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지성과 감정이 이상하게 부풀 경우도 있다.
이것은, 주의나 사상에 빠졌을 경우에 일어난다 .
지난날의 군국주의자나, 일부 인텔리를 자칭하는 자들에게 흔히 볼 수 있다.
명상적 반성은,
이와 같은 비뚤어진 마음을 수정하고, 본래의 둥근 마음을 되찾게 해 준다.
즉 중도라고 하는 팔정도의 잣대를 갖고,
자신의 마음이, 지금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가 부풀고 있는가.
사람에 따라서는 4면 4각도 있고, 3각형으로 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모양은 여러 가지로 변화하고 있다.
마음의 이그러짐은,
의(意)인 자기의 의사,
즉 사고방식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때문에 일어난다.
괴로움, 슬픔의 원인은,
모두 이러한 마음의 이그러짐이 만들어간다.
둥글고 풍부하면, 마음은 평안, 부동의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반성이 진행되고, 반성의 결과를 행위로 나타내어 가면,
명상의 경지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수호령, 지도령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되어 간다.
반성 후의 명상이 더욱 깊어지면
자신의 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저 세상의 여러 가지 세계를 보고 올 수 있다.
또한 멀리 떨어진 사람의 근황을 아는 것도 가능하다.
좀더 나아가면, 천상계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빈번해지고,
앉아서도, 세상사의 추이를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 수 있다.
삼매의 경지란, 명상의 극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념무상이 되어, 기분이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념무상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마음의 공백을 의미하며,
언제 외부 세계자(악령)들이 자기의 의식 속에 침입해 올지 모른다.
(주; 무념무상은, 비유하자면,
집안에 불을 환히 밝히고, 대문을 열어젖히고,
주인이 되는 자기자신이 집을 비우는 것과 같다.
그 집안에 금은보화 ( 집착,,,욕심...욕망 ) 가 가득하면,
들어 온 자가 나가겠는가.
물욕이 없는 천사라면 금방 나가겠지만,,, -오로지팔정도)
명상 중에도 자기 자신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대아(大我)의 자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부동(不動)의 자기 자신이며
명상이 깊어지면,
점점 대아(大我=별명을 無我라고도 함)인 자기자신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반성의 명상은
눈꺼풀을 가볍게 닫고,
눈꺼풀 속의 눈은 똑바로 전방을 본다.
눈을 완전히 (잠을 잘 때처럼 완전히) 감아버리면,
대개 졸음이 와서, 반성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속눈은 전방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졸리면, 대개 눈동자가 위로 이동한다.
피로할 때나, 밤이 깊었을 때는, 눈꺼풀을 닫으면, 스르륵 잠이 온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그렇지 않는데, 눈꺼풀을 닫으면 그렇게 된다.
이것은 자연현상이고, 생리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럴 경우,
속눈을, 똑바로 전방을 응시하고, 의식을 긴장시키면,
그다지 졸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할 수가 있어서,
반성이 비교적 용이하게 이루어진다.
명상이라고 하면,
보통 조용히 눈을 감고,
여러 가지 망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즉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가 않다.
명상의 의의는 우선 반성의 명상을 되풀이하여,
수호령, 지도령의 빛이 닿았을 때에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반성도 하지 않고,
갑자기 잡념을 불식하는 명상을 하거나,
그런 습관이 몸에 배면, 마음이 비뚤어진 채로 있어,
그 때문에, 그 이그러진 마음에 통하는 악령을 불러들이고 마는 것이다.
정도를 모르고, 좌선을 하면 깨닫게 된다고 하여,
명상의 고행을 계속하는 중에,
마(魔)에 침범되어,
정신분열증이나 육체적 결함으로 괴로워하는 자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반성은 명상에 있어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기본적 수행법이며,
마음의 때를 벗기는, 단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명상은 아무래도 밤에 한다.
아침, 낮에는 일에 종사해야 하며,
일을 하지 않고 명상만 하고 있으면, 생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밤이 되면 하루의 피로가 나타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명상을 하면 졸음이 오게 마련이다.
아무리 하여도 반성이 되지 않을 때에는,
눈꺼풀을 약간 열고, 앉아 있는 조금 앞의 전방에 시점을 고정하고,
반성을 하도록 하면, 졸음은 해소된다.
반성에 익숙해지면, 다시 눈을 감고, 명상의 반성으로 들어 간다.
밤은 낮과 달라서, 잡음이 적다.
초목의 활동도 조용해지고, 동물들도 잠이 든다.
그만큼, 밤의 명상은, 깊게 되고, 마음을 통일하기 쉬운 상태로 된다.
동시에, 저 세상의 천사들의 통신도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가 된다.
낮에는, 가사나 일에 마음이 빼앗기게 되므로,
천사들의 통신을 잡기가 어렵다.
고타마 붓다의 명상이, 거의 한밤중. 그것도,
지금의 시간으로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 집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성의 명상을 하지 않고,
잡념을 닦는 의식의 공백상태나 잡념에 마음을 빼앗기면,
마(魔)가 들어오기 쉽다.
밤은 낮보다 위험한 것이다.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는 말처럼,
밤은 마(魔)도 활동하기 쉬운 시간대이다.
반성의 명상을 하고 있으면서,
반성을 마치고, 잠이 오지 않는 경우는,
반성의 방법에, 어딘가에 잘못이 있고,
반성이 아니고,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지옥령이 곁에 와서,
본인의 의식 속에 들어 가려고 엿보고 있으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태가 여러 날 계속되면 노이로제가 된다.
이것은 반성이 아니라 집착이므로,
이럴 때는 반성의 명상은 잠시 중단하는 것이 좋다.
정법에 따라 반성을 하고 있을 때는,
수호령, 지도령이 곁에 와서, 본인을 지키고 있다.
마(魔)는 절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명상을 끝내면, 금방 잠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