의 실용주의의 아이러니는 하나님과 구원에 관한 이러한 종류의 사상에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한 신앙(바울과 같은 초월적, 초자연적 신앙)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활동에서 가장 성스러운 일인 구원 역사로부터 그 초자연적 성격을 제거해 버리고 구원을 하나의 테크닉으로 전락시키면서도 어째서 자연과학인 생물학을 (설교 예화로) 사용하여 초자연적인 현상(구원)을 설명하려 한단 말인가?
심지어 극렬 초자연주의자까지도 실용주의자들의 손에서는 자연주의적이 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신앙 치유 운동가들은 우리의 믿음이 우주적 파워의 스위치를 누르는 손가락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 전해 주는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면(예를 들어 스크린 위에 손을 올려 놓는다든지, 많은 돈을 헌금한다든지, 한 가지 기도를 반복한다든지, 기도할 때 부여잡고 있었던 광목천으로 환부를 쓰다듬는다든지 하는 것들), 하나님의 치유력은 이에 호응하여 반드시 작용할 것임이 보장된다. 패트 로버트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번영의 법칙”을 활용하라고 권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도 이 법칙에 꼼짝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나 텔레비전의 채널을 맞추는 것과 같아서 바른 주파수를 맞추면 그 프로그램을 잡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혀 지유를 받지 못하거나 그 경제적인 축복의 기적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런 사람은 왕국의 작전에 대하여 ---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우리가 밝혀 낸 중요한 원칙들대로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에도 사람들을 위로해 왔다. 로마서 8장 28절을 암송하고 있는 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만물이 함께 선을 향하여 역사해 나간다). 그러나 오늘날의 실용주의적 자립적 신앙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생활과 사업에 실패하는 일에 개재해 있는)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런 뜻은 사라져 버리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우주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조작할 수 있는 정확한 원리들과 테크닉들과 방법들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오늘날 신앙의 기적으로 치료한다고 하는 치유 사역자들은 기적에서 신비를 제거해 버리고 있으며 치유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아니 사실상 불가피하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구원도 치유 사역도 모두 인간의 성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