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이승복 소년 살해 만행 사건
1968년 11월 북한유격대가 남한에 활동거점을 구축하기 위하여 울진·삼척 지구로 침
투한 사건.
이 무장유격대는 북한 민족보위성정찰국 예하의 124군부대 소속으로서, 그해 1월 청와
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이미 남파된 바 있었던 무장공비들과 같은 부대에 소속하고 있
었다.
북한측이 울진·삼척 지구로 무장유격대를 남파한 것은, 지난 1·21사태의 실패를 만
회하고 남한에서 반정부민중봉기를 일으킬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당시
미국은 월맹에 대한 북폭을 중지하는 동시에 파리평화협상을 진전시킴으로써 월남전을
마무리해가고 있었다.
동서대결의 분위기가 완화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 북한은 중공과 소련의 군사원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다시 한번 부각시키려 하였던 것으
로 관측되었다. 10월30일에서 11월2일에 이르는 사흘 사이에 120명의 북한유격대는 8
개조로 나누어져 야음을 타고 경상북도 울진군 고포해안에 상륙, 울진·삼척·봉화·
명주·정선 등지로 침투하였다.
군복·신사복·노동복 등 갖가지 옷차림에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지닌 무장공비들은 주
민들을 집합시킨 다음 북한책자를 나누어주면서 북한발전상을 선전하는 한편, 정치사
상교육을 시키면서 '인민유격대'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였다.
울진군 북면 고숫골의 경우, 11월 3일 새벽 5시30분쯤 7명의 공비가 나타나 "경북경찰
대에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주러 왔다."라며 주민을 모은 다음, 사진을 찍고 위조
지폐를 나누어주고 사상선전을 한 다음 유격대지원청원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때 이 마을에 나타난 양양군 장성읍에 거주하는 전병두를 대검으로 찔러 죽였으며,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위헙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만행이 잇따랐는데, 삼척군 하장면의 한 산간마을에서는 80세 노인,
52세의 며느리, 15세의 손자 등 일가 세사람이 난자 당하였으며, 평창군 산간마을에서
는 10세의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절규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당
하였다.
공비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결사적인 신고에 힘입어 상황을 파악한 당국은
11월3일 오후 2시30분을 기하여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하
고, 대간첩 대책본부의 지휘 아래 군과 향토예비군을 출동시켜 소탕작전을 벌인 결과
11월16일까지 31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하였으며, 연말까지는 대부분을 소탕하였다.
공비에 의한 민간인 피해와 소탕작전중 전사자는 모두 18명이었다.
생포된 공비의 증언에 따르면, 일당은 1968년 7월부터 3개월간 유격훈련을 받고 10
월30일 오후 원산에서 배로 출발하여 그날로 울진 해안에 도착, 되돌아갈 때에는 무전
지시를 받기 로 하였으나 실패하여 독자적으로 육상복귀를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은 이 사건이 한반도의 긴장을 초래, 유엔의 평화통일노
력을 방해하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엔총회에 특별보고를 하기로 하였다. 북한의 대남
교란행위는 한국국민의 반공태세를 한층 공고히 다지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