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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황색 커다란 격자창을 넣어 서 방정토를 표현한‘물의 절’ 김미리 기자
일본의 다도해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있는 두 섬 나오시마(直島)와 아와지시마(淡路島)의 공통 분모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안도는 토사와 광물 채취로 황폐된 두 섬을 '문화'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 소생시켰다. 예술의 흔적조차 없었던 두 섬은 이제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의 '문화의 성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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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에서 '예술의 낙원'이 된 나오시마인구 3900명의 외딴 섬 나오시마. 이 작은 섬을 찾는 관광객이 한 해 20여만 명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당시 나오시마는 금속제련산업으로 인해 곳곳이 민둥산이었다. 나오시마를 바꾼 것은 출판기업인 '베네세'가 1989년 시작한 '아트 프로젝트'. 베네세는 나오시마를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된 '문화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안도 다다오에게 그 중추 역할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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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미술관에 전시된‘월터 드 마 리아’작품‘타임, 타임리스, 노 타임’. 안도는 노출 콘크리트로 된 성당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마쓰오카 미쓰오
2004년 완공한
지중 미술관은 안도 건축의 백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걸작. 능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미술관을 지하에 파묻은 발상에 놀라고, 적은 작품으로도 감동을 극대화하는 연출 기법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미술관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조각가 월터 드 마리아, 빛을 이용한 작가 제임스 터렐, 단 세 작가의 작품을 위한 공간이다. 스스로 '제4의 아티스트'라 말했듯 안도는 작품을 위한 전시장인 동시에 건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작품을 관람하는 행위 자체가 마치 '예식' 같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전시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대리석을 잘게 깎아 끼워 놓은 바닥의 질감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해 낸 관람 방법. 펜을 들고 메모를 하면 구석에 있던 스태프가 큰일이 난 것처럼 달려와 연필을 건넨다. 순백의 숭고미를 보존하기 위해서란다.
미술관에 앞서 안도가 1992년 완성한
베네세 하우스는 세계 최초로 미술관이 들어있는 호텔이다. 백남준, 리처드 롱의 작품 등 베네세 일가가 수집한 작품 40여 점이 호텔로 이어지는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안도는 "지중 미술관이 닫힌 공간에서 작품과 건축이 서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정(靜)적인 공간이라면, 베네세 하우스는 자연과 건축이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동(動)적인 공간"이라 설명한다.
본관보다 40m 높은 곳에 떨어진 별관 오발(Oval)은 물, 하늘, 빛이라는 안도 건축의 중요한 요소를 보여주는 공간. 장축 20m, 단축 10m의 타원형 중정 가운데 연못이 있다. 고개를 들어보면 마치 하늘에 타원 액자를 끼운 듯하고, 그 아래 연못은 하늘의 데칼코마니 같다. 원, 사각 등 기하학적인 형태로 자연의 미를 극대화하는 안도의 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지진의 상처를 품은 '꿈의 무대' 아와지시마
아와지시마의
유메부타이(夢舞台)는 안도 건축물의 결집체다. 28㏊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에 효고현립국제회의장, 호텔, 기적의 별 식물관 등 안도의 건축물이 한데 모여 있다. 부지는 간사이 공항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토사 채취장. "사람이 만든 상처를 사람 손으로 재생한다"는 취지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하지만 1995년 1월 17일 일어난 한신 대지진으로 공사가 차질을 빚었다. 사람들은 "도시의 숨이 끊어졌다"며 체념했다. 그러나 안도와 효고현은 '창조적 부흥'을 외치며 유메부타이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타원형으로 뚫린 국제회의장 포럼과 기와를 일일이 박아 넣은 다실, 조가비 수만 개를 바닥에 붙인 거대한 연못 등 세심한 곳까지 안도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유메부타이 근처에 있는
물의 절(혼후쿠지·本福寺)은 사찰에 대한 선입견을 뒤흔드는 절이다. 절에 오르면 기와 건물 대신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벽이 나타나고, 본당 위에는 연못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서쪽을 향해 커다란 주황색 격자창이 있고 그 사이로 붉은 빛이 스며든다. 서방정토의 이상향을 건축으로 푼 것. 안도는 "지역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으로서의 절'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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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세 하우스 별관‘오발’. 타원의 액자 안에 끼워넣은 듯한 하늘과 연못에 비친 그 하늘의 모습이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마쓰오카 미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