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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론 |
화순지역 설화문학의 양상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1. 민족의 공동의식이 투사된 설화
설화문학은 민족적 집단의 공동체 속에서 생성된 공동의식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문자기술 이전의 구비문학으로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런 연유로 민족의 역사·신앙·관습·세계관 및 꿈과 낭만·웃음과 재치, 또는 교훈이나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와 용기 등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설화는 문자로 전해지는 것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보존과 전달 상태가 가변적이다. 그러므로 한 유형의 이야기일지라도 지역에 따라 그 내용이 변용되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설화는 크게 신화·전설·민담 등으로 나누어진다. 설화는 민족의 신이나 영웅 등을 통해 선민의식의 고취나 고난을 이겨낸 영웅들의 위대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단군신화」나 「주몽신화」, 「탈해신화」 등 건국신화가 그것들이다. 이에 비해 전설은 사물의 유래나 지명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이야기,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전승자가 진실되다고 믿고서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제시되고,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을 갖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좌절된 의지나 비극적 상황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민담 역시 신화나 전설처럼 민간에 전승되는 이야기로, 특정 장소·시대·인물이 지적되지 않고, 필연성이 전제되지 않는 흥미 본위로 꾸며낸 이야기이다.
설화문학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비문학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신화의 경우는 국가의 정체성과 지배계급을 계도하고 통일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전승되기도 하지만, 특히 민간에 전승되어온 전설은 대부분 입으로 전해져 온 구비문학의 성격을 띤다.
그러다보니 구비문학은 전승자의 기억력, 구연상황, 시대, 사회적 여건에 따라 가변적이다. 이러한 까닭에 지금까지 문학연구의 대상으로 발생・전파・전승, 구조와 의미・화자・배경・문체・기능・분류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해 문학적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비문학으로 이어져 온 설화문학 작품 중에는 고소설에서 이를 수용하여 변용한 경우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배비장전」, 「장화홍련전」, 「콩쥐팥쥐」 등이 그것들이다. 설화를 소설로 변용시킨 것은 현대 소설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방귀한이 경문왕 설화인 당나귀 설화를 「귀」로, 정한숙이 공처(供妻)설화를 「예성강곡」으로, 황순원이 천관사 설화를 「차라리 내 목을」으로, 박종화는 도미설화를 「아랑의 정조」로, 한무숙이 장자못 설화를 「돌」로 변용시켜 소설화 시켰다. 뿐만 아니라 설화를 변용하여 수많은 시(詩) 작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설화는 대부분 구전으로 전승되고 구비문학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구술자의 기억력에 의해 전승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설화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전승되다보니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차이를 드러낸다. 그 지역 정서에 뿌리를 둔 향토의식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적·지리적·환경적 조건에 따라 생성된 현상이다. 그러므로 화순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2. 강동원과 정영기 설화문학의 변별성
화순은 화순, 능주, 동복 등 세 권역이 1914년 화순군으로 통합되었다. 이전에는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발전해왔다. 화순과 능주는 산과 평야가 적당히 어우러진 반면 동복은 산이 많은 관계로 크고 작은 계곡을 낀 지형의 형태를 특정한다.
그러나 세 권역은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상 서로 같은 문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통점은 전승설화에도 나타난다.
주지하다시피 설화는 지역 정서에 뿌리를 둔 향토의식이 투영돼 있다. 그것은 역사적・지리적・환경적 조건에 따라 생성된다. 그러므로 화순・능주・동복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지금까지 화순지역에서 채록되어 문자로 기록된 설화(전설)는 모두 122개이다. 1982년 강동원이 광일문화사에서 펴낸 『화순의 전설』에 수록된 것이 60편이며, 2015년 정영기가 수집한 설화 72편(이 중 화순문화원에서 펴낸 『화순의 설화』에는 70편 수록)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화순지역에 전승되어 온 설화는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많은 설화를 채록한 것으로 이것들을 종합해 분석하면 화순 설화의 양상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강동원이 채록한 설화와 정영기가 수집한 설화는 서술하는 방식이 약간씩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강동원이 서술한 설화들은 이른바 화순지역에 비교적 잘 알려진 것들로 화순을 지역민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구전된 것들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설화문학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전승자의 기억력에 의존하고 시대나 장소에 따라 더해지거나 빠진 경우가 있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특징을 보여주기는 하나 그것들을 문자로 기록하는 현대에 와서 기록하는 자의 의도에 의해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창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승자의 구술으르 토씨 하나까지 사투리로 채록하는 것이다. 원 스토리를 변용한 경우 설화문학이라는 장르를 떠나 새롭게 변용하여 소설화 시키거나 동화·희곡·시로 형상화시킬 때는 그 양상이 달라진다. 이때는 이미 설화문학의 범주를 떠나 새로운 창작물로 거듭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그대로 저술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는 강동원의 화순설화는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동문학가 정영기의 『화순의 설화』에 수록된 것들은 채록된 이야기에 서술자가 약간의 이야기 살을 가미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구전된 설화문학의 가치를 조금 떨어뜨리고 있어 아쉽다. 화순지역 사람들의 삶과 정신세계가 깃들어 있는 원형을 그대로 읽어내는데는 구비문학단계의 원형스토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서술한 설화들은 재미가 있고 서사의 완결성이 엿보여 한편 한편이 동화처럼 작품성이 깃들어 있다.
어쨌든 강동원·정영기에 의해 문자로 기록된 화순의 설화문학은 앞으로 기록문학의 원 텍스트가 될 것이기 때문에 화순설화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고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3. 화순 설화의 대상과 성격
화순의 전설들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설화현장에서 암석에 깃든 설화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암석이 쉽게 훼손되지 않고 오래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생김새가 다른 자연물과 달리 눈에 띄는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화순지역의 설화가 깃든 암석으로는 각시바위, 괴바위, 목전바위, 벼락바위, 살바위, 문바위, 곽씨바위, 쌍교바위, 수락산 마고선녀설화, 운주사 설화, 베틀바위, 베틀바위(용랑), 석굴암, 딸래바위, 규봉암, 치마바위, 황새바위, 호랭바위, 달아실 남근석, 벽지리 속옷바위, 수구맥이 입석, 광대월 피바우, 회화마을 임금바위, 문치마을 범바우, 서방바위와 각시바위, 구암리 거북바위, 어리물 범바우, 쌍둥이 바위, 쇠낭골 문바우, 서촌마을 우렁바우, 오류리 가마바위, 문쥐산 괴바위, 자라바우, 총바우, 토끼바위, 문이 열린 바위, 까막눈이 논둑고인돌 등 38곳이 있고, 샘에 깃든 설화로는 무지개샘, 장군수, 옥거리샘, 자치샘, 용샘, 자웅천과 부침천, 용곡리 약수, 갈마음정 등 8곳이 있으며, 강(물·폭포)과 관련된 것으로는 소자천, 우메기소, 적벽강, 돌보, 구수리 도깨비소, 충용강, 용소, 왕정마을 도깨비소, 골아실 둠벙 등 9곳이 있다.
다음으로 산과 지명과 관련된 설화가 각각 7곳씩인데, 산과 관련된 것으로는 용암산, 비봉산, 옥녀봉, 모호산, 모후산, 천태산, 범산 등이 있으며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는 중장터, 발광정, 정승동, 옥녀봉, 대비리, 대미리, 벽력골 등이 있다. 그 외 사찰과 관련된 설화로는 만연사, 운주사, 쌍봉사, 유마사, 불암사, 건지사 등 화순지역 큰 사찰에는 예외 없이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영벽정과 현학정 등 정자와 갓다리, 독다리 등 교량, 황어굴, 석굴암 등 동굴, 동구란 묘 등 분묘에 전승되는 설화들도 보인다.
화순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들 역시 우리나라 내륙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들처럼 용, 구렁이, 호랑이, 도깨비, 소, 금자라, 물고기, 두꺼비, 참외, 진, 귀신, 여우, 거북, 왕등어, 개구리 등이 등장한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는 우리나라 내륙이나 도서지역에 골고루 등장하는 마고할미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로 화순지역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강감찬, 김덕령, 김성원, 조광조, 철감선사, 정자근노미, 진각국사, 운주도사, 공민왕이 나타나고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스님, 도인, 산신령, 역신, 시아버지, 시어머니, 기녀, 머슴, 아들, 며느리, 옥황상제, 관찰사, 현감, 장자, 원님, 씨족, 소금장수 등이 출현한다.
화순에 전승되는 설화의 성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주제로 한 것으로는 동구란묘, 수락산과 마고할미, 중장터, 용소, 황새바위, 용곡리 약수, 곽씨바위, 만연사 유래, 목전바위, 박부자와 개, 용선암과 송장자 분산등, 광대월 피바위, 문치마을 범바우, 남덕동 집게명당, 목이 잘린 별목동, 금능리 청룡혈, 서촌마을 우렁바위, 능주 향교와 장흥위씨, 한무정과 짓골, 방부자와 토끼바위, 정승이 되지 못한 학 등으로 악을 물리치고 선을 권장하는 사회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는데 주로 스님과 관련된 설화들이다. 한편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덕목인 유교적 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설화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효행을 드러낸 설화도 곳곳에 깃들어 있는데 벼락바위, 소자천, 맹장자, 베틀바위, 독다리 전설, 모호산, 유마사와 보안교, 정자근노미, 김성원의 설화 귀신에 홀린 동강할아버지, 안효순 효자와 호랑이, 와천리 호랑이바위 설화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덕망(德望)을 우리 사회의 커다란 권장 덕목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홍기천비, 옥거리샘, 발광정, 운주사, 자웅천과 부침천, 천태산 철마에 관한 설화에 깃들어 있다. 용샘과 구수리 도깨비소에 깃든 설화에서는 은혜를 은혜로 갚는다는 주제가 심화되어 있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들은 유교적 이념으로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민간의 염원이 투영되어있다.
이 밖에도 봉건사회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남녀의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깃든 비극적인 설화로는 곽씨바위, 괴바위 설화가 있다. 또한 정승동설화에서는 풍수의 효험에 대한 신이성(神異性)이 나타나는데, 사후음복을 내릴 수 있는 풍수명당의식(風水明堂意識)이 강하게 투사되어 있다.
특히 호랑이가 등장하는 설화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효자나 선행을 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호랑이와 양씨, 어리물 범바위, 안효순 효자와 호랑이, 와천리 호랑이바위 등이 그것들이다. 이에 반해 호랑이가 부정적인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주로 ‘호환’과 관련된다. 소자천, 현학정과 정처사, 숲실마을 설화, 황어굴 설화, 상룡마을 김영포 장사와 호랑이 등이 그것들이다. 한편 무등산 호랑이와 간짓대 설화에서는 어린 호랑이가 간짓대에 발이 걸려 놀라 이후부터는 호랑이에게 간짓대가 제일 무서운 존재가 되는 해학적인 이야기이다.
스님도 자주 등장하는 설화의 등장인물이다. 만연사 유래 설화에서는 소녀처럼 예쁜 상좌중인 만연이를 숲속으로 유인하여 음행을 하는 나쁜 중이 만연사에 있었다. 나쁜 중이 음행하는 동안 만연이는 독사에 물려죽고 마는데 나중에 나주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열여섯 살이 돼 출가하여 그가 있던 절을 만연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인데, 만연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스님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한산을 떠나게 된다.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설화이다.
스님과 관련된 화순의 설화로는 목전바위에 전하는 설화가 있다. 스님에게 겁탈당한 후 죽음에 이른 처녀의 원한을 수사관 같은 고을 원님의 끈질긴 노력과 지혜로 해결해 내는 대목이 돋보인다. 이 설화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밖에도 문산등, 월곡리 당산천, 광대월 피바우, 문치마을 범바우, 목이 잘린 별목동, 금능리 청룡혈, 서촌마을 우렁바우, 덕음산 도승과 산신령, 헌무정과 짓골, 방부자와 토끼바위, 정승이 되지 못한 학 등 많은 작품들도 설화 속에 스님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더불어 권선징악의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 대다수의 작품들은 부자나 권력자에게 스님이 문전박대와 모욕을 당한 후 이를 보복하거나 훈계하고자 하는 것이주된 내용인데 이러한 작품의 특징은 풍수를 이용하여 발복과 흉사를 주관하고 있는 점이다. 결국 죄를 지은 부자나 권력자는 패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권선징악의 구조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수행하며 중생을 깨우쳐야 할 스님이 자신이 모욕당하거나 화를 입었다 하여 보복하는 심리가 설화의 스토리를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민간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스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깃든 것과 더불어 긍정적인 인식이 배어있는 설화도 있다. 쌍봉사 설화, 곽씨바위, 석굴암 설화 등이 그것들이다. 쌍봉사 설화는 중생을 깨우칠 생각으로 법도량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살피다가 지금의 이양면 증리 중조산을 찾게 된 철감선사가 이양면의 산수가 남쪽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는 역류형국을 기이하게 여겨 지금의 쌍봉사 터에 이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 아방궁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사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물이 귀한 곳이어서 흉사가 그치지 않음을 알고 쌍봉마을쪽으로 옮겨 집을 짓게 하고 부자가 살던 곳에 절을 지어 세상이 화평하고 쌍봉사가 크게 흥하게 된다. 그리고 부자도 발복하여 후손들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내용의 설화는 풍수에 관련된 것으로 액땜을 하고 발복한다는 명당을 염원하는 사회풍조를 반영한 것이다. 석굴암 설화도 스님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곁들여 있다. 석굴암에서 수행하는 스님에게 도인이 위급할 때 쓰라고 거울을 준다. 더불어 달걀만한 검은 돌을 주며 물 속에 넣고 참선하면 언젠가 검은 돌이 붉은 구슬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그때쯤은 스님의 참선이 오도경지에 이르는 것인데 스님의 참선을 도깨비와 구렁이, 그리고 호랑이가 나타나 방해한다. 그러자 스님이 거울과 내공으로 퇴치해버린다. 참선에 이른 내공으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고 온갖 재앙을 물리친다는 메시지가 배어있다.
곽씨바위 설화에서 부자로 사는 김 씨는 구두쇠에다가 성미가 고약했다. 어느 날 스님이 탁발하러 갔는데 썩은 두엄덩이 세례를 퍼부었다. 이를 본 김 씨의 부인인 곽씨 부인이 스님에게 사죄한다. 그러자 스님이 절에 가서 백일참회기도를 드리되 절을 찾아갈 때 하늘을 보게되면 신기누설로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한다. 곽씨부인이 참회기도를 드리기 위해 절로 가는데 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다가 그만 바위로 변하고 만다. 암석과 관련된 전형적인 설화로 비극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곽씨 부인을 통해 구두쇠 남편의 죄를 씻게 하는 스님의 면모에 수긍이 간다.
4. 화순 설화문학의 양상
1) 권선징악
화순의 설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이는 봉건사회의 질서유지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죄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이다. 이는 화순지역 설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의 설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로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양심적 발로의 표현이다.
개를 죽여 망한 박부자 설화에서 박부자 집에 충직한 개가 있었다. 개가 짖으면 마을에 도깨비가 나타나지 못했다. 곡식을 털어가는 도둑을 잡기도 하였다. 그런데 저녁이면 후원을 바라보며 새벽까지 짖어댔다. 마을 사람들의 불평이 잦아 박부자는 개를 죽이고 만다. 그런데 시집간 딸의 꿈속에 개를 죽이면 후원에서 살고 있는 커다란 구렁이가 해를 끼친다고 하기에 친정집에 와서 알린다. 박부자는 후원을 살피던 중 커다란 구렁이를 발견한다. 박부자는 뜨거운 물로 구렁이를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 구렁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집안은 망하고 만다.
동구란의 묘라는 설화는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중국사람 동구란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동구란의 행패에 마을 사람들은 동구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술을 대접하다가 그를 없앨 묘책을 생각해 구덩이에 유인해 죽인다.
황새바위 설화에서 성미가 고약한 왕씨가 탁발하러 온 스님에게 욕설을 퍼붓고 무릎을 꿇린 후 광에 가두고 말았다. 스님은 왕씨에게 집안이 번창할 계책을 일러주는데 왕씨 집 동쪽에 있는 황새바위가 흉격으로 있어 바위의 목을 자르라고 한다. 그러면 왕후장상이 대대로 이어질 것이라 하여 왕씨가 황새바위 목을 자르자 선혈이 흘러내리고 왕씨 집안에는 재앙이 넘쳐 패가망신하게 되고 만다. 온갖 횡포와 악행을 일삼은 왕씨를 응징하기 위한 스님의 청방 역시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분산등 설화에서 명당을 가지고 있는 최부자는 마음씨가 고약하여 그곳에 묘를 쓰려는 사람들을 응징했다. 시주승들에게도 인색한 최부자는 시주승을 멍석몰이하려 한다. 스님은 권력과 금전을 얻을 수 있는 비책으로 조상의 묘를 조금씩 옮겨 쓰라고 하여 멍석몰이를 피한다. 그러나 최부자는 스님의 꾀에 넘어가 집안이 망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구전설화들은 조선시대에 민간에서 배태되어 오늘에 전승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대시받던 스님들의 모습이 풍수에 능한 사람, 세상 이치에 밝은 사람으로 민간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다. 탁발하러 가면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천하게 대해도 이상하리만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학식이 깊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분산등 설화 뿐만 아니라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로 구현되고 있는 설화에 스님이 자주 등장하여 죄와 악을 응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치마을 범바우에서도 병든 노승이 시주를 구했으나 노부자는 조롱을 한다. 그러자 노스님은 고약한 노부자를 혼내주기 위해 방죽을 메워버리면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노부자는 방죽을 메우고 만다. 그러자 농사를 못 짓게 되고 가축들도 죽어간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화재가 나고 만다.
서촌마을 우렁바우 설화도 이러한 형식이 반복된다. 부자 이씨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을사람들을 착취한다. 이씨 집에 스님이 들자 문전박대를 한다. 스님은 이씨 집이 부자로 살게 하는 우렁바위 위에 있는 작은 뚜겅돌 때문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없애면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자 우렁바위 위에 있는 딱정이 돌을 떨어뜨리자 이씨는 가세가 기울고 마을은 폐촌이 되고 만다.
이밖에도 남덕동 집게명당, 현무정과 짓골, 방부자와 토끼바위, 정승이 되지 못한 학 등 형식과 엇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
2) 변이설화
외부에서 들어온 이야기의 양상에서 변이가 나타나는 것으로는 옥녀봉 설화, 치마바위 설화가 대표적이다.
옥녀봉 설화는 나무꾼과 선녀 전설 내용과 구조가 비슷하다. 이 전설은 나무꾼과 선녀 설화가 외부에서 들어와 이것을 바탕으로 화순의 정서에 알맞게 꾸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하늘에서 목욕하러 지상에 내려온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하늘에 올라갔지만 나무꾼이 날개옷을 감춰서 하늘에 오르지 못한 선녀가 아이들을 낳으며 나무꾼과 함께 살다가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내놓자 아이들과 함께 하늘에 올라갔다는 내용이다. 이 나무꾼과 선녀를 변용한 옥녀봉 전설은 마고신선이 수십 명의 선녀들을 이끌고 내려와 산봉우리에서 은장막, 금장막 여러 겹을 산 위에 두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즐길 때 산 아래에 살고 있던 젊은 장정이 선녀들의 노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선녀의 거울 한 개를 감춘다. 선녀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 한 선녀가 거울을 찾다가 운교를 타지 못하고 홀로 남게 된다. 젊은이는 선녀를 아내로 맞을 생각에 집으로 데리고 온다. 마을 사람들이 선녀의 노래를 듣고자하니 선녀가 천상의 풍류를 들려준다. 선녀의 애절한 사연이 슬픈 노래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끼고 젊은이도 선녀에게 슬픔을 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럴 즈음 천상의 옥황상제가 자신의 목욕시중을 드는 시녀를 옥녀봉 정상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다. 옥녀봉에 선녀와 함께 오르니 오색구름을 타고 온 선녀가 지상의 선녀를 데리고 하늘로 오른다. 나무꾼과 선녀와 옥녀봉 전설의 유사성은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과 젊은 장정이 한 선녀를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여 아내로 삼으려는 것만 같을 뿐 나머지 이야기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나무꾼과 선녀를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나머지는 모두 화순의 정서에 맞게 이야기의 내용을 꾸몄기 때문이다.
옥녀봉 설화에서 선녀는 ‘아름답고, 인간세계와는 다른 높은 존재’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상의 사람은 언제나 하늘과 관련된 옥황상제나 선녀를 높이 우러러보거나 절대적인 존재, 또는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벽지리 뒷산의 속옷바위 설화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총각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고 올라가는 선녀를 그리워하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선녀가 아침 일찍 산으로 올라오면 만날 수 있다 하여 선녀가 가르쳐 준 대로 산으로 올라가 선녀를 만난다. 하늘이 열리며 눈부신 빛이 내려와 총각은 눈이 멀고 선녀는 하늘에 오르려다가 떨어져 커다란 산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옥녀봉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이다. 나뭇꾼과 선녀와는 사뭇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지만 선녀와 총각이라는 주된 인물의 등장과 끝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부분에는 두 이야기간에 유사성이 있다.
치마바위 설화 역시 외부에서 유입된 전설인 아기장수전설을 골격으로 삼아 탄생된 이야기이다.
주지하다시피 아기장수 설화는 어린 아기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겨드랑이에 깃이 돋아나 힘이 센 장수로 성장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깃이 뽑혀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유사한 내용으로 전해온다. 이러한 양상은 화순에서도 나타난다.
화순의 치마바위 설화에서는 오십이 넘어 남매 쌍둥이를 낳는다. 10여 세가 되니 힘이 장사였다. 소년장사가 스무 살이 되니 양 겨드랑이에서 날개깃이 돋아났다. 남매는 서로의 힘을 겨루기 위해 오빠인 소년장수가 산 위에서 바위를 던지면 산 아래에서 누이동생이 치마로 바위를 받았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이동생은 장정행장을 하고 의병에 참여하기 위해 형제라고 속여 출병한다. 그러나 남매가 잠자는 틈에 진중 사람들이 옷을 벗겨 남매의 정체를 알고 오빠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깃을 뽑아버린다.
아기장수 설화와 치마바위 설화의 유사성은 겨드랑이에 날개깃이 있어 힘이 장사라는 것과 주인공들이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환타지적 상상력으로 이야기 속에 괴력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치마바위 전설의 내용은 화순의 정서에 알맞은 것으로 이처럼 전설은 특정한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정서에 알맞게 꾸며지는 것이다.
문이 열린 바위 설화 또한 아기장수 설화와의 유사성이 보이는 이야기이다. 겨드랑이에 깃털이 난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하반신이 아직 제대로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들이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었다. 아기장수는 콩 한 되와 좁쌀 한 대를 가지고 솔대봉 바위 아래로 떠난다. 일년이 되면 아기장수의 몸이 완성되고 가지고 간 콩과 좁쌀이 아기장수를 따르는 병졸이 되는 것이다. 왜군들은 아기장수 소문을 듣고 가족을 위협하여 아기장수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쫓아간다. 아기장수는 몸이 완전히 만들어진 상태였으나 갑옷을 입지 않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 역시 아기장수는 힘이 세고 큰 인물이 될 것인데 죽임을 당한다는 부분은 아기장수 설화와 그 골격이 같다.
홍승월 장사 설화는 남양 홍씨는 큰 부자이지만 아들이 없다가 백일기도 끝에 부인에게 태기가 있다. 아들을 낳았는데 홍승월이라고 했다. 승월이는 겨드랑이에 깃털이 난 힘센 장사로 성장한다. 승월이가 장사라는 것이 소문이 나자 나라에서 힘센 장사를 경계하고 있던 터라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가려 한다. 그런데 나라에서 임금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여 승월이를 죽이고 만다. 겨드랑이에 깃털이 있고 힘이 세다는 것과 죽음을 당하는 것 등에서 아기장수 설화와 기본 골격을 같이하고 있다.
은적굴 시리바위 설화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식이 없어 외로운 노후를 보낼 때 당산나무 아래에 서너 살 짜리 여자 아이와 돌 지난 사내 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아이를 키웠는데 자랄수록 힘이 장사였다. 특히 왓등의 샘에서 물을 마셔 힘이 무서운 장사가 된다. 그 무렵 왓등샘물을 마신 산적들이 횡행한다. 어느 날 도승이 왓등샘 입구에 시루를 걸어놓으면 샘이 마르게 되고 남매의 힘도 사라질 것이라고 하여 왓등에 시루를 세운다. 그러자 도적들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되고 남매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기장수 설화와는 대부분 이야기의 흐름이 다르지만 힘이 장사이고 결국은 힘을 쓰지 못한다는 비극적인 결말은 유사해 아기장수 설화가 변이된 것으로 짐작된다.
용왕의 아들 잉어에 관한 설화는 용왕의 아들이 어부에게 잡혔다가 풀려난 뒤 어부의 소원을 들어줬다는 이야기이다. 화순의 어리물 범바위 설화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다. 위씨 할아버지가 낚시질을 하는데 커다란 잉어가 잡힌다. 잉어는 살려주면 마을에 재앙이 없도록 산신령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잉어를 물 속에 놓아주었는데 위씨 할아버지의 손자를 호랑이가 물고 가버린다. 호랑이에게 호통을 치자 손자를 굴 앞에 놓고 사라진다. 그러나 호랑이가 밭매러 온 엄마를 따라 왔다가 계곡에 굴러떨어진 아이를 구해준 것이다. 이후로 마을에서 아이가 사라지면 호랑이굴 앞에서 데려오곤 했다는 이 이야기는 잉어가 용왕의 아들이라는 것과 풀려난 뒤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같다. 호랑이를 등장시키는 등 나머지 장치들은 화순의 정서에 알맞게 꾸민 것으로 볼 수 있다.
3) 역사와 정서를 반영한 설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전설을 차용하여 화순에 적용시킨 이야기들도 있다. 대비리의 유래 전설은 고려 왕건과 나주 처녀의 역사적 사실을 골격으로 삼아 변용한 것이다. 고려 왕건이 나주의 한 우물가에서 어떤 처녀로부터 우물에서 물을 얻어 마실 때 버들잎을 띄워 물을 천천히 마시게 하는 처녀의 지혜에 감복하여 왕비로 맞았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반해 대비골 유래에서는 가난하지만 효심이 지극한 슬기롭고 부지런한 김씨 처녀가 나물을 캐는데 고려의 신종 임금이 산길을 걷다가 갈증이 나서 샘터를 찾았다. 때마침 나타난 김씨 처녀가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신종에게 물을 바친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급체할까봐 그랬다는 처녀의 말에 감복한다. 왕은 허약한 몸으로 정사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아 태자에게 선위하려 하면서 태자비를 능성골에서 물에 버들잎을 띄워준 처녀를 태자비로 간택하게 된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대비가 태어났다 하여 대비리라고 한다. 대비리에서 실제로 대비가 태어났는지 어쨌는지 역사적 사실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려 태조인 왕건과 나주 강씨 처녀의 역사적 사실을 골격으로 하여 화순에 맞게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한편 화순의 자연풍토와 정서 속에서 생겨난 전설도 있다. 관풍정 전설, 옥거리샘 전설, 차전과 배씨 처녀 전설, 마산리 살바위 전설, 정자근노미, 적벽강, 영벽정 등 살펴보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관풍정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조선 광해군 때 화순 고을에 화재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도인이 화순 고을의 뒷산이 화체산형(火體山形)이기 때문이라서 그러므로 우물을 파서 이를 막는 비책을 일러준다. 남산주위에 열 개의 샘을 팠는데 이가 십정원두(十井源頭)이다. 그리고 남산 아래에 만든 연못 가운데에 관풍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이 전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로 풍수사상이 깃들어있다.
옥거리샘 전설에서는 남원윤씨 부인이 자식이 없는 가운데 남편과 사별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곡식을 나누어주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나누어주며 행객이나 걸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삯바느질을 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량한 공덕을 베풀어 전생의 두터운 죄업을 닦았다. 이윽고 몸도 늙고 돈도 떨어질 무렵 옥거리샘 앞을 지나다가 나무 밑에서 손발이 묶인 죄수들이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죄수들에게 물을 떠주었다. 감옥 부근으로 이사한 윤씨 부인은 죄수들을 보살폈다. 어느 날 길가에 늙은 호랑이가 쓰러져 있어 기르던 닭을 잡아 줬는데 그 뒤 어느 날 개 한 마리와 닭 한 마리가 마루 밑에 있었다. 그리고 호랑이가 발로 판 흔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물이 솟아올라 우물을 팠다. 물을 떠서 목마른 죄수들의 목을 축여주었다. 이 전설은 불법(佛法)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아 전생의 죄업을 씻는다는 불교적인 가르침을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홍기천비 내력을 이야기하는 전설도 화순의 역사와 만나 오직 화순의 정서를 반영한다. 홍기천이 조선 현종 때 화순 현감을 지낼 때의 일이다.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자 유림과 부녀자까지 뜻을 모아 공덕비를 세우려 하였다. 홍기천은 극구 사양했으나 고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홍기천은 비를 세우려거든 나무로 비를 세워주라고 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고을 곳곳에 비를 세웠는데 한달 후 홍기천은 목비가 비를 맞으면 썩으니 모두 뽑아서 가져오도록 하여 그것들을 목재삼아 화순향교 대성전, 명륜당, 만화루를 보수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실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지금도 남아있는 거북비와 숭유비가 그를 기리고 있다. 관리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오직 백성들의 평안을 걱정해주는 진정한 목민관을 바라는 화순사람들의 정서가 깃들어있는 전설이다.
왕등어라는 물고기의 유래에 관한 설화로는 세조임금과 왕등어가 있다. 세조가 쌍봉사를 찾았을 때 스님들이 쌍봉사 앞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상에 올리자 그것을 맛있게 먹은 세조가 물고기 이름이 등어라는 것을 알고 고기에게 왕(王)씨 성을 하사하여 쌍봉사 앞개울에 사는 등어만이 왕등어라고 부르는 것은 화순의 정서에 알맞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조가 실제로 쌍봉사를 다녀갔는지는 모를 일이나 유교국가이지만 절을 잘 찾아다녔던 세조의 행적에 빗대어 생성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기묘사화 때 능주에 귀양왔다가 사사된 조광조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한다. 불상과 조광조에서는 기묘사화로 능주에 귀양온 조광조가 그의 벗 양팽손을 찾아 학포당에 간다. 꿈 속에서 쌍봉사 주지가 나타나 자신은 불상을 훔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풀어주라고 한다. 다음 날 쌍봉사에 갔다가 잠깐 조는 사이 쌍봉사 천불이 나타나 주지가 도둑이 아니라고 한다. 적소에 돌아와 전라감사에게 편지를 보내 주지가 풀려나게 한다. 이후로 쌍봉사 인근 마을을 조대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화순과 연계한 부분이 그럴 듯하다. 조광조가 능주에서 귀양생활을 한 지는 한 달밖에 안 되지만 능주 사람들에게 크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조광조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로는 발광정이 전한다.
4) 사랑을 주제로 한 설화
화순에 전하는 설화에도 예외없이 청춘들의 사랑이야기가 엿보인다. 양반처녀와 머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이 배어있는 각시바위 설화와 전쟁터에서 불구의 몸으로 고향에 나타나지 못하다가 정혼녀가 혼인하는 날 나타난 괴바위 설화, 그리고 우물에 몸을 던진 비련의 이야기가 깃든 무지개샘 설화들은 모두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이다.
각시바위 설화는 양반인 황부자의 머슴 돌덕이와 그 집 딸이 사랑을 하게 되었다. 처녀는 돌덕이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이 사실을 안 황부자가 돌덕이를 내쫓았다. 어느 날 돌덕이가 처녀의 방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기다리겠다며 마을 앞 산 바윗골에서 자진하였다. 자신 때문에 돌덕이가 목숨을 버렸다고 생각한 처녀도 몸이 쇠약해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죽어서야 커다란 바위가 되어 만난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잘 아는 옛날 사람들의 마음이 엿보이는 설화이다.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뜨거운 사랑의 열기는 서방바위와 각시바위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김씨 집안의 종손이 늦둥이 아들을 낳는다. 아들이 자라 서당에 갔다 오다가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아가씨를 만난다. 둘은 정이 들어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아가씨의 집안은 사기장이어서 양반 집안인 아들과 신분이 맞지 않는다. 둘이 몰래 천태산에서 혼례식을 치루려는데 양반집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쫓아온다. 아가씨를 죽이려 하는 순간 회오리바람이 일고 번개가 치더니 땅이 흔들려 산이 무너져 내린다. 처녀 총각은 바위가 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비극적이다.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을 뛰어넘고자 하는 일은 참으로 지난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설화속에 끌어들일 때는 언제나 슬픈 결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합할 수는 없지만 결합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소망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의미를 지닌다.
괴바위 설화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와 총각의 사랑이야기를 전한다. 나라에 전쟁이 터지자 총각은 전쟁터에 나갔다. 일 년을 기다리겠다던 처녀는 삼년을 기다렸다. 혼인하라고 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혼사를 치루는 날 전쟁터에서 불구의 몸이 되어 처녀 앞에 나타나지 못하던 총각은 그리운 마음에 처녀의 집에 나타난다. 그날 밤 처녀와 만나곤 했던 연못가에서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낮에 혼례를 치룬 처녀가 나타났다. 집에 들어가라는 총각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던 처녀는 총각을 안고 연못에 뛰어들고 만다. 괴바위 설화 역시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오류리 가마바위 설화도 이와 거의 유사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지척 간의 거리 때문에 어느 한쪽이 재생산하여 이야기를 그 마을에 맞게 옷입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지개 설화 또한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들판에서 소나기를 피해 바위 밑에서 만난 옥녀와 총각이 서로에게 반해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이듬해에 혼인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가림역의 관원들이 옥녀를 노비로 선정해버려서 옥녀가 관원에게 몸 바쳐 시중을 들어야 할 처지였다. 옥녀는 몸을 더럽힐 수가 없어 역관을 탈출해 우물에 몸을 던져버린다. 이를 안 총각도 옥녀의 뒤를 따른다.
이렇듯 화순지역에서 전하는 남녀의 사랑에 관한 설화는 한결같이 비극적인 결말의 내용들이다. 그러나 유교적 덕목을 충실히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통념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상적인 사랑으로 여겼기에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과 정혼한 사랑이라 한들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혼인은 할 수 없지만 순결한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5) 성을 주제로 한 설화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관념을 통해 백성들과 나라의 질서를 잡았다. 그러므로 민간에서는 충(忠)과 효(孝)를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으로 여겨왔다. 향교나 서원에 배향된 인물들과 효자각, 열녀문, 충신각 등은 유교적 관념을 잘 수행하여 모범을 보인 사람들도 민간에서 잘 따르게 하기 위한 교육 목적이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등 사기에는 성윤리를 문란하여 벌을 줬다는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오늘날은 간통죄마저 폐지된 시대이지만 당시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국가에서 개인의 성의식을 통제하고 억압하였다.
그러나 개인의 감정에 치우쳐 문란한 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민간의 성의식이 반영된 우리나라 설화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전국에 나타난다. 화순지역 설화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설화를 통해 성의식이 표출된다.
만연사 유래는 암자의 못된 중이 만연이의 예쁜 모습에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만연이를 숲으로 유인해 음행을 하는데 만연이는 업친데 덮친 격으로 독사에 물려 죽었다가 나주 목사의 아들로 환생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성은 무지한 폭력성으로 나타난다.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에 기댄 이 설화는 건강한 성, 생산적인 성이 아니라 단순한 쾌락을 추구한다. 이러한 예는 많다.
목전바위 설화에서는 수행하는 스님이 자신의 신분을 잊고 헛된 생각으로 처녀에게 사랑을 호소한다. 그러나 처녀를 강제로 쓰러뜨렸다가 보복이 두려워 죽인다. 그러나 고을 원님의 기지로 젊은 스님을 찾아내어 벌을 준다. 이 설화 역시 인륜을 벗어난 성의식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수행하는 스님이 음욕을 품었다가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사라진 건지사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하늘에서 상제의 시중을 드는 사동이 상제의 허락을 얻어 지상에 내려온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아름다운 처녀에게 넋이 나간 사동은 음욕을 죽이기 위해 건지산 기슭에 절을 짓는다. 또다시 아름다운 처자를 만나 음심이 발동해 처자를 안고 만다. 그러자 절과 사람이 사라지고 만다.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당대의 관념을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이다.
골아실 둠벙과 소금장수 설화에서도 여색을 밝힌 소금장수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장사가 안 되어 소금장수가 낙심하여 수문통에 빠져 죽으려는데 신선이 나타나 내륙 깊숙이 들어가면 소금이 잘 팔릴 것이라고 하며 여색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임동마을에서 과부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고 둠벙에 빠져죽고 만다.
삼강오륜이 있고 도덕이 있는 시대이지만 민간에서는 그것들을 파기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도덕적 관념은 어쩌면 지배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어 통치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념에서 끊임없이 도덕적 관념을 통해 백성들을 끊임없이 억압했다. 이에 대해 민간에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며 삼강오륜에 순응하며 실천하곤 했다.
유교적이념의 카테고리에서 여전히 순응하는 민간은 그것들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의 존재성을 확인받곤 했다.
딸래바위 설화에서 남매가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남동생이 옷을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너 지나갈 때 갑자기 이는 동물적 본능으로 마음이 동요한다. 그러나 이성을 되찾은 동생은 수치심으로 자신의 남성을 돌로 쳐버린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당연한 것이어서 민간에게 교육적 목적을 충분히 거둘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6) 풍수를 배경으로 한 설화
앞에서 지적했듯이 화순 설화는 풍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특히 정영기가 수집한 것들은 설화가 풍수에 기운 것들이 많다. 강동원의 『화순의 전설』은 물로 화기를 다스린 현감, 명당의 발복으로 정승이 난 능성구씨, 한반도의 돗대 운주사, 일행선사의 심술을 막은 도선국사, 사자의 입에 지은 쌍봉사, 바위의 목을 잘라 망한 왕씨 등이 풍수와 관련된 설화이지만, 정영기의 『화순의 설화』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풍수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풍수는 중국에서 발생한 학문으로 자연(바람의 물,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태도를 지닌 것으로 자연을 상징체계 속으로 끌어들여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연계하여 해석한다. 자손이 번성하고, 부자가 되고,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이 복(福)이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길지에 집을 짓거나 샘을 파고, 조상의 묘를 길지에 모셔야 한다고 믿었다. 마을 터를 잡을 때도 좌청룡 우백호여서 뒤에 산이 둘러쳐져 있어야 하고 마을 앞에는 물이 흘러가야 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조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솟대를 세워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화순의 경우 남산방죽과 십정원두가 대표적인 것으로, 고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났는데, 그것은 화순고을의 뒷산이 화체(火體)의 산형이어서 화재가 자주 난다고 생각하여 화산을 제압하기 위해 고을 앞에 있는 염산(鹽山)을 화산(花山)이라 이름을 고치고 곳곳에 우물을 파고 만연산 아래에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승동마을은 묘를 명당에 써서 능성구씨들이 높은 벼슬을 많이 하고 정승까지 나왔다고 한다. 운주사와 관련된 설화에서는 우리나라를 한 척의 배로 인식하고 있다. 동쪽에 산이 많아 배가 동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서쪽인 운주사에 탑을 쌓아 돛대 역할을 하여 배의 균형을 맞췄다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쌍봉사 역시 풍수에 기대어 지은 절로 발복을 염원하는 민간의 소망이 설화에 투사되어 있다.
지장물 황룡과 황룡사 설화에서 연못에 황룡이 살고 있었는데 승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못에서 찬물이 나와 농사가 안 되자 마을 사람들이 연못을 파헤쳐 버린다. 그러자 작약꽃이 반쯤 피어있는 작약반개형국의 마을 지세에서 승천하기 위해 꽃이 피기를 기다리던 용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자연의 지형이 마치 작약꽃이 반쯤 피어있는 형국과 같아서 완전히 꽃이 피어야 발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수상으로 볼 때는 아직 미완의 상태이다. 그런 까닭에 꽃이 피면 용이 승천할 수 있었을 텐데 연못을 파헤쳐 버렸으니 비극적인 결말일 수밖에 없다.
목이 잘린 자라바우 설화는 이미 발복한 복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화를 입은 것을 이야기에 담은 경우이다. 착하지만 가난하게 사는 허씨 집에 노승이 찾아와 하룻밤 유석해줄 것을 간청한다. 사랑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자게 된 노승은 한결같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잘 살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한다. 마을의 지세에 문제가 있는 것을 간파한 노승은 자라바위 꽁무니를 모산마을 쪽으로 돌리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노승의 말대로 하니 마을은 잘 살게 된다. 그러자 정남리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자라의 꽁무니를 자신들의 마을 쪽으로 돌리려고 서로 싸우다가 자라 목이 부러지고 말아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된다.
동복향교와 능주향교와 관련된 설화들도 풍수와 관련된 것들이다. 동복향교는 몇 번 이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명당자리에 의해 좋은 인재를 배출하고자 하는 발복의 소망이 깃들어 있다. 동복에서 큰 인물이 나오려면 동복향교를 옮겨야 한다고 유림들이 주장한다. 그 동안 연월리에서 교촌마을로 옮겨갔지만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자 향교 터가 잘못 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독상리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진주하씨 묘가 있었다. 유림들이 묘를 파라고 하자 진주하씨는 파묘하는데 갑자기 묘에서 하얀 안개가 자욱했다. 커다란 암소가 일어나 사라져버렸다. 암소는 발복의 상징이다. 농사 지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끼들을 낳아 주어 재산의 밑천이 되어주는 것이 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를 기다리지 않고 파묘해버려 복이 달아났다는 이야기이다.
정승이 되지 못한 학 설화에도 풍수사상이 배어있다. 고려 유민들이 깊은 산중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데 설씨와 남씨 집안이 늦게 들어온 민씨와 장씨들을 종부리듯 한다. 스님이 탁발하러 왔는데 설씨가 스님을 묶어 주리를 튼다. 스님은 봉정산 능선을 조금 자르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스님의 말에 따라 봉정산 동쪽 능선을 낮게 잘랐는데 안개가 일고 학 세 마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권세를 누리던 집안들도 망하고 만다.
이 설화는 봉변을 당한 스님이 설씨와 남씨들을 혼내기 위해 풍수를 감정적으로 이용한 내용으로 부자로 살지만 무지한 사람들에게 풍수를 역이용한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장수명당과 당산할머니, 용암사 불암사, 금능리 청룡혈, 광대월 피바우, 새재마을 검단치 고개 등 여러 설화에서 민간의 풍수사상을 반영하고 있다.