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기록의 특징 8가지 고찰(考察)
『삼국사기』지리지에 따르면, 고구려 평양성은 현 서경(西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삼국사기』가 1145년에 편찬되었으므로 서경은 고려의 서경(西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 대동강이 패수임에 틀림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서경(西京)이 어디라고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동강이 적혀있으므로 현재의 이북 평양 대동강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고구려 평양성은 한(漢)의 낙랑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평양성=한 낙랑군=고려 서경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 연구자가 중국 25사 지리지를 중점 연구하고 『삼국사기』를 통찰한 결과, 명(明) 대 초기에 중국 23사에 위사를 집중적으로 임의 삽입하여,
1. 고대 지명의 위치변이,
2. 고대 국가간의 위상변위,
3. 고대 국가의 건국년도 늦춤 등이 일어났음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삼국사기』기록상의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즉, 아래와 같은 8가지 특징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고대 삼국의 강역(疆域)을 올바르게 알아챌 수 있으며, 지명의 위치로부터 역사의 흐름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 『삼국사기』에는 지명과 지명간의 거리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
둘째, 일부 지명의 경우, 같은 곳을 두개 또는 서너개의 서로 다른 지명으로 기록함으로서 마치 서로 다른 곳으로 인식하게 한다.
셋째, 일부 지명의 경우, 한 곳에서 다른 곳을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어져 있다.
넷째, 일부 사건 기록의 경우, 사건이 일어난 년도가 흐트러져 있다.
다섯째, 도읍지 점령 또는 수복 등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안다.
여섯째, 삼국의 건국년도가 약 200년씩 뒤로 늦추어져 있다.
일곱째, 섬 '도(島)'는 바다의 섬이 아니고 강물로 구획지어진 내륙이다.
여덟째, 일부 지명은 1512년 당시 조선의 지명이 삽입되었다.
비록 조선의 사관들은 명(明)의 압박을 받아 『삼국사기』를 뜯어고쳐야 했겠지만, 『삼국유사』발문(跋文)에서 알아챌 수 있는 바와 같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니, 이러한 이치를 알아 때로 일어나서 동방의 역사를 길이 전할 것을 바란다'고 후학들에게 간곡하게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비록 『삼국사기』를 뜯어고쳤지만, 후손들이 동방의 역사를 알아챌 수 있도록 곳곳에 힌트를 남겨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를 들면, 『삼국사기』의 맨 앞표지 제목을 뜯어고쳐 『삼국사』라고 발간하였습니다. 후손이 아무리 아둔하더라도 표지의 큰 글씨라도 눈에 뜨이도록 말입니다.
또 미추홀의 경우, 이렇다는둥, 저렇다는둥, 여러가지 설을 열거하면서 가장 부실한 설인 것처럼 가장 마지막에 진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또 주석을 달면서, 조선의 지명으로 명백하게 지명의 위치를 변이하려고 한 곳도 있지만, 원문의 주석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지명의 본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우리의 조선들께서 후손을 생각하며 지극정성으로 사유(思惟)했음을 느끼고 감명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끝>
첫댓글 좋은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