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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행복식당 외 3편
김 완 준
행님아, 그때가 좋았제
중앙파출소 앞 YMCA 이층 복도에서 시화전 하던
거기 1층 아루스제과점에 단발머리 여학생이 기다리던
그 여학생이랑 수성못 놀러 가서 오리배 타던
만순반점 뒷방에 모여 짜장 묻은 입술로 뽀끔 담배 피던
염매시장 곡주사에 오리엔트 시계 잡히고 찌짐에 막걸리 마시던
술이 모자라 독수리 카세트 클로버 타자기도 잡히던
그마저 없으면 멸치 대가리에 깡소주 마시던
새벽녘 술에 절어 돌아오면 젊은 어무이가 밥상 차려주시던
장정일과 이인화가 서빙을 하던 시인다방
김민기와 트윈폴리오가 배회하던 심지다방
중앙파출소에서 대구역까지 편의점보다 서점이 많던
그 동성로 한복판으로 날치 떼 같은 처자들 활보하던
릴케 행님 바슐라르 행님 쿤데라 행님이랑 동고동락하던
남산동 네거리 헌책방에 ‘김춘수 선생님 혜존’이라고 적힌 시집이 잔뜩 쌓여 있던
술 고픈 제자들이 선생님 연구실에서 몰래 꺼내와 팔았다고 하던
조계사 만해백일장 갔다 비둘기호 막차 타고 대구역 광장에 내려 콩국 먹던
신춘문예 떨어지자 습작노트 불태우고 논산훈련소 입소하던
가출하기엔 너무 늙었고 자살을 꿈꾸기엔 아직 이르던
행님아, 그때가 참말로 좋았제
벌건 대낮에 머리 희고 꺼꾸정한 사내
반월당 네거리 행복식당 앞에서
혼자 구시렁거리고 있다
국밥
국밥 하러 간다
밥은 먹고 다니느냐는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
빈 하늘 지키는 눈썹달과 함께
하루의 끝을 물고 온 저녁 새와 함께
삶의 허기를 견디다 못해
일찌감치 천사가 된 이들과 함께
멀리서 오고 있는 것들과 함께
오래된 식탁에 앉아 먹는다
밥과 국, 국에 밥을 말아
맵고 짜고 시큼한 양념 뿌리고
칼칼한 깍두기 국물도 끼얹고
눈물과 한숨, 희망과 절망도 한줌 섞어
국에 젖은 밥 알갱이 염주처럼
묵주처럼 혀 밑으로 굴린다
뚝배기끼리 부딪히는 눈빛
꾹꾹 누르면 새어나오는 낱말
한 숟가락 밀어 넣기 전에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되돌릴 수 없어서 명백해진 시간에 대해
밥국과 국밥의 명명법에 대해
서로 한데 몸 섞으며
뜨거워지는 것들에 대해
홀로 먹어도 속 든든해지는
국밥 한 그릇 하러 간다
당신의 정원
당신의 정원에는
아직 벌들이 잉잉거리고
먼 나라에서 당신은
흰 낙타 타고 오는 중
말들이 씨앗으로 자라고
그 씨앗이 또 다른 풀씨 매달고 있는 중
무성한 정원에는 아직도
뱀이 오소소 기어가고
저 먼 천국에서 당신이
방울 소리 내며 오는 중
꿈꾸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실 거야
내가 왜 밤마다 뒤뜰 자작나무에
사다리를 걸어놓고 잠이 드는지
나무에 오른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별을 딸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작나무 줄기에
아버지 이름을 새겨 넣는다
인간의 지붕을 적시는
뭍별 가운데 아버지 목숨보다
파란 별이 또 있을까
어느새 아버지 자작나무 가지에
둥지 틀고 내 이름을 부른다
낮이면 온갖 새들이 날아와
아버지 어깨 위에서 조잘거리고
밤이면 남몰래 달빛이
아버지 무릎에 입을 맞추고
세상의 끝에서 불어온 바람은
온종일 아버지 머리맡 서성이고
아버지는 아실 거야
내가 왜 밤마다 뒤뜰 자작나무에 걸린
사다리를 오르려고 하는지
<등단시>
신월동의 눈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있다
이곳은 강서의 끝, 몇 대의 버스 종점과
번지수보다 더 많은 가구들이 사는 곳
날마다 불도저 삽질 소리 요란하게
남부순환도로의 한 끝이 파헤쳐지고
확인할 수 없는 서울의 한 끝이 허물어지고 있다
누구인가, 오랜 친구처럼
내 어깨 위에 쌓이는 이 눈은
또 어느 슬픈 죽음이 삐라처럼 휘날리고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가난한 이웃은
도시의 외곽으로만 밀려다니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땅을 위하여
이곳의 아이들은 종이배를 접지만
그들이 가닿을 꿈의 항구는 눈발에 가려 아득하고
밤이면 저 먼 샛강 위로
휘황한 서울의 생애가 떠내려 간다
오늘 하루 눈이 내려
강남과 강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히고
우리들 삶의 귀가 길도 아득한데
지친 하루를 살고 돌아오는 젊은 가장이여
이제 당신들의 서울은
어디로 시린 발목 뻗을 것인가
인간이 사는 마지막 동네를 찾아 떠나온
집배원 우편낭 속으로 눈발이 날려
기억할 수 없는 몇몇의 주소가 지워지고
매운 바람에 코를 씻으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한쪽 어깨가 젖고 있다
<대표시>
달의 신화
거기에 숲으로 통한 길이 있었네
그 길에 온갖 풀과
빛의 넝쿨이 자라고 있었네
황혼녘이면 둥근 얼굴의 여자 하나가
그 길을 거슬러 덩굴장미 숲을 지나
서쪽으로 사라지곤 했네
그때마다 나뭇잎들은
더욱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꿀벌들은 힘차게 날아올랐네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을 모르네
벽난로 속으로 장작을 집어넣고
안락의자에 앉아 보들레르의 시집을 펼쳐들면
그 속에서 온갖 상상력과
악의 꽃들이 피어나고
박쥐들은 외투를 벗고 날아와
남은 저녁시간만큼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벽난로 가에 모여앉아
덩굴장미 숲 위로 별이 뜨기를 기다리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
커피찌꺼기로 점을 치네
굴뚝지빠귀는 처마 밑에서 눈알을 빛내고
뱀들은 기어 나와 빛의 밧줄을 살라먹고
구름은 부끄러워 낯을 가리네
단 한 번의 만남을 위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창가에 앉아
덩굴장미 그림자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라보았네
그때 바람이 숲속에서 걸어 나와
둥근 새들의 부리를 만져주었고
꽈리풀들은 일제히 소리 내어
호르르르 울기 시작했네
이튿날 내가 덩굴장미 밑동을 베어버린 것은
그 여자에게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네
칠흑 같은 그 여자 머리 위로
덩굴장미 꽃잎을 흩뿌려주기 위함이었네
그러나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을 모르네
언제나처럼 나는 창가에 앉아
트럼프를 매만지며
이제는 밑동만 남아버린
덩굴장미 숲길을 바라본다네
태양의 눈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네
처마 밑의 굴뚝지빠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네
<산문>
내가 행복해지는 글쓰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전근을 자주 다녔다. 덕분에 충청도 서울 경상도 경기도 등을 전전했다. 정이 들 만하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친구를 오래 사귀지 못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삼중당문고가 벗이었다. 읽다보니 쓰고 싶어졌다. 노트 뒷장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날이 많아졌다. 중3 때는 신춘문예에 소설을 투고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문예반에 들어갔다. 3학년에 안도현, 2학년에 이정하가 있었다. 시 잘 쓰는 선배들만 있어서 감히 소설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결국 고2 때부터 나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6년,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 변변한 시집 한권 펴내지 못했다. 면목이 없을 따름이다.
글쓰기는 내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쓴다. 내가 행복해야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행복할 테니까.
글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거리에 나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낯선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 얼굴만 쳐다보다 귀가하는 날에는 그럴 듯한 문장 몇을 건지기도 한다.
사람들 얼굴에는 저마다의 내력이 깃들어 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른 이의 눈에는 내 얼굴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김완준 충남 부여 출생. 198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공동시집 『안경 너머 지평선이 보인다』.
<신작시>
낭만에 대하여 외 3편
윤 중 목
빈티지한 목조바닥이군요
삐걱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에요
이층이라 밤 풍경도 내려다보이고 좋습니다
엘피바 왔으니 와인이나 위스키 한잔해야죠
힙하다는 얼그레이 하이볼 어떠시겠어요
신청곡도 하나 적어서 내보세요
세이브드 바이 더 벨 강추입니다
비지스 멤버 중에 왜 로빈 깁이라고 있었잖아요
초창기에 그룹을 잠시 탈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솔로로 활동하며 크게 히트시킨 노래예요
발라드풍의 슬픔 짙은 멜로디가 매력 자쳅니다
밖에 근데 금방 비 쏟아질 거 같지 않나요
비 감성 돋는 시 한 대목 읊어드릴까요
마음속에 신병처럼 박혀있는
이 외로움 고독함 빗물에 다 씻겨가게
장대비야 좌악 쫙 퍼부어다오 좌아악
어떻게 비의 정취가 함빡 느껴지십니까
실은 빗줄기에 확 떠내려가고 싶어요
혼자 말고 둘이서 같이요 하하
참 비 내리는 날 딱인 포크송 하나가 있거든요
이 곡도 여기 판 있나 신청해 볼까요
제목이 창밖에는 비 오고요인데요
기타의 반주 간주가 가슴을 뜯는 게 일품입니다
송창식 자작곡으로 작사를 이장희가 했죠 아마
음악이 순 올드 취향이라고 흉보실라
대화의 주제를 그럼 좀 바꿔서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에 대해 얘길 나눠 볼까요
19세기 영미시에 대해서도요
이크 너무 고상한 척하는 거려나
왕재수 소리 듣겠다 그죠
어느새 둘 다 하이볼을 세 잔씩이나 마셨네요
이제 일어설 시간 됐지요
뭐 비틀거릴 정도까지 취한 건 아니나
내려갈 때 계단 주의하시고요
층계 벽 아슴아슴한 조명빛 아래서
와락 키스할 거니까요
엄마였구나
엄마가 하루는 손바닥 크기의 종이쪽지 한 장을 내보이시며, “너는 시인이라며 어째 엄마에 관해 쓴 시가 없는 거 같냐. 그래서 엄마가 직접 엄마 시를 하나 써봤다.” 그제 저물녘 마당에서 풀을 뽑다가 스며나는 감상을 적어놓으셨다는 시. 여기 엄마가 난생처음으로 지어 바깥세상에 보이신 시.
뻐꾹새 울어대는 산하山下에 우리 엄마가 있다.
주야장천 울어대는 풀벌레 속에 우리 엄마가 있다.
가슴 서린 한을 뜨락에 내려놓고 우리 엄마가 있다.
증평읍 죽리竹里 마을 산자락에 우리 엄마가 있다.
와아, 표현과 단어의 선택에 예스러운 면이 있으나 시적 모티브와 형태가 훌륭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나는 즉석에서 평을 해드렸고. “진짜?”, “정말 처음 써본 건데.”, 라며 엄마는 멋쩍어하면서도 무척이나 흐뭇해하셨고. 그랬구나! 시인입네 하는 내 알량하나마 소질과 재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엄마였구나. 바로 엄마였구나. 뻐꾹새 울고 풀벌레 우는 산 아래 시골집에만 엄마가 있었던 게 아니로구나. 내 시 속에도 엄마가 있었구나. 내 시 속에도 이어내린 핏줄로 늘 엄마가, 우리 엄마가 있었구나.
오늘의 금언
세상 갈수록 가벼워져 가는데
무거움이 가벼움보다 옳다 믿으며
달큼달달한 입맛에 속지 마 쉬이
반질반반한 때깔에도 홀리지를 마
미끼 덫이라니까, 가붓가붓 이 세상
앞통수 남보다 먼저 들이밀 궁리만 말고
제자리 차라리 입석立石이 되자, 예컨대
“설악산 울산바위가 함 되자!”
액자 속에 오늘의 금언으로 적어넣고서
오늘도 쳐다보고 내일에도 또 쳐다보고
여의도
십수 년을 돌아쳐도 낯선 땅 여의도에
63빌딩 쌍둥이빌딩 트럼프월드빌딩
대한민국 코리아의 월 스트리트라는
증권타운 빌딩들, 옆 바로 건너 휘둥그러니
서울국제금융센터 IFC 원ㆍ투ㆍ쓰리 빌딩들
슈퍼특급 울트라특급 화수분을 키우려
그들 모두가 쭉 쭉 쭉 밀어 올리는
여의도의 하늘은 그래서
지독히 높고
지독히 또 거만하고
한 층이라도 더 한 계단이라도 더
기를 쓰고 용을 쓰고 올라붙어야 하건만
이내 턱밑까지 차오는 가쁜 숨이여
안 돼 안 돼 벌써 낙오되면 안 돼
팔 아무리 뻗어본들 고지는 먼데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는 저 멀리도 먼데
<등단시>
고야孤夜ㆍ苦夜
- 그대들아 6
손이 떨린다
붓이 떨린다
손끝에 멍이 맺힌다
붓끝에 피가 물든다
멍들은 손톱이 비통하게 빠진다
피묻은 붓털이 가련하게 뽑힌다
이다지도 연약할 손이었던가
이다지도 허망할 붓이었던가
나의 손이 또한 그대들의 손이리라 부풀어 기대했건만
나의 붓이 또한 그대들의 붓이리라 뿌듯이 자부했건만
이처럼 무력할 손이었던들
이처럼 외면될 붓이었던들
어둠 속에 차라리 잘라버렸을 것을
주림 속에 차라리 꺾어버렸을 것을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손을 매만져 본다
서러운 몸부림을 가누며
붓을 다듬어 본다
이제 막 뿜어내려 치솟았거늘
이제 막 휘달리려 타올랐거늘
차마도 예선 자를 수가 없기에
차마도 예선 꺾을 수가 없기에
그대들은 잠들어 포근할
이 한밤
내게는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미나 보다
내게는 괴로움이 핏줄까지 적시나 보다
<대표시>
매미
한 점의 빛도 흘러들지 않는 땅속
사각사각 뿌리를 갉아 수액을 빨며
천형 같은 어둠에 갇혀 십 년을 보냈다.
질기디 질긴 천형이 끝나던 날,
어린 몸 길러준 나무 위로 기어올라
캄캄한 밤때를 기다려 허물을 벗고
비로소 눈부신 날개를 달았다.
이윽고 가뿐한 날갯짓으로
두껍게 앉은 흙냄새를 털어내며
처음으로 지상의 싱싱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나 십 년의 어둠을 뚫고나온 새 생명에
여기 지상에서 허용된 빛의 자유는
아, 환장하게도 짧은 오직 열흘뿐!
또 다시 내려진 천형의 시간,
이제 그 열흘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미치도록 맴ㆍ맴ㆍ맴ㆍ맴
미치도록 나ㆍ여ㆍ깄ㆍ소
몸마디 부러지게
울고 울고 또 울었고,
그 맹렬한 울음을 먹어치우며
여름날 햇덩이는 푹푹 익어갔다.
<산문>
일엽지추
9월입니다. 가을입니다.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떨어지는 계절? 네, 슬슬 감나무에 감도 떨어지고, 밤나무에 밤도 떨어지고. 온갖 나무에 나뭇잎, 즉 낙엽들도 떨어지고. 그러니 떨어지는 계절이 맞지요. 영어 단어에 가을은 ‘autumn’입니다만, 이 떨어짐의 의미로 가을을 또 ‘fall’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자연현상이 동서양을 가린답디까? 중국에서는 특히나 오동잎 떨어지는 걸 가을의 신호탄으로 여겼다네요. 바로 ‘오동일엽梧桐一葉’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겨난 바요, 달리 이르길 ‘일엽지추一葉知秋’라고도 합니다. 원래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에서 비롯된 말로 잎, 오동잎이겠죠,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가 가을인 것을 안다, 그런 뜻이에요.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에도 이러한 언어적 배경을 노랫말에 직접 가져다 쓴 곡이 있습니다. 최 헌이란 가수가 있었는데, MBC 가수왕도 지냈던, 그의 대표곡인즉 <오동잎>입니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이렇게 시작을 해요.
사실 낙엽 하면 서양곡 가운데 마치 시그니처메뉴 같은 노래가 있거든요. 일명 <고엽枯葉>으로 알려진 <Autumn Leaves>입니다. 이브 몽탕이 부른 샹송이 원곡이에요. 그런데 이 곡은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연주 버전이 또 꽤 유명합니다. 들어보시면 “아, 저거?” 하며 단박에 아실 거예요. 휘이익 휘이이익 바람에 쓸려 이리저리 포도 위를 또르르 르르르, 또르르르 르르르 굴러다니는 낙엽. 이 장면을 눈앞 풍경화처럼 떠올려주는 청명하고 낭랑한 피아노 선율이 최상의 가을 맛을 선사해줍니다.
이제 내로라하는 시인들, 가수들이 가을과 낙엽을 노래하겠지요. 올해 가을도 그들 노래를 들으시며 실제 또 낙엽을 밟으시며, 정녕 쓸쓸하여 아름다운 가을날 추억을 품속 가득히 담아보실까요?
윤중목 경기도 전곡 출생. 1989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밥격』. 현재 문화법인 목선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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