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은 불레셋의 골리앗에게 이제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행할 것인가에 대해 다섯 번이나 말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마태복음 17:20의 원리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17살 밖에 안된 다윗에게 그 거인은 하나의 산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상17:26)
그리고 손에 검 하나도 들지 않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윗이 가진 유일한 검은 그의 입의 검,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검입니다(계2:16). 다윗은 그의 믿음을 고백하고 말함으로써 그 거인을 물리친 것입니다.
지금 처해 있는 모든 일들이 좋지 않아 보일 때에도 계속해서 씨앗을 심으십시오. 최선의 상황을 믿으십시오. 일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모든 것들이 당신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계십시오. 결코 부정적인 말들을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그런 때는 그 전에 당신이 말하고 고백해서 이미 확정해 놓은 것 안에서 안식을 누리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말로써 당신 인생의 모퉁이돌, 즉 기초를 놓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믿음은 매일같이 항상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하고 고백한 것들을 믿을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믿음을 갖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 당신의 말씀의 수준은 높은 상태에 도달해 있고, 지속적으로 당신은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의 모든 문들이 열려져 당신을 대적해 오는 것처럼 보이고 아무 일도 되는 일이 없고,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당신이 믿음의 수준이 높아서 그처럼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했다 할지라도 그 믿음의 고백들아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가 바로 당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고,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때는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약해졌을 때는 결코 믿음의 고백을 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럴 때 하는 믿음의 고백은 대부분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상황이 두렵기 때문에 하는 고백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5장 22절~24절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여기서 야이로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딸은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그의 딸에게 손을 얹으면 그의 딸이 병이 나아 살게 될 것이라는 굳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그의 믿음에 찬 고백으로써 확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의 이 믿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군중들을 떠나 야이로를 따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혈루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치료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마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아직까지도 예수님께서 그의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체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 야이로가 참으로 불안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온전케 한 것은 그 여인의 믿음이었다고 그 여인에게 설명하십니다.
이제 35절을 보겠습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야이로가 두려워 하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안좋은 일이 일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딸이 죽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선언했던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비보를 듣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소, 야이로 당신의 딸은 이미 죽었소.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마시오"
야이로는 좋은 일을 말했지만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36절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니"
그때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때 만일 야이로가 두려움이 들어오도록 허락해서 자신의 생각속에 있는 것을 말했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만일 당신께서 그 여인을 치료하기 위해 거기서 멈추지만 않으셨다면 저희 집에 빨리 도착해서 제 딸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랬다면 야이로는 아마도 나중에 자기가 한 말로 인해 심한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되었을 것이며, 며칠 후에는 딸의 장사를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단 한마디 말도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일이 잘못되어갈 때, 일이 잘 되지 않을 것같이 보일 때, 당신의 믿음이 떨어져 있을 때, 지옥의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밀려오는 것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믿음의 고백을 거스릴 때,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계십시오.
그때는 믿음의 고백을 하려고 애쓸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당신이 이미 고백한 말씀안에서 안식을 누릴 때인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강했을 때, 당신의 말씀의 수준이 높았을 때, 당신이 고백한 것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을 때, 바로 그때 당신이 고백한 바로 그 말씀 안에서 쉼을 누리십시오.
상황이 짓누르고, 온갖 문제들과 좋지 않은 소식들만 찾아오고,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그리고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을 때, 이때가 바로 우리가 침묵의 단어들을 사욯애야 할 때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마십시오. 이런 때 당신이 믿음의 고백을 시도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경우 믿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에서 나온 말들을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야이로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해답과 믿음의 고백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것을 확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요?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물어 보면 그들은 아마도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너무 늦었어요, 야이로 잊어버려요. 당신은 이미 싸음에서 진 것이오. 다 끝났어요"
그러나 감사하게도 야이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더라도 그것은 문제를 말했다기 보다도 문제에 대한 해결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는 침묵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전체적인 결말은 그의 딸이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가 처음에 확정한 그 믿음의 말과 고백들이 문자 그대도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당신이 해답과 해결을 말할 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릴 때,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지 말고 예수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해결을 말하고 주장하십시오
기도 가운데서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문제를 향해 말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을 말하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이 당신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고백하고 말하기를 훈련하십시오. 당신이 하는 모든 말에서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을 사용하는 습관을 개발하십시오. 결코 부정적인 말이 당신의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당신이 말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데 왜 좋은 것들을 놔두고 나쁜 것을 말해야 합니까?
당신이 한 어린 아이가 공을 잡으려고 위험한 거리로 달려가는 것을 볼 때도 결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지 마십시오. "저 아이가 저러다 차에 치겠는데. 어떻게 되나 봅시다"식의 좋지 않은 결과를 예측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 아이는 해를 당하지 않을지어다"라고 말하십시오.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삶의 긍정적인 쪽으로 당신의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묵상하시면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은혜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PS: 묵상하신 내용 답글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