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7
오타
컴퓨터 자판기로/ 별을 치다 벌을 치고/ 사슴을 치다 가슴을 친다.
오타 투성이 글/ 내 수족에 딸린 손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음은 수십 번 그러지 말자 다짐하지만/ 남의 마음같이 느닷없이 끼어드는 오타
어찌하랴/ 어찌하랴/ 입으로 치는 오타는/ 여지없이 상대의 맘에/ 상처를 남기고 돌아오는 것을/ 한번 친 오타 바로잡는 일 이틀, 사흘/ 그 가슴에 흔적 지우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 닦아야 할지
숱한 사람들 맘에 쳐날린 오타들/ 더러는 지우고 더러는 여전히 비뚤어진 채/ 못처럼 박혀 있을 헛디딘 것들
어쩌면 생은 그 자체로 오타가 아닌가/ 그때 그 순간의 선택이 옳았는가/ 곧은 길 버리고 몇 굽이 힘겹게 돌아치진 않았는가/ 돌아보면 내 삶의 팔할은 오타인 것을
-전태련 시인의 오타라는 제목의 시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문자의 마법이란 말을 실감한다. 분명 별이라고 썼는데 인쇄된 활자를 보면 벌이라고 되어있다. 시퍼런 눈으로 교정까지 한 글이 오타인 것으로 발견될 때면 꼭 귀신에게 씐 느낌이다. 밥을 떠넣는 두 눈과 두 손이 그럴진대 하나밖에 없는 혀로 치는 오타야 오죽이겠는가. 시인은 의도치 않게 내뱉은 말로 다른 이의 가슴에 못 박는 실수를 자책하며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후회 없이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백한다.
동물에겐 수치란 단어가 없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인간은 부끄럼을 탄다. 잘못을 저지르면 귀밑이 붉어지는 이 별난 생명체에는 아직 동물의 언어로 만족하는 부류가 섞여 있다. 진화 중인 집단에서 스스로 성찰의 거울 앞에 서서 검버섯투성이인 자신의 나신을 비추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의 얼룩을 지우려 애쓰는 시인이 부럽다. 자기반성이 없는 삶의 종말은 허구이고 역사를 통해 성찰의 거울을 주조할 줄 모르는 나라는 잠시 반짝이는 아침이슬이 될 것이다.
하버드대 MBA 과정은 Case Study(사례연구) 수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학문적 이론을 이해하는데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해결점을 도출함으로써 실무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국내 경영대학(원)들도 Case Study에 열심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성공사례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최근에야 특정 기업의 성공을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자각이 일어 경영실패사례도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Case Study는 이론의 설명뿐만 아니라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일러 준다. 기업의 경영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각 기업이 처한 위치와 경영조건도 모두 다르다. 성공모델을 따라 한다고 경영을 잘할 수 있다면 망할 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부실기업의 전철을 밟았다가는 어김없이 문을 닫게 된다. 사실 경영 실패사례는 좋은 교과서다. 기업경영이라고 우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그 속에는 인과의 법칙이 작용한다. 그것을 찾아내 반면교사로 삼을 때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들먹이고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역사는 현재다. 역사를 통해 얻은 지혜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결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계승하고 부흥의 본보기로 삼는 한편, 치욕스러운 역사도 날것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900차례 넘는 외침을 받았다면 피해자의 자학적 사관(史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왜 허술한 대문조차 잠그지 못했는지 반성이 먼저다. 그것이 바른 역사관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성찰이 사라졌다. 젊은이들에게 가난은 부모 탓이고 취업이 안 되는 것은 나라 탓이다. 도전과 성취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고 있다. 어른의 줏대도 부러지기 일쑤다. 검정 고무신을 장기판에 궁으로 삼다가도 복지관 출입문을 넓혀준다면 그가 누구든 맨발로 뛰어간다. 정치권만큼 전과자가 많은 집단이 없다. 그들의 낯은 시루떡보다 두꺼워 담을 넘다가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억울하게 맞았다고 우기다가 백합을 들고 구치소에 간다. 도둑이 매를 들어도 유분수고 양심을 능멸해도 정도가 있다. 시민에겐 불행한 일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볼멘소리가 전부다. 그도 아니면 국수주의의 아편에 취해 천마를 타고 우랄산맥을 넘는다.
계묘년 한 해가 박모의 시간을 지나 자정에 다다르고 있다. 이제 오타로 맺힌 매듭이 있었는지 한 땀 한 땀 풀어볼 시간이다. 돌아보면 누구나 삶은 후회의 호리병에 담긴다. 시인은 살아온 날들의 팔 할이 오타였다고 토로했는데 우리 삶은 구 할의 오타로 고인 것 같아 씁쓸하다. 큰 욕심으로 산 것도 아닌데 이룬 것이 없어 허무하기도 하다.
세상살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곧은 길 버리고 몇 굽이 힘겹게 돌아오지 않았는가 뒤돌아보면 오타투성이다.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어쩌겠는가. 때 없이 오타를 치고 그 오타를 지우려 쉼 없이 사포질하는 미련함이 인생살이라면, 검버섯 없는 해가 뜨기 전 두 손 모을 수밖에.
어금니 물며 미워한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갈고 닦아 지우더라도 더러는 여전히 비뚤어진 채 못처럼 박혀 있을 헛디딘 것들, 조심한다고 살아도 뱀의 허물처럼 흉한 구석이 있을 터, 반성할 일이다. 혹여 누군가의 가슴에 못질한 잘못이 있다면 사죄할 일이다. 시인의 입을 빌리면 남의 마음이 느닷없이 끼어든 오타였을 것이다.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 닦아야 할지 모르지만, 죄송합니다. 고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