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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지요?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역시 ‘가야금’이와의 대화를 보내드립니다.
관찰자는 관찰대상이다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면, 거대한 충격이 온다고 하지요? 이 대화는 그 거대한 충격을 받고나서 바로 나눈 대화입니다. 이 깨달음은 모든 인간에게 당장 그 자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참으로 절실, 절박한 자세라면 말입니다. 그만한 에너지가 이미 쌓여 있다면, 당장에 깨달을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대화가 되겠지만, 적으나마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랑을 보는 깨달음’은 아니지만(불가에서 말하는 '득도'니 '견성'이니'확연대오'니 뭐니 하는 그런 건 아니지만), 지난 학기에도 최소한 두 명의 학생이 생각과 사실의 관계와, 관찰자의 정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까페 대화에도 게시되어 있습니다(카페, 뺀질이 대화 게시판, 779번, 762번 대화 참조). 어쨌거나 관찰자가 바로 관찰대상이라면, 그때 남는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래 대화를 바로 읽기 시작하지 마시고, 위 질문을 곰곰이 씹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실제로 깨닫고 나면, 아주 절실하게 다가오는 의문입니다. ‘이제 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정말 거대한 두려움과 함께 밀려온다고 합니다.
우선은 여러분들 각자가 관찰자는 관찰대상이다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절실한 문제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것은 여러분들이 절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문제는 여러분들 각자가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다들 ‘나’의 농간에 빠져서 고통만 당하고 있을 뿐, 이것을 좀 해결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절박하게 품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절실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으니.. 혹은 “이만하면 절실한 것 아닌가?” 하고 있을 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겠지요. 이것은 우리가 돈을 위주로 한 가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제시하는 ‘자아 확장’으로서의 가치들을 제 아무리 구현해 봐야,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꼭 그렇게만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배웠으니, 지금 우리가 행복할 리가 있겠습니까? 설령, 돈 많은 재벌이나,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을 쥔 자들이나, 세상 꼭대기에 올라서는 명예를 지닌 자라고 할지라도, 그런 것들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잠시의 쾌락은 있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게 이렇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안다면 적절한 행동이 나오겠지요. 그렇다면 그는 결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대로의 방식으로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곰곰이 곱씹어보고 참다운 해답을 찾아내려는 관심 또한 너무도 미약합니다. 인간으로서 각자 젊은 날에는 잠시 그런 참된 것을 찾아보려는 열정이 있을지라도, 그게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그런 가치들이 세상의 주류가 아니라는 게 또 문제가 되겠지요. 그러나 세상의 주류들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주류는 ‘자아’의 흐름입니다. ‘자아’란 그 속성이 비교하고 경쟁하고 쟁취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투쟁의 대상으로 보는 자세를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맨날 싸우고 있는 사람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제 아무리 어떤 꼭대기에 올라 봐도, 그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바람만 한 줄기 횡하니 불어갈 뿐입니다.
대화 주인공 ‘가야금’이도 선생님이 되겠다는 학생입니다. 우리는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근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를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가르치는 작업 아닙니까? 케이를 읽고 이해해 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제 스스로에게 선생이 되고 동시에 학생이 되는 일입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좀 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가르치고 자기 스스로 배워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알아채기(명상)’ 아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가 과연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가만히 바라보고 알아채는 일 말씀입니다. 문제는 그 알아채는 내용에 대해서 다시 ‘나’가 개입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사실 자체가 바로 선명하게 보일 텐데, 우리는 언제나 개입해서는 합리화하거나 비난하거나 해서 색칠해버리고 말뿐입니다.
‘학문’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지식이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못 하면서 학자라고, 선생이라고 으스대는 사람은 사꾸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꾸라가 판을 치는 곳이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대학에서마저도 정말 존경하고픈 선생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선생님은 별로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대학에서마저도 ‘사람이 좀 되라’고 가르치지를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대학 역시 돈의 논리로, 아주 ‘장사’로 전락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겠지요. 학생이 단지 교수들이 더불어 하는 장사의 ‘손님’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세상을 굽어보는 지성을 길러내는 일은 포기했다는 얘기지요.
말이 길어지겠습니다. 여기서 이만 줄일까 합니다.
어쨌거나 ‘관찰자는 관찰대상이다(The observer is the observed).’ 하는 한 마디의 의미를 이해하신다면, 곧 바로 그런 지성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것부터 이해를 하셨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 9. 30.
벅수 김기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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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0가야금2
화학작용, ‘자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 정말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네요 : 가야금 -- 2006. 9. 20.
벅수 ▶ ...
가야금 ▷ 대화창이 안 떴어요 ㅜ_ㅜ
벅수 ▶ ㅎ
벅수 ▶ 두렵다는 건 뭔데?
가야금 ▷ 관찰자의 존재요
벅수 ▶ 무슨 일이 있었냐?
벅수 ▶ ...
가야금 ▷ 방금 선생님 적어 놓은 어떤 글 보고
가야금 ▷ 충격 받았어요..
벅수 ▶ 내용이 뭐였냐?
가야금 ▷ 일어나고 있는 그 사실 자체와
가야금 ▷ 머릿속의 관념, 상상, 즉 관찰자
가야금 ▷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벅수 ▶ 그러게.. 그게 생각과 사실의 관계란 말이다.
가야금 ▷ 왜 저는 계속 속아왔죠 ??
가야금 ▷ 진짜 속았어요
가야금 ▷ 완전히..
벅수 ▶ 사실은 두뇌 외부에 있는 것이고, 생각은 두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가야금 ▷ ...
가야금 ▷ 관찰자는 왜 있는 건가요?
가야금 ▷ 하.. 관찰자도 저였다니..
가야금 ▷ O O O 이었다니..
벅수 ▶ 그러게 그걸.. 여태까지 그 간단한 이치를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해 줬냔 말이지.
벅수 ▶ ...
가야금 ▷ 정신분열이 심해지면
가야금 ▷ 병원에 간다..
가야금 ▷ 고 하셨죠?
가야금 ▷ 정말 조그만 차이네요..
벅수 ▶ 여태까지 내가 나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 거잖아?
벅수 ▶ ...
가야금 ▷ 하..
가야금 ▷ 사람 본성인가요?
벅수 ▶ [병원이야 견딜 만하니까 아직 안 가는 거고.. 가봤자 치료라는 게 적당히 견딜 만하게만 해 주는 거지, 뭐.]
벅수 ▶ 본성이라..
벅수 ▶ 진화가 잘못 된 거겠지.
가야금 ▷ 피해의식, 삐뚤게 생각하는 순간순간의 버릇
가야금 ▷ ...
벅수 ▶ 생각으로 고통 받도록 진화한 거니까.
가야금 ▷ 저만 이런 게 아니라면..
벅수 ▶ ㅎ
가야금 ▷ 세상 사람들 전부가 다..
벅수 ▶ 그게 인간 모두가 다 그렇다니깐!!!
가야금 ▷ 병을 앓고 있는 것인가요?
벅수 ▶ 병이지 그래. 정신 분열..
가야금 ▷ 어쨌든 무서워요..
벅수 ▶ Fatal error!
벅수 ▶ 숙명적인 실수여! 치명적인 실수여!
벅수 ▶ ...
벅수 ▶ 그렇게 말씀하시더구나.
벅수 ▶ 케이 할배가 말이다.
벅수 ▶ ...
가야금 ▷ 숙명적인 실수..
가야금 ▷ 숙명적이라..
가야금 ▷ 실수..인 건가요?
벅수 ▶ 관찰자가 생기도록 진화했으니까..
가야금 ▷ 진화..
벅수 ▶ ㅎ
벅수 ▶ 생각에 고통당할 수 있도록 진화한 거잖아?
가야금 ▷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요..
가야금 ▷ 아니, 미숙하고 불완전해요
가야금 ▷ 그런데 !
가야금 ▷ 저는
가야금 ▷ 인간은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가야금 ▷ 착각해왔어요 쭉
가야금 ▷ 완전 틀렸네요
벅수 ▶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영역이 있기는 있잖아?
가야금 ▷ 그렇죠.
가야금 ▷ 있긴 하죠..
벅수 ▶ 수학도 그렇고.. 기계적인 영역도 그렇고..
벅수 ▶ 그래.
가야금 ▷ 하지만 관찰자가 생기도록 진화했다니.
가야금 ▷ 이 무슨 날벼락...
벅수 ▶ 그게 관찰자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생기는 거 아니겠어?
벅수 ▶ ㅎ
가야금 ▷ ...........
벅수 ▶ 그래, 날벼락 같을 거다.
가야금 ▷ 아 할 말이 없습니다
벅수 ▶ ...
가야금 ▷ 이런 공포 처음 느껴봐요
가야금 ▷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가야금 ▷ 제 함정에 제가 빠졌어요
벅수 ▶ 그게 바로 '관찰자는 관찰대상이다' 즉, 내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오는..
벅수 ▶ '화학작용'이라는 것이겠지.
벅수 ▶ Chemical Action.
가야금 ▷ 전.. 그 말을 이해 못 할 줄 알았어요....
가야금 ▷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벅수 ▶ 관찰자 이해하면 그런 화학작용이 일어난다고 하셨으니까..
벅수 ▶ ...
벅수 ▶ 말 한마디로 애 하나 살렸네.
벅수 ▶ ...
가야금 ▷ 무슨 공포영화보다 훨씬 더 무섭네요..
가야금 ▷ 훨씬 더..
벅수 ▶ 그렇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벅수 ▶ 오늘 밤에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벅수 ▶ ㅎ
가야금 ▷ 아....
가야금 ▷ 아휴...
벅수 ▶ 다들 평생 그것 하나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죽는다니깐!!!
벅수 ▶ ...
가야금 ▷ 그러면서..
가야금 ▷ 자신이 자신을 괴롭히는 줄 모르면서
가야금 ▷ 주위 상황 탓만 하는 거네요..
가야금 ▷ 저도 그랬어요 !!
벅수 ▶ 너뿐이 아니다.
가야금 ▷ 부모님 탓, 선생님 탓, 친구 탓, 돈 탓....
벅수 ▶ 옹달이나 은각시가 이해한 것도 바로 그거야.
가야금 ▷ 제 앞을 막은 건 저였네요.
벅수 ▶ 그렇지.
가야금 ▷ 네..
가야금 ▷ ......
가야금 ▷ 막 소리 지르고 싶어져요
벅수 ▶ 모든 인간들이 다 그러고 살다가 죽는 거지. 그런 줄도 까맣게 모르고..
벅수 ▶ ...
벅수 ▶ 그런데 그게 이해 됐으면, 이제 남은 문제는 뭐겠니?
벅수 ▶ ...
가야금 ▷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나를
가야금 ▷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야금 ▷ 어떻게..
가야금 ▷ ...
가야금 ▷ 차갑게 저를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벅수 ▶ 그래, 그런데.. 거기서..
벅수 ▶ 선택 없이, 관찰자 없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까?
가야금 ▷ ..음..
벅수 ▶ 여태까지는 모든 걸 항상 관찰자로서 바라봤어요.
가야금 ▷ ............
가야금 ▷ 선생님이 관찰자 얘기 꺼내실 때마다
가야금 ▷ 말문이 막혀요..
가야금 ▷ 항상 공기처럼 존재해왔던.. 관찰자..
벅수 ▶ 비교하고 판단하고 반성하고 결심하고 그리고는 죽어라~~~ 노력하고..
가야금 ▷ .........................
벅수 ▶ 그러니 인생이 고해지.
벅수 ▶ ...
가야금 ▷ 그게 그거였군요...
가야금 ▷ .... 정말 할 말 없습니다..
벅수 ▶ ...
가야금 ▷ ...휴..
가야금 ▷ 사실과 생각 사이에는
가야금 ▷ 아무런 접점이 없다..
벅수 ▶ 접점이 없잖아?
가야금 ▷ 네
가야금 ▷ 없어요
벅수 ▶ 결코 만날 수 없어요. 철길처럼 영원한 평행선이지. 아니 철길 같은 평형선도 아니다.
가야금 ▷ 두뇌 내부와
벅수 ▶ 그래.
가야금 ▷ 두뇌 외부
벅수 ▶ 그렇다니깐.
가야금 ▷ ..만날 수 없습니다..
가야금 ▷ 뒤섞여 있다고
가야금 ▷ 저는 착각해왔습니다
가야금 ▷ '착각했다'
가야금 ▷ 는 사실조차
가야금 ▷ 몰랐습니다.
벅수 ▶ 그렇지. 다들 그러고들 살다가 죽는 거라니깐.
가야금 ▷ 의심하지도 않았어요..
가야금 ▷ 하.
벅수 ▶ 지금 평생을 꼭 그렇게 고통당하다가 죽어갈 저 수많은 인간들을 생각해 봐.
가야금 ▷ ...
가야금 ▷ 저는 제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어요..
가야금 ▷ 슬픔이 가슴 가득 찬 거 같은 느낌이에요
벅수 ▶ 까맣게 모르고 제 스스로 가하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어갈 저 수많은 인간들..
벅수 ▶ ...
가야금 ▷ 어떡하면 좋죠?
가야금 ▷ 그 다음에..
벅수 ▶ 케이 할배 마음의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하겠니?
가야금 ▷ 감히 제가..
가야금 ▷ 선생님께..
벅수 ▶ ㅎ
가야금 ▷ 감사드릴 따름이죠...
가야금 ▷ 진심으로요..
벅수 ▶ ...
벅수 ▶ 니가 이해한 거지. 나는 케이 할배 말씀 한마디 전해 준 거밖에 없다.
벅수 ▶ ...
가야금 ▷ T-T
가야금 ▷ 그 말씀!
가야금 ▷ 케이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
가야금 ▷ 자신이 깨닫는 것..
벅수 ▶ 그래.
가야금 ▷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벅수 ▶ ㅎ
가야금 ▷ 제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우쳐 주셨네요..
벅수 ▶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다 있다.
가야금 ▷ ...네
벅수 ▶ 그래서 이렇게 그 한 마디나마 좀 전해주자고 하는 거지.
벅수 ▶ 그것이 나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일을 교육에서 해야지!!
가야금 ▷ ..네
가야금 ▷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가야금 ▷ 절대로..
가야금 ▷ 저는 첫시간에 수업을 듣고
가야금 ▷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벅수 ▶ 어떤 느낌?
가야금 ▷ 뭔가 내 일상에서도.. 깨우침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가야금 ▷ 의구심요..
벅수 ▶ '나는 안 될 것이다' 하는 그런 거?
가야금 ▷ 그렇죠.
벅수 ▶ ...
가야금 ▷ 역시..
가야금 ▷ 그 또한
가야금 ▷ 관찰자의 한마디죠..
벅수 ▶ 그렇지.
가야금 ▷ 아아..
가야금 ▷ 정말
가야금 ▷ 이런 거였군요
가야금 ▷ ..
가야금 ▷ 내 길을 막는 나..
가야금 ▷ 가능성을 닫는 나..
가야금 ▷ 관찰자..
가야금 ▷ 지금 선생님과 대화하고 있는 저는
가야금 ▷ 관찰자가 아닙니다..
벅수 ▶ ㅎ, 글쎄..
가야금 ▷ 자판을 치고 있는 나..
가야금 ▷ 두뇌 외부와 두뇌 내부
가야금 ▷ 왜 몰랐을까요 ??
벅수 ▶ ...
가야금 ▷ ...내 몸인데..
가야금 ▷ 그토록
벅수 ▶ 아무도 그 사실을 안 가르쳐 줬으니깐..
가야금 ▷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는데.. 나 자신을..
가야금 ▷ ...
가야금 ▷ 정말
가야금 ▷ 선생님 말씀이 다 옳습니다
가야금 ▷ 사실만을 전하시는..
가야금 ▷ 사실 그 자체.
벅수 ▶ 나도 잘 모르는 게 있겠지. 자신이 뭘 모르는지는 전혀 모르는 법이니까.
벅수 ▶ 그래서 케이 책을 읽으라는 거에요.
벅수 ▶ ...
가야금 ▷ .. 네 ^^
벅수 ▶ 그것도 반드시 원서로..
가야금 ▷ freedom from the known
가야금 ▷ 집으로 배달옵니다 ^^
벅수 ▶ 관찰자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번역해 놓은 책 내용이 그 어떻겠어?
가야금 ▷ ㅎㅎ
가야금 ▷ 읽기 어려운가요?
벅수 ▶ ㅎ
벅수 ▶ 우선 인터넷으로 읽어 봐.
가야금 ▷ 아.. 그 사이트요?
벅수 ▶ 그 책, 원문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잖아?
가야금 ▷ 주소 얼핏 봤는데
가야금 ▷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벅수 ▶ 그 책뿐만 아니라 많은 책들이 거의 다 공개되어 있다.
가야금 ▷ 네
가야금 ▷ 하..
가야금 ▷ 두뇌 밖과 두뇌 안
가야금 ▷ 아무런 접점이 없다.
벅수 ▶ ...
가야금 ▷ 새기고 살겠습니다.
벅수 ▶ ㅎ
가야금 ▷ 사람은, 참 간사해서
벅수 ▶ 그래도 또 까먹을 걸?
가야금 ▷ 네
가야금 ▷ 원래의
가야금 ▷ 쳇바퀴 속으로
가야금 ▷ 빠지겠죠
벅수 ▶ 250만년 내려온 습관이라고나 할까..
가야금 ▷ 멀고도 머네요..
벅수 ▶ 생각에 빠지는 습관..
가야금 ▷ 하지만 !
가야금 ▷ 전해졌으니까..
가야금 ▷ 감사히 여기겠습니다.
가야금 ▷ ...저한테 달렸네요..
벅수 ▶ ㅎ. 이해한 건 너야, 내가 이해시킨 게 아니라니깐..
벅수 ▶ 그리고 내가 "Is thought habit?"이라고 하신 케이 한마디에.. 또 얼마나 놀랐는데..
가야금 ▷ ...!
가야금 ▷ .....
가야금 ▷ ...하 참
가야금 ▷ ..그런데.. 그때가 대학생 시절이세요 ?
벅수 ▶ [그 말씀 읽은 건 몇 년 안 됐다.]
가야금 ▷ 정말 귀한 가르침..
벅수 ▶ ...
가야금 ▷ 참 ㅋ
가야금 ▷ 그 몇 년 동안
가야금 ▷ 살면서 받아온 교육이나
가야금 ▷ 공부나
가야금 ▷ 그게 다 뭔가요 ?? 참..
가야금 ▷ ...
벅수 ▶ 그만큼 관찰자 그거 하나도 이해하는 사람이 그리도 드물다는 거지..
벅수 ▶ ...
가야금 ▷ ...케이 할아버지는
가야금 ▷ 도대체 어떤 분이실까..
가야금 ▷ 어떻게 이런 가르침을..
벅수 ▶ 그렇지!!!
벅수 ▶ 고타마 싯타르타 이후에 새로 오신 부처님이지, 서양에서는 널리 인정된 사실이에요. 소위 미륵불이 오신 건데.. 다들 한국에서 내가..
가야금 ▷ ..
벅수 ▶ 그렇다는 사실을 말하면 다들..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벅수 ▶ ...
가야금 ▷ ..ㅎ
벅수 ▶ [실제로 생긴 것도 좀.. ㅎ]
벅수 ▶ ...
가야금 ▷ ;;
가야금 ▷ 에휴..
벅수 ▶ ...
가야금 ▷ 관찰자를 차갑게 바라보기..
벅수 ▶ ...
가야금 ▷ 항상 깨어 있으면 되나요.. ?
벅수 ▶ 차갑게...
벅수 ▶ 그래. 그런데 그게 잘 안 돼.
가야금 ▷ 따뜻하게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벅수 ▶ 생각하는 습관에 자꾸만 빠지거든.
가야금 ▷ 네....
가야금 ▷ 생각하는 습관...
가야금 ▷ 정말로
가야금 ▷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도
가야금 ▷ 중요한 것인 양
벅수 ▶ 오죽했으면, 그것을 두고 내가 '쏠라당'이라고 이름을 따로 지었겠어?
가야금 ▷ 실제 삶은 두뇌 밖에서 진행되는 것이죠??
가야금 ▷ 두뇌 밖..
벅수 ▶ 하도 생각에 쏠랑, 쏠랑 잘 빠져서..
벅수 ▶ ㅎ
벅수 ▶ 사실이야 항상 두뇌 밖에 존재하지.
벅수 ▶ ...
벅수 ▶ 두뇌 외부에..
벅수 ▶ ...
가야금 ▷ 그렇다면요..
가야금 ▷ 두뇌 외부의 삶을 진행시키는
벅수 ▶ 그런데 생각은 두뇌 내부에서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 거잖아?
가야금 ▷ 두뇌 내부의 생각..
가야금 ▷ 은 모두 다 관찰자?
벅수 ▶ 그게 고통이잖아?
벅수 ▶ 그렇지.
벅수 ▶ 지금으로서는 모든 생각이 다 관찰자다.
가야금 ▷ 그렇다면요,
벅수 ▶ 단 하나의 생각일지라도 모두가 다 관찰자라니깐!
벅수 ▶ ..
가야금 ▷ 실천의 힘은
가야금 ▷ 아니,
가야금 ▷ 실천시키는 생각의 힘도 관찰자?
가야금 ▷ 접점이 없는 것들만 관찰자라고 부르는 건가요?
벅수 ▶ 그 관찰자가 아닌 그 무엇, 어떤 에너지, 어떤 올바른 생각.. 그게 '지성'이야.
가야금 ▷ 아 !!!
가야금 ▷ 아....
가야금 ▷ 명쾌해요...
가야금 ▷ ...이럴 수가;;;
벅수 ▶ Intelligence...
벅수 ▶ 글쎄. '지성'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가야금 ▷ 네
가야금 ▷ 어려워요
가야금 ▷ 하지만
가야금 ▷ 관찰자와는 다른 무엇 - 지성
가야금 ▷ 저는 이 정도로만
가야금 ▷ ..ㅎ
벅수 ▶ 이건 역사에서 얻는 교훈.. 그런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가르침이지?
벅수 ▶ ㅎ
가야금 ▷ 저는요..
가야금 ▷ 역사 선생님이 제 꿈이었어요..
벅수 ▶ 그래.
가야금 ▷ 역사 정말 좋아해요..
벅수 ▶ ㅎ
가야금 ▷ 선생님도
벅수 ▶ 그러나.. 역사란.. 그게 관찰자의 흐름이라서..
가야금 ▷ ??
가야금 ▷ 잠시만요..
벅수 ▶ ㅎ
가야금 ▷ 생각할 시간을..
벅수 ▶ ...
가야금 ▷ 기록되어 있는 역사요?
벅수 ▶ 그런가?
가야금 ▷ 음..
가야금 ▷ 알쏭달쏭해요
가야금 ▷ 역사는 관찰자의 흐름..
벅수 ▶ 기록 여하를 막론하고 역사란 관찰자의 흐름 아닌가?
가야금 ▷ 음..
가야금 ▷ 어렵네요..
벅수 ▶ 다들 제 민족, 제 국가, 제 지역 위주로 보고 쓰잖아?
가야금 ▷ 아.....
벅수 ▶ 그게 다 확장된 관찰자지 뭐겠어?
가야금 ▷ 아 역시..
가야금 ▷ 그러니깐
가야금 ▷ 사실로서의 역사
벅수 ▶ 결국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거니까..
가야금 ▷ 그것은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고
벅수 ▶ ㅎ
가야금 ▷ 지금 온갖 책과 옛 기록들..
가야금 ▷ 관찰자..
가야금 ▷ 네 맞아요.
가야금 ▷ 역사는 관찰자의 흐름
벅수 ▶ 그 역사를 쓴 사람, 그 사람의 관찰자가 다 녹아 있는 거 아니겠어?
가야금 ▷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
가야금 ▷ 관찰자이죠.
가야금 ▷ 왜냐면
가야금 ▷ 역사가 그 누구도
가야금 ▷ 그 시대를 사실 그대로
벅수 ▶ ㅎ
가야금 ▷ 보지도 못 했고..
가야금 ▷ ...
가야금 ▷ 참
가야금 ▷ 관찰자란 놈이
가야금 ▷ 무서운 놈이네요
벅수 ▶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결국 제 '관찰자'로 관찰하겠지? 지금 우리도 그러고 있잖아?
가야금 ▷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을
가야금 ▷ 막네요..
가야금 ▷ 보는 것도 막고, 들리는 것도 막고..
벅수 ▶ 그렇지!!!!!
벅수 ▶ 바로 그거다.
벅수 ▶ 그게 또 엄청 중요한 발견이에요!!!!!
가야금 ▷ 아.
가야금 ▷ 사실의 소중함..
벅수 ▶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사물을 왜곡시키고 있는 거지?
가야금 ▷ 네...ㅜ_ㅜ
가야금 ▷ 항상요
가야금 ▷ 정말 항상
가야금 ▷ 크 건 작 건
가야금 ▷ 왜곡시켜요
벅수 ▶ 그게 '나'라는 놈이 하는 짓이다.
가야금 ▷ 관찰자죠..
가야금 ▷ 아우
가야금 ▷ 완전 피곤하네요;
벅수 ▶ 그렇지!!!
벅수 ▶ 평생을 그 짓만 하다가 죽는 거니까..
가야금 ▷ 막 웃음이 나와요 허허...
벅수 ▶ ...
가야금 ▷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가야금 ▷ 그것이 내가 피곤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길
벅수 ▶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다.
가야금 ▷ 어렵습니다
가야금 ▷ 네..
가야금 ▷ 정말 어려워요 !
벅수 ▶ 워낙에 관찰자에 젖어 있어서,
가야금 ▷ 젖어 있다는 표현도 약한 것 같아요
벅수 ▶ 그게 쏠라당이야.
벅수 ▶ ㅎ
가야금 ▷ 완전히 일심동체 수준이에요
가야금 ▷ ..-_-;;
가야금 ▷ 관찰자한테 잡아먹히고 있는 중..
벅수 ▶ 뼛속 깊숙이까지 관찰자가 농간을 부리고 있으니..
가야금 ▷ 제 안에
가야금 ▷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야금 ▷ 힘이 있는 것인가요?
벅수 ▶ 본래 있는데, 그게 관찰자 때문에 왜곡되는 거 아니겠어?
가야금 ▷ ..지성.. 이것이 지성인가요?
벅수 ▶ 그렇지 않겠어?
가야금 ▷ 관찰자 때문에 왜곡됐다..
벅수 ▶ 관찰자가 없다면, 사실을 그대로 보고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하겠지.
가야금 ▷ ...................
가야금 ▷ 부럽네요
가야금 ▷ 사실을 그대로 보는 사람
가야금 ▷ 왜곡시키지 않고..
벅수 ▶ '나' 때문에 왜곡되는 거니까, '나'가 없다면 어찌 왜곡이 될 수가 없잖아?
가야금 ▷ '자아' 라는 것이
가야금 ▷ 상당히 부정적인 개념이군요
벅수 ▶ ㅎ
가야금 ▷ 그런데 왜 이 사회는
가야금 ▷ '자아'가 크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죠?
가야금 ▷ '자아'를 키워야 된다.. 어쩌구저쩌구
벅수 ▶ 그런데도 무슨 자아성찰이니 자아확립이니.. 자아실현이니. 무슨..
가야금 ▷ 네 !!
가야금 ▷ 자아 실현
가야금 ▷ ..자아 실현
가야금 ▷ 정확한 뜻도 모르고
벅수 ▶ 죽어라~~ 고생하라는 소리들만 하고 널부러져 있으니..
가야금 ▷ 그냥 막 썼네요
가야금 ▷ 자아 실현이 된다면
가야금 ▷ 뭐가 되는 건가요?
벅수 ▶ '자아'란 결코 긍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벅수 ▶ ...
가야금 ▷ 처음 듣는 말이네요.. 이 역시..
벅수 ▶ 그거 실현하려니까 맨날 쌈박질이지.
가야금 ▷ ㅋㅋㅋ
가야금 ▷ 하하 정말..
벅수 ▶ ...
가야금 ▷ 저도 맨날 싸웠네요
가야금 ▷ 거의 태어나서부터서리..
가야금 ▷ 저 늦지 않았죠?
벅수 ▶ ㅎ
벅수 ▶ 다들 평생 시작도 못 하고 죽잖아?
벅수 ▶ ...
벅수 ▶ ...
벅수 ▶ 있냐?
벅수 ▶ ...
가야금 ▷ 네..
벅수 ▶ ㅎ
가야금 ▷ 이런 날이 올 줄이야 .;
벅수 ▶ ...
가야금 ▷ 피곤해요..
가야금 ▷ 배도 고프고..;
벅수 ▶ ㅎ
벅수 ▶ 그럼 들어가..
가야금 ▷ 에휴..
벅수 ▶ 내일 봐.
가야금 ▷ 내일 새벽에 일어나셔야겠네요
벅수 ▶ ㅎ
벅수 ▶ 그런 걱정까지 다 해주냐?
벅수 ▶ 고맙네.
가야금 ▷ 지금이..
벅수 ▶ 벌써 늦었어.
가야금 ▷ 네네..
가야금 ▷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벅수 ▶ 아예 안 자야지..
벅수 ▶ 못 일어나면.. 휴강인데..
가야금 ▷ 아우..
벅수 ▶ 아니면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데..
가야금 ▷ 음..
벅수 ▶ 하여간 들어가.
가야금 ▷ 죄송해요 ^^; 하지만 감사해요
벅수 ▶ 배고파도 밤에는 뭐 먹지 마.
가야금 ▷ ?
벅수 ▶ ㅎ
벅수 ▶ 살 쪄.
가야금 ▷ 하하 ^^;;
벅수 ▶ 안 되면 물배나 채워.
가야금 ▷ 그럴께요 ^^;;
벅수 ▶ ㅎ
가야금 ▷ 내일 뵈요..
벅수 ▶ 내일 봐.
가야금 ▷ 비틀비틀..;ㅎㅎ
벅수 ▶ 왜?
가야금 ▷ 힘이 없어요 ;
벅수 ▶ 그렇겠지.
가야금 ▷ 쉬고 싶네요;
벅수 ▶ 곰곰이 더 곱씹어봐.
가야금 ▷ 네네.
가야금 ▷ 그럴께요
벅수 ▶ ^^
가야금 ▷ 내일 뵈요..^^
마지막 메세지를 받으신 시간 : 2006-9-20 오후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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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이 때까지 제가 이해하고 있는 주제라곤 관찰자 대상은 관찰자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제가 깨달았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 깨달은 것이 아니라고 안 순간, 허무해졌습니다. 지금껏, 헛다리만 짚었구나. 엉뚱한 곳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했구나. 다 헛수고구나. 하지만, 이 분 부럽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리네요, 확실히... 관찰자 그 관찰자는 즉 저였어요. 흔히 자아라고 하는 나. 이 얘를 통해 저는 k의 말이든, 무엇이든 간에 알아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얘가 이 앞길을 막고 있을 줄이야.... 아직 제가 직접 느낀 부분이 아니라, 큰 충격과 혼란은 없지만, 배신감 같은 것은 큽니다.
그 배신감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볼 순 없나요? 좀 더 깊이요. 뭐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는지를요.
그토록 믿었던 자아라는 얘가 내 걸림돌이었다니...사실, 생각과 사실이 다른 것이라는 것은 머리로 생각할 때는 알았지만, 그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이것 역시 자아라는 이 아이 때문이겠죠? 언제 저에겐 k의 말도, 제 주위의 무언이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성이라는 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저를 옥죄지 않고 자유롭게 저를 할 수 있을까요?
그야 모르죠. 자기 자신에 달린 문제니깐...
두려움이 두려움인 것은 어떻게 자각하게 되는 건지.그것은 자각함과 동시에 또다른 '것'으로써 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듭니다.이미 의식함으로써 그것이 그것이 아니게 될 때가 있지 않나요..모르겠네요.(역사에서의 관찰자..카아의 책을 읽으면서도 무언가 그런 생각을 했었던가..기억이 가물합니다.전 사실 그 책을 읽을때도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되지 라는 질문의 구심점을 전혀 못 찾고 있었거든요.아무도 그에 대해 이야기해준적도 없지만)
그거야... 어떻게 오는지는 스스로 바라보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역사도 이미 과거입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우리 속의 욕망은요? 그것도 과거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이 만든 역사 또한 언젠가 두려움 없이 바라봐야하는 것이죠. 우리들의 욕망이 그런 욕망이 넘쳐나는 역사를 만들고,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으니깐.
(그리고 또한 건방졌지만- 아마 얼마간은 내 머리 위에서 어떤 명확한 빛을 내려줄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지금까지도 그렇고..) 주제를 못 찾고 빙빙 돌기만 하는 저인지라.. (뭔가 이럴 때일수록 어머니의 자궁이 그리워지는 듯한 느낌이..도피할 곳을 찾다찾다 그 곳을 알게 된 건 아니지만 흐으..) 그냥 지금의 제 결론같은 건.. '깨닫기'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같다는 것.나를 탐색하는 나를 벗어나는 게 힘들고 끊임없는 괴로움이지만.. 어떤 모습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드러내는'것은 힘든 것 같습니다.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는 모든 감정과 감성들이
오히려 나의 육체 속에서는 멈춤없이 되풀이되고 있어서..언제나 힘이 들고 언제나 패배하는 느낌이랄까.물론 내부에서는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있겠지만 .. 패하는 자의 굴욕감(!)이 항상 전자를 압도하는 내 인생.. // 드러내는 것과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연습과 태생적인 것처럼 굳어진 습관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무감..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어지러운 세상을 깨닫고 깨끗하게 하는것보다 편안할지...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면 그 나를 버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속이고 있는 나를 깨달아야겠습니다.
약간 쌩뚱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문득 자연이란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결국 있는 그대로, 순리 그대로 그 어떤 욕망의 법칙도 거스르지않는 그 마음씀씀이가 너무 예쁘네요,. 결국 내 스스로를 들어내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 또한 결국 제게 달린 셈이지요? ^^
Yoyu are not an individual.
ㅠ 또 한번 절실히 느낍니다. 매주 수업시간마다 들었던 얘기이고 책도 읽으면서 나름 깨우쳐가고 있는거라 생각했었는데 강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부터 까마득해집니다. 과제를 위해 책을 읽으면서 이제야 겨우 "관찰하기"가 어떤것인지 깨달았나 싶었는데 몇일동안 또 쫓겨다니다 보니 아주 조금은 깨달았다 싶었던 것들도 다 허물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저는 쫓기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나 자신의 생각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쉽게 풀려나기 어렵습니다. 아마 20년동안 그래왔던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고통을 만드는것도 나이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도 나 자신뿐인데...;;
'세상어디에도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 고통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나왔다는 말'이 맞다고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이라는 자체가 고통이라는... 그래서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함과 동시에 고통을 받게되는 것은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세상이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내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라는 것이 이제서야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것도 제 자신 스스로가 내게 주는 고통... 그런 사실로부터 느끼게 되는 제 자신에 대한 배신감.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시킴으로서 고통으로 몰아갔던 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믿고 의지한 '자아'였다는 사실에 대한 배반감을.....
관찰자, 자아 , 생각을 키워나가야만 한다는 습관을 20년동안 길러온 지금 생각의 문제가 너무나 큽니다. 생각의 문제로 답답해 하고 있는 것도 생각이고 그것이 생각이다 하는 것도 생각입니다. 그저 바라보기로 이 고리를 끊으라고 하셨죠? 기억이라는 과거,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고통없이 현재를 가는 것. 걱정과 기억이 나의 전부였는데 . 놓는다고 하면서 다시 제자리 입니다.
걱정과 기억이 나의 전부라는 사실! 그것만 분명해도 제대로 시작한 거다. 나머지는 오로지 니 관심에 달린 거지.
자꾸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지하철에서 신발에 껌붙은 사람 이야기 하신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제 친구가 실제로 지하철에서 여자가 신발에 붙은 껌도, 바닥에 붙은 껌도 떼내는 사람을 봤다더라구요. 그때 친구가 뭐 저렇게 괜찮은 여자가 있냐고, 자기도 꼭 그렇게 해볼꺼라고 생각했대요. 저도 조금씩 바꿔보려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올 때 내 자리말고 다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캔, 종이들 모아서 버리기. 길에 무심코 쓰레기 버리려다 가방에 넣기.. 이런 사소한 변화로도 제가 바뀔 수 있을까요. 아직은 좀더 겪어봐야겠습니다.
관찰자라는 것. 관찰자가 관찰대상이다. 책도 읽고, 이 대화를 읽으면서도 솔직히 아직은 반정도도 이해 못했다는 느낌이에요 ㅠ 그렇지만, 이제까지 내가 해 온 고민들, 걱정, 이런것들로 내 인생을 가로막고 아둥바둥하게 했던게 결국 내 자신이었다. 이런 생각에 정말 아, 그렇구나 하게되네요. '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어떤 날은 내 자신이 너무 멀게, 꼭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때가 있어요. 내가 하는 행동, 말등을 내 안에 진짜 속마음이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적....(아,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ㅠ) 이게 이런 것과도 연결되나요? 통찰을 할 수 있는데도, 마음이 결단을, 결론을 내려버리면 기계적으로 된다는 말. 왠지 내 삶은
온통 기계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 슬펐습니다...
그때 말을 하는 마음과 그걸 지켜보는 속마음, 그게 분리된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관찰자는 관찰대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분리되어 있으니 관찰자가 관찰대상에게 압력을 넣는 겁니다. 그게 갈등이고 고통이지요. 안 그러면 인생이 아주아주 평온하겠지요.
댓글을 치는데도 관찰을 하고 있군요...알아채기는 아직도 멀기만 하고...단지 관찰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뒤로는... 한걸음도 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서 지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노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것 같습니다..더 읽고 더 노력한뒤 제대로 적겠습니다 휴..원서부터 주문해야겠네요..그동안 지구별 되는데로 읽어보고...
확실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어떤사실을 접하는순간 생각이 발발하고 그 생각은 여러 가치나 가설의 틀을 짜서 사실 그 차체를 상당수 필터링하거나 왜곡시키지요. 하지만 스스로 그걸 어느정도 알면서도 따라가는걸 느낍니다. 그 관찰자가 '옳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느낌입니다.
'상당수'가 아니라 '전부 다' 아닐까요?
이 글을 보니 참 '홀로서기'라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실'과 '생각' 이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이 대화내용처럼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관찰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말이죠. 정말 차갑게 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상은 원래 그래 그건 사실이야..' 라고 말하기 앞서 내가 관찰자에게 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어떤 관념에 잡혀있지 않은지 되돌아 봐야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다른 게시판에서 본 건데..자아 자체가 바로 생각이더군요. 전 여태까지 '자아'가 생각에 이리저리 얽매여서 날 옭아매는 거라고, 발버둥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아 그 자체가 생각이라니 왜 이런 식으론 생각해보지 못했는지.."살아있음이 오로지 현재다" "now and here" 매일 갖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는데,, 그 생각이 과거인 줄도 모르고..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 수많은 생각들 그게 바로 자아라니깐! 그리고 생각이란 과거나 미래일 뿐이고. 그래서 Life is joy,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삶이란 오로지 현재다, 그래. 과거나 미래는 살아 있는 게 아니잖아!
내 자신을 알아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모든 일이 관찰자의 생각으로 본연의 가치나 평가가 다 결정되는 것인지..같은 일이라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자아가 때로는 일을 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깨어있는 것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가요??? 때론 자아때문에 방해 받아서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려하면 또 다른 자아가 또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런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자아라는 게 때로는 방해되는 게 아니라 항상 방해밖에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스스로 참 부끄럽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 한 아이가 소중한 화분을 깨자 그 집안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터 막내 동생까지 모두가 '내 탓이오' 라고 해서 다들 행복하게 웃었다는 내용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그런 내용을 배웠음에도 우리는 항상 남탓 하기에 급급한거 같아요. 저두 얼마 전부터 계속 맘에 안드는 일이 있어서 친구들끼리 남들 탓을 하면서 짜증내고 불평 했는데 생각해 보면 저희 탓이거든요. 아니 제 탓인거 같아요. 관찰자로서 그들을 관찰하고 불만을 가졌지만 사실 힘들게 했던 것도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든 것도 저희들 그리고 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절실할게 듭니다.
저는 자아가 바른 일을 하는데 방해만 되는것이라면, 바르게 살려면 자아를 없애거나 없는것처럼 되게 하여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요.. 혹시 그렇게 할수 있는 방법이 홀로서기 인가요? 또는 명상을 통한 수련인가요?
그 '자아'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아채가야 하는게 아닐런지요... 그게 참 어렵죠 있는 그대로를 본 다는게-_ㅜ
사실보다도 나의 생각으로 화를 내고, 얽매여 고통받는다는 거,, 왠지 알것같으면서도 어렵네요~ㅠ 사실과 관찰자의 접점이 없다는게,,우리는 사실을 통하여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도 다 사실을 왜곡하고 나의 관찰자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고 사실과는 접점이 없다니,,,,다른 것이 아닌 나의 생각으로 내가 고통받고 있는 듯한 느낌은 오는데 , 그렇다고 생각을 배제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네요 ㅠ이 모든것이 누가 가르쳐 주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거라 더욱 어렵내요,나 스스로 생각을 배제한체 지성으로 설 수 있을것인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ㅠ
그 대상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기 전에, 그 대상에 대한 생각이 사라질까요?
일단 알고 난 후라 하더라도, 앎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천지 차이네요. 더군다나 이 '실천' 이라는 단어조차 나를 얽매게 하면 안 되는 것이겠지요...하지만 이 모든 사실들은 나를 항상 흥미와 집중의 상태로 머물게 하기 때문에 즐거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So seeing is acting.
진짜로 알면, 깨달으면 행동은 저절로 나온다는 말이지. 우선은 하나하나 봐 나가야지 뭐..
숙명적인 실수여, 치명적인 실수여.. 인간은 생각에 고통당하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 정말 충격적이네요. 사실 우리를 괴롭히는 현실 자체는 우리의 생각속에서 만들어낸 것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의 틀을 만들어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생각이라는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인가요.. 부정적이고 불행한 생각들만 계속 드는것 같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숙명적,치명적인 실수를 하며.. 많은 인간들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렇게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앞이 막막하고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과 가야금님과의 대화를 읽고 나니 생각이 그동안 얼마나 절 힘들게 해왔는지 알겠네요.^^지금까지 계속해서 잘못된 습관들로 길들여져 왔다고 생각하니 화가나네요.ㅠㅠ.
관찰자는 관찰대상이다 생각 하는자는 생각이고 과거(전통)가 바로 자기자신이군요 우리는 비어있는 그런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념에 지식(앎)을 축적 시키려고 하고 그러나 그런축적은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위 그것이 곧 욕망 이며 그욕망 이또 두려움을 일으키고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것에든 애착을 갖고 있으면 상실의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고 우리들은 계속이어진 전통은 생각이라고 알지 못하고 그전통으로 행동 하였던거네요 그전통이 원래는 욕망이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인데도요 뼈속 깊이 박힌 전통 위험하군요 그전통이 바로 생각이며 자기자신 인거같아요 즉 관찰자는 관찰대상 축적된과거가 행동하는거군
요? 축적된 전통 지식 과거들이 생각이요 욕망을일으키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장본인 그 축적된과거들이 우리들을 행동으로 이끄는 거구요?
고로 그것은 실제가 아니구요? 생각이요 관념일 뿐이구요?
그러니 그 생각일 뿐인 관찰자의 개입 때문에 내 몸뚱아리가 이다지도 괴로운 거지요.
댓글하나 다는게 쉽지 않네요. 겪고 안 겪고의 차이 그거 ... 매트릭스에서 하던말 생각나네요. 그 길을 걷는자와 아는자와의 차이. 물론 해석의 차이도 있겠지만요. 전 거기서 걷는다에 몰표지만 그건 착각일지도 ㅎ. 암튼 그길을 걷는지 아닌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5 년이 지나서 댓글이 하나 달렸군요.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것을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보이고, 그게 '독약'인 줄 알면 마시지는 않을 테니까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고향에서 잠수함 타고 세월 낚고 있습니다. 땅을 밟기가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