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리더들이 빠질 수 있는 비기독교적 권력추구
신학자 니버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원죄로 더럽혀져 있고 (필자 생각에는 '원래 죄성이 있고') 이로 인해 결국 악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유와 유한성(有限性)이라는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갖게 되며 이러한 유한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지 will to live'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존의지는 단순한 물리적 생존의 범위를 벗어나 역사와 자연의 공포로부터의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 힘을 증가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will to power'로 발전한다. 이러한 개인의 권력에의 의지 즉 권력추구 경향은 개인, 사회단체, 국가에게까지 전이된다."
기독교인이라 함은 이런 죄성-불안감-권력추구 라는 악의 수레바퀴가 다 '매트릭스'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래야 한다. (안 그렇다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실제 인식에 있어서 '예수님의 승리'와 '예수님 안의 무한의 자유와 예수님의 무한성'을 내면화하며 성화되어 궁극적으로 '샬롬'(평안, 평화)에 이른다.
그런데 만약 기독교 리더가 여전히 불안을 느끼고, 권력을 추구하고, 그 권력(자기가 소속해 있는 단체의 힘 포함)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려 한다면 그는 불신자와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기독교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한시적으로는 '예수님 안에' 샬롬을 누릴 수 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대다수 인간들이 인정하는 권력인 현실주의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매트릭스는 인간들이 인정하는 권력들이다.
돈, 명예, 학벌, 인기, 좋은 직장, 직함 등등...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영적 세계에서는 바울의 고백대로 '똥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한국교회는 오히려 이를 '복'이라고 우기며 매트릭스를 미끼로 부흥하였기에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부흥이 아니라 퇴행이요, 그 결과 사회에서조차 '개독교'라는 거의 고유명사화 된 명칭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가 보니 자기 도덕 수준과 같거나 더 못하니까 말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 탓인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유한성을 불신자마냥 '권력' (예수님 이름을 판 각종 기독교 단체, 정당, 정치가 등 조직의 힘 포함)에 기댄다면,
정말 예수님이 말한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해당할 수 있고, '심판 날에 예수님으로부터의 외면'을 받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기댈 언덕이 있다.
우리의 노예근성과 유한함을 한방에 해결하고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그리스도,
즉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요 생명이요 이 세상의 진정한 우두머리다.
우리는 불안할 필요도 없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 필요도 없다.
예수님의 삼위일체가 우리 안에 있기에 우리 각자는 이미 안전하다.
그저 평안을 누리면 그만이다.
다만 매트릭스 권력이 유효하게 육체와 물질을 기반으로 우리를 통제하는 유한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 날의 소망을 품고,
새 계명을 통해 자신과 가족을 먼저 사랑하여
근면하게 일하고 생활의 책임을 행하며,
새 계명을 통한 타인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도덕성과 능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조건은 '권력에의 의지'를 포기하고
'섬길 수 있는 여유'로 향하는 것이다.
20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