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저 성읍 가운데로, 곧 예루살렘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겨운 일 때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려 놓아라.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성읍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서 죽여라.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가엾게 여기지도 말아라.' " 겔9:4~5
“노인과 젊은이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들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겔9:6
"그러자 그들(천사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로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에스겔 9:6b
주님과 동행하는 크리스천들 안에는 뭔가 다른 표시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타락한 육적인 크리스천들과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 차이를 알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표시(위 본문에서는 이마에 인 침)가 있을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양과 양을 (각각의 양을) 판단할 것이다" 겔34:17
"내가 얼굴을 대면하여 심판할 것이다.” 겔20:35
어떤 악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마에 표시될거야. 나는 귀신을 쫓았고 병든 자를 치료했어.”
“나는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했어. 내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나쳐라. 그의 이마에 표시하지 말라.”
“나는 그를 알지도 못한다. 그는 악한 종이다.”
“그냥 지나쳐라.”
또 다른 사람이 옵니다. “주님, 저는 당연히 표시하시겠죠
주님이 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우리가 함께 하였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마셨으니까요.”
“그렇다, 그렇지만 가룟유다도 전도도 했고, 내 식탁에 함께 앉았던 적이 있었다"
“그를 지나쳐라, 그의 이마에 표시하지 말라.”
(나중에 천사가 이마에 표시하는 자를 뒤따르며,
그 표시를 못 받은 자를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겔9:5~6)
이제는 한 가련한 과부가 나아옵니다.
그녀의 마음은 그 땅의 가증한 일로 인해 탄식하고 웁니다.
그녀는 (끔찍해서) 신문을 볼 수조차 없습니다.
저는 이런 편지를 미국 전역의 할머니들로부터 받습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너무 빨리 변질되고 있어요. 많은 것들이 악화되고 있어요.”
왜 목사님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까?
왜 교회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나요?
여러분은 이 가련한 과부가 우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그들의 편지는 눈물자욱이 번져 있었습니다.
작은 과부가 올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표시하라 그녀의 이마에 표시하라.”
그들이 어디에 흩어져 있든지,
한 사람 한 사람씩 이 땅의 가증한 일로 탄식하고 우는 사람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이마에 표시하라.”
저는 그 표시가 그려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교회 안의 죄로 울고 통곡하며 탄식하는 표시입니다.
교회의 죄로 인해 탄식하고 통곡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마음의 부담을 똑같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탄식 없는)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증스런 죄로 인해 슬퍼하지 않습니다.
죄가 자기 마음에 가득 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회와 사회의 죄로 인해 슬퍼하겠습니까?
또 어떤 설교자들은 '죄에서 떠나라!'고 설교할 때
하나님의 슬픔을 모른 채, 그저 죽음과 저주만 (율법적으로) 선포합니다.
회개의 선포는 설교자의 상한 심령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슬픔과 애가를 느끼는 가운데 선포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의 슬픔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슬픔과 울부짖음을 느낍니다.
지금은 우상에 잡혀 있을 시간이 아닙니다.
지금은 “주님, 저를 정결케 해주세요.”라고 말하며 울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범죄 했습니다.
제가 지금 왜 벌벌 떨리는지 아십니까?
저도 예전에 우상을 품은 채, 수천명 앞에서 복음을 전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수많은 시간들을 허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린 모든 찬양 가운데 마음의 정욕이 함께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경건한 정욕,
수 천 명에게 설교하는 설교자가 (일시나마) 정욕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자기 간증)
하나님께서 어느날 말씀하셨습니다.
“데이빗, 너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며 너무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이다.”
“너는 군중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나, 너는 나를 얻지 못할 것이다.”
“너는 나를 충분히 찾지 않는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결코 돌이키지 못할 것이다.”
저는 그때 최후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바로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지옥의 것들을 보며 자기 눈을 더럽히고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성령을 구하며
주님을 열심히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교회가 변질되고 있습니다.
유일한 소망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더 이상 놀기삼아 playing games 주님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우상과 죄를 정당화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정욕, 우상들을 지금 바로 내려놓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유케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골방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통곡의 영을 보내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울거나 마음이 깨어진 적이 없습니다.
'성령님, 우리의 심령을 만지시고 빛을 비추소서!'
주님은 오늘도
이 땅과 교회의 가증한 일로 탄식하고 우는 자들에게
이마에 표시하실 것입니다.
(여기 에스겔서와 아울러 요한계시록에도 이마에 인 맞은 14만4천이 나오지요)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이키는 이들에게 표시하소서!
하나님,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소서!
하나님,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