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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도솔산인]♧ 항일의병장 석상용 상원진이 주둔했던 박회성을 찾아서
도솔산인 추천 0 조회 138 22.03.26 17:24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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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3.26 19:04

    첫댓글 오락가락하는 비소식에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 22.03.26 20:31

    한말 항일의병의 전적지를 찾았습니다.

  • 22.04.25 14:03

    읽을만한 글이다 싶어서 살펴보니 역시 도솔산인님!

    석상용 장군은 해주 석씨(海州石氏)인데 명나라 신종(神宗) 때 병부 상서(兵部尙書) 석성(石星)이 시조(始祖)이며, 이 분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에 원병(援兵)을 파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연유인즉 부인(夫人) 류씨(柳氏)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곤란을 당하던 중 조선 역관(譯官) 홍순언(洪純彦)의 구호를 받은 바 있어 그 보은의 뜻이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필요한 막대한 군비 조달로 나라의 국운이 쇠하여진 책임을 지고 옥사(獄死) 합니다. 석성이 죽기 전 화가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 자식들에게 조선으로 도망갈 것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아들 중 차남 석천(石洊)이 먼저 성주 대명동(星州大明洞)에 정착하면서 성주 석씨(星州石氏)가 되었고, 장남 석담(石潭)은 유배지에서 풀려나와 어머니 류씨(柳氏)를 모시고 해주(海州)에 정착하였는데 이 분이 석상용 장군의 직계 조상이십니다.

  • 22.04.25 14:03

    그런데 청나라가 수시로 석상의 죄를 물어 조선으로 도망친 후손들을 압송하라고 조정을 압박하자 광해군이 이들을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김해로 옮겼는데 인조반정으로 조정의 관심도 멀어지고 후손들이 이곳에서 많이 궁핍한 생활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지금의 경남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추내동으로 다시 일가를 옮겼는데, 일부는 무장의 후손답게 지리산 추성에 곰사냥꾼으로 정착하여 살았답니다. 그 중 출중한 사냥꾼이 석상용 장군이었고, 알려진대로 실상사와 벽소령에서 일경들과 몇 번의 전투를 치르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돌아가셨습니다.
    지금도 빈대궐터에 후손이 몇 분 사신다는데 가장 확실한 후손은 수철리 쌍재에 사시는 석재규씨입니다. 이 분은 부산에서 은행 잘 다니다가 고향으로 낙향해 산농사 지으면서 지내고 계십니다. 내내 건승하십시요!

  • 작성자 22.04.25 14:22

    하로동선님! 잘 지내시지요.

    영랑대에서 만나던 분들 보기가 어렵습니다.
    최근 상원진과 백무진의 실체를 알았습니다.

    독립운동 발굴과 선양은 1, 2번이 없지요.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22.04.25 14:28

    @도솔산인 지리산이 아무리 깊다한들 해월령 고개만큼 술맛나는 곳이 또 있을까요.

    좋은 자리에 불러만 주시면 술 한말 지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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