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는 말씀(호 로고스)이십니다(요1:1)
가라사대 또는 이르시되 이 말씀은 하나님을 향해 계시고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요1:3)
로마서를 통한 교회서신의 교리를 익히면 믿음이 행함으로 적용이 됩니다.
교리가 있어야 교훈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원리가 있어야 적용이 있는 법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윤리나 도덕이나 교훈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교리가 진리의 성령을 통해 긴 시간 이루어지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서신은 충만해 지는 교리인데 그 정점이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충만이 되고 나면 드디어 교제(빌립보서)도 되고 열매도 열리게 됩니다(골로새서)
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히브리서를 통해 건너와서 정복 다스림으로 나아갑니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도 이데아가 실재이고 보이는 것은 허상이라고 말했다지요.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만물의 실상은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구주이심과 동시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영광 나라의 왕 중의 왕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곧 교회서신의 교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떡 한 영 한 몸이
되는 경건을 배우면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충만이 됩니다(엡1:23)
이런 사람이 바로 의인의 간구를 할 수 있는 반열에 섭니다.
모세와 다윗과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과 같은 의인입니다.
행2장의 베드로의 설교를 꼭 깊이 숙독해 보시고 그 놀라운 그림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모세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운명이 좌우되고 다윗 또한 그런 인물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다윗이 가졌던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을 베드로는 설파합니다.
이런 믿음의 기초와 교리의 과정을 답습한 이후에 비로소 야고보의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의 결국을 실험해 봐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약5:19)
유치원을 잘 못 다니면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이 애를 먹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처음부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아들의 영을
받은 영생의 믿음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그만 종의 영을 받아
교회나 사람의 종이 되어 길게 고생합니다.
미혹이 되었다는 말은 교회 안 다닌다는 말도 아니고
주일 성수 십일조 안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리를 벗어난 신앙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가 미혹을 받아 진리로부터 떠난 자를 돌이켜 놓는 것은
그 영혼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말이 지옥불이지 않습니까? 혀로 삶의 수레바퀴를 불 사릅니다(약3:6)
만일 포도나무의 가지로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으면 사람의 말에 휩쓸리고 맙니다.
그게 바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마른 가지를 불에 던져 태운다는 말씀입니다(요15:6)
유황불 못에 들어가는 것은 죽은 이후이지만
현세에서 사람의 말에 붙여 쌓은 공력을 불로 시험하십니다(고전3:13)
만일 불에 타는 공력이면 몸은 사단에게 내어주고 영만 마지막에 구원받게 됩니다.(고전3:15, 5:5)
그렇기에 안타깝게도 말년에 병으로 신음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몸은 불에 타고 겨우 영혼만 빠져 나오는 소위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때는 용 곧 옛 뱀 마귀 입에서 토한 강물이 땅에 가득한 상황입니다(계12:16)
만일 유대교의 선지자나 서기관들이 거짓 선지자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하겠습니까?
거짓선지자는 자신이 거짓선지자인지 전혀 모릅니다.
다만 사람의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고 스스로 속고 있을 뿐입니다.
미혹은 자신도 속으면서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게 바로 말세의 현상입니다.
목회를 오래 하고 주를 위해 평생 동안 헌신을 했음에도 왜 병으로 신음할까요?
그건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실족한 죄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니니라”(약5:20)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면 그 목숨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 됩니다.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한 사람을 물갈이를 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향하게
하는 일은 가히 해산의 수고와 같이 피곤하고 낙심도 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면 그의 많은 죄를 덮어버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수용해 버리는 실력 이것이 바로 행함의 결론입니다.
이는 요일5:13절 이하의 말씀과 같은 내용이며
주님이 하신 사역을 그의 종들도 하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22-23)
성령을 모신 곧 의인들인 주의 종들의 특수한 기능이며 사명입니다.
성령의 사람의 기도와 말씀의 권면은 능히 죄인을 미혹의 길에서 돌이켜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주께로 부터 부여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이 임하여야만 증인의 자격이 있어 진리의 지식과
더불어 계시의 영으로 미혹이 된 자를 주께로 돌이키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예수의 죽음 곧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으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몸에 나타나고 자신을 주를 위해 십자가를 지므로 주의 생명이
그 육체에 나타나므로(고후4:11: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느니라”(고후4:13)하는 이 말씀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안수를 하든 말씀을 증거하든 그 시간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전달이 되어 그 안에 있는 진리를 거역하는 죄와 불의에서 의와 생명으로 돌아섭니다.
이웃사랑으로 가는 영적인 테크닉이며 믿음이 행함으로 결론 지어지는 고난도의 원리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의인 10명이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린 다른 사람의 죄를 흡수하는 기도를 하는 의인, 행동하는 의인들이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나타나시는 그리스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몸의 수고로 나타나고, 우리 몸이 역사하는 행동하는 의인들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