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원에 대한 첫 인상은 무위자연이라 할까, 인위적인 꾸밈이나 세련된 아름다움도 없었다. 시골집 뒤뜰에 있는 장독대처럼 투박한 항아리들이 되는대로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동산 여기저기 자라는 나무들과 묵묵히 누워있는 바위들, 그런 모습이 동광원 사람들이 모습과 겹쳤다. 방온거사의 일일사무별의 풍경이 동광원의 모습이었다.
일일사무별日日事無別, 날마다 섬기는 일 특별함 없으니
유오자우해惟吾自偶諧, 다만 내가 나 자신을 만나 기쁘다
두두비취사頭頭非取捨, 사람과 사람 사이 가리지 않고
처처몰장괴處處沒張乖, 어디서나 평안하고 화평한 동산
주자수위호朱紫誰爲號, 세상 벼슬은 누가 만든 것이더냐
구산절진애丘山絶塵埃, 속세의 먼지 티끌 끊어진 이곳에
신통병묘용神通幷妙用, 신통과 묘용은 무엇이더냐?
운수급반시運水及搬柴, 물 긷고 나무하여 먹고 자는 일
-방온龐蘊 -
날마다 땅 파고 김매며 농사짓는 그 일이 동광원의 일상이다. 땅 파는 소리가 기도요 김매는 일이 수도하는 것으로 수도와 노동이 다른 것이 아니다. 수도와 일상의 일이 둘이 아니요 하나이다. 이처럼 농사와 수도가 둘이 아닌 무별의 세계, 누가 찾아오건 구별하지 않고 무심히 맞아주는 평등의 세계, 질그릇 같은 그 속에 담긴 깊은 무미의 맛을 얼마나 알까. 스타벅스와 베스킨라빈스의 자극과 달콤함에 중독된 우리들이 동광원의 무미의 맛, 본래의 맛없는 맛에서 그 담백함과 깨끗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기 이현필의 질그릇 같이 투박하고 소박한 고백의 글, 기도의 글과 말씀을 모았다. 그 사이 사이에 질그릇을 포장할 때 깨지거나 상하지 말라고 끼워 넣는 완충재로서 그간 가볍게 써놓은 글들을 넣었는데 그 역할이 제대로 될지 염려스럽다.
이현필의 설교 필사본도 상당수 들어 있는데 요즘처럼 녹음기가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본의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즉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이 메모한 것이라 온전한 말씀을 알기에는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독자들의 행간을 읽는 능력과 정성을 부탁하며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할 뿐이다.
아무튼 이 책이 한국인의 기독교 영성, 나아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또한 영적 열망을 가지고 영적 여정의 길을 올라가는 신앙인들에게 소박한 길잡이가 되기를 빌어본다.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