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허풍
다들 좋아하는 모양이다. 쌈채소는 종류가 워낙 많아 다 알지도 못한다. 귀촌지원센터 교육을 통해서 쌈채소 생육에 대해서 배우고 상추나 청경채를 심기는 했다. 하지만 달리 뭘 아는 것도 없고. 한 것도 없다. 대충 흉내만 내는데 주위에서는 대단한 농사꾼이 된 줄로만 안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상추 한 상자 보내줄 거지?” 넉넉히 보내주겠다는 말이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기어 나온다. 부질없이 하는 말이다.
말만큼 쉬운 게 있을까? 뇌나 가슴을 거치지 않는 말은 그만큼 더 쉽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너무 쉽게 뱉은 말이지만 그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이 무겁다는 걸 안다면 입을 꽉 다물어야 한다. 그런데 우쭐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려 종종 실수한다.
허풍 이야기다. 경상도 가야산 해인사 스님과 전라도 모악산 금산사 스님이 길 가던 중 만났다.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해인사가 금산사보다 크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해인사 스님이 “해인사는 절도 크지만, 승려가 너무 많아 이번에 커다란 밥솥으로 바꾸었답니다. 그런데 밥솥이 너무 커서 배를 타고 다니며 설거지합니다.” 해인사 스님의 허풍에 금산사 스님은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우리 금산사도 승려가 하도 많아서 해우소를 넓고 깊게 팠습니다. 소승이 절을 떠나올 때 큰일을 봤는데 아마, 지금쯤 바닥에 떨어졌을 겁니다.”라고 익살 섞인 허풍으로 답했다 한다.
허풍이라 하면 낚시꾼이 최고다. 취미가 낚시인 사람들은 거의 30cm 붕어 정도는 손맛을 봤다고 한다. 액자에 잘 보관된 탁본을 가진 사람을 봤다. 붕어와 함께 찍은 휴대폰 사진으로 증명하는 친구도 있다. 낚시는 끝없는 경쟁의 영역을 가지고 있나 보다. 나도 구례로 온 후부터는 낚시꾼 버금가는 허풍꾼이 되었다.
수확 전에 알 수 있는 것 없다. 자연을 상대하는 일이라 더 어렵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오만을 넘어서는 자만인지, 자만을 넘어선 욕망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수확물이 얼마가 될지 알 수도 없는데 뭘 어쩌겠다는 이야긴지 모르겠다. 그냥 의미 없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만난 막역한 친구에게 “다음에 우리 밥 한번 먹자.”라고 하는 인사치레처럼 영혼 없이 하는 이야기다. 말하는 사람이나 상대방이나 모두 밥 먹겠다는 약한 의지조차도 없다.
걱정이 태산이라면 믿겠는가. 누나와 동생에게 상추, 감자, 고구마까지 넉넉하게 보내겠다는 말은 실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스럽다. 장터에 가서 사 보내는 꼴이 생기지나 않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