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골 테마 마을 조성 계획(제안서)
~이야기가 있는 마을~
제1테마(과거 : 유래와 역사 자원), 구릿대 피리와 대한 독립단 도총재 박장호
1)구릿대 피리의 슬픈 사연이 있는 피리골
진한의 마지막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 패하여 후퇴 하던 중 태기산에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하면서 항거하다가 그곳에서도 패하여 지금의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와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사이에 있는 운무산(옛날에는 율무성이라 불렀다)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태기산과 운무산은 산맥으로 연결 되어 있는데 운무산 자락에 있는 작은 동굴( 그 동굴을 “왕의 피난굴”이라 부르는데 옛날 온돌을 설치하고 불을 지폈었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함)에 은신하면서 패망한 군주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때 왕을 모시던 신하들이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왕을 위로하였는데 피리의 재료는 대나무가 없는 이곳에 흔하게 자라던 구릿대(구리당, 백지)였다고 합니다. 여름이면 습기가 많은 진펄 땅에 주로 자생하던 구릿대는 한 길씩 속을 비우며 자랐습니다. 운무산이 있는 옆 동네가 피리 생 笙자 골곡 谷자를 쓰는 행정 지명 생곡리(笙谷里) 입니다. 피리골을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지요. 이 피리골에 유난히 구릿대가 많이 자생 합니다. 비운의 패망한 군주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이 눈물의 최후를 마친 율무성 “왕의 피난 굴” 그곳에서 신하들이 왕과 함께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만들어 불던 구릿대 피리, 그 사연이 피리골이란 지명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귓전에 슬프고도 구성진 음율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 추진할 연관 사업
1)피리 상징물 조성 (3개소 : ①마을 입구, ②저수지 제당, ③호수변 소공원)
2)피리 공방 조성(①피리방, ②목공예방, ③짚풀 공예 및 고공품방)
3)노래극 “홍천 꿈동이” 고향 가꾸기 (1시군 1대표 문화예술행사 육성지원사업으로 창작된 노래극 :이병욱교수)
2)대한 독립단 도총재 박장호 선생 생곡에 살다
피리골은 의병장 화남(華南) 박장호(朴長浩) 선생이 살던 곳입니다. 박장호는 1850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스승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문하생으로 학문을 익혔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유인석(柳麟錫)·홍재학(洪在鶴) 등과 함께 수교의 부당함을 상소(上疏)하였으나 결국 일제에 합병되자 1905년 강원 홍천(洪川)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동지방의 의병대장으로 많은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고국에서 망명해 온 각계 대표 500명으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그 도총재(都總裁)로 선임되어 1922년 일제의 주구 김헌(金憲)에게 암살되기까지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03년에 작성된 강수계수성록(講修契修成錄)에 화남의 주소가 서석면 생곡(笙谷)리로 표기되어 있어 화남이 피리골의 밀성 박씨 집성촌이었던 간촌에 은둔하며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902년 2월 24일에 별세한 그 부인 진주 강씨의 묘가 서석면 하군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랜 기간 생곡리에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독립기념관에 그에 대한 기록들이 소장 되어 있습니다.
*추진할 연관 사업
1)대한독립단 도총재 화남(華南) 박장호 기념비 또는 현판 건립
제2테마(현재 : 조성된 환경 자원), 연화부수(蓮花浮水:연화봉과 저수지)
피리골 마을 중심엔 연꽃 봉우리처럼 아름답게 생긴 연화봉(蓮花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연꽃 봉! 언젠가 부터 우리 조상들은 연화봉 어딘가에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의 연화부수(蓮花浮水)”
명당이 있다하여 연화봉 자락 여기저기에 묘지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연화부수(蓮花浮水) 명당은 묘지의 명당이 아니었습니다. 화전을 일구며 굶주림과 힘겨운 삶을 살아왔던 백성들의 가장 절실한 소원은 배불리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피리골 마을엔 화전민이 주로 많이 살아왔습니다. 봄이 되면 양식이 떨어진 주민들이 칡뿌리도 캐어 먹고 송기도 벗겨 먹는 초근목피(草根木皮)의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굶주려서 부황이든 주민들도 생겨나곤 했습니다. 그들은 논을 떠서 쌀농사를 지어 ‘이밥에 고깃국 ’ 한번 실컷 먹어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습니다. 연화봉 자락에 저수지가 만들어지고 드디어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이 생겨났습니다. 옛날부터 예언적으로 내려오던 연화부수(蓮花浮水) 명당은 한 많은 주민들의 꿈이 이루어 질 것을 선현들이 예견해 놓았던 것입니다. 지명은 참으로 놀라운 예언입니다. 연화봉의 연꽃은 연못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존재 할 수 있습니다. 저수지가 생길 것을 예언하는 지명이었습니다. 연화봉 맞은 편 산은 우물봉(玉井峰)이라 부르는데 역시 저수지가 만들어 질 것을 뒷받침하는 지명입니다. 저수지 첫 골짜기인 큰 다리골(橋洞)은 408호선 도로가 완공 되면 저수지를 가로질러 100m가 넘는 큰 다리(교량)가 실제로 건설 되며 두 번째 골짜기인 작은 다리골은 60m의 작은 다리가 놓여 집니다. 저수지 주변에 옛날부터 불리던 지명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 말이 씨가 되어 오늘날 그대로 형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 날 연화봉 자락에 생곡 저수지가 생기고 연꽃 모양의 연화봉이 저수지 물 위에 떠있는 모습이 생겨났습니다. 연화부수의 형상이 이루어져서 200ha의 논이 개답되고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밥에 고기 국”의 한 많은 이 지역 주민들의 꿈이 생곡저수지로 이루어졌습니다. 연화부수 명당의 꿈은 죽은 사람의 묘 자리 명당이 아니라 산 사람의 염원이 이루지는 생명의 명당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추진할 연관 사업
1)화전민으로 살다 간 승복(반공소년 이승복 : 부, 이석우)이네 집 복원
2)화전민 통나무집 민박 촌 조성
3)화전민 다니던 오솔길 (야생초 관찰 둘레길로 저수지 건너편에 조성) 산책로 조성
4)호수 변 소공원 음악회(①피리 연주회, ②기타 동호회 음악회)
5)저수지 얼음을 활용한 빙등제와 얼음낚시 겨울 축제
6)호수 변 곤충 생태 관 및 사육 시설 설치로 곤충 체험 장 조성
7)물레방앗간 복원 사업
8)농산물 판매장 건립 및 화전민 먹거리 장터 조성
9)수중 생물 번식을 위한 수중보 설치(갈수기 대비)
※수변 생태 관찰 산책로와 소공원, 공연 무대 및 육각정 등은 이미 조성된 시설이므로 연관되는 사업은 연차적으로 추진
제3테마(미래 : 잠재적 환경 자원), 구목령의 피리샘과 한강기맥( 漢江岐脈 168km)
1)구목령과 피리샘
구목령(九木嶺)은 피리골의 배나무골에서 고갯길을 오르는 옛길에 아름드리 돌배나무 아홉 그루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구나무 재 로 불리기도 하는데 서울에서 강릉을 연결하는 직선 선상에 위치한 고갯길입니다.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 지방의 농산물이 이 고개를 넘나드는 도보 장꾼들, 또는 주민들에 의하여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통로였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던 옛길이여서 1960년대까지도 구목령 정상까지 피리골 주민들과 흥정리 주민들이 여름철 풀들이 무성하여 통행이 불편 할 때면 길가의 풀을 제거하여 통행이 원활하도록 해오던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옛길입니다. 특히 이효석 소설가의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인 봉평 장에서 일부 장꾼들이 구목령을 넘어 5일장인 서석장과 청일장, 갑천장, 둔내장을 거쳐 다시 봉평장으로 합류하는 팀이 있었는데 그들의 상품 봇짐을 봉평장에서 구목령 정상까지 흥정리 짐꾼들이 져다 주면 피리골 짐꾼들이 받아 지고 서석장터까지 운반해 주고 품값을 받는 일들이 늘 있었으며 혼인 가마가 넘나들기도 하였는데 구목령 밑 만경소 들머리에 주막이 두 집(한 집은 김일원씨가, 다른 한 집은 장경천씨가 경영 : 김학준씨 증언)이나 있을 정도였으니 도보 통행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구목령 정상에는 샘물이 있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목을 축이게 하였는데 1,000m 고산준령에서 샘솟는 그 샘이 피리샘입니다. 피리샘은 홍천강의 발원 샘으로 요즈음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산맥을 한강기맥이라 부르는데 한강기맥을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들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구목령에서 한 시간 정도 뱃재 쪽으로 올라가서 서석에서 가장 높은 주봉(主峰)인 1,128m의 노고산(老姑山:일명 할미자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석의 주봉(主峰)이 할미자리(노고산)이기에 여성을 상징하고 따라서 서석은 여신(女神)지역이라고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노고산 맞은편엔 6.25전초전이 벌어졌던 불발령(불바래기)이 마주보고 있는데 단군신화의 전설적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불바래기의 불은 범(호랑이)의 옛 말이고 할미자리는 웅녀(곰)을 상징 합니다. 범과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하여 굴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견디어 결국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할미자리(곰)와 불바래기(범)이 쑥을 먹었다하여 쑥봉(蓬)자를 쓰는 봉평의 지명이 생겼다는 전설입니다.(상군두리 전병록씨의 서석의 지명 해설에서 참조함) 그 단군신화의 이야기가 미약골을 거쳐 서괭이(서광동:瑞光洞)로 연결됩니다. 미약골은 신성시 되는 곳을 의미하고 서괭이 안에는 온통 빛을 발하는 바위절벽이 이루어져 있는데 그곳 반석에서 천상 제사를 드리던 곳이 있다고 합니다. (강문백씨 증언) 그 제단이 서석단(광주의 무등산 위의 천제단을 서석단이라 부른 것과 같은 의미)으로 서석(瑞石)이란 지역명이 유래 되었습니다.
동학농민 항쟁 때에는 동학군이 구목령(九木嶺)을 넘어 피리골을 거쳐 풍암리 자작고개 전투에 참여 했던 흔적들이 마을 여기저기에 전해져 내려오고, 6,25 사변 전초전이라 불리는 불발령(불바래기) 공비 사건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전투하는 국군들의 식사를 전담했다고 합니다.
*추진할 연관사업
1)피리샘 정비
2)안내판 설치 및 홍보
2)한강기맥(漢江岐脈)
한강기맥은 백두대간 상의 오대산 두로봉(五臺山 頭老峰, 1,421.9)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양수리까지 연결되는 약 168km의 산줄기입니다.
오대산(비로봉 1,563.4m)을 비롯하여 계방산(1,577.4m), 보래봉(1,324.3m), 덕고산(1,125m), 운무산(980.3m), 수리봉(959.6m), 대학산(876m), 덕구산(652.2m), 응곡산(603.7m), 만대산(680m), 오음산(930.4m), 금물산(774m), 시루봉(504.1m), 갈기산(684.9m), 단월산(778m), 용문산(1,157m), 소구니산(799.9m), 청계산(658.4m) 등이 한강기맥의 마루금을 이루고 있는 주요 산입니다.
현재 기맥으로 알려진 것은 한강(漢江)기맥, 금남(錦南)기맥, 영산기맥, 땅끝기맥. 진양기맥, 호남(湖南)기맥 등이 있습니다.
한강기맥 중에서 약60% 이상의 구간이 홍천군 관활 지역인데 그중 구목령에서 먼드래재까지 3구간이 일일 코스의 등산로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추진할 연계 사업
1) 등산로 정비
2) 홍천군 관내 다른 관광지와의 연계
3) 한강기맥을 통한 주민 소득 향상 방안 강구
□한강기맥 3구간 : 구목령~먼드래재- 코 스 : 구목령~1094.2봉~삼계봉~ 덕고산~운무산~먼드래재 - 거 리 : 도상 14.7km(접속 6.5km 제외) - 예상시간 : 7시간 전후(접속시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