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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장 1~11절
제목 :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예수님
누가는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이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의 이야기로 사도행전을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에 대한 개관]
사도행전은 신약에 있는 유일한 역사서 입니다.
역사서라는 것은 역사의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기록 한 내용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함께 역사서에 편입시킬 수 있는 책이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도 역사의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기록 했습니다 .
그런데 누가복음을 역사서에 편입시키지 않는 이유는
누가 복음은 4복음서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이고 누가복음의 저자도 누가가 기록했는데,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내용을 다 철저히 근원부터 살펴서 검증을 하여 기록 했기 때문에 이 두 권을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1) 사도행전의 의미
사도행전은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도라는 것은 보냄을 받는 자라는 뜻 입니다.
누구의 보냄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 합니다 .
그런데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만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13장 이후부터는 바울의 선교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60-70%가 바울의 이야기이니,
사도들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이 사도임을 강하게 강조 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생전에 예수님께 보냄을 받지는 않았지만,
다메섹 도상 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예수님께 보냄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사도 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 여정도 모두 사도행전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2) 사도행전의 수신자
그렇다면 오늘 수신자는 데오빌로여 라고 되어있는데,
데오빌로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데오빌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누가복음의 수신자도 데오빌로 인데,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 각하 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서,
상당히 고위직에 있는 사람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상당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고,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이해와 관심이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사도행전의 기록내용
누가는 먼저 기록한 내용 즉 누가복음을 통해서 기록한 내용은,
예수님이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신 일까지를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증거를 나타낸 일 과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 ,
그리고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하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전도(3장~7장)
유대와 사마리아 전도(8~12장)
땅 끝까지 (13장~28장)
복음전도한 순서에 따라 기록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분부한 내용을 언급 하고 있습니다.
1. 서문-하나님 나라의 일 (1~3절)
행1:1에 보면 “데오빌로 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이 먼저 쓴 글이 있다는 것 입니다.
누가복음 1:3에 의하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 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일인이 썼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사도행전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기록은 행1:1~2절 에서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 ”에 대하여
기록했다고 합니다 .
그러면 사도행전은 무엇에 대하여 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 을 말씀하시니라 ”
여기서 “고난 받으신 후”라는 말은 십자가 사건 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
부활하신 첫날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막16:9~11, 요20:11~18)
엠마오에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으며(막16:12,13, 눅24:13~35)
열 제자에게 나타 났으며(눅24:36~43, 요20:19~25),
그리고 그 다음 주일은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셨으며(막16:14, 요20:26~31),
그 뒤 32일간은 갈릴리 호수가에서 일곱 제자에게(요21장),
5백여 형제들에게(고전15:6),
야고보에게(고전15:7),
제자들에게(눅24:44~49, 행1:3~8) 나타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님 나라가 천국입니다 .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
결코 새로운 주제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
누가복음 11:20에 보면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볼 때에,
예수님은 십자가 전이나 후나 동일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이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하나님 나라”는 누가복음의 중심 주제들 중 하나입니다.(눅4:43,8:1,9:2,11, 11:20).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왕”으로,
그가 다스리는 영역을 “이스라엘”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영토의 개념이 아닌 주권 ,
즉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는 분이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백성의 하나님이 십니다 .
신약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인 것인 동시에(마13장, 눅17:31),
종말적인 것 입니다(마25장, 계1~22장)
예수님이 부족하여 못 다한 일을 우리가 마무리 짓는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완성하신 천국을 재림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세우실 때까지 우리는 십자가 안에 있는 천국을 나타내고 보여준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맡겨주신 일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는 것은 ,
예수님에게 관심 가지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
하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 나라의 일이 아니고 ,
또한 땅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땅의 일이 아닙니다 .
지금 주님 안에서 십자가로 이루어진 천국을 보여주는 것 이라면,
비록 이 땅에서 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일을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
비록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비밀에 관심을 가지고 ,
거기에 기쁨을 두고 살아간다면 ,
그 사람은 세상 것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2. 성령의 약속-예수님의 마지막 명령(4~5절)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4~5절 말씀이 증언 해 주고 있습니다.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에 제자들이 제일 두려워 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순간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합니다 .
그렇게 되면 제자들은 모두들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미리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2)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떠나지만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다리라고 한 것 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수차례에 걸쳐서 약속하셨던 내용입니다.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여기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약속하신 것을 주신 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기 보다 먼저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 그렇게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기다리면 ,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 입니다.
누가는 이 내용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3.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부활 후에 이 땅에 계시면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설명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제 사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님이 못다 한 일을 채우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로 성취된 천국을 보여주고 증거하는 차원입니다 .
언제까지입니까?
11절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것을 사도들이 보고 있을 때에,
천사들이 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즉 사도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1) 증인은 시대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딤후4: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그런데 그 증거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임해야 하는 것 입니다.
2) 증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일해야 합니다 .
증인은 이 세상 나라의 권세를 잡음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고요히 역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1:5절).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
누가복음 3:21,22 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1]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데 유독 예수님에게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첫발을 내딛은 것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것은 십자가를 질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십자가를 지셨기에
성령 세례가 인간에게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과 같이 성령 세례를 받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이러한 성령 세례가 가능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늘의 일 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기에 말할 수가 없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이 하나님 나라의 일 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성령받은 증거입니다 .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자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언제 성령을 받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을 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믿을 때에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은 증거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의 증인이 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고 하나님의 증인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43:10절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그런데 이스라엘은 증인의 역할에 대하여 실패했습니다 .
이스라엘은 귀머거리요 소경이었습니다 (사 42:18).
*사42: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
귀머거리와 소경 이 어찌 증인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귀와 눈, 입 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예 컨데]
【요한복음15장에 보면 “나는 참포도나무요”(15:1)라고 선언한 말씀이 나옵니다 .
포도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택한 백성)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시80:8절“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 이때 “포도나무”는 “이스라엘(택한백성)을 말합니다.
*겔15:1~8절에서도 “포도나무 ”를 “이스라엘”로 비유하고 있고,
*겔19:10~14절에서도 “포도나무”를 “이스라엘”로 말씀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참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립시킵니다 .
요15장에서 예수님이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계속적으로 포도나무로 간주되어온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임을 부인하는 선언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실패한 포도나무요, 실패한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더 이상 참포도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실패한 포도나무를 대신한 것이 예수님 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 자신이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 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이상 포도나무가 아니라,
예수님이 포도나무, 그것도 참포도나무 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도 이제는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예수님을 참포도나무로 모신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란 사실입니다 .
그것도 참포도나무의 가지들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참포도나무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참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아 자동적으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예수님에게 붙어 있다는 말은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참된 종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에게 신(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 42:1).
*사42: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
실로 예수님께서는 성령께 이끌린 참된 종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한 증인이었습니다 (요 17:4).
*요17:4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
그 종이 소경의 눈을 밝히겠다고 하신 약속대로(사 42:6,7) 이루어졌습니다.
*사42:6~7절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 세례가 가능하게 되었고,우리의 귀와 눈, 입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누구든지 성령께서 임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다름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 ”이 되는 능력입니다.
어떻게 하든 성령님은 우리를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 입니다 .
성령 받은 자가 증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입니다 .
요한복음16:13~14절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전에는 나를 증명하고 나를 자랑하는 자였는데,
이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바뀌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또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어떤 것을 나타내시며 ,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는 것 이 증거 되어져야,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증인이라 해도 제대로 증거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2장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10~12절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사정 과 우리의 사정 양편을 다 아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
그분이 우리를 주장하셔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고,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다 알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
은혜로 베푸신 것들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
성경을 공부한다고 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자가 성경을 볼 때에 예수님에 대하여,
그분이 지신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성경공부를 할 필요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때 성경공부란 우리가 믿는 바를 정리하는 차원에 불과할 뿐입니다 .
우리가 연약함으로 성령을 소멸하고 때로는 애써 외면함으로 자기를 드러내면서 자랑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증거하느냐 하는 것 입니다 .
결국에는 예수님만 자랑하고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
어떤 설교가 잘하는 설교입니까?
내 생각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판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설교자에게서 예수님이 보여져야 한다 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말씀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반드시 기도하면서
성령에 이끌리는 것 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했지만 능력 있게 무슨 행동을 한 것은 없습니다 . 그 이유는 예수님이 막으신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내면 깊숙한 곳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성령의 견인 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영이 충만해지면
강력한 열정과 확신과 담대함이 생깁니다 .
그 힘으로 감당할 때 우리에 주신 온전한 증인된 사명 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
마귀는 선한 일을 하는 자의 마음에서는 틈을 찾지 못합니다.
게으른 자의 마음에 둥지를 틉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소원을 품으면 하나님의 영 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
증인된 사명을 감당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 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누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요약하면서 제자들의 행적을 소개하기 시작합니다(1~3절)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의 일치를 강조합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있기에 제들이 있고, 제자들의 삶은 그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복음을 전하면 고난 받겠지만, 결국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누가복음)를 일고, 예수님을 본받은 제자들의 이야기(사도행전)를 묵상할 때,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과 함께 통치의 자리인 하늘로 올라가심은 예수께서 모든 지역과 영역을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뜻입니다(9~11절).
그리고 통치의 권한을 우리에게 위임하셨습니다.
하늘만 쳐다보는 것은 사명의 방기(放棄)라고 천사들이 일깨워줍니다.
‘오늘 여기에서’모든이들의 아름다운 발이 되어 복음을 살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누가는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사도행전을 시작합니다(4,5절). 시작부터 주도권이 주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기다림의 장소는 예수께서 처형당하신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에서 죄 용서와 능력의 원천인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올 한 해 내 삶의 자리 또한 예루살렘처럼 힘든 곳일지도 모릅니다.
도피하지 말고, 한 번에 바꾸려는 조급증도 버리고, 그 자리에 머물러 주님의 시간, 주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내 삶을 조율합시다.
2)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열방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6~8절).
그러니 그 나라의 왕으로 예수님이 등극하셨다고 온 땅에 알려야 하고, 만민이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기에 땅 끝까지 가서 전파해야 합니다.
그 나라를 먼저 경험하고 목격했기에 증어합니다.
제자의 또 다른 이름은 ‘증인’입니다.
나와 교회는 이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